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어 만나니 눈시울이 붉어져요”
  •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 ()
  • 승인 2015.07.21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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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추억 되살려준 ‘종이접기 아저씨’ 김영만

백종원이 화제를 독점했던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변화가 나타났다. 종이문화재단 평생교육원장인 김영만 원장의 첫 출연에 폭발적인 반응이 터진 것이다. 김 원장은 1988년부터 KBS <TV유치원 하나, 둘, 셋> 등의 프로그램에서 20여 년간 종이접기를 가르쳐, ‘종이접기 아저씨’ ‘색종이 아저씨’로 불렸다.

인터넷 방송은 접속자 폭주로 서버가 잠시 다운됐다. 방송 중에는 ‘김영만’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제작진은 백종원이 한 명 더 나타난 것 같은 충격이라고 했다. 방송 직후 8시간 동안 김 원장이나 종이접기로 검색되는 트윗이 14만 건에 달했다. 백종원은 ‘괜찮쥬?’ ‘그럴싸하쥬?’ 같은 사투리로 인간적인 느낌을 줬는데 김 원장은 표준말을 쓴다. 하지만 말투에서 인간미가 묻어난다. ‘우리 친구들’이라며 시청자들을 보듬어준다.

MBC 에 출연한 김영만 종이문화재단 평생교육원장. ⓒ MBC 캡처

2030세대 울린 종이접기 아저씨

그의 종이접기 방송을 봤던 어린이들이 이제 2030세대가 됐다. 김 원장은 2030세대에게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열쇠였다. 많은 젊은이가 김 원장 앞에 앉아 동심으로 돌아갔다. ‘친구들 안녕?’ 하면 ‘네’ 하고 대답하고, ‘친구들 다 같이 박수’ 하면 아이처럼 박수를 쳤다.

김 원장 관련 빅데이터 분석 결과를 보면, 연관 심리 키워드로 ‘줄어들다’ ‘작다’ ‘울다’ ‘눈물 나다’ ‘눈물 흘리다’ ‘좋다’ ‘핫하다’ ‘푸근하다’ ‘완전 웃기다’ ‘쉽다’ 등이 등장한다. ‘줄어들다’ ‘작다’는 어렸을 때 커 보였던 아저씨가 이젠 작아 보이는 것에 대한 감회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그다음으로 많이 나타난 키워드가 눈물과 관련된 것들이다.

방송 중에 채팅창을 보던 김 원장은 “나도 눈물이 난다. 왜 이렇게 우는 사람이 많으냐? 난 딸이 시집 갈 때도 안 울었는데”라고 했다. 시청자들이 ‘울컥한다’는 글을 계속 올렸기 때문이다. 시청자도 울고 김영만도 울었다. 김 원장을 TV로 보며 고사리손으로 따라 했던 그 아이들이 이젠 다 큰 어른이 되어 인터넷 방송 채팅창 앞에 앉았다.

방송인 서유리는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아부지 출근하시기 전에 같이 방송 보던 기억이 나서 녹화 중임에도 많이 울었습니다. 오늘 저처럼 눈물 흘리신 분들 많으셨을 거라 생각해요. 추억은 이렇게도 진한 것인가 봅니다’라고 올렸다.

예정화와의 커플 체조로 네티즌의 질투를 한 몸에 받았던 권해봄 PD는 SNS에 ‘(김영만 아저씨에게) 방송 일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사인을 받아봤다…아저씨와 함께 종이접기 하던 게 벌써 20년도 더 된 추억이다. 언제 이렇게 나이 먹었지. 난 아저씨 말투, 목소리, 그때 아저씨 얼굴을 보면서 옷 입고 아침 밥 먹던 기억까지 어제 일처럼 선명한데, 아저씨가 꼬맹이라고 부를 때는, 순간 정말 그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라며, ‘갑자기 20년 전 추억을 마주하니 왠지 눈물겨웠다’라고 썼다.

일반인 SNS에도 비슷한 사연이 폭주했다. ‘어느새 너무 어른이 되어버렸어요. 우리가 ㅋㅋㅋ 그래도 김영만 아저씨가 친구들 친구들 하면서 다정하게 불러주시는데 아이로 돌아간 거 같고 막 맘이 울컥하더라고요 ㅠㅠ’. 이런 반응들이다. 김영만의 종이접기는 2030 힐링 프로젝트가 돼버렸다.

