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1번지는 ‘막장 드라마’ 제작소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5.08.27 10:39
  • 호수 135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입법 로비에 취업 청탁까지…성추문도 끊이지 않아

18명. 19대 국회에서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아 의원직을 상실한 국회의원 수다. 여기에 이미 기소돼 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의원은 14명. 이 중 구속 기소된 현역 의원만도 5명에 이른다. 임기가 아직 9개월여 남은 것을 감안하면 19대 국회의 기록이 역대 의원직 상실자가 가장 많았던 18대 국회(21명)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죄질도 나쁘다. 입법 로비, 취업 청탁, 뒷돈 수수 등 해묵은 비리부터 최소한의 자질과 윤리의식까지 의심되는 성폭행 사건까지 불거졌다. 여의도 곳곳에서 터진 막말 논란은 차라리 애교 수준이다.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지만 국회 내부의 자정 노력은 찾아볼 수 없다. 19대 국회 들어 국회윤리특별위원회에 회부된 의원은 38명이나 되지만 징계안이 의결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다. 정치 혁신과 기득권 내려놓기를 기치로 출발했던 19대 국회가 역대 최악의 ‘막장 국회’로 전락한 모습이다.

ⓒ 시사저널 포토

취업청탁은 여의도의 공공연한 비밀

시사저널의 인터넷 경제매체인 ‘시사비즈’는 8월13일자 ‘윤후덕 의원 딸, 대기업 변호사 채용 특혜 의혹’ 기사에서 윤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LG디스플레이에 자신의 딸 취업 청탁을 한 사실을 단독 보도한 바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없던 자리까지 만들어가며 윤 의원 딸을 입사시킨 것으로 확인됐다. 윤 의원은 시사비즈와의 전화통화에서 “부탁(취업 청탁)한 것은 아니다”면서도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대표에게 딸아이가 지원했다는 사실을 알린 적은 있다”고 밝혔다. 이후 윤 의원은 “저의 딸 채용 의혹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제 딸은 회사를 정리하기로 했다. 모두 저의 잘못”이라고 사과글을 게재했다. 이 문제와 관련해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직접 당 윤리심판원에 직권조사를 요청한 상태다. 또한 변호사 724명은 윤 의원의 즉각적인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곧이어 터진 김태원 새누리당 의원의 아들 채용 특혜 논란은 국회의원의 ‘슈퍼 갑질’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김 의원의 아들은 지난 2013년 11월 법무공단에 채용됐는데, 김 의원과 공단 이사장인 손범규 전 의원 간의 친분으로 특혜를 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법조 경력 5년 이상의 변호사’였던 해당 직종의 채용 기준이 ‘2010년 1월1일에서 2012년 3월1일 사이 사법연수원 수료 또는 법학전문대학원 졸업’으로 바뀐 것이 김 의원 아들을 염두에 둔 특혜라는 것이다. 법조인 등 527명은 김 의원 아들의 채용과 관련해 법무공단에 정보공개를 청구해놓은 상태다.

사실 국회의원을 통한 취업 청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익명을 요구한 LG디스플레이 내부 관계자는 “위에서 정원을 늘리라고 지시해 윤 의원의 딸이 합격했다”며 “지역구 국회의원 자녀를 채용하는 것은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문희상 새정치연합 의원은 2004년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에게 처남의 취업 청탁을 했다는 의혹으로 현재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김태호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 문제를 논의 중이던 지난 5월6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력서 한 장 보내놨소” “오케이, 받았어요. 고문 월 300만원 맞나요? 6월부터요” “감사요”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은 사실이 언론 카메라에 고스란히 찍혔다. 김희정 여성가족부장관(새누리당 의원)은 취임 전인 지난해 5월 국회 본회의장에서 “의원님, 공OO 회장 아드님 취업 관련 부탁 연락 왔음. 국방과학연구소 의견 주십시오” “조만간 직원 채용공고가 추가로 날 수 있어 이 부분은 따로 확인하여 보고드리겠음” “5월6일 이후 추가 공고 뜨고 6~7일경에 지원 가능 여부 확인됩니다” 등 국방과학연구소의 취업 일정과 국회 국방위원들의 명단이 들어 있는 문자메시지를 주고받기도 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8월20일 국회의원의 취업 청탁을 ‘현대판 음서제’로 규정하고 “국회의원과 고위 공직자의 직계존비속 또는 배우자가 공공기관이나 대기업·법무법인 등에 취업할 경우 이를 공개토록 공직자윤리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취업 청탁은 19대 국회에서 벌어진 각종 비리 사건과 견주어보자면 ‘새 발의 피’ 수준이다. 입법 로비와 그에 상응하는 검은돈의 흐름은 19대 국회 출범부터 지금까지 현재진행형이다. 3선의 박기춘 전 새정치연합 의원은 2011년부터 올해 2월까지 부동산 분양대행업체 대표로부터 현금 2억7000만원과 명품 시계 2점, 안마의자 등 3억5800만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의정보고서 지원금 1억원을 비롯해 아들 결혼식 축의금으로 1억원, ‘명절 떡값’ 명목으로 7000만원 등을 수수했다. 가족들에게는 명품 시계와 가방, 안마의자 등이 전해졌다. 이 중 명품 시계는 최고가 시계 브랜드 중 하나인 해리 윈스턴(Harry Winston)사 제품으로 3120만원을 호가한다. 박 의원은 현역 의원 중 구속 수사를 받는 다섯 번째 의원이 됐는데, 19대 국회에서 구속된 의원이 8개월마다 발생한 셈이 된다.

