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탈출, 역지사지가 정답이다
  • 이병철 |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 승인 2015.10.29 16:58
  • 호수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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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기준 상대에게 강요하는 게 문제의 시작

세상이 점점 바쁘게 돌아가면서 이른바 ‘분노범죄’가 여러 사회 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최근에는 이러한 현상의 기저에 분노조절장애가 있다는 점이 주목을 받고 있다. 층간 소음이나 차선 끼어들기 같은 일들로 예기치 못한 사고가 나기도 하며 사소한 시비로 끔찍한 결과가 벌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사건들은 일상 중에 사람들 사이에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긴장을 놓을 수 없도록 만든다. 이로 인해 불안과 의심이 늘어나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사람들과의 관계까지 위축시킨다.

적절하게 화를 내는 것은 덮여 있던 갈등을 드러내 해결을 보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조절되지 않는 분노는 참는 것도 병이 되고 표현하는 것도 큰 문제를 일으킨다. 화가 나는 상황마다 감정을 억누르는 것은 우울증을 일으킬 수 있고, 그때마다 쏟아내는 것도 습관적으로 화를 내는 성격을 만들 수 있다. 화를 내더라도 어느 선에서 적절히 표현하고 일부는 나를 변화시키는 동력으로 사용한다면 최선이겠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분노 감정이 떠오를 때, 눈을 감고 화가 났던 상황을 떠올리는 것도 화를 가라앉히는 좋은 방법이다. ⓒ 시사저널 우태윤

분노하는 상황은 ‘내가 옳고 상대는 틀렸다’는 기준에 의해 생긴다. 물론 그 기준은 자신이 마음속으로 정한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공통된 도덕 기준과 양심을 가지고 행동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가진 기준이 절대적이고 기본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은 자라온 배경이나 성격,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기준으로 판단을 할 수 있다. 깊이 생각해보면 자신의 경험에 의한 가치관과 기준이라는 것은 비슷하게 자라온 환경, 비슷한 교육, 비슷한 경제 수준을 가진 대한민국 내에서도 대단히 제한된 범위 내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기준이다. 다른 배경과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같은 일도 전혀 다른 기준으로 볼 수 있다. 때로는 그러한 기준은 상대적이기도 하다.

자신의 기준을 강요하는 것이 분노의 시작

다큐멘터리 영화 <버드맨>(2012년 개봉)에서는 예술적 열정이 남다른 배우가 나온다. 주인공은 연기에 대한 열정이 부족한 동료들에 대해 심하게 화를 내고 비난한다. 그런데 자신이 비난하던 동료가 갑자기 죽고 천재 연기자가 동료 배우로 교체된다. 이 천재는 주인공보다 연기력이나 열정이나 예술성에서 모두 뛰어나다. 그러자 이번에는 주인공 자신이 상대적으로 속물이 된 것 같은 생각에 입장이 뒤바뀌어 고통을 받는다. 자신이 무시했던 만큼 무시당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사소한 비난에도 예민해진다.

분노를 폭발시키는 것은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만 나 자신에게도 많은 악영향을 끼친다. 내가 누군가에 의해 화가 나는 상황이 되면 내 기준을 상대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만약 상대방이 수긍하지 않는다면 내가 아무리 화를 낸다고 해도 사건은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지닌 기준을 포기하면 세상이 무너지고 기본이 흔들릴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다른 사람도 나와 비슷한 존재이고 나름의 기준을 갖고 있다. 내 것을 강요하지 않더라도 일이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때로는 과거의 상처나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화를 내는 경우도 있다. 예전에 안 좋았던 경험에 비추어 사소한 일에도 과도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있고, 만약 이번에 넘어가면 앞으로 똑같은 일이 반복되리라는 예상에 별것 아닌 일에 심하게 화를 내는 경우도 있다. 이 두 가지 모두 자기의 기준일 뿐이다.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상대방이 왜 분노를 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고 그러면 부딪치게 되는 것이다.

‘전조 현상’ 집중해야 분노 조절 가능

자신의 기준을 상대에게 강요하는 것, 이것이 문제의 시작이다.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은 이성적으로 대화와 이해로 맞춰나가야 한다. 감정이 개입되면 누구나 ‘왜 이런 걸 가지고 이렇게까지 하느냐’며 반발할 수밖에 없다. 사람은 감정을 공격받게 되면 옳고 그른 것을 떠나 자신의 정체성을 위협받기 때문에 과도하게 흥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분노는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고 일을 완전히 그르치지는 않더라도 단지 상대가 두려워 일시적으로 덮어두는 정도의 역할을 할 뿐이다.

분노 감정이 일어날 때 우리는 이것을 미리 알 수 있다. 눈을 감고 자신이 화를 냈던 상황을 떠올려보자. 원인은 다를 수 있지만 분노가 차오르는 몸의 느낌은 항상 일정하게 나타난다. 일종의 전조(前兆) 현상이다. 어떤 사람은 마음속에서 뭔가 욱하는 것이 차오르는 것 같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몸이 부들부들 떨리면서 정신이 없어지고, 어떤 사람은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시작되기도 한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한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분노 전의 몸의 변화는 일정하다. 만약 이러한 분노 변화를 주의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다면 내가 화를 내는 상황을 마음속으로 그리면서 몸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를 생각해보는 게 좋다.

그러면 신체의 변화가 분노를 폭발시키기 상당한 시간 전에 나타난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러한 느낌이 올 때 자리를 피하거나 심호흡을 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이 자신도 모르게 분노를 폭발시키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 대체적인 경우 사람들은 자신을 무시한다는 느낌이 들 때 분노가 폭발한다. 하지만 상대가 나를 무시한다는 것은 대단히 주관적인 판단이고 때로는 전혀 엉뚱한 내용으로 오해를 해서 화를 내기도 한다. 화가 나는 상황에서 잠시 숨을 돌려 상황을 다르게 생각해보거나 끓어오르는 분노 반응을 가라앉히는 것은 효과적인 감정 조절 방법이다. 나와 상대가 전혀 다른 기준으로 한 가지 상황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또 상황이 악화되어 화가 끓어오르는 경우 사전에 몸의 반응을 감지해 극단적인 상황을 피한다면, 조절되지 않는 분노로 낭패를 보는 일은 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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