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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책사의 한반도 운명을 건 비장의 수읽기

김관진-황병서 ‘맞짱 43시간’ 비화···남북 정상 ‘전략 문건’ 쥐고 나와

감명국 기자·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ㅣ kham@sisapress.com | 승인 2015.09.01(Tue) 08:4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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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과거를 묻지 말라고 버텼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사실상의 사과 기록을 문서에 남겨야 했다. (대북 확성기) 스피커의 스위치를 꺼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풀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부 핵심 당국자는 나흘간의 판문점 남북 고위 접촉을 이렇게 요약했다. ‘지뢰 도발’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는 남측의 입장과 대북 심리전 방송의 중단을 주장한 북측이 팽팽하게 맞서다 결국 ‘유감 표명’과 방송 중단으로 귀결됐다는 얘기다. 여기에 당국 회담과 민간 교류 재개, 이산가족 상봉 등 추가 메뉴가 올려졌다. 지난 8월22일 오후부터 25일 새벽까지 이어진 43시간 고위급 만남은 6개항의 공동보도문으로 남았다.

일단 극한으로 치달았던 한반도 긴장 국면은 완화됐다. 일각에서는 금강산 관광이 곧 재개될 것이라거나, 심지어 조만간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라는 섣부른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반면에 ‘10월 위기설’을 거론하며 한반도가 다시 냉각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라는 상반된 의견도 제기된다. 그만큼 남북 관계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그런 면에서 주목되는 두 인물은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과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이다. 이번 ‘2+2 고위급 회담’ 대표로 남북 합의를 이끌어냈다. 특히 두 사람이 주목받는 것은 각각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으로부터 전권을 부여받은 실질적인 ‘2인자’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특사’와 ‘밀사’의 자격을 모두 가진 그야말로 최고위급 대표였다는 점에서 과거 다른 회담 대표들과는 격을 달리한다. 김 실장과 황 총정치국장의 43시간 긴박한 대치 국면이 무엇보다 궁금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향후 두 사람의 관계가 한반도 정세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8월22일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오른쪽)과 북한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판문점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두 사람 옆은 홍용표 통일부장관과 김양건 당비서.© 통일부 제공

북측이 제시한 ‘48시간 시한’ 자충수 돼

이번 회담에 임한 한 관계자에 따르면, 황병서 총정치국장은 회담 초반부터 모르쇠로 나왔다.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은 목함지뢰 도발에 대해 시인과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했다. 하지만 황병서는 “북쪽에서는 잘 모르는 일”이라고 발뺌했다. 그는 “지나간 일을 들춰내서 누가 잘했다, 누구 탓이다 하는 이야기를 하기보다 앞으로 북과 남이 어떻게 나갈지를 논의하는 게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일단 부인하는 쪽으로 전략을 짜고 나온 것 같았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 실장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남측은 현장 증거 사진과 자료를 회담장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북의 소행이 분명한 만큼 시인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물쩍 넘어가면 다음 단계로 이야기가 넘어갈 수 없다며 북측을 압박했다. 국방부장관 출신인 김 실장은 “내가 전군을 지휘했던 사람”이라며 북한의 도발이 있을 경우 강력한 응징이 뒤따를 것임을 시사했다.

8월22일 오후 6시30분 시작된 접촉은 자정을 넘겨 이튿날 오전 4시15분까지 이어졌다. 양측의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자 일단 돌아갔다가 오후 3시에 다시 만나기로 했다. 예정보다 30분 늦은 오후 3시30분 다시 만난 김 실장과 황 총정치국장의 손에는 박 대통령과 김 제1위원장으로부터 각각 받은 회담 전략이 쥐어져 있었다. 앞서 10시간 가까운 1차 접촉이 탐색전이었다면, 2차 만남은 진검승부였다. 남북 최고 지도자가 최측근 실세를 내세운 ‘2+2 접촉’을 통해 간접 정상회담을 벌인 셈이다.

판문점 접촉은 북한의 요구로 성사됐다. 고위 접촉 하루 전인 8월21일 오후 4시 김양건 노동당 대남비서는 김 실장과의 만남을 희망한다는 전통문을 보내왔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2시간 후 황 총정치국장이 나오라는 수정 제안을 했다. 이튿날 오전 북한은 홍용표 통일부장관까지 참가하는 2+2 접촉을 제안했고 우리 측이 수용하면서 22일 판문점 만남이 이뤄졌다.

북한은 이번 만남을 ‘고위급 긴급 접촉’이라고 부른다. 그만큼 다급하게 필요했다는 얘기다. 접촉 전은 물론 마라톤 만남이 이뤄지는 기간에도 남북한은 긴박하게 움직였다. 한국군 부사관 2명에게 중상을 입힌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도발에 대응해 대북 심리전 방송을 재개한 우리 정부와 군 당국은 물러설 자리가 없었다. 국민들에게 혹독한 대가를 북한이 치르도록 하겠다고 공언한 상황에서 적당한 타협은 어려웠다.

