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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보다 ‘흙 속 진주’가 먼저다

슈틸리케의 끝없는 실험… 2018 러시아월드컵이 목표

서호정│축구 칼럼니스트 ㅣ . | 승인 2015.08.19(Wed) 16:46:06 | 9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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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31일 2015 동아시안컵을 위해 대회가 열리는 중국 우한의 톈허 국제공항에 도착한 울리 슈틸리케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두 가지를 약속했다. 하나는 우승이라는 성과를 달성하는 것, 다른 하나는 대거 뽑은 새로운 얼굴들을 최대한 기용하는 것이었다. 두 가지 목표를 잡는 것은 쉽지 않았다. 동아시안컵은 월드컵이나 올림픽, 아시안컵과는 비교가 안 되게 소규모 대회지만 한국·중국·일본·북한 사이의 오묘한 라이벌 관계가 깔려 있어 늘 박빙의 승부가 펼쳐진다.

실제로 한국은 2008년 3회 대회 이후 우승하지 못했다. 게다가 슈틸리케가 소집한 동아시안컵 대표팀엔 A매치 경험이 제로인 선수만 8명이나 있었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소집을 승인한 대회가 아닌 탓에 유럽파와 중동파를 부를 수 없게 되자 슈틸리케 감독은 K리그와 J리그에서 뛰는 젊은 선수들을 과감히 발탁해 데려갔다. 손발이 맞지 않는 선수들을 대부분 기용하면서 성과를 내겠다는 그의 의지는 현실과 동떨어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열흘 후 대회가 끝나고 한국은 우승팀으로서 단상에 올랐다.

8월9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동아시안컵 축구대회에서 우승한 한국 축구대표팀이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들고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선수들의 기량을 실험하면서 성과까지 내려면 치밀한 계획과 강력한 소신이 필요하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미 지난해 말부터 동아시안컵을 준비했다. 유럽파를 소집할 수 없다는 걸 알고 대체 자원을 준비했다. 지난해 12월 제주도에서 아시안컵에 대비한 소집 훈련을 실시할 때 젊은 K리거들을 대거 뽑았다. 이재성·김승대·이종호 등은 모두 그때 검증을 마친 멤버들이다. 정우영·정동호·이용재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소집 멤버 중 호주에서 열린 아시안컵까지 간 새 얼굴은 이정협 하나뿐이었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그 외의 선수들이 어떤 특징과 장점을 갖고 있는지 파악해놓은 상태였다. 이번 동아시안컵에서는 당시 제주 전훈 소집 멤버들이 주축이 돼 성과를 냈다.

꺾이지 않는 슈틸리케 감독의 소신도 인상적이었다. 중국과의 첫 경기에서 내용과 결과에서 모두 완승을 거둔 슈틸리케 감독은 한·일전을 앞두고 “멤버를 대거 교체하겠다”고 선언했다. 국민 정서가 강하게 결집되는 한·일전조차도 과정으로 삼겠다는 의지였다. 8명이 바뀐 선발 라인업이 나선 한·일전에서 승리만 없었을 뿐 내용상으로 압도적 우위를 점했다. 특히 한국이 패스 축구를 하고 일본이 자신들의 진영에 박혀 수비 축구를 하는 낯선 상황이 연출됐다. 경기 후 슈틸리케 감독은 “일본이 우리의 첫 경기를 보고 너무 겁을 먹은 것 같다”며 현장에 온 일본 취재진의 자존심을 완벽하게 무너뜨렸다.

공격 지향적 스페인식 점유율 축구 추구

슈틸리케 감독은 철저한 원칙주의자에 늘 무뚝뚝한 표정을 가졌지만 속은 따뜻한 할아버지의 면모를 지녔다. 선수들이 말하는 슈틸리케 감독은 대화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는 섬세한 할아버지다. 한·일전에서 부진했던 이주용은 그다음 북한전에서 다시 기용됐고 앞선 경기의 부진을 만회하는 경기력을 보여줬다. 경기 후 이주용은 “한·일전이 끝나고 이번 대회에 더 이상 내가 나설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북한전 하루 전날 감독님이 나를 불러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싶다고 얘기했다. 죽기 살기로 뛰어 믿음에 보답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밝혔다.

