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북 편향은 ‘미미’ 박정희 업적 서술은 ‘인색’
  • 이승욱·송응철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5.10.19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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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북 좌편향’ 논란 빚고 있는 현행 고교 검정 역사교과서 7종 집중 분석

‘역사 전쟁’이 한창이다. 정부·여당이 학교 현장에서 사용하는 ‘한국사 교과서’의 ‘좌편향’을 거론하며 국정화 수순을 밟으면서 논란이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교육부는 10월12일 현행 검정 체제인 중학교 ‘역사’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바꾼다는 내용의 ‘중·고등학교 교과용 도서 국·검·인정 구분(안)’을 행정 예고했다. 절차대로라면 2017년부터는 일선 학교에서 단일 국정 역사교과서가 사용된다.

하지만 정부의 국정 교과서 추진에 반대하는 야당과 교육계와 역사학계 등의 반발도 거세다. 국정 교과서 추진을 둘러싼 찬반 양측의 주장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교과서의 문제점에 대한 공론화를 넘어 진보·보수의 이념 대립으로까지 이어지는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정작 국민 대다수는 현행 역사교과서의 내용에 과연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현행 검정 한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둘러싸고 찬반 양론이 극명히 대립하고 있다. 사진 왼쪽은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기자회견, 오른쪽은 찬성 기자회견을 하는 시민단체. ⓒ 시사저널 박은숙·연합뉴스

시사저널은 첨예한 이념 공방을 넘어 사안의 본질을 짚어보고자 했다. 정부·여당과 뉴라이트 계열 등 보수단체들이 지지하는 교학사 출판 교과서를 제외한 현행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7종을 집중 분석한 것이다. 근현대사 부분을 중심으로 새누리당과 국정 역사교과서 찬성론자들이 주로 지적하는 ‘주체사상과 세습 체제 등 북한 실상’ ‘6·25 전쟁’ ‘대한민국 정부 수립’ ‘박정희·이승만 전 대통령 등 역대 대통령에 대한 평가’ 등 네 가지 서술 항목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사진 게재 횟수나 특정 단어의 언급 빈도 등은 분석에서 제외했다. 교과서 서술의 앞뒤 맥락에 특히 주목해 관련 사안에 대한 의미를 분석하는 데 집중했다. 결과적으로 교과서마다 일부 편차는 있지만, 북한을 미화하는 등 ‘친북 좌편향으로 채워져 있다’는 일부의 주장은 다소 과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뉴라이트 등 보수 진영에서 주장하는 산업화와 정부 수립 과정에서 박정희·이승만 전 대통령의 역할에 대한 긍정 평가 등이 적어, 역대 대통령의 업적에 대한 기술은 상대적으로 불균형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주체사상’, 비판적 평가도 함께 기술

새누리당 등 국정 교과서 찬성론자들이 지적하는 현행 역사교과서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북한의 주체사상과 관련된 부분이다. “주체사상을 교묘히 미화”(10월15일 김정훈 새누리당 정책위의장)하거나 “세계에 유례없는 3대 세습 독재의 비정상적인 체제인 북한을 미화”(10월12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등으로 비판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논란 초기부터 주체사상을 교과서를 통해 상세히 가르치는 것 자체를 문제 삼았다. 하지만 지난 9월23일 교육부가 배포한 ‘사회과 교육과정’의 성취 기준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논란을 낳았다. 이 기준에 따르면, 교육부는 ‘북한의 변화와 남북 간의 평화통일 노력’이라는 소주제의 학습 요소로 ‘주체사상과 세습 체제’를 제시했다. 

현행 한국사교과서에서 주체사상을 언급한 부분을 직접 살펴봐도 ‘주체사상 등 북한을 미화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국정 교과서 찬성론자 측에서 ‘주체사상을 교묘히 미화’했다는 근거로 삼는 <금성출판사> 한국사교과서를 들여다보자. 이 교과서의 407쪽 하단 ‘더 알아보기’에는 주체사상의 성립 과정과 내용이 주체사상탑 사진과 함께 실려 있다. 하지만 “주체사상은 ‘김일성주의’로 천명되면서 반대파를 숙청하는 구실 및 북한 주민을 통제하고 동원하는 도구로 이용됐다”는 설명도 함께 기술했다.

다른 교과서에서도 주체사상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함께 서술했다. <비상교육> 교과서 386쪽에서는 ‘김일성 독재 체제 확립’이라는 중간 제목 아래 “주체사상은 북한의 실정에 맞춰 주체적으로 수립한 사회주의 사상”이라고 기술했다. 하지만 이어 “(주체사상은) 김일성 독재 체제의 사상적 밑받침이 되었다”는 부연 설명도 기술돼 있다.

<천재교육> 교과서는 본문에서 주체사상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서술하고 있지 않았지만, 318쪽 하단 ‘자료 읽기’(‘주체’의 강조와 김일성 우상화) 아래 ‘도움 글’에서 “김일성은 1967년 ‘주체사상’을 통치 이념으로 확립했으며, 이는 김일성의 권력 독점과 우상화에 이용됐다”고 기술했다.

