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세계 골프 女帝 여기 있다”
  • 안성찬 | 골프 칼럼니스트 (.)
  • 승인 2015.09.22 10:20
  • 호수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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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아 고·김세영·김효주·전인지·안신애 세계 그린 평정

한국(계) 낭자들이 연이어 국내외 그린에서 신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첫 대회였던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브리트니 린시컴(미국)에게 우승을 내줬지만, 박인비가 위민스 PGA 챔피언십과 브리티시오픈을, 전인지(21·하이트진로)가 US오픈을 제패한 데 이어 뉴질랜드 교포 리디아 고(18·캘러웨이)가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메이저 대회 최연소 기록으로 우승했다.

특히 이미 국내에서 스타덤에 오른 전인지는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의 메이저를 동시에 석권하면서 세계 골프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루키’ 김세영(22·미래에셋)과 김효주(20·롯데)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신인왕 다툼을 벌이고 있는 것도 흥미롭다. 여기에 기본기가 탄탄한 ‘섹시 미녀’ 안신애(25·해운대비치앤골프리조트)가 5년 만에 국내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 AP연합

리디아 고(18·캘러웨이)

한국 이름 고보경이다. 아직은 미팅이나 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수다를 떨 나이에 벌써 ‘여대생 백만장자’가 됐다. 지난해 여고생 시절에 이어 또다시 획득한 상금만 200만 달러를 넘겼다.

리디아 고가 그동안 노력한 결과를 보면 지금의 성과는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이번에 우승한 후 리디아 고는 한없이 눈시울을 적셨다. 우승의 기쁨 때문이 아니었다. 그동안 뒷바라지를 하느라 고생한 아버지에 대한 생각에 울컥한 탓이다. 그에게 아버지는 매우 특별한 존재다. 평소에 오래 떨어져 있고 그만큼 아버지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그의 탄탄한 기량은 아버지가 길러냈다. 딸의 골프를 위해 골프 환경이 좋은 뉴질랜드로의 이민을 결심한 아버지는 연습법을 차별화했다. 주니어 시절에 핀과 100·90·80·70·60야드 거리를 정해놓은 뒤 그린 위의 핀을 돌려가며 아이언샷으로 홀 1m 이내로 붙을 때까지 수천 개의 볼을 때리게 했다.

고려대 심리학과에 올해 입학했다. 그러나 아직은 앳된 소녀다. 이런 리디어 고는 대회에 출전해 우승하면 바로 신기록이 된다. 이 때문에 때로는 왕년의 ‘골프지존’ 타이거 우즈(40·미국)와 곧잘 비교된다.

그가 이렇게 엄청난 파워를 발휘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리디아 고의 천재성은 일찌감치 나타났다. ‘골프 여제’였던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이 자신의 현역 시절을 능가할 선수로 두 명을 꼽았는데, 그중 한 명이 리디아 고였다. 소렌스탐은 “나이는 어리지만 탁월한 재능과 성숙미를 갖춰 골프팬은 물론 선수들 사이에서도 사랑받는 선수”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다섯 살 때 클럽을 잡았으니 골프의 탄탄한 기본기는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경기 중에 표정 변화가 없고 강심장을 갖고 있다. 아울러 대회 때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잘 안다. 골프에 대한 천재성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독특한 강점은 실수한 뒤의 행동이다. 미스 샷이나 어이없는 짧은 퍼트 실수에도 고개를 갸우뚱할 뿐 캐디와 대화를 나누며 이내 다음 샷을 준비한다. “경기를 즐기는 게 좋은 성적을 내는 비결”이라면서도 “사람들은 내가 어리기 때문에 경기를 그저 즐길 거라고 생각하지만 나도 샷을 할 때마다 두려움과 긴장감을 느낀다”고 솔직한 감정을 털어놓기도 했다. 경기 중에 심한 압박감이 올 때면 무표정한 얼굴로 위장한다는 얘기인데, 대학생답지 않은 외유내강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셈이다.

 

ⓒ AP연합

김세영(22·미래에셋)

‘야구는 9회 말 투아웃부터’라는 말은 ‘역전의 여왕’ 김세영을 떠올리게 한다. 시즌 2승을 올린 김세영은 함께 루키 시즌을 보내고 있는 김효주에 간발의 차로 앞서 있다. 김세영은 선두에 나섰다가 우승한 적이 거의 없다. 지고 있다가 갑자기 뒤집어버리는 묘한 재주를 타고난 선수다.

김세영은 올 2월에 열린 바하마 LPGA클래식에서 데뷔 후 첫 우승을 거뒀다. 그리고 4월 롯데 챔피언십에서 박인비와의 연장전 끝에 극적으로 우승했다. 어프로치샷이 들어가면서 연장전에 들어갔고, 연장에서는 두 번째 샷한 공을 바로 홀에 집어넣으며 이글로 우승을 엮어냈다. 전 세계 골프팬들에게 ‘김세영’이라는 이름을 각인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는 샷이었다.

