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 그 경계를 무너뜨리다
  • 최정민│프랑스 통신원 (.)
  • 승인 2015.10.14 17:02
  • 호수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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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유 궁전에 전시된 ‘여왕의 질(膣)’ 논란 작품 테러에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공격”

프랑스가 작품 한 점 때문에 시끄럽다. 베르사유의 고즈넉한 푸른 잔디 위에 설치된 이 작품은 높이 10m, 길이 60m에 이른다. 300톤의 철과 500톤의 돌덩어리들로 만들어진, <더러운 구석(Dirty Corner)>이라고 명명된 영국 조각가 아니쉬 카푸어의 설치작품이다. 매년 현대미술의 거장을 초대하는 연례행사의 일환으로 열리는 이 전시는 올해는 지난 6월9일 시작되었다. 그러나 3개월을 넘기도록 여전히 이슈의 중심에 있다. 전시 시작 이후 지금까지 4번이나 작품이 ‘습격’을 받은 것이다. 감히 여왕의 성기(性器)를 묘사했다는 의도 때문에, 또 바그다드 출생인 작가의 어머니가 유대교로 개종했다는 이유에서 이 작품은 ‘페인트 테러’를 당했다.

매년 베르사유 특별전 때마다 논란 이어져

이 작품을 만든 카푸어는 1954년 인도에서 출생했다. 힌두교 계열의 아버지와 유대인으로 개종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유년을 인도에서 보냈고 교육은 영국에서 받았다. 37세의 나이에 영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미술상인 터너상을 거머쥐었으며, 2013년에는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까지 받았다. 엄밀히 말하면 ‘카푸어 경(Sir)’이다. 지난 2011년, 파리의 그랑팔레 전시장에서의 대규모 초대전으로 호평을 받고, 다시 2년 만에 베르사유에 초대된 것이다. 미술평론가 심은록씨는 그의 작품을 두고 “관람자가 한계를 넘어서도록 이끈다”고 평가한 바 있다. 그런데 이번 전시에서 아주 제대로 관객을 한계점으로 이끈 셈이다.

9월6일 프랑스 베르사유궁 정원에 전시된 설치미술품 (부제 ‘여왕의 질’)에 흰색 페인트로 적혀 있는 유대인 혐오 문구를 관람객들이 보고 있다. ⓒ AP연합

20만평이라는 어마어마한  베르사유 정원의 규모에 놀란 관객들은, <더러운 구석>이라는 비호감적인 제목에다 ‘여왕의 질(Queen's vagina)’이라는 도전적인 부제가 붙은 이 대형 조각 앞에서 대경실색했다. 전시 개장 당일 뉴스 전문 채널인 BFMTV와 인터뷰한 한 관객은 “우리는 루이 14세의 궁전을 보러 왔다. 이 작품이 모든 풍경을 망치고 있다”며 “이러한 행위는 부끄러운 일”이라고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찬반양론 속에 작품이 테러를 당하자 해당 지방정부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공격이다”라고 규탄했으며, 대통령과 총리까지 비판 대열에 동참했다. 카푸어는 마지막 훼손 행위의 흔적을 보수하지 않고 그대로 두기로 결정했다. 이를 두고 그녀의 변호사인 줄리 자콥은 “이러한 증오의 흔적이 이미 작품의 일부, 그리고 우리 역사의 일부가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러한 풍경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매년 여름에서 가을까지 진행되는 특별전은 늘 시끄러웠다. 세계적 거장들을 초대하는 베르사유 특별전의 가장 큰 특징은 작가에게 ‘백지수표’를 준다는 점이다. 돈이 아니라, 작품의 구상과 선택에 전권을 주는 것이다. ‘역사적인 아름다움과 현대적 감각의 만남’이라는 애초의 목표는 ‘케미(chemi)’를 넘어 ‘폭발’로 이어진다. 2008년 스타트를 끊은 제프 쿤스의 전시는 루이 14세의 일부 후손들이 ‘명예훼손 소송’을 벌이는 상황까지 갔으며, 2010년 무라카미 다카시(村上隆)의 전시 때는 ‘베르사유를 사랑하는 모임’에서 주도한 전시 중단 탄원서 제출을 위한 서명운동으로까지 이어졌다.

첫 주자로 등장했던 제프 쿤스는 풍선 꽃과 풍선 강아지 등 팝아트 계열의 작품들로 궁전과 정원을 채웠다. 관객들의 비난에 대해 쿤스는 “루이 14세가 살아 있었다면 내 작품을 컬렉션 했을 것”이라고 호기롭게 응수하기도 했다. 일본 작가인 무라카미의 작품 역시, 망가(漫畵)풍의 작업과 포르노를 연상시키는 인형 조각들이 베르사유의 안방을 차지하고 앉은 모습은 뜨거운 감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무라카미의 전시를 기획한 로랑 르 봉은 “우리가 모두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공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끌어내고 싶었다”라고 전시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다. 매년 20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식상한 15세기의 궁전이 이른바 ‘핫’한 현대미술의 용광로로 변하는 순간이다.

알몸 등장에 장관은 아연실색, 관객은 환호

이렇듯 파격적인 작품으로 인한 소동은 어찌 보면 프랑스의 역사이기도 하다. 여성의 가슴과 성기를 사실주의적으로 묘사해 화제가 되었던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이 발표된 것이 1866년의 일이다. 이번 카푸어의 작품은 성기를 표현했다고는 하지만, 추상적인 형태다. 따라서 작가가 ‘여왕의 질(膣)’이라는 부제를 설명하기 전까지는 반신반의하는 관객이 많았다. 즉 시각적으론 쿠르베만큼 파격적이지 않았던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위선적인 아카데미 문화에 반기를 든 쿠르베의 작품과 그의 정신이 아직도 수그러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난해 6월 벨기에의 행위예술가인 드보라 드 로베스티가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된 쿠르베의 작품 앞에서 자신의 성기를 드러낸 퍼포먼스를 연출한 것이다. 10여 분 만에 미술관 직원들에게 끌려 나갔지만, 관객들은 ‘브라보’를 연호하며 작가의 용기에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렇다고 이런 파격적인 전시가 늘 호응만 받는 것은 아니다. ‘동심의 파괴자’로 유명한 폴 메카시의 지난 파리 전시는 작가가 폭행을 당하고 작품이 훼손되는 불상사를 겪기도 했다. ‘섹스토이’를 연상시키는 23m 높이의 녹색 구조물이 <트리(Tree)>라는 제목으로 전시됐다. 이를 두고 작가는 ‘나무를 표현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작품은 철거되었다.

파격적인 행동과 표현들이 늘 용인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동기와 행위의 정당성이 분명할 경우엔 전폭적인 호응을 얻는다. 지난 4월의 몰리에르상 시상식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극작가이자 연기자인 세바스티앙 티에리는 생중계되고 있던 시상식장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체로 등장했다. 무작정 노이즈 마케팅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공연문화계 비정규직 종사자 중 ‘극작가에게만 실업수당이 없다는 것’을 당시 시상식에 참석한 문화장관에게 호소하기 위해 알몸으로 나온 것이다. 장관은 아연실색했고, 관객은 환호했으며, 방송사인 ‘프랑스3’은 서둘러 ‘12세 미만 부모와 함께 시청’을 의미하는 숫자 ‘12’ 표시를 자막으로 넣었다. 그러나 화면은 모자이크 처리 없이 그대로 방송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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