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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정권 말기 ‘비서 정치’ 했다”

미국 CIA와 주한 미국대사 비밀 보고서…1950년 초부터 대통령 정신건강 이상

노진섭 기자 ㅣ no@sisapress.com | 승인 2015.08.05(Wed) 17:44:55 | 9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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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6월16일 부산에서 존 무초 초대 주한 미국대사는 클락 유엔군 사령관에게 이승만 대통령의 건강 상태를 알리는 전문을 보냈다.

“체포, 의회 해산, 공공 무질서, 이 대통령 건강 문제 등 상황이 더 악화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 대통령은 심한 긴장 상태이며 신체적·정신적 약화 증세를 보인다.”

그해 6월28일에는 미국 국무부로 조금 더 구체적인 내용의 전문을 보냈다.

“대통령 주변인들의 세가 예전보다 커질 것 같다. 의사 말로는 그가 나이에 비해 신체적 건강 상태가 좋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자주 잊고, 불확실하고, 암중모색하며, (모든 사람을) 의심하는 등 정신적 노쇠가 있는 것 같다.”

매카너기 주한 미국대사가 1960년 4월26일 이승만 대통령을 만나 하야를 권고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전에도 미국은 이 대통령의 건강 상태를 점검해왔으나 주한 미국대사를 두면서 이전보다 자주, 구체적으로 이 대통령의 건강을 살피기 시작했다.

이 문제는 여러 기록으로 남아 있는데  <노태우 회고록>에는 이렇게 기록돼 있다.

“1954년 9월 이 대통령이 육군사관학교를 방문했다. 옆의 국방부장관에게 ‘여기가 어디지’ 묻는 등 정신이 맑지 못한 상태였다.”

월터 다울링 4대 주한 미국대사가 1959년 7월13일 이 대통령을 만난 후 미국 국무부에 보낸 전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대통령은 현재 논의 중인 문제에 집중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 CIA·주한대사 통해 이승만 건강 체크

이승만 대통령의 통치력에 문제가 생겼음을 파악한 미국은 1959년 7월31일 중앙정보국(CIA)과 주한 미국대사 두 채널에 좀 더 세밀한 이 대통령의 정신건강 정보를 입수해 보고할 것을 지시했다. 이 사실을 밝혀낸 김태환 하버드 대학 남가주 한인동창회장은 “이 대통령의 정신건강 상태를 보고한 CIA 문서는 2002년 공개됐지만 보고를 지시한 국무부 훈령은 비밀 해제되지 않았다. 당시는 무보수 자원봉사자와 같이 미국에 정보를 퍼주는 한국 정보원들이 넘쳐났다. 이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은 여러 주한 미국 기관들이 본국 상급 기관에 보고했고 국무부가 이를 취합했다. 어느 기관이 어떤 경로로 정보를 입수했는지 보고를 지시하는 훈령을 공개할 경우 한국 측 제보자의 인적 사항이 드러나기 때문에 훈령은 아직 공개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CIA가 1959년 8월1일 작성한 1급 기밀문서와 다울링 주한 미국대사가 8월15일 국무부에 보고한 전문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다. 이 대통령의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점과 국정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대통령을 대신해 측근들이 의사결정을 내린다는 것이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CIA 8월1일자 기밀문서에는 “이 대통령은 1959년 5월 하순부터 정무에 집중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새로운 제안에 대한 기본 개념조차 이해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기록돼 있다.

CIA는 이 대통령의 건강 정보를 어떻게 입수했을까. 1952년 무초 미국대사가 미국에 보낸 전문에도 나와 있듯이 대통령 건강을 돌보는 의사로부터 정보가 나왔을 가능성이 있다. 당시에는 대통령 주치의가 없었다. 인맥이 닿는 두 명의 의사가 이 대통령의 건강을 살폈다. 김승현 박사와 류제한 서울위생병원 원장이 대통령 주치의 역할을 했다. 김 박사는 1973년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만든 김영무 변호사의 선친이다. 주한 미국인을 주로 치료하면서 ‘닥터 루’로 통한 류 원장은 1957년부터 이 대통령의 건강 문제를 상의했다.