대표팀 운영 면에서 슈틸리케 감독이 조국인 독일의 철저한 계획성을 따른다면, 축구 방식은 선수와 지도자로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스페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늘 ‘공격적인 성향’을 강조한다. 그것을 위해 우리가 주도해서 공을 소유하고, 정교한 패스플레이로 공격을 풀길 원한다. 공격이 끊기면 그 즉시 강한 압박을 펼친다. 이번 동아시안컵에서 한국이 어떤 팀을 상대하든 60%가 넘는 점유율을 자랑한 것은 슈틸리케 감독이 지향하는 축구가 대표팀 내에 자연스럽게 이식됐음을 보여준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이 강력한 수비를 바탕으로 높은 점유율의 패스 축구를 펼친 점에 대해 일본·중국 등 라이벌 국가의 취재진은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투박하고 강한 축구의 대명사였던 한국이 불과 1년 사이 보여준 변화가 그만큼 인상적이었다는 얘기다.

평균 연령 24.3세의 팀으로 동아시안컵을 성공적으로 치른 슈틸리케 감독은 ‘젊은 대표팀’의 기조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이번 대회 최고참은 1988년생인 김신욱이다. 이청용·기성용도 같은 나이다. 수비진에 베테랑 곽태휘(1981년생)가 향후 선발될 가능성이 있는 것을 제외하면 1988년생이 앞으로 대표팀 선발의 마지노선이 될 가능성이 크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을 30세 이하의 전성기에 있는 선수들로 치르겠다는 계획을 엿볼 수 있다. 동아시안컵은 3년 후까지 내다보고 있는 슈틸리케 감독의 큰 구상에서 하나의 과정이었다. 8월12일 슈틸리케 감독은 이용수 기술위원장 등으로 꾸려진 대한축구협회 조사단과 함께 유럽으로 향했다. 독일·벨기에·네덜란드 등 유소년 육성 시스템에서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국가들을 방문해 대표팀과 한국 축구 경쟁력 강화 방안을 찾기 위해서다. “한국인보다 더 한국 축구를 아끼고 위한다”는 이용수 기술위원장의 말처럼 한국 축구를 위해 폭넓은 행보를 거듭하고 있는 슈틸리케 감독이 그리는 그림의 완성판은 무엇일까. 목표인 러시아월드컵까지 가는 과정이 이제 4분의 1 지났다.

 

 

“전형적인 9번 공격수를 선호한다” 

슈틸리케 감독은 선수 선발에 확고한 철학 하나를 갖고 있다. 어디서 뛰느냐가 아닌 어떻게 뛰느냐를 본다. 그가 때때로 무명선수를 깜짝 발탁하는 이유다. 대표적인 경우가 이정협이다. 어떤 감독도 주목하지 않았던 이정협은 현재 대표팀의 주전 스트라이커다. 슈틸리케 감독은 “나는 전형적인 9번 공격수를 선호한다. 많이 뛰어주며 동료들에게 공간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이정협을 중용한 이유를 설명했다. 박주영의 선발에 고개를 가로젓는 이유도 활동량이 충분치 못해서다. 선수 선발을 위해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할 테니 어떤 사전 정보도 주지 말라”고 주문한다.

슈틸리케 감독이 강조하는 중요한 능력 중 하나는 ‘빌드업’이다. 스페인식 점유율 축구를 위해선 안정적인 패스를 구사하고 위협적인 장면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지닌 선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철학은 수비수와 골키퍼들에게도 적용된다. 실제로 최근 세계 축구는 골키퍼로부터 찬스가 만들어진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빌드업의 첫 단계부터 정밀한 플레이를 강조한다. 피지컬적인 능력이 떨어지지만 시야가 넓고 패스 전개가 좋은 수비수 장현수, 뛰어난 킥 능력과 필드 플레이어 못지않은 발기술을 지닌 골키퍼 김진현을 중용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아무리 뛰어난 신체 조건을 지녔더라도 섬세함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슈틸리케호 승선이 어렵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김신욱의 경우 197cm의 큰 키에서 나오는 확실한 장점이 있지만 K리그에서 꾸준한 활약을 시작한 최근에야 대표팀에 발탁됐을 정도로 슈틸리케 감독의 감식안은 깐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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