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프라이머리는 본격 대권 가도의 첫 단계”
  • 양정대│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5.09.09 15:58
  • 호수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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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생명 걸겠다”는 김무성 대표, 오픈프라이머리에 집착하는 내막

“결국 최종 목표야 당연히 대권이지. 그게 아니면 무엇 때문에 정치생명을 걸겠다는 얘기까지 하겠나? 정치 개혁이니 정치 발전이니 하는 거야 누구나 할 수 있는 당연한 얘기 아닌가. ‘무대’(김무성 대표) 입장에선 내년 총선에서 제1당 위치만 유지할 수 있다면 대선 가도가 열릴 테고, 이후 당내 경쟁에선 현역의원들의 조직적 뒷받침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거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최근 들어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 실시에 대한 의지를 거듭 강조하고 나섰다. ‘친박계’ 핵심 의원들의 잇단 비판에 가급적 정면 대응을 삼가던 그가 공개석상에서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다짐하고 나선 것이다. 김 대표와 가까운 한 영남권 중진 의원에게 ‘해설’을 부탁하자, 그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대권 얘기를 꺼냈다.

9월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연설을 끝내고 동료 의원들과 악수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명분과 실리 다 챙기는 양수겸장 카드”

오픈프라이머리가 정치권의 화두로 등장한 건 지난해 7·14 새누리당 전당대회를 전후해서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17대 국회 때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새정치민주연합의 전신)이 이를 추진하려다 좌절된 적이 있긴 했다.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소속이었던 김무성 대표의 개인적인 입장이 어땠는지는 확인된 바 없지만, 한나라당이 오픈프라이머리를 적극 찬성하지 않았던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김 대표는 지난해 전당대회 경선 중 친박계 좌장 격인 서청원 후보와 맞붙는 과정 내내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드리겠다”는 명분을 앞세우며 오픈프라이머리를 자신의 대표 공약으로 제시했고, 경선에서 무난히 승리했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한 수도권 재선 의원은 “‘박근혜 키즈’로 불리는 상당수 초선 의원들이 김 대표 쪽에 줄을 서면서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고 말했다. 한 수도권 중진 의원은 “현역 의원들의 가장 큰 고민이 뭔 줄 아나. 바로 차기 총선에서 공천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당에는 심각한 ‘공천 트라우마’가 있다. 18대 때는 ‘친박 학살’이 있었고, 19대 때는 ‘보복 공천’이 있었다. 오픈프라이머리가 시행되면 인지도나 조직력에서 앞서 있는 현역 의원들이 절대 유리하다. 의원들 입장에선 김 대표가 가려운 곳을 긁어준 셈이다.”

국민들이 정치권을 불신하는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계파 정치, 패거리 정치다. 정치인들이 입으로는 주권재민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권력자의 눈치만 보고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패거리를 형성하는 데 대한 염증이 크다. “오픈프라이머리가 시행되면 대통령이나 당 대표가 자기 입맛대로 공천하는 걸 막을 수 있다”는 김 대표의 투박한 논리가 국민들에게는 정치·정당 개혁의 요체로 받아들여질 만한 상황인 셈이다.

결과적으로 김 대표는 ‘오픈프라이머리 전도사’를 자임함으로써 국민들에게는 정치 개혁에 앞장선다는 명분을 각인시켰고, 당내 정치 판도를 일정하게 좌우하는 현역 의원들의 지지도 끌어내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김 대표의 한 측근 의원은 “솔직히 말해 오픈프라이머리가 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설령 좌절되더라도 김 대표로서는 잃을 게 없는, 한마디로 말해 ‘양수겸장 카드’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무성 대표가 오픈프라이머리를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내세워 상당한 정치적 효과를 얻은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오픈프라이머리가 실제로 시행될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여권 내부의 역학관계가 녹록하지 않다. ‘현실 권력’인 청와대와 친박계의 거부감이 상당한 것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내년 총선에서의 공천권 싸움이 자리 잡고 있다. 전략통으로 꼽히는 한 친박계 핵심 의원은 “김 대표가 공천권을 내려놓겠다고 하는 건 ‘청와대도 손 떼라’는 메시지”라며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가 한참 남은 상황에서 그게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박 대통령의 임기 후반과 퇴임 이후까지 감안할 때 내년 총선 공천을 통해 ‘박근혜 키즈 시즌2’가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비박계 결집시키고, 친박계 갈라치기

실제로 친박계 핵심 인사들은 이구동성으로 오픈프라이머리의 비현실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청와대 정무특보를 겸하고 있는 김재원 의원은 “너무 늦었다”고 잘라 말했고, 홍문종 의원은 “야당이 반대하는데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느냐”고 했다. 역선택 가능성과 비용 문제 등을 거론하는 목소리도 잦다. 역시 정무특보 직함을 갖고 있는 윤상현 의원은 아예 김 대표를 향해 “빠른 시일 내에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야당의 반대도 김 대표가 넘어야 할 산이다. 새정치연합은 자신들이 여당이었을 때와는 달리 위헌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오픈프라이머리의 법제화에 부정적이다. 야당 입장에선 내후년 대선까지를 내다보고 전략 공천을 적극 활용한 ‘물갈이’를 통해 새 진용 갖추기에 주력할 수밖에 없는 탓이다.

김 대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단독으로라도 반드시 시행하겠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야당의 동의하에 선거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총선 지역구별로 선거인명부를 제공받지 못해 오픈프라이머리를 시행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치권에서 닳고 닳은 김 대표가 이를 모를 리 없다. 그가 최근 오픈프라이머리를 ‘국민공천제’로 바꿔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한 ‘비박계’ 의원은 “현역 의원들에게 보내는 ‘안심하라’는 메시지”라고 해석했다. 김 대표 주변에서 여론조사 반영 비율을 대거 높이거나 아예 100% 여론조사 경선을 실시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들 방안은 오픈프라이머리보다 더 현역 의원들에게 유리하다.

김 대표의 메시지는 사실 친박계를 향해서도 분명하게 전달되는 듯하다. 핵심 당직을 맡고 있는 한 친박계 의원은 “몇몇 의원들이 마치 청와대가 오픈프라이머리를 반대하는 것처럼 얘기하는데 막말로 박 대통령한테 물어봤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친박계 상당수가 당 안팎에서 물갈이 대상으로 거론되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이 김 대표의 오픈프라이머리에 공감하는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김 대표가 오픈프라이머리 카드를 꺼내든 건 비박계를 결집시키면서 친박계 일부까지 흡수해서 내년 총선 이후 본격화할 대권 경쟁을 준비하겠다는 의미”라며 “김 대표는 오픈프라이머리를 ‘강조’하는 것이지 꼭 ‘실천’하겠다는 건 아니라고 보는 게 정확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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