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부적응이 ‘분노’ 키웠다
  • 정락인│객원기자 (.)
  • 승인 2015.09.16 19:33
  • 호수 135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자아실현 통해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해야…“게임하면 생명경시 풍조 자동 숙달”

‘부탄가스 폭발 사건’을 일으킨 이 아무개군(15)이 구속됐다.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주장도 있었으나 “재범 우려가 크다”는 데 무게가 실렸다. 이군은 지난 9월1일 오후 1시50분쯤 서울시 양천구 목동 소재 한 중학교 3학년 교실에 몰래 들어가 현금 7만3000원 등을 훔쳤다. 그러고는 교실에 있던 옷과 책 등을 찢어 불을 피운 다음 그 위에 부탄가스 2개를 올려놓았다. 이 중 1개가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폭발하면서 교실 창문과 출입문, 벽 일부가 부서져 복도 쪽으로 무너져 내렸다.

이군의 범행 당시 해당 학급 학생들은 운동장에서 체육수업을 받고 있어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이군은 범행 장면을 휴대전화 카메라를 이용해 촬영했고, 3시간 후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유튜브에 ‘??중 테러’라는 제목으로 2개의 파일을 게시했다. 이군이 올린 동영상에는 사고 현장을 생중계하듯 묘사하는 내용이 담겨 충격을 줬다. 이군은 범행 당일 밤 10시30분쯤 서울 양천경찰서 형사들에 의해 ‘현주건조물방화’ 등의 혐의로 긴급 체포됐다.

9월1일 서울 양천구 한 중학교 교실에서 소형 부탄가스를 터뜨리고 도주한 이 아무개군이 경찰서로 압송되고 있다. ⓒ 연합뉴스

이군의 범행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서울시 서초구 소재 중학교에 다니면서도 비슷한 범행을 하려다 미수에 그친 적이 있다. 지난 6월26일 이 학교 화장실에 불을 지르려다 교사에게 발각돼 실패했다. 학교 측은 이군을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전학시키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이군은 경찰 조사에서 “분무기와 호스, 물통으로 직접 만든 ‘화염방사기’를 사용해 불을 지르려 했다”며 사실을 인정했다.

평범한 학생, 전학 후 변해

이군은 왜 이처럼 대담하고 위험한 범행을 저지른 것일까. 그는 경찰에서 “새 학교 친구들이 소심한 성격의 나를 잘 받아주지 않아 혼내주고 싶은 마음에서 범행을 생각하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이에 대해 이군이 다녔던 목동의 중학교 교사들은 의아해했다. 학교에 잘 적응하고 성적이 상위권인 평범하고 조용한 학생으로 기억하고 있어서다. 친구들과도 원만하게 잘 어울렸고, 왕따를 당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이군이 삐뚤어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3월 가족이 이사하면서 서초구의 중학교로 전학을 간 후부터다. 이군은 전학 간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이는 “스트레스와 우울증이 생겼다”고 말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교우 관계도 원만치 않았다. 학교와 친구들의 무관심으로 ‘투명인간’이 돼 있었다.

지난 5월쯤 이군은 학교 선생님에게 상담을 요청한 적이 있다. 그는 “친구들을 찌르고 싶은 욕구가 자꾸 생긴다”고 말했고, 학교에서는 전문적인 상담을 실시했다. 이군 스스로 제어하기 힘들다고 판단하고 상담을 통해 치료를 받고 싶었던 것이다. 이군은 병원 정신과에서 통원 치료를 받던 중에 ‘화장실 방화’를 저질렀다.

학교 측은 이군이 계속 학교를 다닐 경우 위험하다고 판단해 부모를 불러 대안학교 전학을 권유했다. 이군이 대안학교에 등교하기로 한 첫날 자신이 2013년까지 다녔던 목동의 중학교를 찾아가 부탄가스를 터뜨렸던 것이다. 이군의 원래 범행 타깃은 목동의 중학교가 아니었다. 전학 간 서초구의 중학교에서 범행을 준비했으나 그 학교의 경우 보안이 철저해 대신 목동의 중학교를 선택한 것이다.

