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결국 받아들이는 자의 몫이다”
  • 조철│문화 칼럼니스트 (.)
  • 승인 2015.10.22 14:14
  • 호수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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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에 대한 거의 모든 지식> 펴낸 박문국씨

최근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안을 최종 확정한 정부가 공식적인 법적 절차를 밟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역사 좀 아는 사람’들이 탄식을 연발하고 있다. 그들의 탄식 이유를 여쭈니, 역사는 ‘흐름’인데 그 흐름을 막아 고체로 만들거나 박제화하려 하기 때문이란다. 야당과 역사학계와 일선 교육자 등은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고 반발하며 정치적 갈등을 유발한 당사자들을 비난하고 나섰다.

새 교과서를 챙겨야 할 학생들만 헷갈리게 생겼다. 교과서를 통해 역사를 접하려는데, 그 교과서를 두고 어른들이 ‘정쟁’을 벌이니 말이다. 최근 인기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를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판타지를 보고 자란 아이들이니 퓨전 사극을 정통 사극인 양 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학생들을 가르쳐야 할 젊은 역사학도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마침 <한국사에 대한 거의 모든 지식: 조선의 왕 이야기>라는 책을 펴낸 젊은 저자가 화제여서 만나봤다.

ⓒ 시사저널 이종현

“대중 매체 영향력이 역사 왜곡하기도”

“역사를 알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총체적인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런 흐름에 대한 이해가 외우는 것으로 가능할 리 없다. 그래서 주목하는 것이 ‘이야기’다. 다양한 이야기가 있을 수 있는데 그것을 하나로 통일한다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싶다.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여럿일 수 있는데, 통념보다는 개연성을 열어놓고 토론하는 게 맞지 않을까. 그래서 누군가는 통념이 아닌 연구의 결과를 전해줄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이 책을 쓰면서 조선 왕조를 연구한 학자들의 의견을 최대한 살폈다. 그리고 누구라도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재구성했다.”

지하철 합정역 인근 카페에서 만난 저자 박문국씨(28). 교수도 역사학자도 아닌 박씨가 ‘거의 모든’을 표방한 역사서를 펴내다니 무슨 배짱일까. 학자라 하더라도 한창 연구해야 할 나이일 텐데 하는 의심도 살짝 일었다. ‘국정화’를 두고 어느 편인지도 궁금했다. “역사를 두고 편을 갈라 어느 편이 옳다고 할 수는 없다. 불편한 소리지만 역사는 결국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이기 때문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다른 역사적 내용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 또한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역사란 사료를 토대로 연구하는 것이기에 좀 더 여러 방향으로 알아야 한다.”

박씨는 카카오스토리 역사 부문 1위 채널인 <5분 한국사 이야기>를 운영하면서 이목을 끌었다. 채널을 개설한 지 한 달 만에 20만명의 구독자가 그의 글에 매료됐고, 현재는 그 수가 36만명에 이르며 지금도 꾸준히 오르고 있다. 대학에서 문예창작학과 사학을 전공한 박씨는 취미 삼아 시작한 일이 생각보다 커지자, 더 정확한 고증을 위해 매일 다섯 시간 이상 책과 논문을 살피고 관련 글을 올리는 데 집중했다. 그는 조선의 왕 이야기부터 시작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많은 사람이 조선의 왕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정사와 야사가 뒤범벅된 책과 대중 매체를 접하다 보면 무엇이 사료에 가장 근접한 진실인지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드라마나 영화는 그 특성상 역사적인 사실과 다른 상상력을 더하거나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장치를 꾸밀 수밖에 없는데, 이 지점에서 역사를 잘못 받아들이거나 오인하는 경우를 왕왕 목격한다.”

예를 들면 사도세자의 경우 ‘노론 음모론’이 있는데, 노론이 이간질해서 영조와 사도세자의 비극이 있었다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박씨는 “노론이 아예 개입하지 않은 건 아니겠지만 그건 너무 과중한 측면이 있다. 학계의 중론이기도 하고 언제든지 그런 시각을 제시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옳다고 하면 또 안 된다고 본다. 학계에서 이런 연구가 진행되고 비교적 검증된 학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과정이 있는데, 그걸 다 무시하고 ‘학계가 잘못된 걸 말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역사를 통해 미래를 바라볼 수 있어야”

10년 넘게 역사 공부를 했어도 역사의 매듭이 술술 풀리지 않는 것은 역사 지식을 단편적으로 암기만 했기 때문이다. 몇 연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태종을 알기 위해서는 고려 말 상황과 태조를, 세종을 알기 위해서는 태종을, 연산군을 알기 위해서는 사화(士禍)가 발생한 이유를 알아야 더 깊고 재미있게 역사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누구도 한 줄로 설명될 수 없기에, 재위 기간이나 업적만을 한정해 역사적 방점을 찍어 이야기할 수 있는 왕도 없다. 그래서 박씨는 조선의 왕 이야기를 하지만 결국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펼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의도에서건 왕이나 영웅을 미화하는 데 급급해서는 안 된다고 경계한다. ‘성군’도 ‘성웅’도 다 인간이었고, 그래서 결점도 있었고 실책도 있었으니 장단점에서 배울 건 배우고 반성할 것은 반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종대왕이라고 뭐든지 다 잘한 건 아니다. 화폐 개혁 이야기다. 세종대왕이 명나라 화폐제도를 받아들여 조선에도 화폐를 도입해야겠다고 했는데 이게 조선 실정과 전혀 맞지 않았던 거다. 사람들은 화폐를 안 쓰고 쌀로 물물교환을 하는데 세종대왕이 이것을 법으로 다스렸던 것이다. 전 재산을 몰수하는 식으로. 세종대왕 같은 성군이라도 단점은 있었고, 양면이 다 있었다는 사실을 본다면 역사가 복합적으로 읽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박씨에게 과거는 단지 고루한 것이 아니라 현실에 분명히 대입할 수 있는 것이다. 역사는 인류의 경험으로서 유용한 것이다. “우리는 100년밖에 못 살지만 선조들이 수천 년의 기록을 남겨주었고, 그것들을 보면서 미래를 바라보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그래서 더더욱 역사가 재미있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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