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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철 신원그룹 회장, 비호 세력 살펴보고 있다”

검찰, 정·관계 로비 의혹 들여다봐…정치권·종교계 마당발 통해

이승욱·안성모 기자 ㅣ smkgun74@sisapress.com | 승인 2015.07.15(Wed) 11: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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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 패션 기업인 신원그룹의 박성철 회장(75)이 사법처리 위기를 맞고 있다. 한국 패션업계의 대부이자,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워크아웃 사태를 거치면서도 재기에 성공한 사업가로 통하던 박 회장의 화려한 부활 뒤에 감춰졌던 비리 혐의가 사정 당국의 레이더에 걸린 것이다. 하지만 검찰 수사가 박 회장 개인 비리에만 국한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검찰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정·관계와 종교계를 중심으로 역대 정권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성장과 재기를 거듭해온 그의 이력에 주목하며 사건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가 적지 않다.

“숨겨둔 재산으로 회사 되찾아”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 한동훈)는 7월9일 사기 회생 및 조세 포탈 등의 혐의로 박성철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박 회장은 조사 과정에서 “자숙하는 뜻에서 법원의 영장실질심사를 포기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회장에 대한 구속 여부는 7월13일께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7월8일 탈세와 횡령·개인회생 사기 등의 혐의를 받는 박성철 신원그룹 회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검찰은 박 회장이 신원그룹 워크아웃 이후 경영 일선에 복귀하는 과정에 주목하고 있다. 박 회장은 1999년 신원그룹이 외환위기로 인해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보유 지분을 모두 포기했지만, 2003년 워크아웃 졸업 후 대표이사로 다시 취임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박 회장 일가가 페이퍼컴퍼니를 동원해 증여세와 종합소득세 등을 탈루한 것으로 보고 있다. 박 회장의 부인 송 아무개씨는 신원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신원의 1대 주주이자 광고대행사인 티엔엠커뮤케이션즈의 최대주주(26.6%)이다. 박 회장의 세 아들도 각각 티엔엠커뮤니케이션즈 지분을 1%씩 보유하고 있다.

박 회장이 2003년 워크아웃 졸업 이후 ㈜신원의 대표이사를 맡으면서 경영 일선으로 복귀한 데는 티엔엠커뮤니케이션즈의 주식 매입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검찰은 박 회장이 숨겨둔 자산을 이용해 티엔엠커뮤니케이션즈가 ㈜신원의 1대 주주 지위를 획득한 것으로 보고 있다. 박 회장이 자신의 부인과 아들들이 지분을 보유한 티엔엠커뮤니케이션즈를 통해 (주)신원의 주식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증여세와 종합소득세 등 30여 억원의 세금을 포탈했다는 것이다. 국세청은 검찰 수사에 앞서 박 회장을 세금 탈루 혐의로 고발하고 송씨 등에게서 190억여 원을 추징한 바 있다.

검찰은 또 박 회장이 자신의 채무 탕감 과정에서 불법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박 회장이 2003년 경영권을 되찾은 후에도 2008년 개인파산과 2011년 개인회생 절차를 밟으면서 빚을 탕감받았기 때문이다. 검찰은 박 회장이 당시 재산이 없는 것처럼 법원에 허위 신고를 한 단서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통해 박 회장은 250여 억원의 채무를 탕감받았는데 이는 사기 회생에 해당한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특히 검찰은 박 회장이 경영권을 되찾은 이후 ‘무일푼’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도 회사 자금을 개인 생활에 사용한 정황에 주목하고 있다. 박 회장은 지난 1981년께부터 지금까지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지상 2층 규모의 단독주택에서 거주하고 있다. 박 회장이 거주하고 있는 주택의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이 주택은 박 회장이 1981년 11월 구입한 것으로 나와 있는데, 박 회장과 신원그룹이 사업 위기를 겪던 1998년 무렵에 채권단에 가압류됐다. 결국 박 회장이 대표이사로 재취임한 이후인 2005년 10월 박 회장의 자택에 대한 강제 경매가 개시됐지만, 2006년 7월 ㈜신원이 낙찰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신원그룹 측은 이에 대해 “박 회장이 살고 있는 집은 사택 개념으로 회사가 제공하고 있는 것이라 문제가 없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수사는 일단 박 회장의 개인 비리 혐의를 파헤치는 데 집중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박 회장이 그동안 정·관계와 금융권 그리고 종교계 주요 인사들과 밀접히 교류해왔고, 재기 과정에서도 석연치 않은 대목이 많은 만큼 단순한 개인 비리를 넘어 정·관계 로비 의혹으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계 31위 중견 그룹 이끌어

