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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거든 시신을 국회 앞에 던져라”

북파 스파이 부대 출신 박충암씨의 이유 있는 분노

노진섭 기자 ㅣ no@sisapress.com | 승인 2015.10.07(Wed) 18:06:27 | 13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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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맥아더 장군이 이끄는 연합군의 인천상륙작전은 서해의 심한 조수 간만 차이와 많은 섬 때문에 불가능해 보였다. 칠흑 같은 새벽녘, 서해 여러 섬에서 일제히 밝혀진 등대 빛이 뱃길을 인도함으로써 작전은 성공했다. 등대마다 KLO 8240부대(Korea Liaison Office, 주한 첩보연락소, 일명 켈로부대) 대원들이 있었다.

지도를 펴놓고 서해 5도(백령도·대청도·소청도·연평도·우도)의 위치를 보면 남한보다 북한 황해도 땅에 더 가깝다. 군사적 요충지인 이 섬들이 휴전선 이남에 속하게 된 배경에도 인민군의 침입에 저항한 이 부대원들이 있다.

켈로부대는 북한 출신자로 조직한 미군 소속의 북파 첩보 유격대다. 북한 적지에 침투해 군사 정보를 빼내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다. 그런 임무에는 북한이 고향인 사람들이 제격이라고 판단한 미군이 임시로 만든 비정규군이다. 군번도 계급도 없는 젊은이들은 먹을 쌀을 받기 위해 3년 동안 사지에서 스파이 노릇을 했다.

박충암 유격군전우회총연합회 회장이 9월19일 시사저널 회의실에서 켈로부대 활약상을 얘기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국민에게 빚진 국가가  이토록 무심한가”

박충암씨(84·유격군전우회총연합회 회장)도 켈로부대원 중 한 명이었다. 황해도 벽성군이 고향인 그는 한국전쟁 당시 연평도로 피난 갔다. “1950년 말 중공군이 밀고 내려올 때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섬으로 피신했다. 섬마다 수백 명씩 모여 자발적으로 향토 치안 활동을 했다. 먹을 게 없던 그 시절 미군이 조직하는 부대에 가입하면 쌀과 총을 주고 고향에도 갈 수 있다고 해서 많은 젊은이가 단체로 그 부대에 흡수됐다. 그것이 켈로부대 창설 배경이다.”

약 3만2000명(국방부 추산 1만8000여 명)이 30개 부대를 이뤘다. 이들은 북한 고향 땅 지리를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에 북한군의 움직임을 살피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3년 동안 4400여 회 작전을 수행하면서 2만7000여 건의 첩보를 미군에 제공하는 공을 세웠다. “4~5명이 조를 이뤄 적의 군수물자 위치, 규모, 이동 경로 등을 파악한 첩보를 미군에 넘겨줬다. 또 적지에 추락한 미 공군 조종사를 구출했고 무엇보다 서해 30여 개 섬을 사수했다. 중공군이 한국전쟁에 개입한 증거가 필요하다는 명령에 따라 평안도 지역에서 중공군의 목을 베어 와 미군에게 줬다. 이는 미군이 중공군의 전쟁 개입을 유엔에 보고하는 증거가 됐다.”

이 부대는 1953년 휴전 직후 한·미협정에 따라 국방부 소속 8250부대로 전환됐고, 현재 특전사의 모태가 됐다. 유격대 중대장과 대대장 경력이 있는 그는 1954년 육군 소위로 임관했고 1981년 대령으로 전역했다. 오랜 군 경력을 인정받아 1980년 보국 훈장과 2002년 대통령 포장을 받았다. 뒤늦게 한국전쟁 참전 사실이 확인돼 1993년 국가유공자가 됐다.

그런 그가 최근 의미심장한 유언을 남겼다. “내가 죽으면 장례를 치르지 말고 시신을 국회 앞에 던지라는 게 내 유언이다. 나와 유격대원들은 60여 년 전 목숨을 걸고 지켰던 조국을 향해 현재 사투를 벌이고 있다.”

나라를 위해 싸운 이들이 그동안 정부로부터 차별 대우를 받은 것에 대한 분노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이 부대가 국방부 소속으로 전환된 후 부대원들은 다시 3년 동안 병역을 치러야 했다. 3년 동안 참전했지만 비정규군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그 경력을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박충암 회장이 60여 년 전 찍은 켈로부대원들의 사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국방부, 유사 조직원 100만명 보상 부담

북한 적지에서 비정규군으로 특수 임무를 수행한 3개 부대(북파공작원, 백골병단, KLO 8240부대)가 있다. 백골병단과 북파공작원은 2004년 법률이 제정돼 보상이 이뤄졌다. 켈로부대만 제외됐다. 적지에서 스파이 노릇을 하다 5000명이 전사했고 부상·행방불명된 인원은 2000명을 웃돈다. 전후 고령 등으로 많은 사람이 유명을 달리했고 현재 2000명 정도 남았다.

“대부분 나이가 80~90대고 유족이 있는 사람은 5명에 불과하다. 늙은 나이에 무슨 돈이 필요하겠나. 나라에서 보상금을 준다고 해도 받을 유족조차 없다. 돈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젊은 시절을 조국을 위해 몸을 바쳤는데 표창장 한 장도 받지 못했다. 국가가 국민에게 빚을 진 셈인데 어떻게 이토록 무심하냐는 것이다. 할아버지가 국가를 위해 헌신한 사실을 후손이 기억할 수 있도록 치하하고 그 공을 인정해주면 좋겠다.”

임무 특성상 이들의 실체는 그동안 베일에 가려 있었다. 그러다가 1980년대 말 이 부대와 관련된 비밀문서 일부가 미국에서 공개돼 이들의 공적이 알려졌다. 그 내용은 국방부가 발간한 ‘한국전쟁의 유격전사’ 등에 기록으로 남았다.

2000년대 초반부터 이들에 대한 정부 차원의 보상 문제가 거론됐다. 인권위원회는 2007년 외국군 소속 특수 임무 수행자 보상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국회와 국방부에 권고했다. 국방부는 2011년 보상 법률안 초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18대 국회 회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2013년 19대 국회에서 다시 발의됐고, 올해 7월 국회 국방위원회를 통과해 법사위원회로 넘어간 상태다. “백승주 국방부 차관 등 국방부 측의 전면 재검토 요청으로 법사위에서 표류 중이다. 19대 국회도 4개월 남았다. 이번에도 흐지부지 넘어가게 될까 우려된다.”

국방부가 미적거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자생적으로 조직된 부대인 데다 이후 미군 소속이 됐기 때문에 국가가 보상할 근거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또 이들에게 보상할 경우 소년병·학도의용군·국민방위군 등 유사 조직원 100만명도 보상 범위에 들어가 정부의 부담이 생긴다.

“예산이 문제라면 보상 문제는 유예해도 된다. 명예회복이 우선이다. 계급도 군번도 없이 3년 동안 사지를 넘나든 것은 오직 국가에 대한 충성심 때문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여생 내에 이 충성심이 인정받길 바란다. 법안 제정을 차일피일 미루는 것을 보면 정부는 우리가 죽기를 기다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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