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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과의 대화] 내장기관 사라진 몸통 속에 피 묻은 장갑 두 켤레가

토막 난 시체 비닐봉지에 담아 쓰레기 투기하듯 버려

배상훈│서울디지털대 경찰학과 교수(프로파일러) ㅣ . | 승인 2015.09.16(Wed) 19:47:26 | 13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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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4일 오후 1시30분쯤 수원 팔달산 등산로 초입에서 검은 비닐봉지에 든 시체의 일부가 발견됐다. 흉곽, 즉 갈비뼈가 있는 몸통 부위였는데 몸통 안쪽은 텅 비어 있었다. 거기에는 당연히 있어야 할 내장기관 대신에 피 묻은 코팅 장갑 두 켤레가 들어 있었다. 시체를 부분적으로 훼손하고 분리시킨 토막살인 사건이 분명했다. 하지만 일반적인 토막살인과는 다른 특징을 보였다. 피해자의 피가 묻은 범행 관련 물품을 시체의 일부와 같이 유기하는 행위는 피해자에 대한 강한 분노의 감정이 들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잔혹한 수법에 깔끔한 뒤처리

이 사건은 흔히 치정이라고 말하는 ‘이별 범죄’일 가능성이 커 보였다. 특히 시체의 일부를 땅속에 묻거나 물속에 감춘 것이 아니라, 단지 비닐봉지에 넣어 쓰레기 투기하듯 버린 행위는 깊은 단절을 의미한다. 분명 시체의 다른 부위가 주변에 있을 것이고 범행 장소 및 거주 장소도 걸어서 버스 두 정거장 이내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시체를 멀리 가져다 버리기 위해서는 수단, 즉 자동차가 있어야 하는데 등산로에 던져버린 행동양식으로 봐서는 걸어서 움직이는 패턴을 지녔을 것으로 여겼다. 거리 감각이 우리와는 다른 문화권에서 온 사람일 수 있다고 봤다.

지난해 12월17일 팔달산 토막살인 피의자 박춘봉의 범행에 대한 현장검증이 진행되고 있다. ⓒ 연합뉴스

공교롭게도 이곳은 과거 ‘오원춘’이 활동하던 지역이었다. 오원춘 하면 비닐봉지에 든, 수백 조각이 난 시체를 떠올리게 된다. 검은 비닐봉지는 조선족이 밀집한 지역에서 많이 사용한다. 이 사건에도 비닐봉지가 사용됐다. 내국인의 경우 대체로 시체를 토막 내고 나면 여행용 캐리어나 등산 배낭 등으로 옮긴다. 반면 조선족들은 검은색 비닐봉지를 많이 사용한다. 범죄도 생활문화를 반영한다. 이 범죄 역시 조선족에 의한 범죄일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했다. 긴 도보 동선과 비닐봉지가 이 사건의 첫 번째 키워드가 됐다.

부검을 통해 밝혀진 사실은, 피해자는 사춘기 이후의 여성이고 예기(銳器)에 의해 절단됐으며, 사망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또 일반적인 독극물은 검출되지 않았고, 죽은 이후 시체를 절단한 것으로 보였다. DNA를 확보했지만 인근 경기 서남부 지역 여성 실종자들을 상대로 확인하는 방법 이외에는 별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다. 제보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런 종류의 사건은 인근에서 발생한 의심스러운 일이나 사람들에 대한 제보가 큰 역할을 한다. 도보 이동에 착안해 수원천 인근으로 수색 범위를 조금씩 넓혔다. 수원천 제방 4곳에서 비닐봉지에 담긴 피부조직을 찾을 수 있었다. 이 또한 조선족 범죄에서 자주 등장하는 방식이다. 여러 개의 비닐봉지에 시체의 일부를 넣고 걸어서 이동하다가 쓰레기 투기하듯 툭툭 던져놓고 가는 것이다.

이 방식의 유용함은 아무도 그것이 시체의 일부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한다는 점과 하천변의 설치류 동물에 의해 증거물들이 감쪽같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살점의 일부라도 확인하려면 하천변에서 서식하는 쥐들을 모두 잡아 배를 갈라보거나 배설물을 확인하는 방법밖에 없다. 지독하도록 잔혹하지만 그만큼 깔끔한 뒤처리 방법인 셈이다.

사건 발생 6일째에 의미 있는 제보가 들어왔다. 반지하방 화장실에서 검은 비닐봉지 41장과 코팅된 목장갑, 두루마리 휴지 등이 발견됐다. 이곳이 시체를 훼손한 장소였다. 수도꼭지에서 지방조직이 나왔고 지문도 3점을 확인했다. 이제 범인을 잡는 일만 남았다. 통신 수사를 통해 피의자를 특정하고 검거하는 데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용의자 박춘봉은 중국으로 출국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하 노래방에서 여성들과 놀고 있었다.