검찰은 박 회장이 신원그룹 계열사 자금 100억원가량을 빼돌린 정황을 포착했지만 법원에 청구한 구속영장에서는 이를 제외해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검찰 관계자가 “박 회장이 수백억 원대의 재산을 유지하면서 불·탈법을 계속할 수 있도록 비호해준 세력에 대해서도 살펴보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검찰의 칼끝이 박 회장 개인 비리를 넘어 전 방위 로비 의혹을 밝혀내는 쪽으로 흘러갈 수도 있음을 예고했다.

박 회장은 젊은 시절 정치에 꿈을 뒀던 것으로 보인다. 1971년 총선을 몇 달 앞두고 그는 고향인 전남 신안에서 신민당 후보로 공천을 신청했다. 당시 31세로 직업은 ‘산업경제 논설위원’으로 돼 있다. 공천은 받지 못했는데, 낙천자 대다수가 크게 반발한 것과 달리 박 회장은 공천자에게 협조하겠다는 성명 광고를 신문에 냈다. 이후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 때는 김대중(DJ) 신민당 후보의 공보 비서를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은 이듬해 새로운 회사를 설립하며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처가에서 경영하던 스웨터 공장을 맡게 된 그는 1973년 11월 스웨터를 직접 수출하기 위해 신원통상을 새로 설립했다. 자본금은 1000만원이었다. 그는 당시 연간 500만 달러 수출을 목표로 했다. 박 회장은 1976년부터 여러 해 동안 수출 유공자에게 주는 표창장을 받으며 사업을 키워갔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두 달이 채 안 된 1980년 7월 박 회장의 신원통상은 서울 마포구 도화동에 10층짜리 사옥을 준공할 수 있는 재개발 사업 시행 인가를 서울시로부터 받아냈다. DJ가 내란 음모의 ‘수괴’로 몰릴 때다. 새롭게 들어설 빌딩이 신민당 당사 바로 뒤편에 위치한 것도 아이러니했다. 전두환 정권 시절이던 1983년 11월 박 회장은 스웨터 수출 사업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건설업에도 진출했다. 도심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신원종합개발을 설립한 것이다. 1987년 11월에는 스웨터 단일 품목으로 연간 1억 달러를 수출해 금탑상 수상자가 되기도 했다.

전두환에서 노태우로 대통령이 바뀌었지만 박 회장의 사업은 탄탄대로를 걷는 것처럼 보였다. 1989년 5월에는 경기 용인에 27홀짜리 골프장 조성 허가를 받아 레저 분야까지 진출했다. 인도네시아·중국·러시아 등 해외 공장도 하나둘씩 늘렸다. 김영삼(YS) 정부가 들어선 후 박 회장의 신원은 중견 그룹의 면모를 갖춰나갔다. DJ 정부 때인 1990년대 후반에는 재계 순위 31위, 국내외 계열사 20여 개, 연 매출 2조원을 기록하는 등 국내 대표 중견 그룹으로 성장했다.

한때 잘나가던 기업으로 통하던 신원그룹은 1997년 외환위기로 기업 개선 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가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신원그룹은 워크아웃을 5년 만에 졸업했고, 박 회장은 4년 만에 1조원 이상의 빚을 모두 갚으면서 재기에 성공했다. 당시 박 회장은 자산 매각을 통해 거액의 부채를 정리했다고 밝힌 바 있다. 워크아웃을 졸업하고 그가 경영 일선에 복귀한 이후 신원그룹은 과거의 명성을 회복했다. 하지만 그의 화려한 부활 이면에 세금 탈루와 사기 회생 등의 불법 혐의가 드러나면서 재기에 성공한 기업인이라는 명성에도 타격을 입게 됐다.

