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적십자사, 북한 도발 속 단체 야유회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5.08.23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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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관리본부, 8월21일 강원도 영월로…비상사태 발생 시 혈액 공급 차질 빚었을 수도

북한군의 선제 포격 도발로 남북 간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은 전선지대에 ‘준전시사태’를 선포했다. 우리 군도 남북 간의 군사적 대치가 심각한 상황일 때 내려지는 ‘진돗개 하나’를 발령했다. 전방 장병의 경우 완전군장을 한 채 대기하도록 했다. CNN·BBC 등 외신들은 “남북한 대치로 한반도 긴장이 커지고 있다”며 현재 상황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

이런 가운데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직원들이 단체로 북한의 도발 다음 날인 8월21일 야유회를 다녀온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아침 관광버스를 빌려 강원도 영월로 야유회를 떠났다. 언론에서 북한의 추가 도발 가능성이 제기되고, 이에 맞서 우리 군이 비상사태에 대비하고 있는 와중에도 혈액관리본부는 야유회를 취소하지 않았다.

혈액관리본부의 막중한 업무를 감안할 때 비상 상황에서의 야유회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직무를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라서 국민적 비판이 일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군, 전 국민이 북한의 추가 도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에서 야유회를 떠났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는 전국 15개 혈액원과 병원 등에 혈액을 공급하는 일을 담당한다. 국가 비상사태가 터지면 혈액 수급을 담당해야 하기 때문에 을지훈련에도 참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기자가 21일 오후 4시 혈액관리본부가 위치한 강원도 원주에 전화했을 때까지도 한 직원은 “전 직원이 현재 야유회를 나갔기 때문에 직원을 연결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 대한적십자사 건물

해외 출장 김성주 총재, 보고 받았나

혈액관리본부의 한 관계자는 “메르스 사태로 이미 한 번 야유회가 취소된 상태였다”며 “조금 있으면 국정감사이기 때문에 무리를 해서 야유회를 다녀왔다. 오후 5시20분에 모두 복귀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야유회 이전에 혈액 수급 상황을 모두 모니터링하고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경기도 연천을 담당하는 동부혈액원과도 사전에 협의를 해서 문제가 없도록 조치했다”고 강조했다.

대한적십자사의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북한군의 포격 도발 직후 NSC(국가안전보장회의)가 소집됐고, 적십자사에도 비상 대기를 지시한 만큼 행사를 취소했어야 마땅하다. 적십자사는 포격 도발 직후 직원들에게 비상 대기를 지시했다. 8월20일 오후 6시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NSC가 열렸고, 연천군과 강화도 일부 주민들에게는 긴급 대피령이 내려졌다. 적십자사는 경기지사를 통해 담요와 빵, 생수, 컵라면 등을 대피 주민에게 전달하는 등 긴급 구호활동을 펼쳤다. 보도자료를 통해 “평소 적십자는 재난 등 비상 상황에 대비해 적십자 회비로 긴급 구호물품을 준비해놓고 있다”며 “대피 주민들이 불편을 겪지 않도록 정부 및 군과 협력해 구호활동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힌 상태여서 논란이 더하다.

주목되는 점은 김성주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야유회 관련 사실을 보고 받았는지 여부다. 김 총재는 며칠 전 해외 출장을 나갔다가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김 총재가 야유회 사실을 보고 받았는지는 아직까지 파악되지 않고 있다. 김 총재가 혈액관리본부의 야유회 사실을 보고 받고도 묵인했다면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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