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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미생(未生)들 완생(完生)할 수 있을까

KBS 예능 <청춘FC>를 바라보는 K리그의 복잡한 속내

서호정 | 축구 칼럼니스트 ㅣ . | 승인 2015.10.14(Wed) 17:06:11 | 13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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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나라 청춘! 이겨내라 청춘! 그댄 나의 청춘! 청춘 FC!”

10월6일 오후 서울 월드컵경기장 보조구장 스탠드에선 응원가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1000석가량 되는 스탠드는 킥오프 30분 전 이미 입추의 여지 없이 가득 찼다. 구장 안으로 입장하지 못한 수백 명은 바깥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을 주목했다. 마치 A매치처럼 캐스터와 해설자가 투입돼 실시간으로 중계 중이었다. KBS 2TV가 7월부터 방영 중인 <청춘FC 헝그리 일레븐(이하 청춘FC)>의 주인공인 축구팀 청춘FC는 이날 국내 프로팀과 세 번째 연습경기를 가졌다.

유럽파가 소집된 국가대표팀 훈련도, 프로축구 1부 리그 인기 팀의 연습경기도 아닌데 평일에 열린 이벤트성 경기에 대한 호응은 컸다. 상대팀인 FC 서울의 서포터스 수호신 500여 명이 본부석 왼쪽에 자리를 잡고 응원전을 펼쳤다. 반대편인 오른쪽에 앉은 청춘FC의 팬 500여 명도 응원 구호를 외치며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청춘FC를 응원하는 플래카드는 구장 곳곳에 걸려 있었다. 좋아하는 선수를 위해 손수 만들어 가져온 피켓을 든 팬도 많았다. 90분 내내 한목소리로 응원하는 모습은 아이돌 가수들에 대한 팬덤 못지않았다. 현장에 온 축구 관계자와 취재기자들 모두 “청춘FC의 인기가 이 정도일 줄 몰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9월1일 서울 마포구 서울상암월드컵 보조경기장에서 열린 청춘FC와 K리그 챌린지 서울 이랜드FC의 친선경기는 치열한 공방전 끝에 2-3 청춘FC의 역전패로 끝났다. ⓒ 청춘FC 공식 페이스북

축구 소재로 성공한 거의 유일한 프로그램

청춘FC는 축구를 소재로 한 예능 프로그램이다. 여러 사정에 의해 제대로 된 기회를 얻지 못했다고 판단된 젊은 선수들을 오디션을 통해 선발해 하나의 팀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표방하는 주제도 ‘축구 미생(未生)들의 완생(完生) 도전기’다. 이들은 국내와 유럽에서 전지훈련을 실시하고 연습경기를 치르며 그 안에서 좌절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시청자들에게 여과 없이 보여준다.

예능 프로그램이지만 연예인은 없다. 무명 선수들이 주연이다.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출연자는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썼던 안정환과 이을용 정도다. 좌절을 딛고 국가대표로까지 성공했던 그들은 자신들의 옛 모습을 닮은 청춘들을 감독으로서 이끈다. <무한도전> <1박 2일> <삼시세끼>처럼 성공한 예능 프로그램의 공통점인 연출진의 개입도 최소화하며 리얼리티를 추구한다. 연출은 최대한 배제되고 팀이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기획 당시엔 비관적인 전망이 많았다. 토요일 밤 10시는 지상파와 케이블 채널들의 인기 콘텐츠가 쏟아지는 시청률 전쟁터다. 게다가 축구를 소재로 한 프로그램은 예능이든, 드라마든 성공한 사례가 거의 없다. 그런데 연예인 한 명 없이 <청춘FC>는 이 전쟁터로 뛰어들었다. 연출을 맡고 있는 최재형 PD의 승부수였다. 그는 스포츠로 대중들이 즐길 수 있는 예능 콘텐츠를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다. 이미 <날아라 슛돌이> <천하무적야구단> 등을 통해 방송가에서 인정을 받았다. <날아라 슛돌이>는 방송가에서 축구를 소재로 성공한 거의 유일한 프로그램이지만, 축구 그 자체가 주는 매력에 집중하기보다는 최근 인기 있는 육아 프로그램의 포맷에 가까웠다.

