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PP 후폭풍]② 자동차 산업, TPP 위기인가 기회인가
  • 박성의 기자 (sincerity@sisabiz.com)
  • 승인 2015.10.07 17:29
  • 호수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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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PP 참여시 친환경차 시장 잠식 우려...관세양허 관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이 타결되면서 약 38조 달러의 초거대 경제권이 탄생하게 됐다. 한국은 수싸움에 들어갔다. 그동안 자유무역협정(FTA)을 미루던 일본이 TPP에 합류한 것이 계산을 어렵게 하고 있다.

정부가 TPP 참여를 결정한다면 가격경쟁이 치열한 한·일간 자동차 산업에 미칠 파급력이 가장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폴크스바겐 사태 이후 커진 친환경차 시장에 대한 방어 역시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 관세양허 따라 국내 영향력 천양지차

자료출처 : FTA 협정 관세양허표

한국이 TPP 참여를 결정한다면 한·일 FTA 최대 피해 분야로 꼽혔던 전기전자 및 기계 그리고 자동차 산업에 대한 개방 공세가 거세질 수 있다. 그중 자동차 산업은 관세철폐 기간에 따라 영향력을 달리한다.

우리나라는 수입 자동차에 8%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일전에 맺은 EU(유럽연합)·미국과 FTA에서는 국내 자동차 관세를 각각 협정 이행 3년과 5년차부터 철폐하기로 결정했다. 그밖에 개도국과 FTA에서는 관세 조기철폐에 합의했다.

즉, 상대 국가의 자동차 수출 역량과 이해관계에 따라 관세철폐 기간은 다르다. 학계에 따르면 TPP를 통해 일본과 무역협정이 체결될 경우 관세철폐 유예기간을 어느 정도까지 연장하느냐가 관건이다.

지난해 조정란 인하대 교수가 한국무역학회에 발표한 ‘TPP가 한·일 자동차 교역에 미칠 영향 분석’에 따르면 한·일 관세를 즉시철폐한다고 가정할 시 2033년까지 대일본 자동차 수입증가액이 8억6700만달러로 크게 뛴다. 같은 기간 한국 자동차의 대일본 수출증가액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관세철폐가 장기화한다면 교역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봤다. 10년 철폐의 경우 협정 이행 1~2년차 영향은 수입증가율 기준 2% 미만, 금액으로는 최고 3000만달러 안팎일 것으로 예상했다. 논문은 4년차에야 1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자동차에 대한 관세가 20년으로 장기화할 경우 TPP 영향은 더 줄어들 것으로 봤다. 협정 이행 초기인 2018년까지는 우리나라는 대(對) 일본 자동차부문 교역에서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추정했다. 협정 이행 기간이 길어질수록 일본의 한국 수출은 늘어나 2033년 수출증가액이 5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 미국 시장, 자동차 두고 한·일 경쟁 심화

아베 신조 내각은 2012년12월 출범과 동시에 ‘아베노믹스’ 일환으로 TPP를 강력히 추진해 왔다. 이에 따라 경제재생장관, 관방장관, 외무장관, 재무장관, 농림장관 등으로 구성된 ʻTPP 각료회의ʼ를 구성했고, 회의에서는 TPP 참여로 일본이 누릴 수 경제 이득을 다각적으로 검토했다.

결과적으로 일본은 TPP 체결로 일본의 대 미국 수출량이 늘어날 것으로 봤다. 그중에서도 일본 자동차산업이 얻을 혜택이 다른 산업 영역이 입을 피해보다 크다는 계산이 앞선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이 미국에게 쌀과 같은 초민감품목을 내주면서도 TPP에 합류한 이유다.

우선 TPP 협상 타결로 미국에서 일본산 부품 80% 이상에 대해 발효 즉시 2.5%의 수입관세가 철폐된다. 이미 한국보다 기술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일본 자동차 부품의 대미 점유율이 더 뛸 것으로 보인다.

완성차 또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우리나라 완성차 업계가 한·미 FTA 체결로 누리던 관세혜택을 일본과 나눠 갖게 됐다. 일본 완성차 가격이 하락한다면 현대·기아차 등은 추가 인하를 검토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이런 우려가 기우라는 의견도 나온다. 한·미 FTA에 따라 미국에 수출하는 한국산 자동차에 붙는 관세가 내년부터 완전 철폐되면 가격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한국 완성차 및 부품업체가 미국에 동반 진출해 있기에 영향이 크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현대·기아차의 미국 공급량 중 현지생산 비중이 현대차 53%, 기아차 47% 수준으로 매우 높고, 기아차 멕시코 공장이 2016년 가동되면 현지화 비율은 더 높아질 전망이다.

◇ 일본산 친환경차 유입 가속화할 수 있어

사진 = 한국토요타

폴크스바겐 디젤 엔진 조작사태로 친환경차가 부상하는 가운데, TPP 참여로 일본 수입차에 대한 관세를 철폐하면 일본산 친환경차 유입이 가속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친환경차 기술은 일본이 세계를 주도하고 있다. 토요타 하이브리드 차량인 프리우스 등은 4세대에 걸친 발전을 이룬 반면, 현대·기아차 하이브리드 기술력은 1~2세대에 머무르고 있다. 1세대를 뛰어넘는 기간이 6~7년이라 계산할 때 한·일간 하이브리드 기술력은 약 20년 격차가 난다.

세계 친환경차시장에서도 토요타를 비롯한 일본 회사가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이중 도요타와 혼다 점유율은 87%에 이른다. 전기차 시장에서도 닛산 등 일본 업체가 70% 이상을 점유 중이다.

반면 국내 친환경차 기술은 초라하다. 분야는 중형차에 한정돼 있으며 이마저도 도입률이 한 자릿수에 머무르고 있다. 일본이 소형부터 대형, 레저차량(RV)까지 풀라인업을 구축한 것과 대조를 이룬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TPP와 친환경차 대세론이 맞물린다면 한국 친환경차 시장이 일본에게 잠식당할 수 있단 우려가 나온다. 세계 친환경차시장이 향후 20년 이상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당장의 자동차 점유율이 아닌 미래시장 점유율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 ‘양날의 검’ TPP, 미·일 협상 유리하게 가져와야

전문가들은 TPP 역시 무역협정의 일환으로, 하나를 내주면 하나를 잃는 것이 자명하다고 말한다. 즉 극단의 시나리오를 가정하고 접근할 필요는 없다는 시각이다.

단지 현 시점에서 정부 관계자들끼리 의견이 갈리는 등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산업계 불안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자동차 산업도 과거보다 경쟁력이 커졌다. TPP로 크게 위축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며”면서도 “자동차 업계 경쟁이 심한 상황에서 희소식이 아닌 건 분명하다. 최소한의 마지노선은 정부가 지켜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또 일본의 TPP 참여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봐야 한다 말한다. 특히 미국이 일본에 자동차 관세를 25년에 걸쳐 철폐하기로 한 것을 예로 들며, 우리 역시 장기적인 시각에서 관세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주장이다.

제현정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연구위원은 “TPP에 개방을 위한 협상으로 폐쇄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며 “미국이 일본에 2.5%의 자동차 관세를 25년에 걸쳐 철폐하기로 합의한 것은 우리에겐 긍정적이다. 우린 미국보다 높은 8%의 관세를 메기고 있다. 일본과 협상에서 장기적인 철폐 정책을 가져간다면 자동차 산업 타격을 최소화 할 수 있을 것”이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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