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폴크스바겐]⑤ 불량 자동차 잡는 저승사자 EPA·NHTSA
  • 박성의 기자 (sincerity@sisabiz.com)
  • 승인 2015.10.02 16:25
  • 호수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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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 정책 보좌 임무 맡는 등 막강한 권력 갖춰
시사비즈 제작

폴크스바겐에겐 악몽 같은 가을이다. 올 상반기에만 500만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을 석권했지만 하반기에만 1100만대 이상을 리콜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차주들 줄소송은 덤이다. 각국 정부에 뱉어내야 하는 예상 배상액은 조단위를 오간다.

폴크스바겐에게 악몽을 선사한 곳은 미국 환경보호국(EPA)이다. 각국 교통담당 부처들이 폴크스바겐의 꼼수에 속아넘어갈 때, EPA만이 유일하게 실연비와 공인연비가 다르다는 것을 발견해냈다. 시작은 EPA로 들어온 제보였으나 폴크스바겐 사태가 일파만파 커진 것은 EPA의 힘이 그만큼 강력했기에 가능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EPA는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 제안으로 1970년 만들어진 정부기관으로 미국 내의 환경오염과 공해 방지에 관한 대책을 통합적으로 추진한다. 산하기관까지 합쳐 약 1만8000명의 정규 직원이 근무한다.

EPA는 대기·물·소음· 폐기물·유해물질·방사성물질 등 6개 분야에 관한 공해 방지의 임무를 가진다. 대기청정법(clean air act), 유해물질규제법(toxic substances control act) 등의 법률에 의해 다양한 권한이 주어지며 특히 환경 정책을 대통령에 권고할 때 보좌 임무를 맡고 있어 영향력이 막강한 기관으로 꼽힌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같은 제보라도 사안을 얼마나 엄중한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파장이 다르다”며 “EPA가 미국의 기관이라는게 컸다. 우리나라였다면 아마 단순 리콜로 마무리할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EPA가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면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까다로운 검증 능력을 갖췄다.

NHTSA는 차량의 교통안전기술표준을 제정·감독하고 자동차, 오토바이 등 제품의 안전도를 시험 평가하는 미국 정부기관으로 기관 내에 연구소를 따로 두고 검사 시스템과 정책을 개발한다. 연구진들은 미국 유수 공대를 졸업한 엘리트 제원들과 실제 자동차 회사에서 근무 경력이 있는 엔지니어들로 이루어져 있다.

NHTSA는 연구진들이 개발한 검증시스템을 통해 미국 내 전차종을 검사하고 기준에 조금이라도 미달하면 가차없이 리콜을 명령한다. 테스트 결과는 미국 소비자의 자동차 구매에 큰 영향을 미친다. NHTSA가 1년에 처리하는 자동차 안전과 관련한 민원만 약 3만건에 이른다.

내로라하는 자동차 관련 업체마다 NHTSA 서슬에 곤욕을 치러야 했다. 지난 5월에는 일본 다카타사 에어백이 충돌 시 내부 금속 파편이 운전자에게 상해를 입힐 가능성이 발견되자, 에어백 장착 차량 3400만대를 리콜하라 명령했다. 다카타가 리콜에 주저하자 NHTSA는 성명을 통해 “생명과 관계된 문제로 리콜에 속도를 더 내라”며 공개 압박하기도 했다.

최근엔 안전기준을 통과하지 못한 BMW 미니가 신속하게 결함을 시정하지 않자 조사에 들어가기도 했다.

EPA와 NHTSA가 미국 정부 기관이기에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세계 최대 소비 시장이자 정부의 지원을 업고 있기에 글로벌 자동차 브랜드들을 강하게 압박할 수 있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EPA와 NHTSA를 내세워 자동차산업을 지배하려 한다는 음모론이 나오기도 한다. 실제 토요타가 세계 자동차 브랜드 1위에 올랐을 당시 NHTSA에 의해 대량 리콜 철퇴를 맞고 성장세가 꺾였고, 이번 폴크스바겐 역시 1위에 오르자마자 스캔들 주인공에 올랐다. 자국 브랜드이자 업계 3위인 제너럴모터스(GM)를 키우기 위한 방책이라는게 음모론의 요지다.

실제 NHTSA는 2007년 GM 자동차 에어백이 펼쳐지지 않아 10대 소녀 두 명이 사망한 사고를 보고 받고도 조사에 나서지 않았다는 의혹을 받았다. 당시 사고를 보고한 위스콘신주 경찰관은 사고 원인이 점화 스위치 이상이라 보고했으며 2번에 걸친 외부 조사에도 같은 결과가 나왔지만 NHTSA는 이를 모른체했다.

논란이 불거지자 지난해 프레드 업튼(공화·미시간) 미국 하원 에너지·상무위원장은 "증거가 명백했는데도 NHTSA가 이를 알아채지 못한 것은 비극"이라며 "NHTSA는 (해당 사건을) 면밀히 조사할 의무가 있다"고 비판했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EPA와 NHTSA가 없다면 폴크스바겐 같은 속임수나 사기 행각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공론이다. 그만큼 두 기관이 세계 자동차 업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강하고 권력 남용이란 부작용보다 긍정적 영향이 더 크다는 것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일각에서는 이번 폴크스바겐 사태가 미국과 유럽 자동차 산업간 헤게모니 다툼이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며 “무엇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책을 더 객관적이고 강력한 방향으로 끌고 나가야할 것이다. 강력한 제제만이 자동차 회사들의 양심을 일깨울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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