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3세 승계 연착륙할까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5.10.07 18:19
  • 호수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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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김승연 세 아들 보유 한화S&C 조사…그룹 차원의 부당 지원 여부가 관건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한화 3세들이 100% 지분을 보유한 한화에스앤씨(한화S&C)를 상대로 조사에 착수했다. 이 회사는 현재 한화그룹의 전산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최대주주는 김승연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큐셀 상무다. 김 상무는 현재 이 회사의 지분 50%를 보유하고 있다. 차남인 김동원 한화그룹 디지털팀장과 삼남 김동선 한화건설 매니저도 이 회사의 지분 25%씩을 보유하고 있다.

주진형 한화투자증권 사장 압박했나?

문제는 이 회사 매출의 절반 이상이 계열사로부터 나온다는 점이다. 금감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2004년까지 이 회사의 내부 거래액은 583억원이었다. 매출액은 1268억원이지만, 37억원의 영업손실과 4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그런데 2005년 한화 3세들이 회사 지분을 ㈜한화와 김 회장에게 넘겨받으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한화S&C의 매출은 1222억원으로 줄어들었지만,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33억원과 39억원을 기록하며 흑자로 전환됐다.

한화 김승연 회장 ⓒ시사저널 자료

공정위도 한화S&C가 개정 공정거래법 제23조 불공정거래행위의 금지(통행세 금지) 조항을 위반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계열사의 전산장비 구매까지 일괄 대행하면서 부당 이익을 제공받았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이미 계열사 납품 가격이 시장 가격에 비해 훨씬 비싼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그룹 측은 “보안과 효율성이 필요한 IT(정보기술) 시스템 특성상 외부에 용역을 맡기기 곤란하다”며 “외부 기관으로부터 자문을 받아 법적으로 문제없이 처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정위 조사에서 문제가 드러날 경우 지배구조에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이 과정에서 편법 증여 논란이 일었다. 김동관 상무 등에게 매각한 지분 가격이 지나치게 헐값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경제개혁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주주대표 소송을 제기했다. 그럼에도 한화S&C의 계열사 의존도는 매년 높아졌다. 2007년에는 내부 거래액이 1000억원을 넘어섰고, 2010년에는 3000억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지난해 한화S&C는 4116억원(해외 포함)의 매출을 올렸다. 이 중 2164억원(52.6%)이 내부에서 나왔다. 한화건설(503억원), 한화생명보험(318억원), 한화첨단소재(211억원), ㈜한화(182억원), 한화갤러리아(152억원), 한화케미칼(149억원), 한화손해보험(141억원) 순으로 의존도가 높았다. 그룹의 전산 업무를 총괄하는 만큼 시스템 구축이나 유지·보수 계약이 많았다. 일부는 계열사 홈페이지 제작이나 서버 관리까지 대행해주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화그룹 관계자는 “서버가 자주 다운되지만 오너 일가의 회사이다 보니 말을 못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주목되는 사실은 한화투자증권의 내부 거래액만 감소했다는 점이다. 2013년까지만 해도 한화투자증권에 대한 한화S&C의 매출 비중은 351억원이었다. 하지만 2013년 9월 주진형 사장이 취임했고, 이듬해 매출 비중은 120억원으로 절반 이상 감소했다. 주 사장은 최근 전산장비 구입 루트를 IBM으로 바꾸는 작업까지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오너 일가에 미운털이 박혀 조기 경질설이 나왔다.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국회 정무위원회 소속)은 9월18일 공정거래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화투자증권이 제3의 독립 기관에 아웃소싱을 추진하면서 그룹과 갈등이 생겨 대표이사를 해임하는 것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서울 중구 을지로에 위치한 한화S&C 사옥. ⓒ 시사저널 최준필 주진형 한화투자증권 사장은 최근 오너 회사인 한화S&C와의 내부 거래를 줄이면서 조기 경질 논란을 빚고 있다. ⓒ 시사저널 사진자료

“한화S&C와 ㈜한화의 합병 시나리오 유력”

한화그룹 측은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한화투자증권이 2013년 차세대 시스템 구축을 마무리하면서 이듬해 매출이 감소했다”며 “일부러 내부 거래액을 줄인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주 사장이 전산 장비를 IBM으로 교체하는 과정에서 미운털이 박힌 것 아니냐는 세간의 의혹에 대해서도 적극 해명했다. 한화투자증권은 그동안 전산 인프라 시스템 효율화 작업을 진행해왔다. 하지만 자체적으로 추진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지난 8월 진행된 1차 입찰에서는 한화S&C와 IBM 컨소시엄이 참여했지만 유찰됐다. 9월에는 IBM이 입찰에 참여했지만 자격 미달로 탈락했다. “내부 거래를 줄이는 과정에서 오너 일가와 충돌했다면 IBM이 입찰에서 탈락했겠느냐”는 게 그룹 측의 주장이다.