1.무초 주한 미국대사가 1952년 6월16일 클락 유엔군 사령관, 6월28일 미국 국무부에 보낸 문서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정신건강 문제가 포함돼 있다.2.미국 중앙정보국(CIA)이 1959년 8월1일 작성한 보고서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정신건강 상태와 측근들의 국정 개입 내용이 들어 있다.3.다울링 주한 미국대사가 1959년 8월15일 미국 국무부에 보고한 전문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정신건강 상태와 측근들의 국정 개입 내용이 구체적으로 기록돼 있다.

“영부인의 암묵적 동의 받은 ‘비서 정치’”

이 틈을 타고 주요 정책 결정에 개입한 이 대통령 측근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도 이 문건에 있다.

“최인규 내무장관, 홍진기 법무장관, 송인성 재무장관의 삼두정치와 자유당의 강경파에게 정권이 넘어간 정황이 있다. 대통령 비서진은 대통령이 무엇을 보고 누구를 만날지를 결정하는 등 정책 결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습이다. 가장 영향력이 센 사람은 비서 박찬일인데 대통령보다 강한 반일 감정을 가졌다.”

실명까지 공개한 박찬일은 누구일까. 그는 1956년 후반 이 대통령의 측근인 이기붕의 소개로 비서진에 기용된 인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비서 수를 6명으로 제한했다. 비서실의 기능은 연락, 의전, 서류 작업 등 개인적인 비서 업무에 국한돼야 한다는 게 대통령의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권력 남용, 정책 개입을 경계한 것이다. 그러나 정권 말기에는 박찬일을 중심으로 한 비서진의 권력이 세졌다. 이른바 ‘비서 정치’를 한 비서실은 심지어 권력 2인자인 이기붕과도 대립각을 세울 정도로 세력이 컸다. 박찬일은 최인규 내무부장관, 이강학 치안국장, 곽영주 경무관(현 경호실장), 신도환 반공청년단장 등 두터운 인맥을 갖고 있었다. 1960년 6월호 ‘사상계’는 이를 ‘경무대의 인의 장막’이라고 표현했다. 군과 경찰 인사는 곽영주 경무관이 전담하고 일반 인사에는 박찬일 비서가 관여했다.

미국은 이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장기 집권을 유지하기 위한 부정 선거 등으로 정국은 불안한 상태였다. 미국은 이런 상황에서 정상적인 통치력을 발휘할 수 없는 이 대통령을 우려했다. 이는 CIA 문건에 상세히 담겨 있다.

“대통령의 정신력이 저하된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 정부 신뢰는 떨어지고, 남한은 내년 대선까지 일정 기간 불안정한 시기를 맞을 수 있다. 현재 권력을 휘두르는 자유당 강경파는 이미 권력 유지를 위해 극단적 수단까지 동원한 경력이 있다. 대통령의 유고(직무 수행 불능) 시 물러나게 할 헌법상 조항이 없어서 야당 소속인 장면 부통령의 대통령직 승계를 막는 명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이 대통령에게 비밀 특사를 보내 사임을 권했다. 1960년 4·19혁명으로 이 대통령의 하야가 촉발됐지만 그 이전부터 미국은 이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한 것이다. 김태환 회장은 “월터 매카너기 5대 주한 미국대사와 6대 마샬 그린 대사가 이 대통령을 권좌에서 내려오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그 전에 보낸 비밀 특사를 통해 사퇴를 종용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비밀 특사를 만난 후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뜻을 알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 가지 이해시키는 데 여러 번 설명해야”

다울링 주한 미국대사가 8월15일 미국에 보낸 전문은 이전 정보보다 훨씬 구체적이다.

