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원샷법 도입 논의 본격화…기업살리기일까 재벌특혜일까
  • 이민우 기자 (woo@sisabiz.com)
  • 승인 2015.10.15 10:09
  • 호수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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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대규모 기업 구조조정을 예고한 가운데 정치권이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원샷법)’ 도입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하고 있다. 원샷법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부실기업을 정리하고 과잉 공급이 우려되는 업종에 선제적인 구조조정을 이끌어내겠다는 취지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원샷법의 연내 처리를 강조한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재벌 특혜’라며 강하게 반발하는 상황이다.

정부는 지난 7월 이현재 새누리당 의원을 통한 의원입법 형태로 원샷법 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원샷법은 기업의 선제적인 사업재편을 지원하기 위해 각종 규제를 간소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개정안은 사업 재편을 추진하는 기업에 각종 세제와 금융 혜택을 지원하고 불필요한 규제를 간소화했다. 지주회사 체제에서 손자회사가 증손회사 지분을 100% 보유해야 하는 현행 규제를 50%로 낮추고, 간이 합병·소규모 합병 요건을 완화했다. 원샷법은 앞으로 5년 간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특별법이다.

원샷법은 기업들이 구조조정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줄여주자는 취지다. 예를 들어 상장사가 인수·합병(M&A)을 추진하게 되면 반대하는 주주들의 주식을 사줘야 하는데(주식매수청구권), 이 기간을 늘리면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지주회사가 자회사 주식의 40% 이상을 보유해야 하는 요건에 대해 2년간 유예를 인정하던 것을 3년으로 연장하는 내용도 마찬가지다. 인수 기업에 대한 세금 혜택도 기업 M&A를 쉽게 만드는 방법이다.

자료= 한국경제연구원(좌), 한국석유화학협회(우)

◇ 日, ‘원샷법’으로 기업 이익률 37% 상승

원샷법의 성공 사례는 일본에서 찾을 수 있다. 장기 불황에 시달린 일본 정부는 특단의 조치로 1999년 ‘산업활력재생법’을 재정했다. 이후 수차례 개정을 거쳐 지난해 ‘산업경쟁력강화법(일명 원샷법)’으로 확정됐다. M&A와 관련된 규제를 완화함으로써 일본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취지로 도입됐다.

이 법 덕분에 소니는 경쟁력을 잃은 PC 부문을 신속히 정리했다. 소니는 수익이 저조한 PC 사업 부문을 중소기업인 VJ 홀딩스에 매각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VJ 홀딩스의 인수 관련 세금을 절반으로 깎아줬다. 국책은행은 채무보증을 제공했다. 덕분에 소니는 스마트폰용(用) 이미지센서 같은 핵심 분야에 집중해 수익성을 극대화했다. 이로써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은 969억엔으로 전년 동기 대비 39% 늘었고, 올해 흑자 전환을 앞두고 있다. 미쓰비시중공업은 항공기 엔진 부품 사업 부문을 분할해 다른 기업과 합작법인을 세워 경쟁력을 높이기도 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13년까지 원샷법을 적용받은 488개 기업 가운데 성과 보고서를 낸 212개 기업은 자산 대비 매출액이 평균 88% 정도 늘었고, 자기자본 이익률도 37% 상승했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은 “일본의 원샷법은 고용 유지와 경쟁력 강화라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를 올렸다”고 설명했다.

◇ “韓 원샷법, 日보다 대상 적어” vs “여력 충분한 대기업도 혜택”

다만 일본의 원샷법과 한국의 원샷법 제정안은 다소 차이를 보인다. 일본은 사실상 모든 기업을 지원 대상으로 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지원 대상을 ‘과잉공급 업종’으로 한정하고 있으며 일본과 같은 정책금융 지원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원샷법 적용 대상은 기업의 규모·업종을 불문하고 과잉 공급 해소를 위해 사업재편을 하는 국내 기업이다. 법안에서 정의한 ‘과잉 공급’은 해당 업종의 국내외 시장 상황을 고려할 때 현재 또는 향후 상당 기간 공급의 증가, 수요의 감소 등으로 기업 경영 상황의 지속적인 악화가 예상되는 상태를 말한다. 중국 등 후발 주자들의 추격이 빨라지거나 산업 자체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는 철광, 석유화학, 조선업 등이 주요 대상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

새누리당 경제상황점검 태스크포스와 여의도연구원은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 공청회를 열었다. / 사진=뉴스1

반원익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상근부회장은 “적용 대상을 과잉 공급이라고 해당 업종을 한정할 경우 반쪽짜리 지원제도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병기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실장은 “비효율적인 부분에서 효율적인 기업으로 말을 옮겨 타는 산업구조 개편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면 공급 과잉이라는 기준에 국한하지 말고 생산성을 높이는 기업 구조조정을 모두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대의 의견도 있다.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에 따른 책임을 묻지 않고 구조조정 여력이 충분한 대기업에게 오히려 혜택을 준다는 것이다. 원샷법은 적용 대상에 기업 규모나 업종을 제한하지 않기 때문에 대기업도 과잉 공급 업종에 해당되면 원샷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다. 주로 야권이나 시민단체들 사이에서 나오는 이야기다. 정무위 야당 간사인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원샷법은 명백한 재벌특혜법”이라며 “법마다 입법 목적과 취지가 있는데 이를 하나로 합쳐 특별법 형태의 예외로 만드는 입법 형식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강조했다.

◇ 기업 사업 재편 과정의 대규모 실업 문제도 변수

정상기업들의 사업재편으로 발생할 실업 문제도 원샷법 통과의 변수로 꼽힌다. 정부가 지원해준 기업 재편 과정에서 상당수 구조조정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야권에서 법안 통과를 저지하는 명분인 셈이다.

원샷법에는 근로자의 고용 문제와 전직 지원금 지원 방안 등이 담겨 있지만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원샷법은 ‘정부는 사업재편을 추진하는 승인 기업의 고용 조정, 재직 근로자의 고용 안정 및 능력 개발 등을 위해 지원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기업이 사업재편을 통해 새로운 업종에 진출한 경우 근로자를 교육하고, 고용 조정 및 직업 능력 개발 지원을 하도록 했다. 사업 재편 과정에서 직장을 잃은 근로자의 생활 안정과 재취업을 위해 전직지원금을 지원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법안을 대표발의한 이현재 의원은 “당초 정부가 가져온 원샷법에는 구조조정에 따른 실업 대책이 빠져 있었다”며 “핵심 변수인 고용 문제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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