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십자, 경남혈액원 성추행 사건 특별감사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5.09.09 15:41
  • 호수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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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도발 속 야유회 이어 성추행, 혈액 은폐까지…모럴해저드 극에 달한 적십자사 현주소

 

 

시사저널은 8월21일 대한적십자사(이하 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직원들이 단체로 야유회를 다녀온 사실을 단독 보도했다. 북한의 선제 포격 도발로 남북 간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던 시기였다. 정부와 군은 북한의 추가 도발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적십자사 역시 경기지사를 통해 긴급 대피령이 내려진 파주시와 연천군 주민들에게 긴급 구호품을 전달했다. 하지만 혈액관리본부 직원 70여 명은 본부장 지휘하에 관광버스에 나눠 타고 강원도 영월로 야유회를 떠났다. 최악의 경우 혈액 공급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다<시사저널 1349호 참조>.

적십자사 측은 “메르스 사태로 이미 한 번 야유회가 취소됐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면서도 “이전에 혈액 수급 상황을 모두 모니터링하고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해명했다. 해외출장 중이던 김성주 총재도 시사저널 보도 이후 “야유회가 아니라 사업계획 수립을 위한 MT였다”고 밝혔다.

대한적십자사가 직원 성추행과 혈액 은폐 등의 내부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사진은 서울 중구 소파로에 위치한 대한적십자사 본사. ⓒ 시사저널 최준필

하지만 적십자사가 최근 혈액관리본부에 기관경고를 내린 사실이 추가로 확인됐다. 익명을 요구한 적십자사의 한 관계자는 “시사저널 보도 이후 감사실에서 서둘러 경과 조사를 벌였다”며 “야유회의 시기나 부적절성을 들어 혈액관리본부에 기관경고 징계를 내린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총재의 주장대로 사업계획 수립을 위한 MT였다면 기관경고까지 내렸겠느냐는 것이 적십자사 안팎의 시각이다. 기자가 만난 적십자사의 또 다른 관계자는 “직원들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수준”이라며 “남과 북의 대치 상황에서 혈액관리본부가 야유회를 떠난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적십자사는 8월 말부터 경남혈액원을 상대로 특별감사를 진행 중이다. 이 혈액원의 간부 A씨가 헌혈버스 안에서 간호사 엉덩이를 더듬었다는 내부 민원이 접수됐기 때문이다. 적십자사 측은 “감사실 조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언급하기가 곤란하다”고 말했다. 적십자사의 한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성희롱이나 성추행 관련 교육을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다”며 “감사 결과 민원 내용이 사실로 드러나면 엄격하게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북한 도발 속 야유회 혈액관리본부 기관경고

적십자사 내부에서 발생한 성희롱이나 성추행 관련 사고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적십자사 내부의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전북혈액원 소속 간부 B씨는 여직원들이 있는 곳에서 여러 차례 성희롱적 발언을 했다. 참다못한 직원이 올해 1월 민원을 제기했고, 감사실 조사 결과 사실로 드러났다. 적십자사는 2월 B씨에 대해 품위유지 의무 위반 등으로 정직 3개월의 중징계 처분을 내렸다.

을지연습 기간인 8월19일 열린 사랑의 헌혈 행사에서 한 시민이 헌혈하고 있다. ⓒ 연합뉴스

B씨는 2003년 5월에도 품위유지 의무 위반으로 감봉 3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심지어 올 7월에는 국민의 헌혈로 받은 혈액을 잘못 관리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징계를 받았음에도 9월1일 서울의 한 혈액원으로 전보 조치됐다. 적십자사 내부에서는 솜방망이 징계가 직원들의 모럴해저드를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적십자사에 과연 시스템이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거친 말까지 나올 정도다.

취재 과정에서 적십자사가 조직적으로 혈액 분실을 은폐한 사실도 드러났다. 2015년 7월 감사실이 작성한 ‘혈액 분실·은폐 의혹 조사 결과 보고’ 문건에 따르면, 전북혈액원에서만 2012년부터 3년 6개월 동안 92단위(팩)가 폐기됐지만, 근거가 있는 것은 24단위에 불과했다. 나머지 64단위는 근거 자료가 전무했다. 이 중에는 고가의 혈액제제인 A-PLT(혈소판 성분 채혈)나 F-RBC(백혈구 여과 제거 적혈구)도 포함돼 있었다. 한 직원의 경우 7개월 동안 혈액 분실 사실을 몰랐다가 뒤늦게 폐기 처분하다가 들통이 나기도 했다.

