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과의 대화] “K는 범행 후 욕실 청소까지 하고 나왔다”
  • 배상훈│서울디지털대 경찰학과 교수(프로파일러) (sisa@sisapress.com)
  • 승인 2015.07.22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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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은 반사회적 인격장애자…증거 훼손 아닌 결벽증에 청소

우리 사회에서는 매일 크고 작은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다. 살인, 어린이 납치·유괴, 성폭행 등 사건 유형도 다양하다. 이 중에는 범인을 잡지 못해 미제로 남아 있는 것도 많다. 시사저널은 이번호부터 사건 현장을 들여다보는  ‘사건 파일-범인과의 대화’를 연재한다. 이 코너에서는 증거들 속에 녹아 있는 범인과 피해자의 관계를 파헤친다. 필자인 배상훈 서울디지털대학 경찰학과 교수는 대한민국 1호 프로파일러로 ‘심리 부검’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5년 3월26일 새벽 6시40분. 여중생인 H가 조건 만남으로 알게 된 30대 후반 남성 K와 함께 봉천동 P 모텔 208호에 들어갔다. 2시간 후 K가 모텔을 빠져나왔지만 H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조건 만남을 주선했던 A가 방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 몇 시간이 흘렀는데도 인기척이 없자 모텔 주인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했다. 방 안에서 발견된 것은 H의 싸늘한 시신이었다. 이때 시각이 낮 12시10분. 사인은 경부 압박 질식사였다. 경찰 수사팀은 현장 감식과 CCTV 분석, 목격자 진술과 통신 수사 등을 통해 용의자를 압축해 시흥에 거주하던 범인을 검거했다.

조건 만남으로 만난 여중생을 목 졸라 숨지게 한 혐의로 붙잡힌 K씨가 3월30일 서울 관악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 연합뉴스

봉천동 모텔 여중생 살인 사건. 모텔에서 성매매를 하던 여중생이 관계를 가진 성매수 남성에 의해 살해당한 이 사건을 두고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가 쏟아졌다. 정말 그렇게 단순한 사건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여러 단계의 분석을 통해 볼 때, 이 사건은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를 가장한 반사회적 인격장애(소시오패스) 범죄자에 의한 ‘가학 살인’으로 연쇄 살인의 전 단계에 해당하는 사건으로 판단된다.

여성들과 인형 놀이 하다 실수한 것으로 생각

기자들이 프로파일러(Profiler)에게 잘못 질문하는 대표적인 게 ‘왜’라는 물음이다. 일반인의 상식과 달리 프로파일러는 ‘왜’가 아닌 ‘어떤’에 대한 해답을 찾는 사람이다. 더 정확히 말해 ‘어떤’ 속에 ‘왜’가 포함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범인 K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대개 이런 종류의 범죄자들은 말이나 행동 등에서 전형화한 심리적 특징을 뚜렷이 나타낸다. 그래서 이런 범죄자들을 조사할 때는 행동 하나, 진술 하나, 소품 하나가 대단히 큰 의미를 갖는다.

K가 조사 과정에서 언급한 진술 중 가장 의미 있게 다가온 것은 “나올 때 피해자는 침대에 앉아 휴대전화를 만지고 있었다”는 말이었다. 마치 정지된 영상을 묘사한 듯한 발언이다.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특정한 기억을 장면들(Scenes)로 저장해놓는다. 그리고 그 장면을 현장이나 피해자의 몸, 그리고 진술 속에서 끊임없이 되새김질한다. 장면의 재구성을 통해 범인이 피해자인 여성을 어떻게 다루었는가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장면의 재구성으로 드러난 것 중 하나가 바로 범인 K의 과도한 ‘결벽증’이라고 할 수 있다.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보이는 특징이다. 자신이 버림받았고 따돌림을 당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상처받은 자존감을 만회하기 위해 자신의 가치를 순수하게 높이려고 한다. 무엇인가 불순물이 섞이는 것을 극도로 혐오하고, 그래서 신경질적이고 편집증적인 반응을 보인다. 범행 현장에서 자신이 사용한 칫솔과 콘돔을 수거하고 욕실 청소까지 깨끗하게 한 행위는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다. 증거를 정교하게 훼손하려고 했다면 자신이 남긴 욕실 바닥의 음모와 피해자의 손톱 틈을 간과했을 리가 없다.

