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에서 밀렸나 권력에 팽당했나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5.09.16 19:36
  • 호수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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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 이사장 일면 스님 ‘이사 후보 추천 부결’ 후폭풍

 

“어떻게 이런 일이….” 조계종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스님은 9월8일에 있은 중앙종회 임시회의 결과를 접하고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날 임시회의 최대 사건은 동국대 이사장인 일면 스님의 ‘이사 후보 추천 부결’이었다. 조계종은 한국 불교 최대 종단이며, 동국대는 한국 유일의 불교종립대학이다. 사실상 조계종이 운영하는 학교법인의 현 이사장이 종단으로부터 이사로 추천조차 받지 못하는 미증유(未曾有)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일면 스님은 올해 2월23일 이사장으로 선출됐다. 출발부터 논란이 일었다. 당시 이사장이던 정련 스님이 후임 이사장 선출 없이 폐회를 선언했는데, 일부 이사들이 다시 모여 일면 스님을 신임 이사장으로 선출한 것이다. 이를 인정하지 않은 정련 스님이 이사장 직무대행으로 영담 스님을 임명하면서 양측이 법적 대응까지 나섰다. 법원은 일단 일면 스님의 손을 들어줬다.

3월2일 차기 총장 선임을 놓고 극심한 내홍을 겪던 동국대에서 이사장 일면 스님(가운데)이 본관 이사장실에서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총학생회 측의 의견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여당 독주’ 중앙종회에서 ‘부결 이변’

일면 스님이 이사장으로 선출된 배경에는 종단 권력의 정점인 총무원장 자승 스님의 뜻이 반영됐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로 여겨지고 있다. 자승 스님이 총무원장 선거 때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아 자신을 도왔던 보광 스님을 동국대 총장 자리에 앉히기 위해 이사회 장악부터 나섰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실제 보광 스님은 5월2일 총장에 선출됐다. 일면 스님과 보광 스님은 6월11일 각각 이사장과 총장으로 공동 취임식을 가졌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되짚어보면 일면 스님의 이사 후보 추천 부결은 쉽게 이해가 안 되는 이변 중의 이변으로 받아들여진다. 우선 조계종 중앙종회 내부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중앙종회는 종단 내에서 국회 역할을 하는 곳이다. 당연히 총무원장 측인 ‘여당’과 반대 측인 ‘야당’이 섞여 있다. 하지만 힘의 균형이 이뤄지고 있지는 않다. 현재 중앙종회는 거대 여당이 사실상 독주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만큼 총무원장인 자승 스님의 영향력이 막강하다고 볼 수 있다.

세속 사회의 정당처럼 딱 잘라 편 가르기를 할 수는 없지만 종책(宗責)모임을 중심으로 한 중앙종회 내 여야 구도는 어느 정도 파악이 가능하다. 중앙종회 의원 수는 총 79명이다. 여기서 ‘여당’으로 분류되는 최대 종책모임 ‘불교광장’ 소속 의원이 60명 안팎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구니 의원 10여 명을 포함하면 여권 성향의 의원 수가 70명 가까이 되는 셈이다. 반면 ‘야당’이라고 할 수 있는 종책모임 ‘삼화도량’ 소속 의원은 10여 명에 불과하다. 여야의 무게 추가 한쪽으로 급격히 기울어져 있는 것이다.

이번 중앙종회 임시회의에는 71명의 의원이 참석했다. 일면 스님에 대한 이사 후보 추천안은 찬성 31표, 반대 40표로 부결됐다. 종립학교관리위원회가 2명씩 짝을 지어 4팀의 추천안을 올렸는데 유일하게 부결된 것이다. 동국대 총장을 맡고 있는 보광 스님에 대한 이사 후보 추천안은 찬성 54표, 반대 16표, 무효 1표로 통과됐다. 당초 두 스님 모두 이사 후보로 추천되는 데 별다른 이변이 없을 것으로 여겨졌지만 결과는 전혀 상반되게 나타난 것이다.

“탱화 절도 의혹 부담에 뒤통수친 것”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외부로 드러난 세력 구도만 놓고 보면 보광 스님의 결과가 상식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여당’ 내에서도 어느 정도 반발 심리가 표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반대 16표는 예상 가능한 수치다. 하지만 일면 스님처럼 반대가 40표나 나온 것은 단순한 반발 표만으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투표 결과는 ‘야당’의 핵심 인사라 할 수 있는 영담 스님과 명진 스님(전 봉은사 주지)이 표 대결에 참여하지도 않은 가운데 나온 성적이라고 한다. 야권 성향의 한 스님은 “두 스님은 부결될 리가 없다고 생각해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 반대표가 이렇게 많이 나올 것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느냐”고 말했다. 물론 무기명 비밀투표 방식이 종종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6 대 1의 구도가 3 대 4로 역전되는 상황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것 아니냐는 얘기다.

두 가지 경우를 유추해볼 수 있다. 하나는 총무원장인 자승 스님의 조직 장악력이 급격히 떨어졌을 수 있다. 이로 인해 일종의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당초 의도하지 않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자승 스님이 중앙종회 임시회의가 끝난 후 ‘여당’ 의원들을 모아놓고 호통을 쳤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집안 단속이 안된 데 대해 강한 불만을 터트린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종단 내 권력 실세의 레임덕이 현실화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차기 권력을 노리는 인사를 중심으로 상황이 전개됐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른 하나는 자승 스님 측에서 조직적으로 반대에 나섰을 수 있다.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게끔 ‘사고를 쳤다’는 것이다. 다분히 의도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여권의 주요 인사들이 만장일치가 아닌 무기명 비밀투표 방식을 거론해 관철시킨 점, 이사 후보군 4개 팀에 대해 일괄 투표가 아닌 개별 투표 방식을 적용한 점 등이 기존 관례에 비춰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종단 사정에 정통한 한 중진 스님은 “불교광장은 자승 스님과 가까운 화엄회와 일면 스님을 지지한 법화회, 그리고 무소속 의원들로 구성돼 있다. 자중지란이 일어났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자승 스님이 호통을 쳤다는 얘기가 나온 데 대해서도 “일면 스님을 사실상 ‘팽’시켜놓고는 자신은 할 만큼 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일종의 쇼를 한 것 아니겠느냐”고 그는 주장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여당’ 내에서 이처럼 많은 반대표가 쏟아진 데는 일면 스님이 이사장으로 선출되는 과정에서 불거진 ‘문화재 절도 의혹’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일면 스님이 흥국사 주지로 있을 때 조선시대 탱화를 한 비구니 스님에게 유출했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다. 이에 대해 일면 스님 측은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하고 있다. 종단의 한 스님은 “당초 계획대로 보광 스님이 동국대 총장 자리에 오른 상황에서 일면 스님의 탱화 절도 의혹이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며 “일면 스님의 뒤통수를 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일면 스님은 진퇴양난의 위기를 맞았다. 오는 12월 말 이사 임기가 종료된다. 그때까지 이사로 재임명되지 않으면 이사장 자리를 내놓아야 할 처지다. 11월 중앙종회 본회의 전에 종립학교관리위원회로부터 이사 후보로 다시 추천을 받거나, 한 자리가 남은 개방이사로 선임돼야 한다. 하지만 이미 중앙종회에서 부결된 사안을 종립학교관리위원회가 다시 추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개방이사의 경우 스님이 선출되려면 관련 정관을 개정해야 하는데 이 또한 쉽지 않기는 마찬가지라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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