조용기 목사와 같은 재단 이사로 활동

박 회장은 크리스천으로서의 자부심이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매주 월요일 아침 목사를 회사로 초빙해 전 직원이 함께 예배를 봤다. 간부회의를 할 때도 기도부터 먼저 했다. 사옥에는 별도의 예배실과 기도실을 두기도 했다. 불우이웃돕기 등 성금도 자주 냈다. ‘평화의 댐’을 건설한다고 난리가 났을 때는 한 언론사에 1000만원을 성금으로 내기도 했다.

개신교계 내 인맥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용기 목사 등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중심으로 여러 인사들과 교류해왔다고 한다. 박 회장은 2010년 7월부터 조용기 목사가 이사로 있는 국민문화재단 이사로 활동 중이다. 국민문화재단은 민족 복음화와 세계 선교를 위한 선교 사업과 교육·출판·홍보 등 매스미디어 운영 등을 설립 목적으로 하고 있다. 박 회장은 국민문화재단이 입주해 있는 여의도 국민일보 본사 사옥 건립 과정에서도 기부를 할 정도로 열성적으로 교회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MB) 정권 때인 2009년 2월 박 회장은 대한민국 국가조찬기도회 4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국가조찬기도회는 1966년 3월 조선호텔에서 열린 대통령 조찬기도회가 효시로 지난 2003년 사단법인화했다. 매년 대통령을 비롯한 유력 인사들이 참가하면서 기독교계의 대표 행사로 자리 잡았다. 2011년 3월3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43회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부인 김윤옥 여사와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는 모습이 보도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전두환 집안과 사돈 관계? 

노태우 정권 때인 1988년 3월 전경환씨에 대한 이른바 ‘새마을 수사’가 진행될 때의 일이다. 새마을운동중앙본부 회장을 지낸 전씨에게 제기된 혐의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 중 하나에 박성철 신원 회장의 이름이 올라 있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인사들에 따르면 박 회장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인 전경환씨와 가깝게 지냈다고 한다. 검찰에서 들여다본 건 ‘신용보증기금의 사옥 강제 매입’ 사건이었다. ‘1985년 11월 박 회장이 오피스텔 용도로 지은 20층 규모 빌딩을 박 회장 부탁으로 전씨가 영향력을 행사해 정부 투자 기관인 신용보증기금으로 하여금 시가 250억원보다 훨씬 많은 357억원에 사도록 했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당초 신용보증기금은 여의도에 사옥을 건립할 예정이었는데 교통이 복잡한 마포에 위치한 건물을 사들이자 뒷말이 나돌았다. 대다수 직원이 이 건물 매입에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검찰은 수사 결과 발표에서 ‘매매가격이 당시 시가보다 비쌌던 것은 아니고 이 매매에 전경환이 개입된 사실도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며 무혐의 처리했다. 검찰은 ‘신용보증기금은 여의도에 가지고 있던 대지에 신사옥을 신축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나 당시 여의도에서는 신규 건축 허가가 어려웠다’며 신용보증기금에도 책임을 묻지 않았다.

주목되는 부분은 이날 발표문 내용 중 하나가 ‘박성철과 전경환은 친인척 사이가 아님’이라는 것이었다. 당시 일부 언론에서는 박 회장이 전씨와 사돈 관계에 있다고 보도했다. 검찰 수사에서 전씨의 개인 자금 28억원 중 17억원이 박 회장으로부터 차입한 돈인 것으로 드러난 만큼 박 회장과 전씨가 가깝게 지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왜 사돈 관계라는 보도가 났을까. 주변 얘기를 종합해보면 이렇다. 당시 박 회장과 전씨의 중간에 재일교포 P씨가 있었다. 박 회장이 일본에서 사업을 하던 P씨를 전씨에게 인척이라고 소개했다고 한다. 그런데 P씨가 전씨의 집안일을 돕던 C씨와 결혼을 했고, 이러한 상황이 와전돼 사돈 관계라는 말이 나왔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박 회장과 P씨가 최고 권력자인 전씨 일가의 힘을 빌리려고 ‘사돈 관계’라는 말을 흘렸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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