이제 ‘어떤’에 대한 답변이 나왔으니 ‘왜’라는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K는 왜 조건 만남 여성들을 상대로 폭력을 휘둘렀을까. 일반적으로 이런 범죄자에게 성관계 자체는 큰 의미가 없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회적 관계 형성에 문제가 있는 인격장애의 경우 정상적인 인간관계가 아니라 돈을 통해 자신이 쉽게 통제할 수 있는 행위로서 조건 만남을 선택한 것이다. 행위보다 과정 자체에 의미를 뒀다고 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범인은 어떠한 행위를 집요하게 요구했을 것이다. 여성들의 경우 어느 정도까지는 요구를 들어줬겠지만 계속되는 요구에 이를 거절하고 서둘러 성관계를 끝내려고 했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범인이 폭발한 것이다.

클로로포름이라는 ‘통제 약물’을 사용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를 통해 여성의 몸을 자신이 원하는 형태나 모양으로 쉽게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K는 경찰 조사에서 죽일 의도는 없었다고 완강하게 주장했는데 그로서는 사실에 가까운 진술일 수도 있다. K 입장에서 그가 원한 것은 인형 놀이와 같은 것이었다. ‘살인’보다는 ‘통제’에 대한 만족감이 더 컸을 수 있다. 다만 다른 여성들과 달리 피해자의 경우 클로로포름의 농도나 목 조름의 강도를 조절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K에게 ‘죄책감’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삶을 살고 있는 여성들과 인형 놀이를 하다가 실수를 한 것뿐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죄책감 없이 “죽을 줄 몰랐다” 진술

구체적인 상황 전개는 그가 지니고 있던 ‘작업 일지’에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K의 휴대전화 속 메모에 일지 형태로 자세히 서술된 내용은 그의 범죄 진화 과정과 현재 단계를 잘 보여준다.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진 범인들의 경우 범행 당시를 회상하기 위해 영상이나 사진, 메모 등을 통해 기억을 축적한다. 그리고 반복한다. 그러다가 어떤 특이점을 통과하면 질적인 단계로 도약한다. 어느 순간 성매수 범죄자가 가학적인 연쇄살인범이 되는 것이다.

K의 삶 속으로 좀 더 들어가보자. 만 38세인 K는 인터넷을 통한 해외 구매 대행 등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갔다고 했으나 이는 확인되지 않은 사항이다. 다만 그의 학력이 고등학교 중퇴인 것은 확인됐다. 어렸을 때부터 혈관종이라는 병으로 인해 얼굴 왼쪽에 크고 붉은 점을 지니고 살았다. 이 때문에 친구도 애인도 사귈 수 없었고, 진한 화장으로 점 부위를 가리고 다녔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실제와 모순되는 내용이다. 그의 혈관종은 그리 심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주변으로부터 왕따를 당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얼굴을 하얗게 분칠하고 다녔고 결벽증도 이 때문에 생겼다는 주장에도 무리가 따른다.

이보다는 어느 순간 부모가 자신을 멀리한다는 생각이 혈관종에 투영돼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부모도 봐주지 않는 너무나도 초라한 자아. 결벽증은 자기 학대의 다른 표현이다. 행적과 관련해서는 드러난 게 별로 없다.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은 어머니를 둔 그는 안면장애로 장애 등급을 받아 시흥시의 한 임대아파트에 6년 전에 입주했다. 당시 가족과 연락을 하지 않는다며 ‘단절 가구’ 명목으로 기초수급비를 받았고, 검거된 이후 어머니가 적극적으로 관계를 끊으려고 한 점 등으로 미루어볼 때 K는 지속적으로 반사회적 인격장애와 관련된 범죄 행위를 해왔고 이를 어머니가 누구보다도 잘 알았을 가능성이 크다.

