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넘버 2’의 승부는 끝나지 않았다
  • 이영종│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
  • 승인 2015.08.12 18:53
  • 호수 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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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정치’ 속 살아남은 최룡해와 황병서, 본격적 2인자 다툼

“최현 동지는 공을 제대로 다루지 못해 실수만 계속했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믿어주신 수령님의 영도력 덕분에 경기를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7월 말 북한 조선중앙TV는 김일성 주석의 생전 리더십을 찬양·선전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이른바 김일성 혁명 일화를 회고하던 한 여성 해설원은 해방 직후 북한 군부가 편을 나눠 축구 경기를 하던 때의 에피소드를 전하다가 최현 전 인민무력부장을 언급했다. 그가 축구를 제대로 하지 못해 다른 간부들이 감독 격인 김일성에게 선수 교체를 요구했지만 끝까지 기용됐고, 최현이 신임을 저버리지 않고 승리의 원동력이 됐다는 줄거리다.

이른바 항일투사로 불리는 최현에 대한 이 같은 보도는 김정은 체제 들어 북한 선전 매체에 종종 등장하고 있다. 김일성과 항일 빨치산 활동을 함께 했다는 최현은 북한 정권 수립과 인민군 창건에 핵심 역할을 했다. 그의 아들이 현재 김정은 체제의 북한에서 핵심 실세로 자리한 최룡해 노동당 비서다.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왼쪽에서 두 번째)과 최룡해 노동당 비서가 2014년 10월4일 열린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참석해 공연이 펼쳐지는 동안 얘기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김원홍 보위부장이 황병서에게 보복하려 해”

최룡해가 최고 엘리트 코스인 만경대혁명학원과 김일성종합대 정치경제학부를 거친 것도 이런 아버지의 후광 때문이다. 30세 때인 1980년 북한 청년 조직인 사로청(사회주의노동자청년동맹)의 국장으로 시작해 6년 만에 사로청 중앙위원장으로 출세가도를 달린 것도 마찬가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자신의 대학  후배이자 빨치산 가문인 최룡해에게 공화국영웅 칭호를 주는 등 각별히 챙겼다. 그가 비리와 전횡 혐의로 정치생명이 끝날 위기에 처했을 때인 1998년에 평양시 상하수도관리소 당 비서로 좌천되는 수준에서 마무리된 것도 든든한 집안 배경과 김정일의 신임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김정일은 황해도 당 책임비서로 일하던 최룡해를 2010년 9월 북한군 대장에 발탁했다. 후계자인 막내아들 김정은과 여동생 김경희 당 비서 등에게 대장 칭호를 주면서 최룡해를 포함시킨 것이다. 최룡해는 정치국 상무위원과 국방위 부위원장을 맡으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지난해 4월 핵심 요직인 군 총정치국장에서 해임되면서 이상설이 나왔다. 노동당 조직지도부 부부장 출신인 황병서에게 자리를 내준 것이다. 황병서의 약진을 두고는 김정은 정권 출범에 결정적 기여를 한 공적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란 설이 제기된다. 그는 인사와 조직 관리를 맡는 당 핵심 부서인 조직지도부의 최고 실세 중 하나였다. 황병서가 김정은을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 생모인 고영희를 도왔다는 첩보를 한·미 정보 당국은 공유하고 있다. 황병서는 총정치국장에 오른 이후 2인자 자리를 놓고 최룡해와 끊임없이 경쟁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지난 5월 제주포럼에서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은 “지금 북한은 누가 김정은의 ‘넘버 2’가 되느냐 싸움 중”이라며 “황병서와 최룡해가 ‘넘버 2’와 ‘넘버 3’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최룡해와 황병서의 서열은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난다. 황병서는 지난해 5월 군 총정치국장에 임명되면서 최룡해를 제쳤다. 김정은을 수행하는 공식 행사 등에서 최룡해보다 먼저 호명됐다. 이른바 권력 서열에서 앞선 것이다. 9월 인천아시안게임 때 대표단장 격으로 남한을 방문한 황병서를 최룡해는 “총정치국장 동지”라며 깍듯이 대했다. 하지만 한 달 후 최룡해가 다시 당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불리면서부터 황병서는 최룡해에게 처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난 3월 황병서는 2인자 자리에 복귀했다. 물론 최룡해가 여전히 건재하다는 점에서 최룡해의 정치적 위상이 추락한 게 아니라 황병서에게 새로운 권한이나 직책이 부여됐을 것이란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정부 대북 부처 당국자는 “아직 최룡해와 황병서가 2인자 자리를 둘러싼 권력 다툼을 표면화하는 징후나 첩보는 드러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정은에 대한 절대적 충성 과시가 곧 자신의 정치생명과 권력 기반을 거머쥐는 길이라는 점에서 암투 가능성은 크다고 보고 있다. 황병서의 경우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과 경제적 이권을 놓고 노골적으로 대립하는 등 평양 권력 핵심부의 갈등이 노골화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 당국자는 “김원홍 보위부장의 아들 김철이 지난해 말에서 올 초 사이에 노동당 특별조사를 받았고 이는 황병서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귀띔했다. 김철은 중국산 상품·자재의 수입과 북한 내 유통에 부당 개입해 막대한 이권을 챙긴 혐의를 받았다고 한다. 김철에 대한 조사를 놓고 평양 권력층 내부에선 황병서의 수양딸이 북·중 교역에서 돈벌이가 제일 좋다는 인민소비품(생필품)에 손을 댄 게 드러나면서 미묘한 균열이 생긴 것이란 소문이 퍼졌다. 황병서가 자기 자식을 챙기려 했다는 입소문 때문이었다. 당국자는 “김원홍 보위부장이 황병서에게 보복하려 한다는 첩보도 흘러나왔다”고 말했다.

빨치산 혈통 앞세운 최룡해 행보 두드러져

집권 4년 차를 맞은 김정은 체제는 지금 노동당과 군부 파워 엘리트의 이권다툼으로 요동치고 있다.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은 3대 세습을 완성했다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지만, 핵심 간부층은 사활을 건 새판 짜기 게임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현재로서는 빨치산 혈통을 앞세운 최룡해의 행보가 두드러진다. 그는 지난 7월31일 김정은이 6·25 참전 노병들에게 주는 선물을 전달하는 행사에 등장했다. “모든 노병들이 김정은 원수님을 삶의 영원한 태양으로 높이 받들어 모시며 충정의 한 길만을 걸어 나가야 한다”며 김정은의 대리인 역할을 자임했다. 늘 온화한 표정에 조용한 행보를 하고 있는 황병서와는 대비되는 움직임이다.

이를 두고 한 대북 정보 당국 관계자는 “최룡해는 정권 수립에 지분이 있는 빨치산 혈통을 든든한 배경으로 하고 있어 ‘시련은 있지만 몰락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또 황병서에 대해서는 “어려운 시기 생모 고영희를 도와 자신이 최고 권력자로 자리할 수 있게 일찌감치 줄을 선 공신을 김정은이 쳐내지는 못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물론 고모부 장성택을 본보기로 처형한 김정은의 공포 정치 속에서 2인자라도 안심할 수는 없는 건 분명하다. 요동치는 평양 권력 싸움에서 누가 최후의 승자로 남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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