적십자사 측은 잇따른 문제가 내부 감사에서 나온 것임을 강조한다. 적십자사의 한 관계자는 “김성주 총재 취임 이후 내부 자정 노력 차원에서 감사 기능을 강화했다. 그 결과가 전북혈액원의 성희롱이나 혈액 은폐 문제였다”며 “이런 노력이 외부에는 모럴해저드로 비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내부 민원을 통해 성희롱이나 혈액 은폐 의혹이 제기됐고, 감사를 통해 민원 내용이 사실로 드러났다. 이후 비슷한 문제에 대한 전수조사에 착수했고, 그 결과 추가로 성희롱이나 부실한 혈액 관리 사실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자가 만난 적십자사 내부 관계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적십자사는 최근 전북지사 사무처장 박 아무개씨와 전북혈액원장 이 아무개씨, 중앙검사센터 총무팀장 정 아무개씨 등 고위 간부 7명을 무더기로 징계 조치했다. 적십자사 임직원 행동강령에 따르면, 임직원은 직무 관련자로부터 통상적인 관례의 범위에서 제공되는 소액(3만원 한도)의 선물을 제외한 금품 등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규정돼 있다. 2010년부터 설과 추석 때 간부에게 전달된 고가의 명절 선물은 조합비로 집행됐다. 심지어 취임 축하나 경조사 관련 화환도 조합비에서 나왔다. 그럼에도 관련 부서는 이 사실을 숨겨줬을 뿐 아니라, 노동조합에 추가로 비용까지 보전해줬다.

적십자 측 “내부 기강 확립해가는 과정”

문제는 이들이 7월1일 정기 인사에서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아무개 사무처장의 경우 3급에서 2급으로 승진하기도 했다. 적십자사 내부에서는 “봐주기 감사가 아니냐”는 뒷말이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적십자사의 한 관계자는 “내부 게시판을 통해 문제가 처음 제기된 것이 올해 3월”이라며 “정기 인사에 감사 결과를 반영하지 못하도록 감사실이 늑장 조사를 한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적십자사 내부 게시판에는 조합비를 고위 간부에게 집행했다거나, 노조를 지원한 의혹이 2015년 3월부터 최근까지 게재돼 있다.

이와 관련해 적십자사 측은 “감사 프로세스에는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적십자사의 한 관계자는 “내부 게시판을 통해 관련 문제가 제기된 것은 3월이 맞지만, 공식적으로 감사 요청이 들어온 것은 6월”이라며 “감사 프로세스에 문제가 제기돼 권익위로부터 조사를 받았지만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김성주 대한적십자사 총재 ⓒ 시사저널 임준선
적십자사의 내부 문제가 잇달아 외부에 노출되면서 김성주 총재도 고민이 많다. 김 총재는 2014년 10월 적십자사 총재에 취임했다. 취임 이후 그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총재실을 없앤 것이었다. 기존 총재들이 사용하던 사무실을 대회의실로 바꾸었다. 커다란 책상과 소파가 있던 자리는 20명 정도 앉을 수 있는 회의실 탁자로 바뀌었다.

구석에 있는 조그만 방을 현재 집무실로 사용하고 있지만, 이 방 역시도 회의실 탁자와 의자로 교체했다. 김 총재는 개인 책상이나 PC도 없이 태블릿PC를 통해 업무를 보고 있다. 적십자사의 한 관계자는 “보고서를 들고 다니면 야단을 칠 정도로 업무 자체를 간소화했다”고 말했다.

내부 감사 기능도 대폭 강화했다. 우선 감사실장이 외부에서 영입한 인사다. 감사 과정에서 내부의 입김이나 인정이 작용할 소지를 미연에 차단한 것이다. 감사실 조직도 감사팀과 청렴윤리팀으로 이원화시켜 내부 기강 확립에 나섰다. 김 총재는 논란을 피하기 위해 해외출장 비용도 모두 사비로 처리하고 있다. 비상임인 적십자 총재의 해외출장 시 관행적으로 지급하던 거마비마저 없앤 것이다. 적십자사 관계자는 “문제가 생기면 일벌백계한다는 것이 김 총재의 생각”이라며 “그동안 관행적으로 이뤄져왔던 것도 일절 허락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적십자사 내부의 모럴해저드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김 총재 역시 해외출장으로 구설에 올랐다. 김 총재는 8월6일 출국해 8월29일 귀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8월21일은 북한의 포격 도발로 남북 간에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하던 시기였다. 적십자사 역시 전 직원에게 비상대기를 지시했다. 하지만 이를 총괄하는 김 총재는 해외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남과 북은 8월25일 고위급 접촉을 통해 이산가족 상봉 등 5가지 항목에 합의했다. 이후 남측이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 실무 접촉을 제안했을 때도 김 총재는 해외에서 돌아오지 않은 상태여서 논란이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적십자사 측은 “해외출장 중이었지만 김 총재가 사무총장을 통해 핫라인으로 보고받았다. 시차로 인해 새벽에도 전화통화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구체적인 성과를 밝힐 수는 없지만 해외의 여러 지도자를 만나 북한 관련 공조를 협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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