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기차 보이지만 서울은 비어 있다”
  • 조철│문화칼럼니스트 (.)
  • 승인 2015.08.27 13:18
  • 호수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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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 도시 통해 ‘근대 수도의 계보’ 탐사한 전진성 교수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20세기 전쟁 기념의 비교문화사’ 연구팀에서 연구책임자로 활동하는 부산교육대 사회교육과 전진성 교수(49)가 오랜 연구의 결과물을 펴냈다. <상상의 아테네, 베를린·도쿄·서울>인데, 하나로 엮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세 도시 베를린·도쿄·서울에서 공통점을 짚어낸 부분이 눈길을 끈다.

“베를린과 도쿄는 ‘위로부터의 근대화’를 이룩한 후발 제국의 수도라는 공통점을 지닌 데 반해, 도쿄와 서울은 오랜 역사적 인연을 지닌 동일 문화권 안의 제국-식민지 관계였다. 별 관련이 없어 보이는 서울과 베를린이 하나로 엮일 수 있는 것은 제국 일본의 수도였던 도쿄를 매개로 하나의 독특한 지리적 상상이 시간과 공간의 장벽을 뛰어넘어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에 대한 가히 종교적인 동경이 프로이센 왕국의 수도였던 베를린을 상상의 아테네로 만들었고 이는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일본이 신흥 제국의 수도 도쿄를 상상하는 모델이 되었으며, 종국에는 일제 식민지가 된 조선의 수위도시 경성에까지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 천년의상상 제공

“조선총독부가 한양을 역사의 뒤안길로”

광화문 안쪽에 ‘중앙청’이라는 건물이 있었다는 사실이 역사 교과서에서나 확인할 수 있는 오래전 일이 됐다. 어른들은 그 중앙청을 볼 때마다 ‘일제가 조선총독부 청사를 지으면서 왜 저런 양식의 건물을 지었을까’ 의아했다. 이에 대한 전 교수의 설명은 이렇다.

“중앙청은 파르테논 신전과는 시대적으로나 장소적으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정치적·역사적 가치를 놓고 볼 때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그러나 원형의 ‘모방’이 아니라 ‘희화’라는 차원으로 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건축과 도시계획은 공학적 기술이기에 앞서 하나의 담론이자 정치적 테크놀로지다. 흔히 ‘중앙청’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되는 옛 조선총독부 청사는 베를린의 심장부를 수놓았던 건축가 프리드리히 싱켈의 장엄하고 강직한 건축 기풍을 고스란히 투영했다. 싱켈이 상상했던 아테네가 국왕과 신민이 일체화되는 프로이센식 권위주의 국가의 이상을 내포했던 만큼, 그러한 과도한 상상력이 식민지 조선에까지 여파를 남긴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전 교수는 근대 일본이 자신의 국가적 정체성을 수립하는 데 독일 프로이센의 모델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음을 상기시킨다. 일제의 프로이센 수용은 단지 법제와 군제, 과학기술 영역만이 아니라 민족적 정체성의 가장 뿌리 깊은 핵심에까지 걸쳐 있었다.

“그런데 정작 근대 독일은 민족적 정체성이라는 점에서는 극히 예외적 사례에 속한다. 수많은 나라로 갈려 있던 독일어권 지역에서 공통의 민족적 뿌리 찾기는 자연스러운 체험에 바탕을 둔 기억의 장소가 아닌 관념적으로 설정된 외딴 공간에서 이루어졌다. 다름 아닌 고대 그리스! 근대 독일의 지식인들은 거리상으로나 시대적으로나 머나먼 그곳을 동경하며 상상 속의 동질성을 모색했다. 당시의 ‘그리스 열풍’을 주도했던 것은 독일 지역의 맹주로 급부상한 군사 강국 프로이센이었다. 이른바 프로이센 고전주의는 이러한 흐름의 문화예술적 결정판으로, 중부 유럽의 아테네로 자처하던 수도 베를린에서 활짝 꽃피웠다. 이는 동양의 베를린이 되고자 했던 일제의 수도 도쿄에 일부분이나마 제법 유사한 형태로 이식되었다. 도쿄를 상상의 아테네로 만들어가던 일제는 스스로의 필요에 따라 쇠잔한 식민지 조선의 심장부에 프로이센 고전주의의 제도적·정치적·공간적·미학적 원리를 이식했다.”

전 교수는 독일과 일본 사상 간에 은밀한 내연관계라는 게 있었다는 주장을 펼친다. 이 책에 나오는 핵심적 인물 중 브루노 타우트와 이토 주타가 있는데, 앞사람은 독일 건축가로 일본 고건축을 ‘모던’하다고 보았던 반면에, 뒷사람은 일본 건축사가로 일본 고건축이 고전 그리스 건축과 상동성이 있다고 보았다.

“이토 주타가 경복궁 앞을 조선총독부 청사 부지로 선정했던 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한마디로 그리스-독일적 풍모의 모던한 일본제국이 낡은 아시아를 역사의 뒤안길로 내모는 것이었다.”

“부활한 경복궁은 박제화된 공간일 뿐”

<상상의 아테네, 베를린·도쿄·서울>은 수도 서울의 현실을 넘어서려는 시도다. 서울역에 대한 설명도 이와 상통한다.

“경성의 가장 핵심적인 기간시설로 꼽을 수 있는 경성역이 조선신궁보다 며칠 앞서 현재의 서울역 자리에 문을 열었다. 광화문통에서 남대문통으로 이어지는 경성의 핵심 축이 완성된 것이다. 경성역이 자리 잡은 일대는 조선시대에는 도성 밖이라 그다지 인구가 많지 않던 곳으로, 용산을 중심으로 형성된 일본인 거주지가 본정 지역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교통의 거점으로 떠올랐다. 철도역사가 옛 도시의 성문에 해당한다고 볼 때 조선시대 도성 한양의 관문이던 숭례문을 옆으로 밀쳐내고 등장한 경성역은 새로운 근대도시의 관문에 다름 아니었다.”

전 교수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존재한 적도 없었던 민족의 성소를 부활시키는 방안은 그저 눈속임에 지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민족의 성소로 부활한 경복궁은 한국인의 가슴에 사무친 추억의 장소도, 미래 한국의 이정표도 아니며 기껏해야 낡은 문화민족주의를 고수하는 박제화된 공간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희망을 걸어야 할 곳은 오히려 치열한 현실의 한복판이라고 역설한다.

“포스트 식민지 도시 서울의 공간은 맥락을 결여한 전통과 국적 불명인 현대의 비대칭적 병립 그리고 양자를 매개할 근대기 유산의 실종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바 시민들의 균열된 기억이 비교적 잘 다듬어진 유적과 초고층 마천루의 뒤편에 함몰된 지층처럼 남는다. 외형적 활기에도 불구하고 서울은 구조적으로 비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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