“영부인이 박찬일 비서관과 함께 대통령을 불쾌하게 할 만한 정보를 차단해왔다. 오래전부터 영부인이 정책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대통령은 신체적·정신적 기력이 줄어들고 있다. 거의 서류도 보지 않고 사람도 만나지 않는다. 이런 관행이 늘어나고 있는데, 그 핵심 역할을 박찬일 비서가 하며 영부인의 암묵적인 동의가 있는 것 같다.

내무(최인규), 재무(송인상), 국방(김정렬), 법무(홍진기), 외무차관(조정환)을 제외하고는 장관들도 대통령을 만나기가 힘들고 장관들은 보고서 결재를 박찬일 비서에게 맡긴다. (그래서 박찬일의) 위세가 급속도로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이 대통령의 오른팔로 꼽힌 원용덕 장군은 개인적인 정보원이다. 곽영주 경호실장은 매일 사적인 대화를 통해 대통령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 대통령의 오랜 친구인 허정씨가 가끔 대통령을 찾아 진솔하고 설득력 있는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평판이 나 있다. 이기붕씨는 대통령 다음으로 영향력이 있으나 자주 만나지는 않는다. 각료와 박찬일은 그에게 공식적으로 보고한다. 이기붕씨는 국내 문제나 정치적 사안에 대한 의견을 낼 때 내무장관과 법무장관을 전령으로 활용한다.

이 대통령 주변 인사들, 특히 박찬일에 의한 의사결정이 늘어나고 있으며 편협한 정보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대통령의 정신적 쇠퇴는 대통령을 정기적으로 만나는 한국 정부 관료들과 예전부터 대통령을 알던 사람들로부터 확인할 수 있다. 의사의 보고서에서 확인한 바로는, 이 대통령은 목소리와 걸음걸이가 확연하게 나약해졌지만 84세의 신체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측근들은 대통령의 총명함이 떨어진 것을 확인했다.

내가 볼 때도 3년 전과 비교해 신체적·정신적 문제가 두드러지게 악화했다. 전에는 현실적인 문제를 토론하며 자기 관점을 설명하기를 좋아했는데 근래에는 지난날을 추억하고 농담하는 것을 즐긴다. 최근 면담에서 한 가지를 이해시키려면 여러 번 설명을 되풀이해야 했다.”

김태환 회장은 “보고서가 국무부나 CIA의 책임자 서랍 속에서 사장되지 않고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올라가 결국 역사를 바꾸는 중대한 결정을 내리게 됐다”고 분석했다.

4·19혁명으로 이 대통령은 1960년 4월26일 하야 성명을 발표했다. 4월28일 경무대를 떠나 사저인 이화장으로 갔다. 4월29일 오전 이승만 부부를 태운 승용차는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책 <이승만과 제1공화국>은 당시 이 대통령의 건강 상태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공항에는 허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승만은 왼쪽 눈을 잘 뜨지 못했고 안면 주름살이 쉴 새 없이 떨려 마주 보기가 민망했다.”

하와이에 도착한 지 한 달 남짓 된 시점에 이 대통령의 건강 문제가 국내로 날아들었다. 1960년 6월 8일자 경향신문은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이 대통령은 미 육군병원을 방문해 건강검진을 받았다. 이 병원 대변인은 ‘85세인 이 대통령의 건강 상태는 좋으나 피로했기 때문에 휴양이 필요하다. 노령 등으로 정신 상태가 희미해지고 있다. 혈압이 약간 높아졌고 관절도 약간 장애가 일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문제에 집중하는 데 곤란을 받고 있다. 일부에서는 노망이 났다는 말이 돌고 있다.”

이승만 부부는 한국에 돌아오고 싶어 했으나 박정희 정권은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여러 집을 전전하다 1965년 7월19일 하와이 마우나리니 요양병원에서 생을 마감했고, 그의 유해는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90년 4개월의 생애였다.

도움말=김태환 하버드 대학 남가주 한인동창회장. 서울대 문리대(60학번) 졸업. 1974년(32세) 도미. 페이엣빌 주립대 졸업. 1983년 하버드 대학 MBA 과정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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