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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거주춤하는 메르켈 탓에 ‘애간장’

독일행 위해 헝가리 몰려든 난민들로 대혼란 유럽 국가들 ‘더블린 조약’ 해석 놓고 오락가락

강성운│독일 통신원 ㅣ . | 승인 2015.09.09(Wed) 16:41:11 | 13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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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1일 오전,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켈레티 역이 갑자기 수선스러워졌다. 허리춤에 곤봉을 찬 경찰들이 역 안에 있던 난민들을 몰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열차 운행도 모두 중단됐다. 역사(驛舍)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영문을 모른 채 역 밖으로 밀려난 난민들은 거세게 항의했다. “기차표도 있는데 왜 열차에 못 타게 하나? 이럴 거면 차표는 왜 팔았나?” 헝가리 정부가 “수용소가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며 난민들을 방치한 이후 이들은 부다페스트 동역(東驛)인 켈레티 역에서 노숙을 했다.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 에리트레아 등 출신 국가는 각기 달랐지만 이들의 목적지는 하나, 독일이었다.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의 켈레티 역에서 9월2일(현지 시각) 난민들이 독일행 기차 탑승을 허용하라며 시위하고 있다. ⓒ 연합뉴스

독일이 희망의 종착역이 된 것은 단지 경제 사정이 좋아서만은 아니다. 일주일 전인 8월24일 독일 이민청이 “시리아 난민은 최초 도착 국가를 묻지 않고 독일에 머무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내부 방침을 정한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 발언은 난민은 반드시 최초 도착 국가에 머무르면서 망명 심사를 받아야 한다고 정한 ‘더블린 조약’을 사실상 무력화시킨 것으로 해석되었다. 그 전까지 독일의 메르켈 정부도 난민 문제는 더블린 조약에 따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리스와 이탈리아, 헝가리 등 난민 부담을 떠안은 소수의 유럽연합(EU) 국경 국가들이 더블린 조약 폐기를 주장할 때도 코웃음을 쳤다. 2년 전 이탈리아 당국이 항의의 표시로 리비아 난민들을 독일로 보냈을 때 독일 정부는 이들을 모두 되돌려 보내고 “원칙을 지키라”며 강력하게 항의한 바 있다.

난민들, 켈레티 역 앞에서 “독일” 외치며 시위

하지만 지난 8월27일 오스트리아의 고속도로에 버려진 한 냉동차에서 시리아 난민 71명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유럽 내륙 국가들의 여론이 크게 달라졌다. 난민 문제를 더는 방관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된 것이다. 독일 이민청의 내부 방침이 보도된 이후 켈레티 역에서 노숙을 하던 난민들 사이에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독일이 시리아를 필두로 다른 나라 난민도 다 받아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심지어 독일과 오스트리아 정부가 난민을 수송하기 위한 특별 열차를 보낼 것이라는 말까지 들려왔다.

플랫폼에 걸린 빗장이 사라진 12시간 동안 꿈은 잠시 현실이 되었다. 8월31일 아침 헝가리 경찰이 갑자기 일제히 자취를 감추면서 난민들이 열차에 오를 수 있게 된 것이다. 국경역인 헤게스할롬에서 멈춰 선 열차도 있었지만, 반나절 만에 3650명의 난민이 기차로 오스트리아에 도착했다. 이들 대다수는 독일행 열차로 갈아탔고, 이날 저녁 정말로 800여 명의 난민이 탄 열차가 뮌헨 역 플랫폼에 들어섰다. 바이에른 주 정부도 간단한 등록 절차를 거친 다음 이들을 주 내의 시설로 보냈다.