■ 7종 모두 ‘6·25 전쟁은 남침’ 언급

6·25 전쟁과 관련한 현행 한국사교과서의 기술 내용도 국정화 찬성론자들이 문제 삼는 부분이다.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10월8일 현행 한국사교과서의 문제점을 거론하면서 “6·25가 김일성이 소련과 중국의 지원 약속을 얻어낸 후 치밀하게 계획한 전쟁이었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전쟁 도발 책임을 불명확하게 기술하고 있다”면서 “심지어 ‘남침’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 교과서도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본지가 확인한 고교 한국사교과서 7종 중 6·25 전쟁과 관련한 기술에서 ‘남침’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은 교과서는 없었다. <리베르스쿨> 교과서 343쪽에는 ‘1950년 6월25일, 전쟁이 일어나다’라는 중간 제목 아래 “파죽지세로 남하한 북한군은 남침 개시 3일 만에 서울을 함락했다”고 서술했다. <금성출판사> 교과서의 경우 “인민군은 1950년 6월25일 남침을 강행했다”(378쪽)고 서술하고, 379쪽 하단(탐구활동)에서 6·25 전쟁의 전개 과정을 지도로 게재하면서 ‘인민군의 남침’이라는 제목을 썼다. 또 377쪽에서는 ‘북한 정권의 전쟁 준비’라는 중간 제목 아래 “한반도 안팎의 정세가 불안한 가운데 북한은 전쟁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면서 6·25 전쟁 전 북한에 대한 군사 지원 및 중국과의 군사 비밀협정 체결 등을 기술했다.

일각에서 6·25 전쟁 당시 북한군에 의한 학살보다 미군과 국군의 학살 내용을 강조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전쟁 중 민간인 학살과 배상을 강조한 <미래엔> 교과서는 318쪽 하단 상자 글(‘아! 그렇구나’)에서 미군에 의한 노근리 학살 사건과 국군에 의한 거창 양민 학살 사건을 민간인 학살의 대표 사례로 꼽고, 거창 사건에 대한 배상 판결 내용도 상세히 기술했다. 하지만 북한군의 함남 함흥과 전남 영광 학살 사건을 언급하고, “북한 정권은 전쟁 중 저지른 민간인 살상 행위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는 비판적인 논조를 함께 실었다. 그 외 대다수 교과서는 남한과 미국, 북한에 의한 민간인 피해 사례를 공통적으로 언급했다.

현행 검정 한국사교과서 8종 ⓒ 시사저널 박은숙

■ ‘북한 국가 수립’이라는 직접 표현은 없어

김영우 새누리당 수석부대변인은 10월8일 현안 브리핑에서 “현행 역사교과서 중 대다수가 1948년 대한민국은 ‘정부 수립’, 북한은 ‘국가 수립’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무성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비슷한 견해를 내놓았다. 그러나 본지가 확인한 결과, 고교 한국사교과서에서 ‘국가 수립’이라는 표현은 찾아볼 수 없었다. <금성출판사> <동아출판> <리베르스쿨> <미래엔> <비상교육> <지학사> 교과서 등 6종의 교과서에서 확인된 표현은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수립’이었다. <천재교육>은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정부 수립’이라고 적었다. 남한에 대해선 <금성출판사> <리베르스쿨> <미래엔> <지학사> <천재교육> 등 5종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고 썼다. <동아출판>은 ‘대한민국 정부 출범’, <비상교육>은 ‘대한민국 수립’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정작 국정 교과서 찬성론자들이 문제 삼는 부분은 교과서에서 사용된 단어보다는 ‘건국 시점’에 관한 논쟁으로 보인다. 남한의 ‘정부 수립’ 표현을 지적하는 이면에는 건국일을 언제로 보는지에 대한 견해 차이가 연관돼 있다는 것이다. 이는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첨예한 논란이 되는 주제다. 통상적으로 학계에서는 임시정부가 세워진 1919년 4월11일을 건국 시기로 판단하는 반면, 뉴라이트 계열 등 일부 보수 성향의 학자들은 해방일인 1948년 8월15일을 건국일로 본다.

■ 이승만·박정희, 긍정적 역할 언급 적어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등 역대 대통령에 대한 업적 평가도 국정 교과서를 주장하는 측에서 제기하는 문제다.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 등 보수 진영에선 “현행 한국사교과서들이 이들 대통령의 업적을 폄훼하고 독재자로 낙인찍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의 경우 친일파 청산에 소극적이었다는 점과 반공을 앞세운 독재 체제, 사사오입 개헌, 부정선거, 정치적 반대 세력 탄압, 그리고 4·19 혁명으로 대통령직을 사임하기까지의 부정적인 사건들에 대해 심도 깊게 다루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정부 수립 과정이나 재임 기간의 긍정적인 활동 등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언급이 없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기조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현행 교과서 대부분은 한·일 국교 정상화와 베트남 파병, 유신 체제 등 부정적인 면모에 주목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편 현행 교과서들은 박 전 대통령의 치적으로 평가받고 있는 ‘경제 발전’ 등 산업화 과정에 대해 비중 있게 다루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산업화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의 역할 등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거의 없었다. 실제 <두산동아>와 <지학사>의 경우 박 전 대통령과 관련한 부정적인 내용에 대해 언급할 때는 ‘박정희 정부’라는 표현을 반복해서 사용했지만, 산업화 과정에 대해 설명할 때는 ‘박정희 정부’라는 표현을 서두에 단 한 차례만 사용했다.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현행 교과서들에서는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상당 부분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현행 교과서들이 4·19 혁명과 유신헌법 개정 등 한국 근현대사의 어두운 사건을 자세히 다루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보인다. 반면 남북정상회담 등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시절 남북 화해 무드를 자세히 소개하면서 역대 대통령들에 대한 긍정과 부정 평가의 불균형이 나타난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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