이군의 내면에는 친구들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자라고 있었다. 이 분노를 조절하지 못한 것이 결국 범행으로 이어졌다. “친구들을 찌르고 혼내주고 싶었다”는 것을 보면 단순히 불을 내는 데 만족하지 않고, 위해를 가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군의 공격성은 대상을 가리지 않고 잔인함까지 내재하고 있었다. 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언제든 잔인한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군 범행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불’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목동의 중학교에서는 부탄가스 2개를 터뜨리려고 했다. 부탄가스 1개는 TNT로 따지면 2㎏ 정도 된다. 만약 2개가 터졌으면 교실 창문 유리창이 거의 다 깨지고 화재가 발생해 교실이 전소될 수 있는 위력을 갖고 있다. 서초구의 중학교에서는 분무기에 휘발유를 넣어 불을 붙일 수 있는 ‘화염방사기’를 직접 만들었다.

부탄가스 폭발 사고가 발생해 출입문과 창문이 부서진 교실. ⓒ 연합뉴스

“조승희처럼 테러 기록 남기고 싶다”

이것을 이용해 불을 붙이려다가 분무기 고장과 교사들의 제지로 범행에 실패했다.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던 아찔한 상황이다. 이군은 단순히 분노를 표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범행을 쉽고 빠르게 하기 위한 도구까지 마련했다. ‘화염방사기’ 같은 범행 도구를 직접 제작한 것에서 알 수 있듯 치밀하고 계획적이었다.

이군은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기도 했다. 경찰에 쫓기는 과정에서 한 언론사와 인터뷰를 하면서 “경찰이 나를 잡을 수 있는지 시험해보고 싶다”거나 “조승희처럼 테러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 도주 과정에서 9시간 동안 경찰을 피해 다니며 자신의 행적을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 공개하기도 했다. ‘죄의식’보다는 ‘과시욕’이 더 컸던 것으로 보인다.

범행 과정을 촬영해 유튜브에 공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자신의 범행을 ‘테러’로 표현한 것으로 미루어 테러범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갖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8년 전 미국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테러범 ‘조승희’를 언급한 데서 이군의 심리를 엿볼 수 있다.

이군이 이런 성향을 갖게 된 데는 게임의 영향도 적지 않았다. 이군은 평소 ‘아포칼립소 좀비 게임’을 즐겨 했다고 진술했다. 죽였다 다시 살리기를 반복하는 좀비 게임인데, 이것으로 인해 사람을 죽이고 건물을 파괴하는 것에 무감각해진 측면이 있다. 범죄심리 전문가들은 이번 범행이 평소 학교에 대한 피해의식과 적개심이 부적절하게 나타난 결과라는 진단을 내놓았다.

김복준 한국범죄학연구소 연구위원은 “이군은 SNS에 중독됐다. 좀비 게임 같은 것을 많이 했다는데, 게임을 하다 보면 생명경시 풍조는 자동으로 숙달된다. 잔인하게 죽이는 방법에 대한 죄책감이 전혀 없다. 게임과 현실을 혼동하는 것을 보면 중증 이상은 넘은 것 같다. 보통 중간 정도를 넘어가면 현실과 공상 세계를 구분하지 못한다. 또 SNS에 올리면서 소영웅주의에 빠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범행 후 이군에게서 ‘죄책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심지어 자신의 범행과 도주 과정을 즐기는 듯한 인상을 남겼다. 경찰에 체포되는 과정에서는 태연하게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었다.