김세영은 태권 소녀다. 부친이 태권도장을 운영해, 걷기 시작했을 때부터 태권도를 배웠다. 덕분에 체력과 운동감각을 타고났다. 163㎝ 키에 태권도가 3단이다. 단단한 하체와 유연성은 그가 280야드 이상 장타를 때리는 원동력이다. 여기에 승부사 기질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승부를 즐길 줄 안다는 얘기다. 그 역시 진정한 승부를 가릴 때 짜릿함을 맛본다고 말한다. 이것은 승부근성으로 이어져 종종 욕심을 부리는데, 파를 잡아도 되는 홀에서 공격적인 샷으로 버디를 노린다.

김세영에게도 힘겨운 시절이 있었다. 국가대표를 지낼 때는 기량이 돋보였지만, 프로에 데뷔하면서 뭔가 자꾸 어긋났다. 골프를 더 잘하고 싶은 욕심 탓에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편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를 궁리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장고(長考)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이것이 2부 투어를 뛰는 그의 발목을 수없이 잡았다.

LPGA 정회원이 됐지만 컷오프도 많이 당했다. 시드 순위전을 5위로 통과하면서 2011년부터 1부 투어에 합류했는데 매번 목표는 컷 통과였다. 그렇게 2년간 무명으로 지내다가 2013년 3승을 거뒀고, 지난해 1승을 추가한 후 미국행을 결심해 절반의 성공을 거두고 있다.

 

김효주(20·롯데)

침대에 누우면 볼 수 있게 옷장에 붙여놓은 문구가 하나 있다. 그의 어머니가 만들어서 붙여놓은 글귀다. ‘버디는 기쁨, 파는 평온, 보기는 집중’.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다르다. 선수 입장에서 버디는 기쁨이지만, 파와 보기는 ‘화(禍)’일 뿐이다.

LPGA 투어에 진출해 루키 시즌을 보내고 있는 김효주. 잠시 주춤한 듯 보이지만 그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사실 김효주는 스윙이나 외모가 화려하지는 않다. 장타를 치는 것도 아니고, 남달리 파이팅이 넘치지도 않는다. 그런데 그의 경기는 무섭다. 남다른 재능을 지닌 에이스란 얘기다. 지난해 정식 멤버가 아닌 자격으로 LPGA 투어 마지막 메이저 대회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정상에 오르며 세계 골프인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리고 올해 LPGA 무대에 ‘무혈’ 입성해 지난 3월 JTBC파운더스컵에서 정상에 올랐다.

김효주는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났다. 식당을 운영하는 부모가 돌봐주지 못하고 인근 골프연습장에 맡긴 여섯 살 때부터 클럽을 잡았다. 연습장 주인의 권유에 의해서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국가 상비군에 발탁됐고, 한연희 프로와 인연을 맺으면서 기량이 급성장했다. 아마추어 시절 프로 무대에서 우승 타이틀을 두 개나 손에 쥐었다. 고교 2년 때인 2012년 롯데마트여자오픈에 출전해 우승했고, 일본으로 건너가 산토리 레이디스 오픈에서 정상에 올랐다. 우승 덕에 시드전을 치르지 않고 또래들보다 1년 일찍 정규 투어 무대를 밟았다. 그리고 데뷔 후 1개월 17일 만에 현대차 차이나 레이디스에서 우승했다.

그의 강점은 자기관리가 철저하다는 것이다. 알아서 스케줄에 맞춰 웨이트트레이닝과 샷 연습을 한다. 연습벌레형이라기보다는 현명하게 자신에게 맞는 연습법을 개발해서 하고 있다. 키는 166㎝이지만 체력이 강한 편이 아니라 스윙을 ‘리듬’에 의존하기 때문에 컨디션 유지에 온 신경을 기울인다. 그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긴장감’이다. 자칫 한눈을 팔다가 체력과 정신이 무너지면 회복하기가 무척 어렵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 Penta Press, ⓒ UPI연합

전인지(21·하이트진로)

한국·일본·미국에서 한 시즌 메이저 대회를 동시에 석권했다면 그의 기량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미 ‘준비된’ 선수이기 때문이다. 키 175㎝의 ‘8등신 미녀’ 전인지(고려대 3년)는 한국 골프사에 새로운 역사를 썼다.