북한은 더 어려운 국면에 빠졌다. 대북 심리전에 포격 도발로 수위를 올렸다. 북한군 통수권자라 할 수 있는 김정은이 노동당 중앙군사위 비상확대회의를 개최하고 준전시 사태를 선포했다. 또 48시간 내에 남측이 심리전 방송을 중단하지 않으면 무력 도발에 나설 수 있음을 위협했다. 하지만 ‘48시간 시한’ 제시는 자충수가 됐다. 우리 정부와 군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대북 확성기 방송을 계속했고 한·미 연합 전력까지 동원한 군사 압박을 이어갔다. 한·미 연합 훈련이 진행 중인 시점에 긴장 수위를 올린 것도 북한으로선 패착이었다. 70여 척의 잠수함 중 50척 정도를 출항시켜 도발 임박 징후를 드러내고 특수전부대 기습 침투 장비인 공기부양정을 전진 배치했지만 먹혀들지 않았다. ‘하늘을 나는 요새’라 불리는 B-52 전폭기와 항공모함을 한반도에 배치하는 메가톤급 대응 방안이 검토되기 시작하면서 북한의 움직임은 빛이 바랬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전용기 안에서 시찰에 동행한 황병서 총정치국장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다. © 연합뉴스

“우리가 어떻게 해주면 되겠느냐” 한 풀 꺾여

이런 장외 경기가 벌어지는 가운데 열린 판문점 2차 접촉은 분위기가 달라졌다. 버티기로 일관하다 판을 깨면 대북 심리전 방송 중단이란 최종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걸 깨달은 황병서 총정치국장과 김양건 비서는 ‘유감 표명’의 수위 조절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우리 측에 “우리가 어떻게 시인·사과해야 한다는 것이냐. 어떻게 해주면 되겠느냐”라며 한풀 꺾인 모습을 보였다. 8월24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현재 합의 마무리를 위해 계속 논의 중”이라고 언급한 건 이런 분위기를 염두에 둔 것이다.

사실 박 대통령은 청와대 집무실에서 판문점 회담장을 지켜볼 수 있었다. 평화의 집에 설치된 장비로 영상과 오디오가 생생하게 중계되기 때문이다. 서울 삼청동 남북회담본부 상황실에서 당국자들이 모니터링하며 전략을 짜기 위한 것이지만, 청와대에서도 동시에 지켜볼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박 대통령은 김 실장으로부터 회담 상황 변화에 대한 주요 결심을 요청하는 청훈을 받고, 구체적인 전략을 지시하는 훈령을 내렸다.

김정은 제1위원장도 황 총정치국장과 남측 대표의 발언이나 회담 장면을 지켜볼 수 있었다. 남북 합의에 따른 중계 제공 관례 때문이다. 회담장 옆 남북 양측 대기실에는 서울·평양과 각각 통화할 수 있는 직통전화와 팩스가 놓여 있다. 각기 자신들만이 풀 수 있는 암호 장비를 갖춘 비화(秘話·비밀통화)기를 쓰기 때문에 도청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황 총정치국장의 경우 김정은에게 직접 보고하거나 통화할 때는 판문점 북측 지역으로 넘어갔다 오는 등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새벽에 우리 측에 “차량을 대기시켜달라”고 하곤 했다는 것이다.

협상 막판까지 양측은 숨 가쁜 줄다리기를 벌였다고 한다. 특히 양측 최고 지도자가 지대한 관심을 갖고 직접 챙긴 협상이란 점에서 실제 협의하는 과정보다 서울과 평양의 훈령을 기다리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을 쏟았다고 한다. 이산가족 상봉과 교류 문제 등은 일찌감치 공동보도문에 합의해 올려놓은 채, 제2항에 담긴 유감 표명의 문구를 둘러싼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는 게 회담 관계자의 귀띔이다. ‘북측’이란 주체를 담고 ‘유감 표명’이란 표현을 쓴 문안이 서울·평양에서 동시에 오케이 사인이 나자 회담장은 부산해졌다. 마침내 김 실장과 황 총정치국장은 웃음을 띠며 손을 마주 잡았다. 판문점 평화의 집 2층 회담장 벽시계는 25일 새벽 0시5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첫 접촉부터 무려 3일 6시간 25분 만에 고위 접촉이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남북 공동합의문을 통해 우리 정부는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모든 확성기 방송을 8월25일 12시부터 중단하기로 했다.© 연합뉴스

