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일가 대변할지 국민 경제 편에 설지 선택하라
  • 박상인 |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
  • 승인 2015.08.12 18:48
  • 호수 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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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정치권, 롯데 사태 반면교사 삼아 미비한 법제도 개선해야

롯데그룹의 경영권 세습을 둘러싼 신동주·신동빈 형제의 골육상쟁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막장 드라마나 궁중암투보다 더 흥미진진한 ‘대본 없는 리얼리티 쇼(reality show)’가 방송과 신문을 타고 거의 실시간 보도되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호기심에서 실망으로, 이제 실망을 넘어 허탈감과 분노로 바뀌고 있다.

롯데그룹의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단지 일회성 막장 드라마로 막을 내리고 롯데그룹의 문제로만 치부된다면, 제2, 제3의 롯데 경영권 분쟁이 향후 일어날 수 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 우리 경제에 피멍이 깊어지는 치명적 부작용을 낳게 될 것이다. 따라서 롯데 경영권 분쟁의 근본 원인을 따져보고, 이를 반면교사 삼아 미비한 법제도의 개선을 통해 한국 경제에 전화위복이 되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기업집단 출자 구조에 대한 법제도 미비

롯데그룹은 국내에서 다섯 번째로 큰 재벌로, 약 80개의 계열사로 구성돼 있다. 그런데 이들 계열사는 순환출자를 포함해 거미줄 같은 출자 구조로 연결돼 있으며, 이러한 출자 구조의 정점에 롯데호텔이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총수 일가가 비상장 회사인 롯데호텔을 지배하고 복잡한 출자 구조를 이용해 롯데그룹 전체 계열사들을 지배할 수 있는 것이다.

총수 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계열사들을 지배하고 무소불위의 ‘황제 경영’을 하는 현실은 비단 롯데그룹만의 문제는 아니다. 롯데 경영권 분쟁을 통해, 법적 근거가 없는 그룹 회장의 지시서나 손가락 해임이 21세기 한국 경제계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을 실제로 확인할 수 있었던 것뿐이다. 이런 황제 경영이 가능한 것은 총수 일가의 전횡을 견제할 수 있는 기업 내부와 외부의 거버넌스 시스템이 한국 재벌 체제에서는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병용 롯데물산 사장 등 롯데그룹 사장단이 8월4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홍보관에서 긴급 사장단 회의를 마치고 성명을 발표한 후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런데 롯데그룹이 다른 재벌과 다른 점은 사실상 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롯데호텔의 지분 구성이다. 롯데호텔 지분의 99%는 총수 일가나 국내 롯데 계열사도 아닌 일본 롯데홀딩스와 L 투자회사들이라는 정체불명의 금융사들이 보유하고 있다. 즉 신격호 일가는 일본 롯데홀딩스와 L 투자회사들을 통해 롯데호텔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 롯데그룹은 일본에 본부를 둔 다국적 기업의 한국 법인 집합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마치 한국GM이 한국 기업이지만 미국 GM이라는 다국적 기업의 한국 법인인 것과 동일하다. 다국적 기업집단인 롯데 매출액의 95%가 한국에서 발생하고 있음에도 한국 롯데그룹의 경영권 승계는 일본 롯데홀딩스를 중심으로 일본에서 결정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욱이 현행 국내 관련법들은 재벌의 국외 계열사에 대한 소유 지분 구조나 재무 자료 제출을 강제하지 않고 있다. 일본 롯데홀딩스나 L 투자회사들은 모두 비상장 회사이므로, 일본 상법에서도 공시 의무를 지지 않는다. 따라서 한국 재계 5위 롯데그룹의 경영권 승계는 한국 정부의 관할권을 벗어나 일본에서 깜깜이로 진행돼왔던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롯데그룹의 정체성과 일본 롯데로의 배당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한국 롯데그룹이 사실상 일본 롯데의 현지 법인들의 집단이라고 하더라도 주주에게 배당을 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외국 기업이 국내에 투자해 기업을 만들고 일자리도 창출한다면, 국민 경제에 바람직한 것이며, 정당한 이윤을 외국 주주에게 배당한다면 문제가 없다.

그러나 한국 롯데그룹의 일본 롯데 계열사로의 배당 중 대부분이 시내면세점 사업에서 나온다는 점에 문제가 있다. 지난 30년간 롯데그룹은 시내면세점 사업 전매특허를 사실상 무료로 사용하는 특혜를 받았다. 당연히 국가 재정 수입으로 귀속되어야 할 돈들이 특정 재벌의 ‘황금알’로 둔갑한 것이고, 이 돈이 일본 롯데 계열사들에 배당으로 유출되었던 것이다. 국민 재산을 국외로 빼돌리는 일을 정부가 방조하고 도와준 결과다.

롯데 경영권 분쟁 와중에 이런 특혜 사실이 알려지자 관세청은 올가을에 있을 시내면세점 특허 심사에서 롯데그룹에 불이익을 줄 수 있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그러나 롯데가 아닌 다른 재벌 기업에 시내면세점 사업권을 준다고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롯데에 준 특혜를 다른 재벌로 돌리겠다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차제에 시내면세점 사업자 선정도 인천공항면세점 사업자 선정과 동일하게 가격 입찰 경쟁을 통해 결정해야만 한다. 국민의 재산을 특정 재벌에 무상으로 양도하는 월권을 관세청이 내려놓을 때가 된 것이다.

롯데 경영권 분쟁이 일어난 근본적인 이유는 기업집단의 출자 구조에 대한 법제도의 미비함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이런 미비함이 실수나 부주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재벌의 로비에 의해 국회 입법 과정과 행정입법 과정에서 만들어졌던 것들이다. 상법의 상호출자 금지를 회피하는 꼼수인 순환출자를 허용하고 있는 것이나, 기업집단 단위로 지주회사 체제를 적용하지 않고 특정 기업이 조건만 만족하면 지주회사로 지정하는 공정거래법 조항들이 이런 고의적 미비의 대표적인 예들이다.

롯데 특수성, 국내 재벌들 모방할 수도 있어

롯데의 본부가 일본에 있다는 특수성으로 인해, 한국 롯데그룹은 경영권 승계를 위해 계열사 간 출자 구조를 바꿀 유인도 없었으며, 한국 정부에 승계와 관련된 어떤 세금을 납부할 필요도 없었다. 매출의 95%를 한국에서 올리지만 승계와 증여는 일본에서 이뤄지고 이와 관련한 세금을 내더라도 일본에 내는 것이다. 물론 일본 롯데홀딩스나 L 투자회사들이 비상장 기업이므로, 아마 이들 회사의 지분 승계로 신격호 일가가 부담해야 할 세금은 많지 않을 것이다. 롯데의 이런 특수성은 국내 재벌들이 모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것은 아니다. 향후 한국 국적의 다른 재벌들도 조세피난처에 비상장 회사를 설립하고, 이 비상장 회사에 핵심 계열사나 총수 일가의 지분을 출자나 매각하는 방식으로 롯데와 같이 세습과 조세 회피를 할 수 있다.

따라서 제2, 제3의 롯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기업집단의 존재는 인정하되 기업집단의 출자 구조는 순수 지주회사 체제를 따르도록 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 이런 법 개정은 재벌 총수 일가의 이익에는 배치된다. 정부와 정치권은 재벌 총수 일가의 이익을 대변할지 국민 경제의 편에 설지를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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