새정치민주연합 서영교 의원을 비롯한 서울시당 여성위원회 소속 위원들이 8월6일 국회 정론관에서 성폭행 논란으로 경찰 조사를 받은 심학봉 의원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기소돼 판결 기다리는 의원 14명

박 의원 외에도 정치자금법 위반, 뇌물 수수로 기소된 인물은 8명에 이른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김재윤·신계륜·신학용 의원은 ‘입법 로비’ 사건으로 현재 재판 중에 있다. 이들은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전 서울종합예술직업학교) 교명 변경 관련 법률 개정 대가로 수천만 원 상당의 금품을 받았다는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를 받고 있다. 김재윤 의원은 구속 기소돼 1,2심에서 징역 3년, 2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철도부품업체로부터 청탁과 함께 금품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로 불구속 기소된 송광호 새누리당 의원은 1·2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함께 구속된 조현룡 새누리당 의원은 1심에서 징역 5년에 처해졌다.

박지원 새정치연합 의원은 2012년 터진 저축은행 비리 사건에 연루돼 저축은행 2곳에서 금품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및 정치자금법 위반)로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1심에서는 무죄가 선고됐지만, 2심에서 판결이 뒤집히면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3000만원을 선고받았다. 박상은 새누리당 의원은 기업체에서 고문료 명목으로 1억여 원을 받고, 기업이 자신의 경제특보 등의 급여를 대납하게 하고 회계 책임자를 거치지 않은 채 정치자금을 지출한 혐의(정치자금법·공직선거법 위반) 등으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상태다.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3000만원을 건네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정치자금법 위반)된 이완구 전 총리(새누리당)에 대한 재판은 지난 7월 시작됐다. ‘성완종 리스트’와 관련해서는 이인제 새누리당 의원과 김한길 새정치연합 의원도 검찰 소환조사를 앞두고 있다.

그 밖에도  2012년 국정원 대선·정치 개입 사건과 관련해 국정원 여직원을 감금한 혐의로 새정치연합 이종걸·문병호·강기정·김현 의원이 기소됐다. 김현 의원의 경우 세월호 유가족의 대리기사 폭행 사건에도 연루된 혐의로 재판 중이다. 같은 당 권은희 의원은 국정원 대선·정치 개입 사건과 관련해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재판에서 허위 증언을 한 혐의로 지난 8월19일 불구속 기소됐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섹스 스캔들은 국회의원들의 기본 자질을 의심케 하고 있다. 심학봉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7월13일 대구 수성구 G 호텔에서 40대 보험설계사를 30분가량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술이 취한 상태에서 보험설계사를 성폭행하고, 입막음을 위해 30만원을 건넸다는 것이다. 여론이 들끓자 국회 윤리심사자문위원회는 만장일치로 심 의원을 징계하기로 결정했다. 8월28일 최종 징계 수위가 결정되는데 제명안이 힘을 얻고 있다.