그러나 불과 하루 만인 다음 날 아침, 꿈은 거짓말처럼 깨졌다. 난민들은 다시 ‘환승 구역’이라 불리는 켈레티 역 지하도로 밀려났다. 메르켈 총리의 발언 이후 지상에 따로 머무르던 시리아인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경찰은 “유효한 여권과 비자가 없으면 다른 나라로 이동할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열차가 다시 운행을 시작했고, 선글라스를 끼고 배낭을 멘 일반 여행객들이 열차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분노와 허탈감에 싸인 난민들은 역 앞에서 “독일” “독일”을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급기야 9월1일 저녁에는 메르켈 독일 총리가 진화에 나섰다. 그는 “솔직히 독일이 (헝가리에) 도착한 시리아 난민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더블린 조약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해명했다. 불과 하루 전인 8월31일의 난민 문제에 대한 메르켈과 독일 집권당 기독민주연합(CDU)의 태도와는 달랐다. 전날 연례 기자회견에서 메르켈은 “난민 문제는 국가적 과제”이며 “독일의 철저함도 좋지만 지금은 독일적 융통성을 발휘할 때다. 망명 절차를 신속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날 메르켈이 유례없이 명확하고 단호한 어법을 사용해 적극적 해결 의지를 보였기 때문에 국내외 언론으로부터 “드디어 독일이 나섰다”는 칭찬까지 받았다.

비록 하루 만에 태도를 바꿔 빈축을 사긴 했지만, 메르켈은 은근슬쩍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었다. “더블린 조약이 실제로는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을 매일 거듭 재확인한다”고 덧붙였기 때문이다. 이 말은 난민을 독일까지 보낸 헝가리와 오스트리아 정부에 책임이 있다는 비난으로도, 상황이 정 이러니 어쩔 수 없이 독일에서 받아들이겠다는 말로도 풀이될 수 있다. ‘슈피겔 온라인’은 이미 그리스나 헝가리 등 경제 위기 국가를 거쳐 독일로 온 난민들은 암묵적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유럽 ‘연대’의 이상에 이미 심각한 흠집 생겨

한편 이번 해프닝으로 헝가리의 반(反)인권적 난민정책은 다시 한번 도마에 오르게 되었다. 헝가리는 지난 2011년 난민들을 감옥에 집어넣고 간질약인 리보트릴을 먹여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로부터 경고를 받은 바 있다. 리보트릴은 자살 충동을 일으키는 심각한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이나 중증 질환에 사용할 경우, 좀 더 안전한 약물을 사용할 수 없거나 좀 더 안전한 약물이 효과가 없을 경우’에 한해서만 이 약을 사용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슈피겔 온라인’은 이 같은 가혹행위를 하는 이유가 “망명 신청자들에게 겁을 줘서 다른 나라로 가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난민의 인권을 인질로 삼는 빅토리 오르반 헝가리 총리의 정책은 씁쓸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지난 7월에는 독일 법원이 “최초 입국 국가인 헝가리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이라크 난민의 손을 들어주었다. 폭격으로 한쪽 눈과 다리를 잃은 이 남자는 헝가리에서 의료 조치를 전혀 받지 못했고, 관청에 갈 때는 다른 망명자 감옥 수감자들과 함께 포승줄에 묶여 호송되는 등 심각한 수준의 인격 침해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독일 이민국은 이 남자를 최초 입국 국가인 헝가리로 돌려보내려고 했지만, 법원은 헝가리 망명 절차에 시스템적 결함이 있고 수용 상황이 열악하다는 이유로 독일 체류를 허락했다.

프랑스의 진보 성향 일간지 ‘르 몽드’는 지난 8월30일자 신문에서 헝가리 난민 사태는 결국 전체 유럽이 아직 연대의 가치를 공유하지 않아 발생한 일이라며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헝가리가 EU 가입 당시 ‘연대’의 이름으로 결속기금 수천억 유로를 받았지만 연대는 일방통행이 아니며, 유럽은 시험대에 올라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스 사태를 거치면서 유럽 연대라는 이상에는 이미 심각한 흠집이 생겼다. 난민 사태가 과연 훼손된 연대의 가치를 되살리는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까. 9월14일 열릴 EU 내무·법무장관 특별대책회의를 통해 그 여부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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