초기에는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던 청춘FC는 벨기에와 프랑스에서 전지훈련을 진행하고 선수들의 절절한 사연이 하나씩 공개되면서 인기몰이를 하기 시작했다. 가장 큰 차별성은 가볍지 않은 예능이었다. ‘청춘’이라는 코드가 잘 먹혀들었다. 이른바 ‘삼포 세대’로 불리는 청춘들의 좌절은 최근 청년 실업률, 비정규직법과 맞물린 사회적 화두다. 무한 경쟁의 시대를 살면서도 한 번 실패하면 다시 기회를 얻기 힘들다는 두려운 현실은 축구로 투영됐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면서 시청자들의 몰입을 이끌어냈다. 부진하던 시청률은 회를 거듭할수록 올라가 최근에는 장안의 화제라는 MBC의 동시간대 경쟁 프로그램 <마이리틀텔레비전>을 바짝 뒤쫓고 있다.

“승격 경쟁 중인데 청춘FC와 게임을 한다?”

축구계에도 신선한 자극이 되고 있다. 9월17일 탄천종합운동장에서 열렸던 성남 FC와의 친선전에는 정식 경기를 방불케 하는 8000여 명의 관중이 몰려 이목을 끌었다. 올 시즌 성남의 평균 관중은 5625명이다. 8000명이 넘는 관중이 몰리는 건 이른바 K리그 빅클럽으로 꼽히는 수원·서울·전북 등과의 경기에서나 가능하다. 팬 규모를 키우고 홈 관중을 늘리기 위해 홍보와 마케팅에 막대한 비용을 쓰고 있지만 흥행에 애를 먹고 있는 K리그로서는 놀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프로축구연맹 관계자는 “경기력의 수준도 중요하지만 팬들이 애착을 가질 수 있는 스토리텔링과 영향력 있는 매체를 통한 지속적인 노출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재확인했다”고 말했다.

프로축구연맹은 청춘FC가 K리그를 노출시킬 수 있는 기회라고 판단해 10월14일 K리그 챌린지 선발팀과 친선전을 갖는다고 발표했다. 청춘FC 입장에서는 프로 2부 리그인 K리그 챌린지 각 팀의 주요 선수들로 구성된 선발팀과의 경기로 대미(大尾)를 장식하는 건 기대 이상의 결말이다. 이 경기는 청춘FC 본방송과 별개로 경기 당일 KBS2에서의 라이브 중계가 결정됐다.

그런데 이 결정이 잘나가던 청춘FC를 논란에 빠뜨렸다. 특정 팀 2군과의 경기가 아닌 올스타에 가까운 선발팀 구성은 과한 배려라는 의견이 빗발쳤다. 시즌 막판에 돌입한 K리그 챌린지는 현재 1부 리그 승격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고 있다. 1명의 선수가 아쉬운 상황에서 2~3명의 주요 선수들이 차출되는 상황을 두고 지도자와 팬들은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이다. 부상자라도 발생해 남은 시즌 운영에 차질이 빚어지면 누구 책임이냐는 성토부터, 영향력이 큰 방송국의 제안에 프로축구연맹이 너무 가벼이 움직였다는 지적까지 쏟아졌다. 이에 대해 프로축구연맹은 “홍보에 어려움이 많은 2부 리그를 알리기 위한 대승적 차원의 결정이다. 친선전인 만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청춘FC를 활용하겠다는 취지는 좋았으나, 제작진이 바라는 그림과 스케줄에 맞추다 보니 무리수가 나온 것도 사실이다. 청춘FC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팬들만큼 각자가 응원하는 팀에 몰입해 있는 K리그 팬들에 대한 배려도 부족했다. 리얼리티를 강조한다고는 하나 기본적인 스토리라인을 만들어야 하는 연출진의 사정이 일으킨 충돌이다. 이런 논란에 대해 FC 서울과의 친선전에서 만난 청춘FC의 팬 이경석씨는 “제작진과 프로축구연맹 모두 사려 깊지 못한 결정을 했다. 다른 좋은 선택지(選擇肢)도 충분히 있었다. 다만 이번 일로 인해 K리그 팬들이 청춘FC 선수들까지 나쁘게 보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들은 꿈을 위해 순수하게 노력 중이다”고 말했다.

