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갑질논란 무역협회, 정부 감사도 있으나마나
  • 엄민우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5.07.28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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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무풍지대 무역협회…입주 상인들에 ‘갑질’ 논란도

대한민국에서 일정 규모 이상의 단체는 관리·감독을 받는다. 국민 혈세가 들어가는 곳은 더욱 그렇다. 공공기관과 공기업은 감사원이나 국회의 감시를 받고, 민간 기업들은 공정거래위원회 및 국세청의 감시를 받는다. 그런데 1년에 150억원씩 혈세를 지원받아 쓰고 자산이 5조원에 달하는데도 사실상 관리·감독 사각지대에 있는 단체가 있다. 그러다 보니 방만한 운영을 하게 되고 최근엔 ‘갑질 논란’에 휘말렸다. 대한민국 경제 5단체 중 하나인 ‘한국무역협회’다.

무역협회가 감사를 아예 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산업통상자원부(산자부) 감사관실로부터 3년에 한 번 정도 받는다. 그런데 이 감사가 사실상 부실하게 이뤄지고 있어 문제다. 시사저널은 가장 최근에 있었던 두 건의 산자부 ‘무역협회 감사결과보고서’를 단독 입수해 내용을 분석해봤다. 그 결과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코엑스(무역협회 건물) 임차인에 대한 ‘갑질’이 계속 지적돼왔던 것으로 확인됐다(  쪽 상자 기사 참조). 사실상 감사가 요식행위에 그쳤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7월9일 최경환 경제부총리(오른쪽)와 김인호 무역협회장이 청와대에서 열린 제8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산자부 ‘무역협회 감사보고서’ 단독 입수

2010년 4월 한국무역협회는 산자부의 전신인 지식경제부 감사관실의 감사를 받았다. 당시 무역협회는 총 15건의 지적을 받았다. 내용을 보면 무역협회가 얼마나 방만한 운영을 해왔는지 알 수 있다. 대표적인 게 국외 출장 여비 지급 및 법인카드 사용과 관련한 문제다. 당시 지적 사항을 살펴보면, 무역협회는 해외 출장 시 현지 활동비는 법인카드 사용을 원칙으로 하고, 불가피할 경우 현금을 쓰더라도 사후 정산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출장 때마다 현금으로 지급하고, 심지어 기내 숙박을 하는 경우도 숙박일수에 포함해 돈을 지급했다. 현지 활동비는 달러로 지급됐는데 원으로 환산할 경우 회장은 약 165만원, 부회장은 약 120만원, 전무는 약 100만원, 실장급은 약 66만원 정도였다.

법인카드 사용과 관련한 문제도 개선되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지난 2005년 5월16일 무역협회는 법인카드 사용 제도 개선 방안에 ‘클린카드제’를 도입하도록 했으나 실제 법인카드 사용 지침에 반영하지 않았다. 이 사용 지침마저도 결재만 받아놓고 운영하지 않았다.

감사에서 지적받았던 사안들이 3년 후 이뤄진 감사에서도 되풀이돼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무역협회에 대한 가장 최근의 감사는 2013년 7월 이뤄졌다. 이때도 무역협회는 국외 출장비와 관련해 또 지적을 받았다. 출장 부대비용과 유사한 ‘국외 준비비’ 항목을 신설해 직급별로 정액 지급한 것이다. 또 이전 감사에서 문제가 됐던 기내 숙박의 경우에도 여전히 숙박일수에 포함해 숙박비를 지급하는 문제가 일부 직원들에게서 발견됐다. 일반 공공기관 같은 경우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법인카드 관련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클린카드제 도입·운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은 2010년 감사에 이어 2013년 감사에서도 있었다. 특히 정규 직원 287명에 비해 263장으로 법인카드를 과다하게 발급·사용하게 한 것 역시 제도 개선을 해야 할 부분으로 지적받았다.

