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컨트롤타워 ‘개점휴업’ 했나
  • 김종대│디펜스플러스21 편집장 (.)
  • 승인 2015.08.19 15:34
  • 호수 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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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뢰 도발 나흘 지나서야 NSC 소집…대통령은 일주일 만에 첫 언급

저명한 위기관리 전문가인 찰스 허먼(Charles H. Hermann)이라는 학자는 위기에는 치명성(Threat)·긴박성(Time)·예측성(Surprise)이라는 세 가지 구성 요인이 있다고 했다. 즉 적대 세력이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위협하는 것이고, 차분하게 대응할 시간적 여유가 없으며, 전혀 예상할 수 없어 대응하기 어려운 사건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을 위기라고 한다. 이번 전방의 북한 ‘지뢰 도발’ 사건을 보면, 비록 이 사건이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기를 초래할 만한 고강도 위기는 아니더라도, 작전 중인 우리의 전투원이 중상을 입는 피해가 발생했다는 점, 북한이 정전협정에 도전하는 적대성이 내포됐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DMZ에서 지뢰 사고가 발생한 다음 날인 8월5일, 박근혜 대통령이 강원도 철원군 백마고지역에서 열린 경원선 남측 구간 철도 복원 기공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통령과 국방부장관 사건 협의 없어

시간을 끌고 대응하면 효과가 없는, 매우 긴박한 대응을 요구하는 사건이었다.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북한의 새로운 도발이었다는 점에서 저강도 위기의 요건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럴 경우 국가 위기관리 핵심 세력은 도발한 북한에 대해 신속하고 적절한 응징으로 국가 이익을 수호하되, 그것이 국가의 더 큰 위기로 발전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하는 이중의 과제를 부여받는다. 이를 위해 국가 위기관리의 컨트롤타워라고 할 수 있는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위기관리센터는 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들이 포진해 대통령을 보좌하고 국정원·통일부·국방부·합참·외교부 등 관련 조직들을 동일한 목표를 향해 움직이도록 지도해야 한다. 즉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의장인 대통령을 중심으로 은밀하면서도 신속하게 발동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8월4일 지뢰 사건이 발생하고 난 후에 박근혜 정부의 위기관리 시스템은 완전히 실종되었다. 그 결과 정부 부처가 각기 다른 방향으로 대북 정책을 수행해 위기가 관리되지 않는 또 하나의 참사가 벌어졌다. 가장 초점이 되는 시점은 5일이다. 이날 국방부는 전방의 지뢰 사건이 북한이 매설한 목함지뢰라는 사실을 파악하고 언론에 엠바고(비공개)를 조건으로 이를 브리핑했다. 그러나 국회 국방위에서 밝혀진 바와 같이 사건이 발생한 4일에 이미 국방부는 북한의 지뢰 도발이라는 대공 용의점이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통일부는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같은 날 박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이 참석해 경원선 남측 철도 복원을 위한 기공식이 예정대로 개최되고 있었다. 곧이어 북한에 고위급 대화를 제안하는 대북 전통문까지 발송했다.

이때까지는 정보 공유 부족으로 부처 간 정책을 조정하기 어려웠다고 선의로 이해한다고 치더라도, 그 이후의 청와대 행보는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미 언론이 북한의 도발이 있었음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도 청와대는 사흘이 더 지난 8일에야 NSC 상임위원회를 소집해 정부 부처 장관들이 이 문제를 다루는 최초의 대책회의를 가졌다. 여기서 긴박한 대응을 요구하는 위기의 속성은 무시했다.

세월호 사건·메르스 사태 상황 반복

사건 발생 6일이 지난 10일에야 국방부는 언론의 엠바고를 해제하고 사건의 진상을 발표했다. 이러는 동안 박 대통령과 한민구 국방부장관 간에는 이 문제에 대한 협의가 일절 없었다. 단지 국방부가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에 수시로 올리는 상황보고가 전부였다. 박 대통령은 10일의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북한의 표준시 변경에 대해 “독단적 결정으로 남북 협력과 평화통일 노력에 역행하는 것”이라는, 위기 상황과 동떨어진 발언만 했다. 그다음 날인 11일에 하몬드 영국 외교장관을 접견한 박 대통령은 처음으로 전방의 지뢰 사건에 대해 언급하며 “정부는 강력한 대북 억지력을 바탕으로 한 압박을 지속해나가는 한편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위한 노력도 지속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북한에 대한 대통령의 규탄 메시지는 없고 대화 재개에 무게를 실은 발언이라고 볼 수 있다. 12일에도 박 대통령은 독립유공자와 그 유족들과의 청와대 오찬에서 “우리는 북한의 도발에는 단호히 대처해나갈 것이다. 동시에 (지뢰 사건과 같은)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고 평화를 구축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으로 지뢰 사건에 대해 언급을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대화와 평화를 강조하는 애매한 태도는 위기관리 유관 부처들이 모두 제각기 움직이는 혼란스러운 상황을 방치하고 있었다.

국방부 역시 사건에 대한 ‘조사’가 우선이었지 긴급을 요하는 ‘조치’는 나중 일이었다. 적의 도발이 명확한 상황에서 해당 부대에서는 다른 지뢰 매설을 확인하고 비상경계태세에 돌입하는 등의 비상 조치가 없었고, 합참에선 위기조치반이 소집되지 않았으며, 합참의장은 사건 이튿날 폭탄주 회식에 참석했다. 그러다 사건 조사 결과가 발표된 10일에야 군은 전방에 ‘최고경계태세 유지’를 발령하면서 뒤늦은 대책을 마구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때는 유엔사령부가 북한에 장성급 회담 소집을 요구하고, 미국 국무부가 북한에 “정전협정 위반”이라며 유엔사 요구에 응할 것을 촉구하는가 하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역시 이에 동조하는 입장을 밝히는 상황이었다. 이때도 청와대는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가 하루가 더 지난 11일에야 처음으로 북한의 지뢰 도발을 규탄하는 성명을 민경욱 대변인이 낭독했다.

사실 전방의 지뢰 사건에 대한 조사가 어떻게 되든 그건 나중 일이다. 청와대와 군이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비상 조치를 먼저 취하고 나중에 그 조사 결과에 따라 조치한 상황의 일부를 조정해나가는 게 위기관리의 기본이다. 이처럼 뒤늦은 조치들은 북한에도 상당한 대응 여유를 주어 그 실효성이 반감되게 마련이다. 이런 상황을 보면 청와대의 컨트롤타워는 세월호 사건이나 메르스 사태에서와 마찬가지로 기능 정지 상황이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청와대와 NSC라면 사실상 스스로 개점휴업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면서 사건 발생 후 일주일 동안 반응을 보이지 않은 우리의 문제는 덮고, 지금 지뢰 사건에 대해 북한의 반응이 없다는 점만 부각시키며 “이상하다”고 말하는 건 자가당착이다. 더 이상한 건 북한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더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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