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 집단주의 벗어나 헌법기관이 돼라
  • 박명호 |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 승인 2015.08.05 17:42
  • 호수 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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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제도 변경 놓고 여야 티격태격…기득권 수호엔 ‘똘똘’

의원 정수 문제가 쟁점으로 부상했다. 시작은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가 국회의원 수를 369명으로 늘리자고 한 제안이었다. 핵심은 비례대표를 123명으로 늘리자는 것이다. 물론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통해 지역주의를 해소하고 군소 정당의 진입 장벽을 낮추자는 게 도입 취지다.

말은 맞다. 현재의 소선거구제는 불가피하게 사표(死票)를 대량 발생시킨다. 소수 정당이 의석을 차지하기도 어렵다. 소선거구제는 지역주의와도 연결된다. 여야는 자신의 텃밭에서 평균적으로 절반 조금 넘는 득표를 하고도 전체 의석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비례대표제는 다양한 국민 의견을 국정에 반영할 수 있다. 득표율에 비례해 정당별로 의석이 배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양한 정당의 원내 진입이 가능하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실시하면 영남에서 새정치연합, 호남에서 새누리당 의원을 배출할 수 있다.

7월27일 국회에서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공직선거법심사소위원회가 열리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그렇다면 비례대표 비중을 높이면 되지 않을까. 그동안 의미 있는 수준의 비례대표가 되려면 지역구 수의 절반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것이 학계와 시민단체의 주장이었다. 300명 중 100명. 선관위가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비중을 2 대 1로 제안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비례대표를 100명으로 늘리려면 지역구 수를 46개 줄여야 한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온 것이 의원 정수 확대론이다.

국민적 공감대 없어 의원 정수 확대 어려워

새정치연합 혁신위가 의원 정수 확대를 제안한 배경에는 지역구 수 축소에 대한 의원들의 반발이라는 현실적 고려가 있다. 특히 농어촌 지역 출신 의원들의 정치적 이해가 있다. 헌재 결정대로 선거구를 획정하면 도시 선거구는 늘어나지만 농어촌 선거구가 대폭 줄어들게 된다. 결국 선거구 광역화가 불가피한 농어촌 지역구의 지역 대표성을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 선거구를 조정하려면 선거구 수를 확대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벌써부터 나온 얘기가 지역구 의석을 10석 전후 늘리자는 것이고, 이 부분에 대해 여야가 어떤 공식적 언급도 하지 않았지만 양쪽 모두 별다른 이견이 없다. 지역구 의석을 늘리는 것에 여야가 공감대를 갖고 있다면 방법은 둘 중 하나다. 하나는 새누리당이 주장하듯 비례대표 의석을 줄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새정치연합이 주장하듯 의원 정수를 늘리는 것이다. 결국 지역구 수 확대라는 정치적 기득권 수호에는 여야 모두 같은 입장인 것이다. 거기서 새누리당은 ‘비례 축소 불가피’를 선택했고, 새정치연합은 ‘비례대표 확대에 따른 의원 정수 확대’를 택한 것이다.

물론 의원 정수에 대한 정답은 없다. 의원 정수를 따질 때는 의원당 인구 수도 중요하지만 정부 형태와 연방제 여부 등 다른 제도와 환경적 요인도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선택의 문제다. 결론부터 말하면 확대는 불가능하다. 첫째, 여야 합의가 어렵다. 20대 총선은 내년 4월13일 치러진다. 8개월여 앞으로 다가왔다. 국회 정개특위가 협상을 진행하고 있으나, 여야 입장 차가 크고 서로 관심사가 달라 돌파구 마련이 쉽지 않다. 새누리당은 공천 방식에 관심이 많아 ‘여야 동시 국민공천제 실시’를 입법화하자는 입장이다. 새정치연합은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의원 정수 확대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여야의 입장 차가 큰 것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호남에서의 새누리당보다 영남에서 상대적 강세를 보이는 새정치연합 입장에서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실시하면 의석 증가가 가능하다. 선거제도는 게임의 룰이다. 경기 규칙이 바뀌면 정치적 이해관계가 바뀐다. 자신에게 더 많은 정치적 이익을 가져다주는 제도를 택하려는 것은 정당의 본능이다.

개별적 헌법기관 역할 충실해야

따라서 제도 변경에 대한 논의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심층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선거구 획정 단계 이전에 결론이 났어야 하는 것을 지금부터 논의하자니 무엇이 되겠는가. 논의 순서가 잘못되었다. 선거제도를 우선 정하고 이에 따라 전체 의원 정수를 확정한 다음 지역과 비례의 비중을 정해 헌재의 인구 기준에 따라 선거구를 획정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뒤죽박죽이다. 결국 본질적 문제는 또 뒤로 미루고 당장 불가피한 사항 몇 개 처리하는 데 급급할 가능성이 크다.

둘째, 국민적 공감대가 없어 의원 정수 확대는 불가능하다. 지난 3월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적정한 국회의원 수’에 대해 응답자의 71.6%가 300명 이하라고 답했다. 현재보다 더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조사에서도 10명 중 6명은 의원 정수 확대에 부정적이었다. 의원 정수 확대는 국민적 합의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의원 정수 확대론이 국민적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것은 국회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낮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우리 사회의 주요 기관에 대한 신뢰도 조사에서 국회는 10점 만점에 2.2점으로 최하위였다. 같은 조사에서 국회의 사회 기여도 또한 2.8점으로 역시 최하위였다. 올 3월의 기관·단체에 대한 신뢰도 조사에서도 국회는 13곳 중 꼴찌였다. 국회를 신뢰한다는 사람은 전체 응답자의 17%에 그쳤다.

따라서 국회가 먼저 해야 할 일은 국민에게 믿음을 받는 것이다. 최근 방영 중인 정치 드라마 <어셈블리>는 ‘좌충우돌 돈키호테형 정치인’의 성장 과정을 다룬다. 최근에는 초선 의원이 당론과 다른 발언 및 행동으로 주목받지만 결국 당내외의 압력을 받고 관행과 현실에 익숙해져가는 내용을 내보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그는 왜 자신이 그런 생각을 했고 어떻게 그런 결론에 이르게 되었는지 설명한다. 하지만 실제 유권자들은 우리 국회의원들로부터 이런 설명을 들은 적이 없다. 유권자들은 국회의원들로부터 이런 설명을 들어야 한다. 그들은 우리를 대신해 무언가 결정하고 선택해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모든 선택과 결정은 당연히 찬반 논란의 대상이다. 그게 선택이다.

개별적 헌법기관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할 때 국민은 의원 정수와 관련한 국회의 어떤 결정도 존중하게 된다. 정당 집단주의에 구속된 국회의원이 아니라 헌법기관으로서의 국회의원 역할을 우선하는 사람이 많아질 때 국민은 국회가 국민을 대표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국회의 신뢰 회복? 국회의원 하기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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