김 원장은 시청자들을 옛날 그대로 ‘어린이들’ ‘우리 코딱지들’이라고 불렀다. 바로 그것이 2030세대를 과거로 되돌아가게 하는 주문이 되었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몸은 어른이 됐어도 사회적으로 성년이 됐다고 말하기 힘든 ‘키덜트’들이 옛날처럼 자기를 ‘코딱지’라고 불러주는 아저씨 앞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추억의 품에 안기는 힘겨운 젊은이들

아무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고, 성과 경쟁이나 스펙 경쟁에 마음 졸이지 않아도 되고, 힘든 일이 닥쳐도 엄마에게 떼를 쓰면 해결됐던 그 시절. 아저씨가 모든 신기한 것들을 마술처럼 만들어줬던 그 시절. ‘코딱지’ 주문은 2030 ‘애어른’들을 그 시절로 인도했다.

고사리손으로 힘겹게 따라 했던 종이접기. 아저씨가 ‘친구들 이제 다 컸죠? 이제는 따라 하기 쉬울 거예요’라고 하자 왠지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종이접기는 따라 하기 쉬워졌지만 더 어려운 세상사에 대해 알아버렸다고 하소연하고 싶었다. 아저씨는 “자 여러분들! 어려우면 엄마한테 부탁해보세요”라고 했다. ‘아 그래, 엄마한테 부탁하면 뭐든지 되던 시절이 있었지’. 하지만 이젠 그때가 아니다. 채팅창엔 ‘제가 엄만데요’ ‘울 엄마 환갑인데’ ‘장모님께 접어달라고 할까요?’ 같은 자조적인 글들이 올라왔다. 우습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한 ‘웃픈’ 순간이었다.

노란색 눈에 대해 채팅창에 황달이라는 지적이 나오자 김영만은 “여러분들 어렸을 땐 코 파랗게 하고 눈 빨갛게 해도 아무런 말이 없었는데. 여러분들 이제 다 컸구나. 어른이 다 됐네…자 좋아요! 그런 눈과 마음으로 앞으로 사회생활 열심히 하는 거예요!”라고 했다. 이 대목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는 사람도 많다. ‘꼬맹이가 학교를 졸업하고 아저씨가 되었어요. 참 힘든 시절이었어요. 현실이 녹록지 않았어요’라고 하소연하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권해봄 PD는 적었다. ‘작은 원룸에서 라면을 끓여 먹다가 우연히 종이접기 방송을 보고 눈물이 쏟아졌다’는 블로그 반응도 있었다.

아저씨는 그런 젊은이들을 다독였다. “어린이 친구들 착하게 잘 자랐네” “이젠 잘할 수 있을 거예요” 아저씨의 응원을 들은 코딱지들은 회한에 젖기도 하고, 용기를 얻기도 했다. 보통은 아무리 인기 방송이어도 채팅창에 욕설을 올리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김영만의 종이접기는 워낙 2030 힐링의 장이 되다 보니 채팅창에서 욕설이 사라지는 ‘기적’이 일어나기도 했다.

백종원처럼 김 원장도 준비된 소통의 달인이었다. 채팅창을 보고 대화하며, 네티즌 반응을 유도하는 솜씨가 젊은 연예인 이상이었다. 여기에 종이접기 교육이라는 콘텐츠도 확실하다. 그런 와중에 추억 코드까지 장착했으니 금상첨화였다.

그런데 사실, 한창 미래를 향해 달릴 때인 2030세대가 벌써부터 추억을 찾으며 과거로부터 위안을 얻는 건 이상한 일이다. 최근 일었던 1990년대 복고도 30대가 주도하고 20대가 적극 동참한 트렌드였다. 왜 2030세대가 벌써부터 과거를 찾는 걸까. 과거에 젖는 건 미래가 없는 고연령대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또 현재가 괴로울 때 과거로 도피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결국 2030세대에 미래가 없고 현재가 괴롭다는 뜻이다. 벌판에 내던져진 것 같은 막막함을 느끼던 사람들이, 자신을 코딱지라고 부르며 자상하게 하나하나 가르쳐주는 아저씨 앞에서 눈시울을 적신 현상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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