그럼에도 뒷말은 여전하다. 현재 한화그룹은 ㈜한화가 주력 회사인 한화케미칼과 한화생명을 통해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구조다. 김 회장은 ㈜한화의 지분 22.65%를 보유하고 있다. 3세들의 지분은 모두 합쳐도 7.78%가 전부다. 때문에 삼성이나 SK, 현대자동차그룹의 승계 모델을 답습해 승계 구도를 구축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룹 차원의 지원을 통해 오너 일가의 비상장 회사를 키운 후 지주회사와 합병하는 방식으로 3세들의 지배력을 높이는 방식이다. 박중선 키움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한화S&C가 기업 가치를 키워 주식시장에 상장한 이후 ㈜한화와 합병하는 지배구조 개편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한화와 한화S&C의 합병을 위해서는 우선 한화S&C의 기업 가치를 높여야 한다. 그래야 김 회장의 세 아들이 안정적으로 합병 법인의 지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화S&C는 그룹 차원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매출이 현재 4000억원대에 머무르고 있다. 지난해 매출이 40조원에 육박하는 ㈜한화와 합병한다면 3세들에게 돌아가는 지분은 많지 않다.

그래서인지 한화그룹은 최근 한화S&C가 100% 지분을 보유한 한화에너지를 전략적으로 키우고 있다. 한화에너지는 현재 여수와 군산에 열병합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4595억원의 매출과 1731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면서 한화S&C의 실적 성장을 도왔다. 올해는 삼성과의 ‘빅딜’을 통해 인수한 삼성종합화학과 삼성토탈을 각각 자회사와 손자회사로 두게 됐다. 하지만 두 회사의 매출을 모두 합쳐도 ㈜한화와 합병하기에는 모자란다는 것이 재계의 분석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 사장이 전산업체 교체를 단행했고, 오너 일가에 미운털이 박혔다는 것이 재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한화 “법적으로 문제없다”

한화그룹 안팎에서는 최근 모건스탠리에 매각된 한화L&C 역시 승계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이 회사는 지난해 7월 건축자재 사업 부문을 모건스탠리PE에 매각했다. 매각가는 3800억원대였다. ‘빅딜’ 과정은 장남인 김동관 상무가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회사 규모가 급격히 커지고 있다. 한화L&C는 지난해 하반기에만 3613억원의 매출과 157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올 상반기까지 매출을 합하면 8000억원대, 당기순이익은 600억원대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사모펀드는 거액의 배당 잔치를 벌이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모건스탠리는 배당받을 돈을 재투자해 회사 자산을 늘리고 있다. 일련의 과정이 결국 재매각을 위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 나오는 이유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한화그룹 관계자는 “모건스탠리PE 한국 대표인 이상훈씨는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의 장남으로 김동관 상무와 가까운 사이”라며 “한화가 L&C를 되사는 조건으로 물밑 협상을 벌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승연 석방됐지만 ‘오너 리스크’ 여전 

한화그룹은 최근 광복 70주년 사면 ‘후폭풍’을 톡톡히 치르고 있다. 이번에 사면 복권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연일 강행군을 펼치고 있다. 의정부교도소를 나온 직후 집 대신 서울 서린동 SK 본사로 달려가 사장단을 만났을 정도다. 현재 국내외 사업장을 오가며 계열사들의 경영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김승연 회장은 반대다. 지난해 초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났지만 아직까지 경영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 광복절 사면 대상에서도 제외됐다. 그 여파로 그룹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금융 계열사들은 딜레마에 빠졌다. 현행 자본시장법상 금융기업은 새로 사업을 착수하거나 기업을 인수할 때 대주주 자격 심사를 받게 된다. 김 회장이 사면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대주주 자격 심사에 문제가 생긴 것. 한화생명 등 주요 금융 계열사들은 새로운 사업에 진출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김 회장의 복심으로 통하는 김연배 한화생명 부회장이 최근 갑자기 퇴임한 것도 재계에서는 문책성으로 보고 있다.

요즘 재계의 가장 큰 화두는 인터넷전문은행이다. 새로운 먹거리를 찾기 위해 재계는 이합집산을 거듭했다. 10월1일 인터넷전문은행 예비인가 신청이 마감됐다. 한화생명은 KT와 우리은행이 주도하는 ‘케이뱅크’ 컨소시엄에 참여하는 선에서 체면을 유지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최근 SK텔레콤을 방문한 자리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인터넷전문은행 인가를 따내라”고 당부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화그룹이 ‘오너 리스크’로 문제가 됐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한화증권은 2011년 2월 푸르덴셜투자증권(현 한화투자증권)과 푸르덴셜자산운용(현 한화자산운용)을 3700억원에 인수했다. 증권 애널리스트들은 기존 계열사와의 합병 가능성을 제기했다. 실제로 한화는 2011년 5월 한화증권과 푸르덴셜증권의 합병을 금감원으로부터 승인받았지만, 통합법인 출범을 미뤘다. 푸르덴셜자산운용의 대주주 자격 심사 역시 자진 철회했다.

당시 김 회장은 계열사를 통해 거액의 차명 계좌를 운용하고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형이 확정되면 한화증권은 어렵게 인수한 푸르덴셜증권과 푸르덴셜자산운용을 다시 매각할 수도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푸르덴셜증권과 자산운용이 각각 한화투자증권과 한화자산운용에 합병됐지만, 내부적으로 적지 않은 진통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삼성그룹도 2009년 이건희 회장이 사면될 때까지 금융 계열사들의 발이 묶여 고민이 컸다”며 “한화그룹의 금융 계열사들 역시 국내에서 사업 진출이 어렵다 보니 ‘해외 투자 강화한다’는 기사만 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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