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경매장 ‘북적’…국내 시장에선 단색화 인기
  • 서진수│강남대 경제학과 교수·미술시장연구소장 ()
  • 승인 2015.07.29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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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작품과 이거 중 어떤 게 좋아?”

최근 주요 은행들의 프라이빗뱅킹센터(PB센터)에는 저금리 시대에 접어들면서 주식, 부동산, 금, 환 투자와 같은 기존 투자처 외에 대체 투자처를 찾는 고객들의 요청이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PB센터에서 소개하는 분야도 다양화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미술시장이다. 발 빠른 투자자들은 미술 시장으로 눈을 돌린 지 오래다. 주식 시세와 기업 정보를 찾아다니던 투자자들이 미술사와 미술 시장에 관한 특강을 듣고 있고, 부동산 불패를 외치던 부동산 부자들이 장식과 투자 가치를 함께 지닌 미술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온라인 경매와 갤러리 홈페이지를 통한 중·저가 미술품 판매도 증가하고 있고, 명품을 소개하는 잡지들은 점점 미술 관련 기사와 미술 시장에 관한 정보를 싣는 지면을 늘리고 있다.

서울시 종로구 평창동 서울옥션 스페이스의 경매 현장. ⓒ 시사저널 임준선

PB센터에서도 상품 추천

이런 움직임은 경매 시장에서 더욱 잘 드러나고 있다. 2008년 여름부터 2014년 여름까지 6년간 꽁꽁 얼어붙었던 국내 미술 시장이 2014년 하반기부터 경매 시장을 중심으로 회복되고 있는 것. 이에 따라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새내기 컬렉터들이 경매장 곳곳에서 눈에 띈다. 최근 필자가 찾았던 경매장에서도 미술품에 관심을 보이는 새내기 컬렉터들의 대화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었다. 다음은 경매장 뒤쪽에서 명품 핸드백을 안고 말을 주고받는 새내기 여성 컬렉터들의 대화 중 일부다.

“천경자의 이 작품 좋다.”

“추정가를 별도 문의라고 써놓았는데 사려면 별도로 물어보라는 건가 봐.”

“딴 회사에 나왔던 김환기 작품과 이거 중 어떤 게 좋아?”

“정상화 작품은 하얀 게 좋아? 파란 게 좋아?”

“온통 하얀 데다가 희미하게 줄만 그어져 있는데 3억5000이래, 값이 마구 올라가는데도 다 팔리니 단색화가 대세는 대세인가 봐.”

“옛날엔 이우환이 대세였다잖아, 미술도 유행이 있나 봐. 지난번에 만났던 화랑 대표도 인기 작가가 돌고 돈다잖아.”

“하나 사 봐.”

“싫어. 사려면 홍콩 가서 세계적인 작가 것 사야지, 이제는 신랑한테 핸드백·차는 별로고 그림 사자고 설득하는 중이야.”

국내에서는 미술과 미술 시장에 대한 교육 부족으로 이 시장과 관련한 부정적 시각이 많지만, 문화 수준이 전반적으로 향상됨에 따라 미술품에 대한 시각도 차츰 변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경매 시장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박수근의 <목련>, 김환기의 1971년 작품, 천경자의 <막은 내리고>, 이우환의 <선으로부터>, 박서보의 <묘법>, 정상화의 <무제> 등 고가 작품이 서서히 팔리기 시작했다. 근현대 미술품 전문 경매회사인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의 낙찰 총액이 2013년 581억원에서 2014년 739억원, 그리고 2015년 들어 7개월 만에 627억원을 찍은 것을 보면 경매 시장의 성장세가 얼마나 가파른지 알 수 있다.

미술 시장의 역사가 100년이 넘은 미국·독일·스위스·프랑스·네덜란드 등 서구 미술 시장 역시 최근 5년간 최고가 기록 경신을 이어가고 있다. 최고가 기록 10위 가운데 6건이 최근 5년간에 수립됐다. 공개 시장인 경매를 통해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이 1956억원, 개인 간 거래에서 고갱의 <너 언제 결혼하니>가 3000억원에 판매되었다.

 

이건희·홍라희·서경배는 세계 200대 컬렉터

국내에서도 일부 재벌들만 미술품에 관심을 보이던 추세에서 벗어나 최근에는 금융·부동산·투자·기업·소매업·IT·호텔·건설·출판 등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까지도 미술품 구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여기에 부응해 주요 미술관들도 작품 구입을 늘리고 있다. 원래부터 미술품을 모아왔던 재벌들이 가지고 있는 작품의 소장 가치도 치솟고 있다. 아트뉴스가 발표한 2015년 세계 200대 컬렉터에 처음으로 홍라희 삼성리움미술관 관장과 이건희 삼성 회장 그리고 아모레퍼시픽 서경배 회장이 포함됐다.

세계 미술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작품들이 주로 추상화라면 국내에서는 단색화 작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단색화는 1970년대부터 한국 현대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분야로 홍콩·상하이 등 아시아 미술 시장에서 꾸준히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 부자들도 최근 우리나라와 홍콩 경매 시장에서 거래되는 단색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국제갤러리와 PKM갤러리뿐만 아니라 미국의 Blum&Poe갤러리와 프랑스의 페로탱 갤러리 등에서도 단색화 작품을 판매하고 있다. 베니스의 국제 갤러리나 벨기에 페어보트 재단의 전시회에서도 단색화 작품이 당당히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이우환의 구겐하임 및 베르사유 전시에 이어 우리 미술이 또 한 번 세계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국내 시장에서도 단색화의 인기는 잘 드러난다.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의 오프라인 경매 시장에서는 2015년 들어 7월까지 단색화 작가인 정상화(낙찰 총액 51억원), 박서보(50억원), 윤형근(22억원), 하종현(19억원), 정창섭(5억원) 등이 미술 시장을 주도해온 김환기(66억원), 이우환(49억원)의 낙찰 총액을 쫓거나 넘어섰다. 이들 5대 단색화의 낙찰 총액은 2001년에서 2013년까지 13년간 59억원에 불과했으나 2014년 한 해에만 49억원, 2015년 들어서는 7개월 만에 147억원으로 급증해 단색화의 위력과 인기를 실감케 해준다.

 인기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미술 시장이 좀 더 활성화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정부의 관심과 투자다. 미술품은 기본적으로 감상과 투자를 겸한다. 미술 시장과 미술관의 재생산 구조가 제대로 작동하고 미술품이 재화로서의 역할을 하려면 우선 정부의 투자와 지원, 시장에서 활발한 거래가 이루어져야 한다. 문화상품의 소비가 문화 융성을 낳는다. 이를 위해 정부·기업·개인의 해외 미술품 구입과 미술관의 작품구입비 증액 및 전시를 통한 교육이 지금의 5~10배로 늘어나야 한다. 글로벌 작가 육성, 세계적인 화상 육성을 위한 지원, 자유롭게 미술품을 구입하고 투자할 수 있는 세제 개편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 매년 1000만명을 파리로 부르는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와 고갱이라는 작가 브랜드 하나로 스위스 바젤에 37만명을 끌어모았던 전시도 100년이 넘는 투자와 지원의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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