위 두 항목만 보더라도 무역협회가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고, 더불어 감사가 요식행위에 그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감사를 3년에 한 번 하는 것도 문제지만, 전에 지적받았던 사안이 되풀이돼 나타나고 있는 것은 모럴해저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 있음을 말해준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역대 정권마다 무역협회의 수장으로 가는 인물이 하나같이 거물급 낙하산 인사였던 탓이 크다는 게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시사저널은 최근 10년 동안 어떤 퇴직 공무원들이 무역협회로 왔는지 들여다봤다. 장·차관을 거친 인물들이 주를 이뤘는데, 특히 산자부 및 그 전신인 지식경제부 출신들이 눈에 띄게 많았다. 이런 탓에 ‘전관예우’ 차원에서라도 감사가 제대로 이뤄질리 만무하다.

 

산자부, 무협 예산 등 구두로만 보고받아

무역협회는 전국경제인연합회·대한상공회의소·한국경영자총협회·중소기업중앙회와 함께 경제 5단체 중 하나다. 이 중에서도 무역협회장은 정권 실세나 고위 공무원 출신이 맡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명박(MB) 정부 당시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가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 위원장이자 MB 경제특보 출신인 사공일 교수가 맡았고, 그 이후 한덕수 주미 한국대사가 회장직을 물려받았다. 지난 2월부터 회장직을 맡고 있는 김인호 회장은 김영삼(YS) 정부 때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냈던 인물이다. 특히 최경환 현 경제부총리와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은 최 부총리의 행정고시 및 경제기획원 선배다. 김 회장이 YS 정부에서 경제수석을 지낼 당시 최 부총리는 그를 보좌했다. 그런 두 사람이 지난해 11월 박근혜 정부 제2기 중장기전략위원회에서 조우하게 된다. 김 회장이 민간위원장을 맡고 최 부총리가 정부 측의 당연직 위원장을 맡은 것이다. 김 회장은 지난 5월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렸던 ‘경제 5단체 초청 해외 진출 성과 확산 토론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바로 왼쪽에 앉았다.

그 전에 회장을 지냈던 인물들 역시 산자부 장관 출신 등이 대부분이었다. 고위 공무원들이 낙하산으로 내려가고, 이 때문에 정부의 감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관(官)피아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산자부와 무역협회 간 부실 감사 뒤에는 ‘산자부 마피아’라는 보이지 않는 카르텔이 형성돼 있었던 것이다. 산자부는 최근 10년간 무역협회의 예산 및 결산서 등에 대해 정식 문서가 아니라 구두로 보고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역협회는 1946년 무역업계의 권익을 옹호하고 무역 진흥을 통해 국민 경제 발전에 기여한다는 목적으로 설립됐다. 무역협회의 수입은 부동산 수익이 절반을 넘는다. 무역협회는 서울 강남의 금싸라기 땅을 중심으로 코엑스와 코엑스몰, 도심공항터미널(CALT), 백화점을 운영하는 한무쇼핑, 코엑스 인터콘티넨탈호텔을 운영하는 파르나스호텔 등의 지분을 100% 소유하거나 사실상 보유하다시피 하고 있다. 코엑스몰의 주차비는 입주 상인들의 물건을 구입해도 할인 혜택이 없는 등 악명 높은 요금제로 유명한데, 이 주차장을 운영하는 주식회사 피엠코 역시 무역협회와 코엑스가 대주주다. 그럼에도 무역협회는 정부로부터 예산을 지원받는다. 부동산 수익 외에 무역협회는 지난해 정부에서 149억4000만원을 지원받았다. 최근 5년간 정부가 무역협회에 지원한 예산을 보면 매년 증가세에 있다. 

