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좀비 기업’ 솎아내기 고삐 당겼다
  • 이준영 기자·김병윤 기자 (lovehope@sisabiz.com)
  • 승인 2015.10.27 16:42
  • 호수 135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장·당국, 기업 구조조정 방향 공감..속도에는 신중

당국이 부실 기업 구조조정에 적극 나섰다. 시장은 대체로 당국의 정책 방향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대신 구조조정이 마땅한 보완책 없이 이뤄질 경우 나타날 산업 충격에 대해서는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27일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은 10개 시중은행장들과 만나 선제적인 기업 구조조정을 강조했다. 금감원은 앞서 지난주 채권은행 기업 여신 담당자들을 소집해 기업 신용평가 강도를 높여 부실한 기업을 솎아낼 것을 요구했었다.

금감원이 강조하는 기업 구조조정 대상은 이른바 좀비 기업으로 불리는 부실 기업이다.

채권은행들은 중소기업 중 개별 은행 신용공여액이 50억원 이상이거나 총 신용공여액이 500억원 미만인 곳 중 최근 3년간 이자보상배율(영업이익/금융비용)이 1 미만인 기업 등을 부실 가능성이 큰 기업으로 간주하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이러한 기업은 총 1934곳인데, 채권은행은 이들 기업을 A부터 D까지 총 4개 등급으로 분류하고 있다. 채권은행은 C와 D등급 기업을 각각 워크아웃과 기업회생절차로 유도할 예정이다. 당국이 언급하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은 은행이 C와 D등급을 더 늘리라는 것이다.

◇기업 운명 칼자루 쥔 은행, 당국 정책으로 호재 전망

시장도 기업 구조조정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다.

김은갑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계기업을 대출 연장에 의존해 지원하면 해당 업종 내 시장점유율과 수익성 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업종 전체 설비 투자도 위축시킨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한계기업 존속은 경제 내 대출 자원 배분의 왜곡도 발생시킨다”며 “한계기업을 지원하면서 존속시키는 것 자체로 다른 한계기업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상조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 구조조정은 한국 경제의 사활이 걸린 문제”라며 “구조조정을 빨리 시행하되 관치 구조조정은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때문에 이번 당국의 조치는 국내 경제 전반에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됐다. 특히 기업 지원 주체인 은행은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됐다.

김은갑 연구원은 “한계기업 구조조정이 강도 높게 진행되면 은행 주가에 호재”라며 “구조조정 과정에서 충당금비용 증가 등 부담이 발생하나 이는 과거 부담의 경감 또는 향후 발생 가능 비용의 조기 인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한계기업 지원의 부담이 감소하면 대출 자원이 좀 더 효율적으로 활용될 수 있고, 최근 수년간 보여준 바와 같은 간헐적인 기업 부실화를 감소시켜 미래 충당금비용이 감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철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은행 입장에서는 단기적으로 충당금 부담 탓에 이익이 줄어들 수 있다”며 “정부 주도 한계기업 구조조정 범위 등이 확정되지 않았기에 그 손실 폭은 아직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다만 은행들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신용위험평가를 통해 추가적으로 충당금을 많이 쌓아놓은 상황”이라며 “이번 기업 구조조정 수준이 신용위험평가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 내 늘어나는 좀비 기업..업계는 구조조정 여파 견딜 수 있을까

이날 진웅섭 금감원장은 기업 옥석 가리기를 강조했다. 살릴 수 있는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을 구분해 은행이 지원하라는 얘기다.

당국의 이 같은 행보는 과거 당국의 무분별한 지원과는 다른 모습이다. 김은갑 연구원은 “외환위기 당시에는 계획적으로 구조조정을 할 틈도 없이 위기상황에서 한계기업이 정리된 반면 2008년 금융위기 때는 한계기업화되는 초기 시점에 한계기업이 정리될 틈도 없이 유동성 지원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이제 와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논하면 과거 지원비용에 대한 아쉬움이 생길 수 있으나 이미 매몰비용이 됐다”고 말했다.

시장은 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당국의 방향을 확인했다. 하지만 기업 부실화가 점차 늘어나는 추세에 있어 구조조정 작업 속도가 중요해졌다.

한국은행이 이날 발표한 2014년도 기업경영 분석에 따르면 이자보상배율이 1미만인 기업은 조사 대상 53만개 기업 중 31.2%에 달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이자보상배율 1과 0 미만 기업 비율은 2011년 이후 가장 높다.

특히 대기업 집단의 부실화가 커졌다. 안유미 자본시장연구원(KCMI) 연구원은 “최근 국내외 경기 침체로 인한 불확실성으로 국내 기업의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일부 대규모 기업집단의 재무 건전성이 더욱 취약해졌다”고 말했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대규모 기업집단 중 부채비율(부채총액/자본총액)이 200%를 초과한 기업집단은 지난해 기준으로 10개사다. 그중 1개사를 제외하곤 부채비율은 2013년에 비해 상승했다.

안유미 연구원은 “국내 은행 기업 여신 중 부실채권이 차지하는 비율은 8분기 연속 2%를 초과했다”며 “그중 대기업 여신 부실채권 비율이 중소기업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고 말했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올 1분기 기준 부실채권 비율은 대기업(2.46%)이 중소기업(1.95%)보다 0.51%포인트 높았다. 특히 조선업(5.45%)·건설업(5.28%) 등은 업종의 장기 불황으로 인해 높게 나타났다.

자료=KTB투자증권

김재우 삼성증권 책임연구위원은 “아직 구조조정 내용이나 범위가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영향력에 대해서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며 “이번 정책으로 구조조정 대상이 되는 대기업 및 중견기업의 규모와 신용위험평가에서 C, D 등급에 들어가는 기업의 규모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