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 면세점, 재벌에게 공짜로 주는 특혜
  • 박상인 |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
  • 승인 2015.09.16 20:11
  • 호수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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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 면세점 매출의 0.05%만 특허 수수료로 내고 있어…“사업자 선정에 경매 도입해야”

경제민주화와 재벌 개혁이 정치권의 화두로 다시 떠오르고 있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정부와 여당의 노동 개혁 드라이브에 맞서, 재벌 개혁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야당 원내대표인 이종걸 의원은 ‘경제민주화 시즌2’를 예고했다. 여당인 새누리당도 재벌 개혁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나섰다. 여당 대표인 김무성 의원은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이른바 4대 개혁 성공을 위해 재벌 개혁을 병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민주화·재벌 개혁 국민 공감 더 커져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소리들이다. 2012년 대선 기간에도 여야가 경쟁적으로 경제민주화와 재벌 개혁을 외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데도 2015년 가을에 다시 경제민주화와 재벌 개혁을 여야가 실천하겠다고 다짐하고 나섰다. 2012년 대선 이후에도 국민의 경제민주화와 재벌 개혁에 대한 관심과 요구가 충족되지 못 했고 여전히 유효하다는 정치적 판단을 하는 것 같다.

9월10일 서울 소공동 롯데면세점이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어쩌면 2012년 대선 당시보다 경제민주화와 재벌 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은 더 커진 것 같다. 재벌의 황제 경영, 재벌 세습의 폐해, 재벌 앞에서는 작아지는 정부를 보여주는 일련의 사건들이 지난 2년간 터져 나왔다. 현대자동차그룹의 한전 부지 인수에서 보여준 독단적 결정과 책임지지 않는 재벌 총수의 모습, 한진그룹 총수 딸의 안하무인 행태가 천하에 여실히 드러난 ‘땅콩 회항 사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로 세습 과정에서 불거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기업 합병 사건, 이 합병을 찬성한 국민연금의 굴욕, 롯데그룹 세습 과정에서 불거진 골육상쟁 등을 보면서 곪아터지는 한국 사회의 비리와 병폐를 엿볼 수 있었다.

이러니 경제민주화와 재벌 개혁이 정치인들에게 달콤한 말, 안 할 수 없는 말이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다를까. 야당과 여당은 경제민주화와 재벌 개혁에 대한 의지와 구체적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두고 봐야 알겠지만, 벌써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특히 경제민주화와 재벌 개혁을 더 강조하고 있는 야당이 과연 의지와 능력을 갖고 있는지, 아니면 좀 더 근본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나 있을지 의문이다.

올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롯데그룹 형제간 경영권 분쟁은, 재벌 총수 일가들이 필요로 하는 룹홀(loophole, 법률 등의 허술한 구멍)을 만들어주기 위해 재벌 규제가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된’ 엉성한 규정을 두고 있는지 명확히 보여줬다. 또한 특정 재벌들에 특혜를 주기 위해 정부가 어이없는 시내 면세점 사업자 선정제도를 운영해왔음도 잘 드러났다.

지난 30년간 롯데그룹은 시내 면세점 사업 특허권을 사실상 무료로 이용하는 특혜를 받았다. 당연히 국가 재정 수입으로 귀속돼야 할 돈들이 특정 재벌의 황금알로 둔갑한 것이고, 이 돈이 일본 롯데 계열사들에 배당으로 유출됐다. 경매를 통해 사업자를 선정하는 인천공항면세점의 경우에는 올해 사업자들이 (전매특허 수수료가 포함된) 임대료로 9260억원을 낸다. 그런데 2014년 기준으로 출국장 면세점 매출액은 2조5000억원이었다. 올해 매출액이 지난해처럼 6% 정도 성장한다고 하면, 매출액은 2조65000억원이 된다. 인천공항면세점이 출국장 면세점 매출의 전부를 차지하지 않지만, 보수적인 계산을 위해 2015년 인천공항면세점 매출액을 2조6500억원이라고 가정하면, 경매를 통해 사업자로 선정된 기업들은 약 35%의 특허 수수료와 임대료를 내는 셈이다. 그런데 시내 면세점 사업자는 매출의 0.05%만 특허 수수료로 내고 있는 실정이다. 2014년에 시내 면세점 매출액이 5조4000억원이었으니, 정부가 거둬들인 수수료는 불과 27억원이다. 아무리 임대료가 포함돼 있지 않다고 해도, 이건 말이 안 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일이다.

재벌의 황금알 국가 재정 수입으로 전환해야

시내 면세점 특허가 사실상 공짜로 재벌에 주는 특혜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국민들은 당연히 공분했다. 급기야 현 수수료율의 문제점을 여당 정책위의장도, 관세청장도 인정하는 발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또 올가을 시내 면세점 사업자 선정부터 가격 경매를 도입하기 위한 입법을 시민단체인 경실련이 요구하고 나섰다. 인천공항 면세점 사업자 선정의 경험과 선례가 있으니, 관세법 관련 규정만 바꾸면 되는 일이다.

그런데 재벌 개혁을 외치는 야당도, 여당도 시내 면세점 사업자 선정에 경매를 도입하는 법안을 아직 발의하지 않고 있다. 재벌 개혁은 고사하고 국가 채무나 재정 건전성을 우려한다고 이야기하는 수많은 정치인도 국가 재정 수입이 돼야 할 돈이 재벌들의 황금알로 둔갑하는 것에는 침묵하고 있다. 국내 5위 재벌인 롯데그룹의 대국회 로비 능력을 실감해야 하는 것일까. 재벌 개혁이나 재정 건전성을 외치는 정치인들의 진정성을 의심해야 하는 것일까.

정치인만 탓할 순 없다. 언론들도 잠잠하기 그지없다. 최근 며칠 동안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국정감사 출석을 두고, 여야 간에 대립하는 모습만이 언론을 장식하고 있다. 신동빈 회장이 국감에 출석하는 문제의 경중을 떠나, 진작 할 일은 내려놓은 정치권과 언론의 관심 돌리기는 아닌지 씁쓸하다. 우리 사회의 중요한 정책 결정이 국민의 공익보다 재벌의 사익을 우선시해 이뤄지고 있다는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다. 국민의 정치 불신, 언론 불신, 정부 불신, 재벌 불신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경제민주화와 재벌 개혁을 외치는 정치인들은 이제 그 진정성을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그 첫걸음이 시내 면세점 사업자 선정에 경매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이처럼 명백한 재벌 특혜 하나 바로잡지 못하는 정치에 국민들은 무슨 기대를 걸 수 있을까. 특히 야당은 왜 국민들에게 무능하게 비치고 믿음을 주지 못하는지, 스스로 되돌아봐야 한다.

재벌에 의한 경제력 집중의 문제가 우리처럼 심각한 선진국은 없다. 시내 면세점 사업자 선정제도도 개선하지 못하면서 무슨 재벌 개혁, 어떤 경제민주화를 하겠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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