경험치 없이 실행하기 힘든 범행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만약 출국할 계획이었다면 굳이 이렇게까지 치밀하게 시체를 훼손하고 유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성을 살해하자마자 시체를 감추고 재빨리 출국하는 게 우선이었을 테니까. 또한 여성에 대한 경멸과 단절 감정이 시체의 일부에 남아 있다는 것만 봐도 지금 이 살인자가 다른 여성과 놀아나고 있다는 게 이상하지 않다. 한 여성을 끝내자마자 다른 여성을 찾은 것이다. 형사들에게 유흥업소나 노래방을 탐문하라고 했으면 더 빨리 검거됐을 수도 있었던 셈이다. 발로 뛰는 일선 형사들은 술집이나 음식점, 숙박업소 등을 주로 뒤졌다. 어쨌든 조선족 박춘봉은 검거됐다.

박춘봉은 끝까지 고의가 아닌 실수로 동거녀를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시체의 손상 정도로 봤을 때 둔기나 주먹의 강한 힘이 동원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의가 아닌 실수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졌다. 사실 그는 평소에도 여성에 대한 소유욕이 강해 폭력적인 성향을 표출했다고 한다. 이에 두려움을 느낀 동거녀가 그를 피했고, 격분한 박춘봉이 계획적으로 동거녀를 살해해 시체를 훼손·유기한 것이다.

그런데 의문이 남았다. 바로 ‘경험치’였다. 만약 그가 이번 범행을 처음 저지른 것이라고 한다면 빠른 판단력과 함께 ‘발골사’(도축장에서 가축의 뼈와 살을 분리하는 일을 하는 사람)도 놀랄 솜씨로 시체를 신속하게 훼손한 점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시체 훼손에 길이 20㎝짜리 부엌칼을 사용했지만 톱 같은 도구는 쓰지 않았다고 한다. 경험치가 없고서는 실행하기 힘든 범행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사건 이전에 다른 사건에도 관여한 것일까.

 박춘봉은 범행 이전과 이후에도 꾸준히 다른 여성들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박춘봉처럼 여성에 대한 강한 소유욕과 집착, 과다 성욕 등을 가진 성격이상자들은 여성이 먼저 자신을 떠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모두 죽이지는 않겠지만 강한 폭력을 행사하거나 얼굴을 망가뜨리거나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기는 것이 보통이다. 이에 따라 박춘봉이 이전에도 살인에 버금가는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지난해 12월5일 토막 난 시신 일부로 추정되는 물체가 발견된 경기도 수원시 팔달산 등산로 일대에서 경찰 병력들이 추가 수색 작업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평범한 외모와 생활 패턴

한국에서만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현재 나이 53세인 박춘봉은 2003년과 2006년 여권을 위조해 입국했고 이로 인해 사문서 위조와 행사 혐의로 처분을 받았다. 그리고 2008년에는 권철이라는 가명을 쓰고 입국했다. 즉 여러 번의 범죄 경력이 있었던 것이다. 그의 중국 내 행적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박춘봉의 행동에서 제일 걸리는 점은 어리숙해 보이는 얼굴 뒤에 보이는 무감정이다. 그를 보면 마치 연쇄살인범 정남규를 보는 듯하다. ‘동네 노가다판’에서 일을 하고 있을 사람처럼 보인다. 시체를 토막 내 처리하는 행위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매우 힘든 일이다. 특히 이번과 같이 내장기관을 모두 빼내거나 훼손하는 행위는 상당한 인내를 요구한다. 그런데 박춘봉은 매우 빠르고 대담하게 시체를 훼손했다.

앞서 밝혔듯 시체를 훼손하는 데 쓰인 장갑을 따로 처리하지 않고 시체 속에 담아뒀다. 마치 돼지나 소와 같은 가축을 잡는 도축업자가 하듯이 시체를 과감하게 훼손한 것이다. 박춘봉은 일정 정도 감정에 문제가 있는 사이코패스일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그러한 이상 감정을 여성에 대한 지배와 과도한 성욕으로 대체한 것이다.

 사실 우리가 사이코패스를 상상할 때는 흔히 알프레드 히치콕이 감독한 <사이코>나 크리스찬 베일이 주연한 <아메리칸 사이코> 등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새하얀 피부에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존재.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그들은 소시오패스에 가깝다. 물론 그런 범죄자도 분명 현실에서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가 더 두려워하고 살펴봐야 할 존재는 박춘봉과 같은 평범한 외모와 생활 패턴을 지닌 인물이다. 이들은 때로는 ‘은둔형 외톨이’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묻지 마 살인마’가 되기도 하면서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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