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식 없이 베끼는 관행이 더 문제
  • 김창룡 | 인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 승인 2015.10.14 16:50
  • 호수 135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도를 넘어선 언론사 표절 해외는 엄격한 법적 책임 묻지만, 국내는 지적조차 없어

우리 사회 전 분야에서 표절 문제는 이미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지만, 그때뿐이었다. 총리, 장관, 국회의원들은 학위 논문 표절에 휘말려도 청문회에 서면 하나같이 ‘미안하다’ 한마디로 넘어가거나,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끝까지 직을 유지하곤 한다. 밀리언셀러 작가 신경숙의 경우 표절 논란으로 잠시 자숙하는 듯하더니 최근 미국에서 활동을 시작했다는 보도가 나왔을 정도다. 그동안 기사 베끼기, 뉴스 표절을 두고 언론계 안팎에서 단발적으로 문제를 드러냈으나 역시 흐지부지됐다. 그러나 10월 초, 국가기간뉴스통신사 ‘연합뉴스’가 자사 보도를 통해 민영통신사를 보유한 ‘머니투데이그룹’에 대해 정면으로 뉴스 표절 실태를 고발했다.

연합뉴스는 표절을 찾아내는 ‘저작권 침해 탐지 시스템’을 개발해 뉴스를 훔친 것으로 의심되는 기사를 골라내는 전문 솔루션을 적용하고 있다고 한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단독 기사 외에 일반 기사로 분석 범위를 확대하면 ‘절도’ 사례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고 보도했다. 물론 연합뉴스와 머니투데이그룹의 공방은 통신사 경쟁 매체인 양측의 해묵은 갈등이 원인이었다. 하지만 이번 연합뉴스의 보도는 국내 언론계에 그동안 소문으로만 나돌던 기사 베끼기의 실태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되고 있다. 또한 기사 베끼기는 특정 매체 한두 곳만의 문제가 아닌 국내 언론계 전반적인 문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렇다면 해외 언론 매체의 사정은 어떠할까.

최근 연합뉴스 측의 문제제기로 국내 언론 매체들의 ‘기사 베끼기’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결론부터 말하자면 국내의 기사 베끼기는 언론윤리강령에서도 금지하고 있지만 아무도 지키지 않을 뿐이다.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누가 처벌하거나 문제 삼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해외는 그렇지 않다. 미국이나 일본 등지에서도 기사 베끼기 논란은 간간이 일어나지만 반드시 책임을 묻는다. 그게 차이점이다.

뉴스에 대해선 지적재산권 인정 않는 풍토

2003년 5월1일,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기사를 조작하고 남의 기사를 베낀 혐의로 제이슨 블레어 기자를 파면 처분했다. 그 열흘 후인 5월11일자 뉴욕타임스의 1면 왼쪽 앞머리에 블레어 기자 사건과 관련해 독자들에게 사과를 드린다는 내용의 기사를 크게 실었다. 당시 편집국장은 물론 편집총국장도 사표를 제출했을 정도다. 한국이라면 상상하기 힘들다.

2011년 워싱턴포스트의 보도가 표절 시비에 휘말리는 사건이 있었다. 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경력이 있는 세리 호르위츠 기자가 ‘애리조나 리퍼블릭’ 신문의 ‘하원의원 총격 사건 피고인’ 기사를 표절한 것으로 밝혀졌다. 워싱턴포스트는 호르위츠 기자가 애리조나 리퍼블릭 기사임을 밝히지 않고 베끼기 한 점을 사과하고, 호르위츠 기자에게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2012년 일본에서는 뉴스통신사가 다른 통신사의 기사를 베껴 회원사에 서비스했다가 사장이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사건이 있었다. 일본의 지지(時事)통신은 2012년 6월 워싱턴 지국의 한 기자가 교도(共同)통신 기사를 베껴 송신한 사실이 드러났다. 내용은 일부 수정됐으나 전체적으로 표절로 판명 났다. 결국 지지통신은 교도통신과 그 회원 언론사에 사과했으며,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장이 물러났다.

폴란드에선 지난 2012년, 20여 년 전의 논문 표절 사실이 드러나자 대통령이 사임한 적이 있었는데, 국내 언론에서는 이를  신기해하며 보도하기도 했다. 2011년엔 독일 국방장관이 표절시비로 사임했다. 일본 아사히(朝日)신문은 지방 주재기자가 표절기사를 내자, 본사에서 사과 기자회견을 열고 편집국장이 경질되기도 했다. 선진 언론에서는 법적 공방으로 가기 전에 자체 조사를 해 표절 사실이 드러나면 곧바로 사과하고 관련자를 처벌한다. 이것이 미디어 소비자들에게 정직하게 서비스하려는 선진 언론의 모습이다.

한국에서는 구조적으로 선진 언론을 막는 요소가 최소한 세 가지는 된다. 먼저 우리 사회에는 전반적으로 표절에 대한 윤리적·법적 책임의식이 너무 없다. 또한 법적인 문제도 있다. 저작권법에서 뉴스에 대해서는 지적재산권을 인정하지 않는 풍토가 그것이다. 특히 보도 뉴스(스트레이트 뉴스)는 모두가 공유하는 개념으로 인식해 특정 개인의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는 관행이 일반적이다. 특종이나 단독 보도 등 기자 개인의 노력과 품이 들어간 원천 뉴스는 분명히 다른 대접을 받아야 함에도 일반 뉴스와 같이 죄의식 없이 베끼기를 하는 관행이다. 법 이전에 언론 윤리의 문제지만 ‘나만 베끼나’ 하는 배짱으로 지속하고 있다.

끝내 법적 시비가 벌어져도 법은 별 예방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저작권법 제136조는 저작권을 침해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언론사의 저작권 침해에 대한 처벌은 대부분 징역형이 아니라 벌금형에 불과하며 그 금액도 많지 않은 편이라 사실상 무법천지인 셈이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먼저 표절은 ‘범죄 행위’라는 서구의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 표절은 ‘정신의 도둑질’로 형사 처벌 대상이라는 엄격한 법의 잣대를 들이댈 수 있어야 한다. 법정의가 살아 있으면 언론윤리강령은 실질적 힘을 발휘하게 된다. 선진 언론에서 자체 조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진실을 밝히고 명시적인 사과 및 관계자 처벌 등 정해진 수순을 밟는 것은 그들이 특별히 뛰어난 도덕의식을 가져서가 아니다. 그것이 혹 법적인 문제로 비화하는 경우에도 자사를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자사 미디어 소비자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와 책임을 다한다는 의식이 언론윤리강령 전체를 관통하는 정신임은 더 말할 나위 없다.

포털 사이트 등의 영향으로 인해 일반인들에게 기사는 무료로 보는 개념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는 현상도 문제점으로 지적할 수 있다. 해외처럼 기사를 유료화하면, 기사를 작성하는 기자들에게 책임감이 더 부여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일정한 비용을 지불해야 볼 수 있는 기사에 대해 함부로 베끼는 일이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언론사의 사과할 용의, 책임지는 자세만이 표절을 막을 수 있다. 언론사의 표절문화가 우선 개선될 때 한국은  ‘표절천국’이라는 오명을 벗게 될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