‘2인자’ 황병서 위에 조직지도부 있어

이번 고위급 회담을 ‘준정상회담’으로까지 부르는 것은 김관진 실장과 황병서 총정치국장의 무게감 때문이다. 당초 북한이 홍용표 장관 대신 김 실장을 요구한 것도, 그리고 이에 대해 우리 측이 황 총정치국장을 꼭 집어서 요구한 것도 각각 두 사람이 남북 정상과 그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대화 채널이 계속 유지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 당국자는 8월25일 “이번 2+2 회담은 앞으로도 필요하면 또 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채널을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을 북측에 알린 셈이다. 반면 북한의 기류는 명확하지 않다. ‘긴급 접촉’이라는 표현을 쓰는 등 ‘일회성’에 무게감을 두는 듯한 분위기다.

일부 북한 문제 전문가들도 북한 체제, 특히 지금 김정은 체제의 특수성을 들며 황 총정치국장이 언제까지 김 실장의 파트너 역할을 할지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소장은 “황병서가 현재 명실상부한 북한의 2인자임은 분명하지만, 김정은은 절대 한 명에게 권력을 집중시키지 않는다. 지금 황병서도 조직지도부 등으로부터 견제와 감시를 받고 있다.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처지”라고 밝혔다. 그 근거로 이 소장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째, 숙청 정치를 이어가는 김정은의 통치 스타일로 볼 때 황병서 역시 버림을 받는 순간 언제든지 장성택이나 현영철처럼 숙청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북한의 실질적 핵심권력 부서는 조직지도부라는 것이다. 이 소장은 “조직지도부에서도 군 담당 제1부부장인 김경옥이 사실상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의 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중앙당 간부들의 사생활을 감시하는 임무와 인사권을 갖고 있는 본부 담당 제1부부장인 조연준이 실질적으로는 황병서를 감시하는 라인에 있다”는 것이다. 셋째, 김정은 시대 군이 분권화되면서 총정치국의 실권이 총참모부나 인민무력부로 넘어가는 등 과거보다 오히려 약해졌다는 점을 들었다.

북한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최근 내부 첩보에 의하면 황병서에게 자식으로 남매가 있는데, 40대 초반 아들이 해외 무역회사로 전근하는 문제를 아버지에게 문의하자 황병서가 반대했다고 한다. 황병서는 아들에게 ‘네가 무역회사에서 외화벌이를 하는 순간 우리 집은 멸망한다’며 아들의 간부 사업을 적극 말렸다고 한다”고 전했다. 황 총정치국장 자신도 당 조직지도부 출신이다. 자신이 과거 조직지도부 군 담당 간부로 있을 때 핵심 고위급 간부들의 자식이나 친척들이 해외에서 돈벌이를 하면서 저지른 불경죄가 숙청 대상이 됐다는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관진-황병서 채널 당분간 지속될 것”

8월28일 김정은이 당 중앙군사위 회의를 소집해 일부 위원들을 교체한 것을 두고, 이번 사태의 책임을 묻는 ‘경질설’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기도 했다. 황병서 총정치국장의 위상이 흔들리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회담 전 북한이 준전시 사태를 선포할 때 당 중앙군사위가 열렸다. 이번에는 회담 결과를 평가하고 보고하는 그런 자리로 판단되며, 일부 해임도 인사 교체 시기가 되었기 때문에 한 것이다. 실제 부위원장을 맡게 되는 인민무력부장이 현영철에서 박영식으로 교체되지 않았나”라고 반문하며 “북한은 이번 회담 결과를 결코 실패했다고 보지 않는다. 자신들의 승리라고 선전하고 있다. 그런데 회담과 관련해 질책성 인사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당분간 ‘김관진-황병서’ 대화 채널은 유지될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5·24 조치 해제 문제도 그렇고, 향후 논의될 의제들은 남북 정상들이 동의하고 지침을 내려줘야 실무진에서 움직일 수 있는 그런 의제들이다. 그런 중차대한 사안에 대한 논의는 장차관급이나 국장급 등 실무자들로는 어렵다. 솔직히 말해 홍용표 장관과 김양건 비서만으로는 어렵다고 본다. 양쪽 정상의 의사를 가장 직접적으로 반영해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 현재로선 김관진 실장과 황병서 총정치국장밖에 없다. 당분간은 둘 간의 대화 채널이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10월 위기설’에 대해서도 정영태 연구위원은 “노동당 창건일인 10월10일을 기점으로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시도할 가능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이를 비정상적인 상태로 볼 수 있느냐는 것인데, 지난 지뢰 도발과 포 사격처럼 정전협정 위반에 해당하는 비무장지대에서의 도발로 우리 군과 민간인에 직접 피해를 주는 사태와 미사일 실험은 분리해서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수위로 본다면 위기설을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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