전학 학생 방기한 학교 책임 크다

이 사건이 외부로 알려진 후 언론은 엄청난 테러가 일어난 것처럼 야단법석을 떨었다. 어린 청소년이 왜 이런 범행을 저질렀는지에 대한 사회적 책임과 고민보다는 ‘개인의 위험한 일탈’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군의 ‘위험한 범행’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와 가정에도 적잖은 책임이 있다. 목동에서 서초동으로 이사 간 것은 이군의 누나가 강남 지역의 자사고로 진학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자신의 뜻과 달리 ‘학교’와 ‘공부’ 때문에 전학이 결정되면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학교를 옮기고 나서는 친구들과 제대로 어울리지 못하고, 자신이 소외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은둔형 외톨이’로 변해갔다. 가정에서의 원만한 의사소통도 안된다고 판단하면서 주위 환경에 대한 불만이 쌓여갔던 것이다.

여기에 학교 부적응까지 이어지면서 쌓인 극심한 스트레스가 문제의 원인으로 꼽힌다. 학교에서 적응을 못하다 보니 존재감이 없었고 학교 친구들에 대한 울분은 계속 쌓여갔다. 이것이 반사회적인 방법을 통해 폭발하면서 사건이 확대된 것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학교와 가정의 책임이 훨씬 크다. 가정은 아이의 의사결정을 충분히 존중해주고 보호할 필요가 있는데도 그렇게 하지 못한 측면이 크고, 학교는 전학 온 아이가 잘 적응하지 못할 걸 알면서도 방기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학교의 책임이다. 가정에서 하지 못하는 기능을 학교가 대신해야 하는데 그걸 하지 못한 것이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혹자들은 이군이 정상적인 성인으로 커나갈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수정 교수는 “일단 선도해서 교육적 처분을 내려야 한다. 이군이 과거에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했던 적은 없다. 인명 피해에 굉장히 둔감한 타입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학교 부적응이었다”며 “이군이 소년원에 가든, 대안학교에 가든 그 조직에 적응하도록 해야 하고, 미성숙한 탓에 합법과 준법의 기준이 명확하게 형성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청소년기에는 다소 과대망상적인 사고를 할 때가 있다. 이런 것들에 대한 교육이 철저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이군이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종목을 찾아주는 게 선도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것이다”고 덧붙였다. 김복준 연구위원은 “경찰에서 구속시킨 것은 이군을 위해서다. 정신감정을 받고 치료를 해서 사회에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강조했다.

 

 

사제 폭탄 정보 인터넷에 넘쳐난다 

중학생 이 아무개군이 범행 도구로 ‘부탄가스’를 선택한 데는 이유가 있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부탄가스’를 이용한 폭탄 제조법을 배운 것이다. 경찰은 “이군이 유튜브 동영상 등을 통해 범행 수법 등을 습득했고, 조승희 동영상 같은 것도 참고했다”고 밝혔다.

인터넷을 흔히 ‘정보의 바다’라고 부른다. 그만큼 원하는 정보를 마음껏 찾아볼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 기자가 국내 포털 사이트에서 ‘폭탄 제조법’을 검색해보니 수많은 정보가 화면을 가득 메웠다. 그중에는 인터넷에 나온 폭탄 제조법을 직접 따라 한 것까지 있었다.

세계적인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에서는 ‘한글’이나 ‘영문’을 검색어로 입력하면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마음껏 얻을 수 있다. 이군이 서초구의 중학교에서 사용하려다 실패했던 분무기를 이용한 ‘화염방사기 제조법’도 유튜브에서 참조한 것이다. 장난감 총에 들어가는 화약을 모아서 사제 폭탄을 만드는 영상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지난해 12월 신은미씨 토크콘서트에서 사제 폭탄을 터뜨린 19세 오 아무개군은 질산칼륨·설탕·물엿 등 우리 생활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을 섞어서 폭탄을 만들었다.

하지만 인터넷이나 유튜브는 연령에 상관없이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에 청소년에게는 무방비 상태다. 불순한 의도를 갖고 있는 범죄자들도 이곳을 통해 얼마든지 사제 폭탄을 제조할 수 있다. 언제든 테러가 일어날 수 있는 셈이다. 인터넷에서 폭탄 제조와 관련된 내용의 규제 등 대책이 시급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