19대 국회는 출범 직후부터 성추행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새누리당 당적으로 당선된 김형태 전 의원은 동생의 부인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에 휩싸여 자진 탈당했고, 이후 사전 선거운동 혐의 등으로 결국 의원직을 상실했다.

이외에도 부끄러운 사건·사고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김무성 대표는 2013년 8월 새누리당 연찬회 이후 마련된 저녁 식사 자리에서 여기자의 허벅지를 손으로 짚는 등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한 것으로 알려져 구설에 올랐다. 임내현 새정치연합 의원은 2013년 7월 기자들과의 오찬 자리에서 여기자들을 상대로 처녀 임신 운운하며 성희롱성 발언을 했다. 국회 윤리특위에서 임 의원에 대한 ‘출석정지 30일’이라는 중징계안이 논의됐지만 지금까지 어떤 처벌도 내려지지 않았다. 현역 의원은 아니지만 새누리당 상임고문인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지난해 9월 골프장 캐디를 성추행한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성희롱에서 성폭행까지 지저분한 성추문

심재철 새누리당 의원은 2013년 3월 국회 본회의장에서 휴대전화로 여성의 누드 사진을 보는 현장이 카메라에 잡혔다. 이와 관련해 심 의원은 “누드 사진을 검색하고 본 것은 유해 콘텐츠 실태 파악을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 도중 비키니를 입은 여성 사진을 검색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권 의원은 “환노위 관련 기사를 검색하다가 잘못 눌러 비키니 여성 사진이 뜬 것”이라며 실수임을 강조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했다. 국회의원들의 몸에 밴 ‘갑질’ 행태는 여의도 밖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유대운 새정치연합 의원은 한밤중 만취 상태에서 경찰지구대를 찾아가 경찰서장에게 전화를 걸어 “바바리맨을 찾아내라”며 사실상 수사지휘를 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 소속 윤명희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3월 자신이 대표로 있던 쌀 전문 업체의 상품에 ‘쌀 전문가 윤명희’라는 문구를 담아 팔기도 했다. 심지어 정우택 새누리당 의원의 비서관은 자신의 아버지가 재배한 감자 100여 상자를 정 의원이 위원장인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 대상 기관에 시중 가격보다 비싼 값에 팔았다.

지난해 말 헌법재판소의 선거구 재획정 결정에 따라 여야에서는 의원 수를 증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1987년 국회의원법 개정 이후 의원 정수는 세종시 1석이 늘어나는 데 그쳤지만 유권자는 1400만명이나 불어났다. 의원 정수 증원에 명분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의원 정수 증원은 국민적 분노를 불러일으켰고 결국 현행 300명을 유지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수많은 특권을 유지한 채 ‘갑질’을 일삼고 있는 의원들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특권 다 누리며 갑질은 갑질대로  

국회의원 1인당 소요되는 세비는 연 1억4000만원을 웃돈다. 의원들은 인턴을 포함해 9명의 보좌진을 둘 수 있다. 매월 유류비 110만원과 차량유지비 35만8000원 등 연간 1700여 만원의 차량 지원금도 받는다. 보좌진과 차량유지비 등을 감안하면 매년 7억원 정도를 국가로부터 받고 있는 셈이다. 정책 홍보물 발행비와 사무실 운영비로 연 3200만원을 지급받고 업무용 택시비 100만원도 제공된다.

세금으로 매년 두 번씩 해외시찰을 다녀올 수 있다. 공항을 이용할 때는 귀빈용 주차장을 사용하고 별도의 출국심사 없이 VIP룸을 통해 출국할 수 있다. 2011년 국회의원 가족수당이 신설되면서 6만~44만원의 자녀 학비도 지원받는다.

국회의원은 향토예비군 동원과 훈련은 물론 민방위 훈련도 빠질 수 있다. 일반 국민보다 건강보험료도 적게 낸다. 출판기념회에서 벌어들인 수익에는 세금조차 붙지 않는다.

바른사회시민회의에 따르면 19대 국회의원 당선자 300명 중 세금을 체납한 이는 총 32명이다. 이 중 비례대표 의원은 8명, 지역구 의원은 24명이다. 50만원 미만 체납자가 13명으로 가장 많았고, 그다음이 100만원 이상~500만원 미만 7명, 1000만원 이상~5000만원 미만 4명 순이다. 또한 19대 국회 당선자 중 61명(20.3%)이 전과 기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