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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마을을 글로벌 제국 체제로 업그레이드

사회제도 대개혁으로 ‘팍스로마나’ 번영 시대 연 카이사르

김경준 | 딜로이트 컨설팅 대표 ㅣ . | 승인 2015.09.22(Tue) 09:58:10 | 13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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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세계의 역사를 주도해온 인물들이 그 시대에 보여준 변화와 화합의 리더십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 인물의 지도력이 그 시대를 어떻게 변혁시키고 후세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는지를 보여주고자 시사저널은 역사 속의 인물을 대상으로 한 ‘역사의 리더십’을 격주로 연재한다. 필자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대표는 경영전문가로서 인문학에도 조예가 깊으며, <마흔이라면 군주론> <위대한 기업, 로마에서 배운다> 등의 저서로 잘 알려져 있다 .

 

서양 르네상스 시대의 정치사상가 마키아벨리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리더는 ‘역량(Virtu)’ ‘운(Fortuna)’ ‘시대정신(Necessita)’의 3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갈파했다. 당면한 현실의 본질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 하늘에서 내리는 인간으로서의 운명, 미래를 향한 변화의 흐름을 정확히 이해하는 통찰력이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리더는 역량과 시대정신의 접점에서 탄생했다. 리더의 역량과 시대정신이 부합하지 않으면 공동체는 쇠퇴하게 마련이고, 기껏해야 효과적 현상 유지에 머무르는 것이 고작이다.

로마 제국 시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한 장면. ⓒ 유니버설 스튜디오 제공

서양 문명의 요람을 고대 그리스라고 한다면 플랫폼으로의 발전은 고대 로마에서 이루어졌다. 법·제도 등 소프트웨어와 도로망·상하수도 등 하드웨어는 물론 서양 정신의 근간인 보편 종교로서의 기독교가 출발했다. 그러나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기원전 753년, 이탈리아 반도 중부에서 작은 마을로 건국한 이후 600여 년간의 고통스러운 축적 과정을 거치면서 오늘날 서유럽과 북아프리카 및 중동 지역까지 세를 확장했으나, 곧바로 승자의 저주에 빠져 극심한 내부 갈등과 사회적 혼란으로 내전까지 발생하는 역설적 상황이 전개되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기원전 100~44년)는 융성하면서 곧바로 몰락할 수도 있었던 위기의 로마에서 재도약을 위한 새로운 체제를 제시했다.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제도와 시스템 꿈꿔

카이사르의 이름에서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기원전 44년 3월15일 원로원 회의 도중 급습한 반대파의 칼에 찔려 숨을 거두면서 “브루투스, 너 마저도”라고 외친 대목이다. 황제가 되려는 개인적 야망으로 공화정을 붕괴시키려는 카이사르를 공화정 수호 세력들이 암살한다고 묘사되는 장면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율리우스 시저>를 필두로 드라마나 영화에서 반복되고 있는 이러한 관점은 카이사르를 권력욕에 사로잡힌 독재자로 치부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카이사르는 당시 로마 사회가 당면하고 있었던 체제 혼란의 근원을 본질적으로 파악하고,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제도와 시스템을 만들어내려 했던 원대한 비전의 혁신가였다.

카이사르 시대의 로마는 명실상부한 세계 제국이었다. 이탈리아 반도를 평정한 후 포에니 전쟁으로 북아프리카 지역과 에스파니아를 편입시키고, 이집트를 비롯해 시리아 지역까지 진출한 데다, 갈리아를 정벌해 라인 강 서쪽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듯 대제국으로 성장한 로마의 지배구조는 본질적으로 건국 초기 작은 마을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직접민주주의 체제의 로마 공화정에서는 로마 시민권을 보유한 평민들의 집회인 민회가 궁극적인 주권의 원천이었다. 민회는 법령 제정, 사형 집행, 전쟁과 화의 여부, 동맹 체결 결정권 등을 가졌고, 실질적 통치는 종신 국회의원들인 원로원이 집정관을 선출해 이뤄졌다. 이러한 체제는 작은 지역 단위의 국가에서는 유효했으나, 거대 제국으로 발전한 로마에는 맞지 않는 옷이 되어버렸다.

과거 한 동네에 살던 시절 평민들이 마을광장에 모두 모여 논의하고 결정하던 민회는 권역이 서방 전역으로 확대된 제국에서는 추상적인 개념으로 전락해버렸다. 하드웨어는 세계 제국이었지만, 이를 유지하는 소프트웨어는 작은 마을 단위에 머무른 불일치는 빈부 격차 확대, 중산층 몰락 등 로마 사회 내부적인 갈등을 증폭시키고, 다민족 공동체를 운영하고 외적을 물리치는 방어 체제를 유지하기도 어려운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카이사르는 고도 성장기를 지나 안정 성장기에 들어선 로마제국의 하드웨어에 맞는 소프트웨어를 갖추는 것, 다시 말해 강대해진 육체에 걸맞은 내장을 만들어내는 지배구조 개편을 시대정신으로 인식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통치의 근간을 이루고 있던 원로원·민회·집정관의 기능을 재조정했다. 원로원을 자문기관으로 바꾸고 정원도 900명으로 늘려 새로운 피를 수혈했다. 신참자는 주로 로마군의 일선 지휘관, 이탈리아 이외 지역의 로마 시민, 신규로 편입된 갈리아 지방의 부족장들이었다. 당연히 기존 원로원 세력들은 반대했지만 카이사르는 제국의 확대에 따라 국가 지도자의 범위도 확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회는 의결기관이 아니라 형식적 승인기관으로 기능을 축소시켰다. 기원전 1세기 무렵의 로마 시민권 소유자 수는 100만명이 넘었고, 이탈리아를 비롯해 지중해 전역에 흩어져 있던 상태였다. 이미 유명무실해져 있었던 민회였지만 인기를 의식하는 정치인들이 현실적 문제를 외면하고 있었던 상황에서 평민파 카이사르는 정면으로 대처했다.

로마의 정치가이자 장군인 율리우스 카이사르. ⓒ 연합뉴스

원로원·민회·집정관의 기능, 전면 재조정

카이사르의 정책은 당시에도 많은 논란을 불렀고, 결국에는 자신도 비명횡사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카이사르가 설계한 원수정(元首政) 제도는 후계자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다져지면서 로마는 성장통을 이겨내고 ‘팍스로마나’로 불리는 200여 년 ‘로마의 평화’를 가져오면서 다시금 번영의 길로 들어섰다. 카이사르는 포에니 전쟁 이후 100여 년 동안 로마 사회를 극심하게 분열시켰던 원로원파와 평민파 간의 노선 투쟁을 넘어서 새로운 체제를 제안하고 실현시키는 출발점을 만들었다.

카이사르는 말했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모든 것이 다 보이지 않는다. 많은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본다.” 카이사르가 생각한 리더란 남이 보지 않는 것까지 볼 수 있는 사람이다. 이러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고, 이를 현실에서 실현하는 힘을 갖추어야 진정한 리더가 될 것이다. 통찰력만 있다면 학자나 지식인에 불과하다. 리더는 통찰력에다 방향을 설정하고 추진해나가는 힘이 있을 때 존재한다.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지적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것보다는 지금까지 훌륭하게 기능을 발휘하고 있던 체제를 바꾸기가 훨씬 어려운 법이다. 후자의 경우에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개혁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자신의 능력에 자신감을 갖는 데 익숙해진 사람들의 자기 개혁만큼 어려운 것은 없다. 하지만 이것을 게을리 하면 새로운 체제를 수립하기는 더욱 불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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