그는 2013년 내셔널 타이틀인 한국여자오픈에서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우승했다. 출발부터 심상치 않았다는 얘기다. 그리고 올 시즌 들어 삼천리 투게더, 두산매치, S-OIL 챔피언스에서 3승을 거두며 ‘절대강자’로 부상했다. 그리고 일본여자프로골프 투어에 처음 출전한 대회인 메이저 대회 월드 레이디스 챔피언십 살롱파스컵에서 일본의 스타들을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그런 다음 7월13일 미국 내셔널 타이틀 대회인 US여자오픈을 제패했다.

세계 여자 선수 중에서 이런 3개의 타이틀을 동시에 쥔 것은 전인지가 처음이다. 그러자 일본과 미국에서 ‘러브콜’이 들어왔다. 비회원 자격으로 우승했으므로 프로 신청을 하면 시드를 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업과 학교가 좋다’는 이유로 전인지는 아직 선택을 하지 않고 있다. 다만 확실한 것은 내년에 4학년이 되면 김효주처럼 미국 무대로 ‘무혈 입성’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전인지는 태권도 선수 출신인 아버지 전종신씨(56)를 닮아서인지 운동을 잘한다. 태권도와 육상을 했다. 그리고 머리가 뛰어나다. 수학경시대회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으니까. 엄마는 전북 군산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했다. 공부도 잘했지만 운동감각이 남다른 데다 ‘세리 키즈’ 열풍이 불 때 아버지와 친구의 권유로 전인지는 골프에 입문했다. 골프를 시키려고 아버지는 충남 서산에서 제주도로 이사했다. 다시 전남 보성 득량중으로 전학한 전인지는 명문인 함평 골프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이미 중3 때 국가 상비군, 고교 1년 때 태극마크를 달았다. 애칭은 ‘플라잉 덤보’. 사실은 남의 말을 잘 듣는다고 해서 ‘팔랑귀’였으나 웃는 모습이 귀엽고 호기심이 많아 ‘플라잉 덤보’라고 부르게 됐다.

 

ⓒ 뉴스1

안신애(25·해운대비치앤골프리조트) 

안신애에게는 ‘섹시 미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골프웨어를 입어도, 평상복을 입어도 잘 어울린다. 타고난 몸매 덕분이다. 그래서 오해도 많이 받았다. 기량보다 외모에만 신경을 쓴다는.

사실 안신애는 기본기가 탄탄한 선수다. 일찌감치 뉴질랜드로 이민을 가 골프를 했고, 국가대표까지 지냈다. 그리고 국내 프로에 데뷔해 2010년 2승이나 올렸다. 이때 그는 긴 바지를 입었다. 섹시 아이콘과는 무관한 선수였다는 얘기다. 그런데 2승을 하고 난 후 성적이 곤두박질쳤다. 2011년에는 상금 랭킹 22위, 2012년에는 61위까지 떨어졌다.

자신은 심리적인 문제라고 여기고 치료도 받아봤지만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런데 실상은 훈련과 웨이트트레이닝이 맞지 않아 몸이 아팠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잦은 부상도 한몫했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자신의 슬럼프를 알릴 수 없었다. 순전히 개인적인 문제인데 공개할 수도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아지기는커녕 최악으로 치달았다. 안 되겠다 싶어 골프를 포기할 생각도 했다.

그러다가 하와이 전지훈련을 통해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다. 마음이 편해졌고, 이전의 기량이 차츰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좋은 일도 생겼다. 신설 골프장인 부산의 해운대비치앤골프리조트가 메인 스폰서가 됐다. 올해 들어 유럽여자프로골프투어(LET)와 중국 LPGA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월드레이디스챔피언십에서 초청이 들어온 것도 좋은 소식이다. 이 대회는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자국의 명예를 걸고 참가하는 국가 대항전의 성격도 갖고 있다. 국내외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대회다. 스폰서 초대를 받은 안신애는 중국 내에서 인기를 끌었다.

대회 공식 행사에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카메라 플래시는 쉴 새 없이 터졌다. 프로암 대회의 만찬, 중국 식목일을 맞이해 가졌던 식수 행사, 오프닝 파티에서까지 안신애는 다양한 스타일의 의상을 선보이며 이목을 집중시켰던 것이다. 이런 일이 있은 다음 그는 자신감을 얻었다. 언제든지 우승할 수 있는 기량을 갖고 있는 그로서는 마음만 잘 다스리고 경기에 집중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시즌을 맞았다. 하지만 그는 화보 촬영을 하다가 카트에서 떨어져 다리 부상을 당하면서 다시 시련을 맞았다. 4개월 만에 그린에 복귀했지만 보기 좋게 컷오프를 당했다. 컷오프를 4회나 당했지만 그럴수록 오기가 생겼다. 대회마다 출전해 선두권에 나서면서 기회를 엿보았다. 그리고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이수그룹 KLPGA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할 수 있었다. 그것도 동타를 이룬 3명과 치른 연장전에서 버디 행진을 하며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해 거둔 성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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