주목되는 부분은 기초수급비를 받던 2011년 ‘직장을 다니려고 하니 장애 등급과 기초수급을 취소하겠다’고 통보해왔다는 점이다. 극적인 심리 전환이 이루어진 시기로 판단된다. 주로 이런 식의 심리 전환은 범죄 유형의 전환과 깊은 연관성을 가진다. 안타깝게도 어머니가 아닌 다른 가족은 범인이 구속된 이후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다세대주택 임대업을 하는 어머니는 경제적으로 형편이 나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게 주변의 이야기다. 아버지는 그가 어렸을 때 희귀병으로 사망했다고 하는데 정확하지 않다.

1남 2녀 중 둘째인 K는 조사 과정에서 어머니와 통화하며 “난 죽일 생각은 없었다. 죽을 줄 몰랐다”는 말을 죄책감 없이 했다. 그러면서도 “제발 면회를 와달라”며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실제 가족은 범인이 어렸을 때부터 성장해온 과정을 바라본 경험이 있으므로 두려움 때문에 멀리했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냉담한 부모가 먼저인지 범인의 반사회적 행동이 먼저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그 둘은 깊은 연관성이 있을 것이다. 

은둔형 외톨이와 다른 소시오패스

범인의 반사회적 성격 장애 특성은 주변인의 진술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범인이 살았던 아파트 주민들에 따르면 6년을 사는 동안 K의 집에 가족이 오거나 친구가 오는 걸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또 밖에 나와 돌아다닐 때는 늘 모자를 썼고, 때때로 얼굴에 파운데이션을 발라 점을 가렸다고 했다. 한번은 이웃 주민이 집에 들어가 봤는데 남자 혼자 사는 집이라기에는 지나치리만큼 깔끔하고 가재도구들도 고급스러웠다고 한다. 경찰도 범인이 진술서 등에 지장을 찍고 나면 병적으로 손을 닦는 등의 결벽증 성향을 보였다고 했다.

일반적인 ‘은둔형 외톨이’와 결벽증은 조건이 상충된다. 은둔형 외톨이가 결벽증을 가지기 위해서는 자원이 많아야 한다. 그런데 자원이 많으려면 원래 가진 것이 많거나 사회적 관계가 원활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거꾸로 결벽증을 가지기 힘들다. 조건이 성립할 수 있는 유일한 맥락이 있는데 바로 조용히 범죄를 저지르거나 주도하는 소시오패스다. 고교 동창들의 증언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동창들은 K가 얼굴에 난 점 때문에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다녔던 것이 기억나기는 하지만 별로 대화를 나눠보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학교 내 이른바 ‘일진’과도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경찰 조사 결과 범인은 고등학교 때 전자상가에서 컴퓨터 부품을 절도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적도 있고, 학교 인근 슈퍼마켓에서 돈을 훔치려다 걸리자 슈퍼마켓 여주인을 둔기로 때린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것이 범인의 감춰진 본모습일 수 있다. 이는 이번 범행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마취제가 듣지 않자 얼굴을 때리고 목을 조른 후 다시 마취를 시도했다.

K는 이른바 ‘폭력에 무감각한 무서운 아이들’ 범주에 든다고 할 수 있다. 중산층에서 태어났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고, 부모의 무관심으로 인해 도덕적 규율도 없으며, 세상이 심심해서 습관적인 일탈을 즐기는 아이들이다. 처음부터 눈에 띄게 사고를 치지는 않는다. 설사 사고를 쳤다고 해도 당시에는 수습할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이들을 가리켜 ‘학교 밖의 아이들’이라고 부르며, 그 숫자가 무려 34만명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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