리얼리티 예능이지만 실제와 혼돈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바로 선수들의 기량이다. 제작진은 청춘FC 선수들의 기량을 증명하기 위한 방법으로 실전을 택했다. 유럽과 국내에서 잘 알려진 팀들과의 연습경기는 선수들의 성장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실제로 방송 초반 유럽 전지훈련에서는 청춘FC가 20세 이하 팀을 상대로도 이기지 못했다. 하지만 국내로 돌아와 치른 프로팀과의 경기에서는 대등한 결과를 내고 있다. 성남에는 1-0으로 승리했고, 서울과는 1-1로 비겼다. 물론 상대팀들이 2군에 가까운 멤버를 내세웠지만, 프로팀의 선택조차 받지 못한 선수가 대다수인 청춘FC로서는 의미 있는 성과다. 이들이 실력이 있는데도 부조리한 시스템 때문에 제대로 된 기회를 받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게끔 했다.

그런데 막상 현장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청춘FC를 상대한 팀들의 지도자, 그리고 스카우트를 담당하는 전력강화팀은 실제로 프로 무대에 입성할 정도의 선수는 많지 않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오디션 프로그램과 다른 점이다. 한 관계자는 “장기 합숙을 통해 조직력과 체력이 올라왔다. 안정환과 이을용 두 감독이 최대한 전력 차를 좁힐 수 있는 축구를 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의 기량은 특출 나지 않다. 프로에 올라오기에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K리그 최강팀인 전북을 이끌고 있는 최강희 감독은 “체력과 조직력이 뒷받침되면 기술적 차이는 많이 좁혀진다. 대학팀과 프로 2군이 붙어도 대학팀이 이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청춘FC는 그 레벨보다 조금 더 높은 것 같다”고 말했다. FC 서울의 최용수 감독은 “이미 기존 경쟁 구도에서 평가를 받았던 선수들이다. 사연 없는 선수가 어디 있겠나. 그 사연만으로 인정받긴 어렵다”고 냉정하게 말했다.

“개인 기량으로 볼 때 프로에 오긴 부족하다”

물론 우리 사회의 그림자는 축구계에도 깔려 있다. 시스템 안에 존재하는 비리, 지도자 개인의 선호 등으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좌절하는 경우도 있다. 현역 최고령 선수인 골키퍼 김병지는 고교 졸업 후 일반 기업체 직원으로 일했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고 지금의 위치에 올라섰다. 하지만 그마저도 20년 전 이야기다. 지금 프로 무대에서 뛰는 선수들은 모든 고비를 헤쳐나와 자신을 증명한 선수다. 대중 앞에서 매주 성과물을 증명해야 하는 프로스포츠는 검증을 거듭하는 피라미드 구조의 가장 높은 레벨에 있다. 그 레벨과 청춘FC 사이의 거리감은 꽤 크다.

청춘FC를 맡고 있는 안정환 감독은 “지금 나오는 성과는 상대를 압도해서가 아니라 열심히 해서 나온 결과다. 지금 당장 프로에 가서 경쟁할 수 있는 선수는 많지 않다. 대신 몇 달 사이에 이만큼 성장했다는 가능성을 주목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청춘FC의 취지에 공감하는 몇몇 구단은 그 가능성 있는 선수에게 프로 입단의 기회를 주겠다는 입장도 내비친다. 조만간 종영되는 청춘FC를 마치면 그들은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된다. 그때부터는 예능이 아닌 현실을 뚫고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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