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 직전의 프랑스 ‘68혁명’ 되살아나나
  • 최정민│프랑스 통신원 (.)
  • 승인 2015.10.29 17:13
  • 호수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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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프랑스 노조들의 임원 폭력 사태에 이어 경찰관·교사들도 연이어 반정부 시위

10월5일 프랑스 파리 인근에서 셔츠가 찢긴 채 철책을 넘는 한 남성의 사진으로 전 세계 언론이 도배됐다. 최근 급증한 시리아 난민의 모습이 아니다. 사진 속 주인공은 프랑스 국적 항공사인 ‘에어프랑스’의 중역이었다. 성난 노조원들을 피해 에어프랑스 간부 두 명이 보안요원의 도움으로 철책을 넘어 피신하는 장면은 그대로 적나라하게 전파를 탔다. 좌파 정권인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폭력으로 대화가 중단된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이번 사태로 인한 ‘프랑스의 국가 이미지 추락’을 우려했다. 에어프랑스는 발 빠르게 특별 홍보 영상을 제작해 인터넷 사이트에 올렸다. 프랑스 항공업계 전문지인 ‘에어조르날’은 에어프랑스가 이미지 개선 작업에 착수했다고 보도했다.

일본을 방문 중이던 마뉘엘 발스 프랑스 총리는 “폭력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행위”라고 규탄했으며, 귀국 직후 에어프랑스 경영진을 위로하는 자리에서 “난봉꾼들의 행패”라고 발언 수위를 높였다. 이에 질세라 우파 야당인 공화당의 니콜라 사르코지 당수도 “국가는 해체 상태”이며, 이번 사태를 두고 “난장판”이라고 못 박았다. 사르코지의 발언은 이번 사태를 정치화한다는 우려까지 촉발했다. 그 이유는 이 표현이 과거 ‘68혁명’(1968년 5월 프랑스에서 일어난 사회 변혁 운동) 당시 샤를 드골 대통령의 발언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10월5일(현지 시각) 파리 북쪽 로이시 공항에 위치한 에어프랑스 본사에서 인사 담당 국장인 자비에르 브로세타(흰 셔츠 차림)가 경비원들의 도움을 받아 빠져나가려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노조를 비롯한 일부 좌파 정치인들도 가만있지 않았다. 이번 폭행 사태의 주동자가 다수 포함되어 있는 CGT(프랑스노동총연맹)의 필립 마르티네즈 사무총장은 ‘프랑스앵포’와의 인터뷰에서 “그까짓 셔츠 찢어졌다고 이 난리인가”라며 “우리에겐 노동자 2900명의 밥줄이 걸린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해고야말로 폭력이다”라고 일갈하며 “프랑스 사회는 지금 폭발 직전에 있다”고 경고했다.

좌파 정치인인 장 뤽 멜랑숑은 한 발짝 더 나아갔다. 10월13일 보도 전문 채널인 ‘BFMTV’에 출연해 노조들의 행동을 지지하며 “계속 나아가라”고 요구한 것이다. 당황한 진행자가 재차 되묻자, “내가 대신 감옥에 갈 테니 노조는 겁먹지 말고 강경하게 나가라”고 주문했다. 흥미로운 것은 지금 프랑스에서는 폭력에 대한 비판 여론 속에서도 멜랑숑의 과격 발언이 박수를 받는 분위기라는 점이다. 사태의 파장이 심상치 않자 좌파 여당 사회당의 중진인 줄리앙 드레는 즉각적으로 선 긋기에 나섰다. 그는 민영방송인 ‘카날플뤼스’에 출연해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고 전제하며, “셔츠를 찢은 다음엔 뺨을 때리고, 그다음엔 처형을 할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그러나 방청객은 멜랑숑의 발언에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이번 사태를 촉발시킨 에어프랑스 직원 감원 계획에 대한 ‘프랑스2’의 보도에 따르면, 에어프랑스는 지난 2012년부터 지상 근무자 4193명을 비롯해 스튜어디스 750명, 조종사 236명 등 총 5179명을 명예퇴직 형식으로 감원했다. 그럼에도 생산성은 평균 20% 신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조 측에서 주장하는 ‘막대한 희생’이 설득력을 얻는 대목이다. 회사 측이라고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현재 에어프랑스는 다른 유럽의 항공사들보다 생산비가 25%나 더 높다. 그러나 ‘프랑스2’의 경제 전문가인 줄리앙 뒤페레는 “당장 2900명의 인원을 감축해야 할 만큼 시급한 상황은 아니다”고 결론지었다. 노조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여론에서도 나타났다. ‘메트로’와 여론조사 전문 기관 ‘이폽’이 공동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정부 고위층의 비판 논조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태에 대해 응답자 중 54%가 노조의 행동을 ‘이해한다’고 밝혔다. 38%가 폭력 행위를 비판했지만, 과반 이상이 그들의 행동에 공감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좌파’ 올랑드 정권의 우편향적 행보 논란

에어프랑스 사태의 여진이 가라앉지 않고 있던 10월19일, 올랑드 대통령은 직접 라디오 방송에 출연했다. 같은 날 예정되었던 ‘사회적 협의’를 주재하기에 앞서 자리한 것이다. 올랑드 대통령의 라디오 인터뷰는 취임 이후 네 번째다. 먼저 일련의 사태에 대해 “에어프랑스 사태가 프랑스 사회를 요약한 것이라는 지적은 옳지 않다”라고 전제하며, “끓는 냄비가 폭발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몇몇 있다”라는 말로 강경 발언을 쏟아낸 멜랑숑과 노조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그리고 “우리는 좀 더 차분히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돌아가는 상황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아 보인다. ‘폭발’을 경고하듯 대규모 시위가 연이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10월13일 7500명의 경찰이 파리 시내로 쏟아져 나왔다. 시위를 막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니라 시위를 하러 나온 것이다. 경찰의 신규 인력 확충과 근무 조건 개선을 내세우며 시위에 나선 이들은 ‘여러분의 경찰은 아프다’는 피켓을 들고 거리를 행진했다. 16일엔 고등교육 관련 교사들이 거리로 나섰다. 현재 발카셈 장관이 추진하고 있는 교육 개혁에 대한 반발이었다.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사회적 협의’ 테이블을 만들었지만, 노조 중엔 CFDT(프랑스민주노동동맹)만이 자리를 지켰을 뿐이다. 더구나 이러한 협의에 대한 기대감은 싸늘하다 못해 냉혹하다. ‘르피가로’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프랑스 국민의 90%가 이러한 협상은 실효를 거두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서 ‘말’이 아닌 ‘행동’으로 움직일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각종 경제정책에 대한 올랑드 정부의 선명성 부재 문제는 정부 내에서 여러 불협화음을 불러왔다. 집권 초기 올랑드와 아르노 몽트부르 재경장관 간의 엇박자에서 시작돼, 올해 초 ‘젊은 세대의 상징’이라고 한껏 치켜세우며 후임 경제장관으로 영입한 37세의 에마뉘엘 마크롱 장관의 우편향적 행보는 올랑드 정부의 정체성을 흐리게 해왔다. 10월21일에는 급기야 변호사들까지 법무장관을 비판하는 피켓과 함께 거리로 나섰다. 그동안 동성애 법안을 통과시키는 등 개혁적 행보로 좌파 정부의 성향에 가장 잘 맞는 장관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던 토비라 장관마저도 이제 도마에 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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