무역협회는 최근 코엑스몰 입주 상인들로부터 ‘갑질’ 비판을 받고 있다. 이는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정부의 허술한 감시 체계와 봐주기 문화에 원인이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에서는 갑질 논란과 더불어 무역협회의 부실감사 문제를 들여다보고 있다. 을지로위원회 소속인 새정치민주연합 이학영 의원은 “일정 규모 이상의 비영리 법인에 대해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특히 정부 재원으로 기본 재산을 형성한 무역협회와 같은 곳은 국회에서도 감독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7월24일 코엑스몰 상인연합회 사무실에서 상인회원들이 대책회의를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코엑스몰 입주 상인 “갑질도 이런 갑질이 없다”

서울 강남 도심권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을 살려 부동산 수익에 치중하는 한국무역협회. 그 과정에서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게 이른바 ‘코엑스몰 갑질 논란’이다. 이는 시사저널이 입수한 무역협회 감사보고서 등에서도 이미 지적됐던 사안이다. 최근 들어 갑자기 터진 문제가 아닌 것이다. 산자부 감사에서 무역협회는 코엑스몰에 대한 광고 및 판촉 비용을 코엑스몰 입주 점포 상인들에게 과도하게 부담시키고, 영등포 타임스퀘어 등 다른 쇼핑몰들에 비해 높은 관리비 및 연체 이자를 징수해 ‘임대인(갑)과 임차인(을)의 공정한 상생 풍토를 위해 관련 규정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지금의 갑질 논란은 제대로 된 정부 감사가 이뤄지지 않은 탓이 크고, 그에 따라 쌓였던 문제가 곪아 터진 것이다. 

현재 코엑스몰 임차인들이 주장하는 무역협회 갑질 논란의 핵심은 ‘최소 보장 임대료 제도’다. 지금의 코엑스몰 입점 상인들은 매출에 따라 정해진 비율만큼 임대료를 내는 일종의 수수료 방식으로 계약하고 있다. 가령 매출액의 20%를 임대료로 내야 한다고 할 경우, 2억원의 매출을 올리면 4000만원, 1억원이면 2000만원의 임대료를 내는 방식이다. 장사가 잘되면 그만큼 임대료는 올라간다. 반대로 장사가 안 되면 임대료도 떨어지는 게 맞는데, 문제는 코엑스몰이 최소 보장 임대료를 못 박고 있어서 ‘일정 금액’은 장사가 잘되든 안되든 무조건 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기준 매출을 7000만원으로 잡을 경우, 이에 해당하는 1400만원은 무조건 임대료로 내야 한다. 극단적으로 월 매출이 1000만원밖에 안 되더라도 임대료로 1400만원을 내야 한다.  

실제 코엑스몰 입점 상인들은 수개월째 매출이 기준 매출 이하임에도 울며 겨자 먹기로 최소 보장 임대료를 내고 있다. 무역협회를 상대로 임대료 조정을 요구했으나, 협회 측이 거부하고 있다는 게 상인들의 불만 사항이다. 특히 지금의 최소 보장 임대료가 코엑스몰이 초창기 제시한 장밋빛 미래를 바탕으로 잡은 턱없이 높은 매출 기준이라는 점 때문에 입점 상인들은 더욱 분노하고 있다. 김명락 코엑스몰상인연합회장은 “대기업인 롯데조차 제2롯데월드몰 입주 상인들의 매출이 떨어져 힘든 상황이 되자 이 최소 보장 임대료제를 폐지하고 수수료를 50%까지 깎는 상생의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경제 5단체 중 하나인 무역협회는 처음 계약 조건만 내세우며 상생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코엑스몰 측은 “이미 상인들도 계약 사안에 대해 다 알았던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외국계 컨설팅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사실상 컨설팅 단계에서 장밋빛 매출을 제시하고 그 매출에 무조건 따라가도록 하는 방식으로 상인들이 손해를 보게 되는 계약”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코엑스몰 입주 상인 역시 “사업설명회 때 온갖 말로 구슬려놓고 이제 와서 상인들 잘못으로 돌리는 태도에 분통이 터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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