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중간배당을 통해 돈을 푼다. 떨어진 주가 방어를 위한 조처다. 하지만 실적 개선이 받쳐주지 않을 경우 효과는 일시적일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현대차는 23일 오전 긴급이사회를 열고 중간배당을 실시하기로 의결했다. 이날 확정된 중간배당 규모는 주당 1000원으로 배당총액은 2687억원이다. 배당일을 확정하지 않았지만 자본시장법에 따라 중간배당금은 이사회 결의일로부터 20일 이내인 다음달 중순 이전 지급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가 주가를 방어하기 위해 중간배당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중론이다. 지난해 7월말 24만7000원까지 갔던 현대차 주가는 한전부지 인수와 실적 하락이 맞물리며 17일 장중 한때 12만3000원까지 추락했다.
중간배당은 친(親) 주주정책으로 현대차의 우호적 주주를 확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배당성향 상향조정으로 장기투자자들이 현대차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하게 될 것이란 분석이다.
◇ 중간배당, 현대차 PBR 되살릴 CPR
그동안 현대차는 주주이익에 반하는 정책을 폈다는 비난을 받으면서 시장에서 과도하게 소외돼왔다. 지난 22일 기준 현대차 PBR(주가순자산비율)은 0.61배에 불과했다. PBR은 주가를 주당순자산으로 나눈 것으로 PBR이 1보다 낮을수록 주가가 장부가치보다 낮게 평가됐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이번 중간배당은 현대차가 죽어가든 PBR을 되살리기 위해 일종의 CPR(심폐소생술)를 쓴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실제 이날 중간배당 발표가 나오자 현대차 주가는 주당 138,000원까지 치솟았다. 전날 대비 약 5.3% 올랐다. PBR은 0.65까지 뛰었다. 중간배당으로 현대차 주가에 숨통이 틘 것이다.
국내 증권사의 한 애널리스트는 “중간배당 결정으로 매수세가 생기면 주가는 분명 올라갈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현대차 주가가 적정선에서 유지되는 것이 향후 현대차가 투자금을 유치하는 것에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현대차 중간배당은 신차효과를 통한 실적 개선 자신감의 표현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현대차는 지난 2일 LF소나타를 출시하며 실적 반전을 노리고 있다. 실제 성과도 가시적이다. 2015년형 LF소나타는 상반기에만 5만314대를 팔렸다. 상용차를 제외하면 국내 최다 판매 차량이다. 현대차는 해외 시장 역시 신형 투싼과 K5, 씨드 개조차 등을 선보이며 공략한다는 전략이다.
중간배당으로 주가를 올려놓고 국내외 시장 점유율도 끌어올린다면 연내 주가가 18만원이상에서 형성될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이렇게만 된다면 무너진 주가로 냉가슴을 앓던 투자자와 현대차 모두에게 득이 된다.
◇ 실적개선 없는 중간배당, 언 발에 오줌 누는 격
그러나 중간배당 이상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표 숫자들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어서다.
이날 이사회에서 발표된 2015년 상반기 매출액은 43조7644억원으로 전년대비 1.4% 줄었다.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대비 17.1% 감소한 3조3389억원을 기록했다. 중간배당으로 주주를 달랬지만 실적 개선을 보여주지 않는 주가는 언제든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현대차가 직면한 현실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은 얼어붙었다.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는 올해 글로벌 자동차시장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6%(8,630만대)에서 1.2%(8,550만대)로 하향 조정했다. 2009년 이후 가장 낮은 증가율이다. 이런 저조세는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란 게 업계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간배당 효과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알 수 없다. 중간배당을 기점으로 현대차 주식을 산 투자자들은 실적 회복세가 보이지 않으면 언제든 주식을 내던질 수 있다.
임은영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현대차가 실적을 개선하지 않는 한 배당성향을 늘리는 것이 곧 주주 이익으로 실현되지는 않는다”며 “상반기 소나타가 엔진 라인업을 늘리며 선전했지만 하반기 경쟁사들도 신차발표를 준비 중이다. 실적 개선 모멘텀이 부족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 중간배당과 R&D 투자 동시에 늘려야
현대차가 실적 하락을 경계하고 나선 것도 그 때문이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 13일 상반기 해외법인장 회의에서 “외부 여건이 어렵지만 극복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더 강해질 것”이라며 “판매 일선에서 최대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판매지원체제를 강화하라”고 주문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간배당을 결정한 것은 주주 달래기를 넘어선 ‘용기 있는 결단’이었단 평가다. 하지만 배당 증가와 실적 개선은 연결고리가 없다. 장기 성장 동력 확보가 시급하단 분석이다.
고봉찬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어려운 시기에도 현금을 풀고 주주 몫을 늘린다는 것은 현대차가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라며 “중간배당을 하게 되면 기업 자금줄은 빡빡해질 수 있다. 배당과 동시에 R/D 투자도 늘려 장기적인 성장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이원희 현대차 재경본부장은 이날 컨퍼런스콜에서 “배당확대는 작년 3분기 컨퍼런스콜 때부터 추진해 왔던 것으로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확대해 갈 것”이라며 “배당성향을 언제까지 얼마나 하겠다고 구체적으로 밝히긴 어려우나 중장기적으로 글로벌 자동차 업체 평균인 25~30%선까지 맞추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