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당신은 한국인입니까?
  • 박영철 편집국장 (everwin@sisapress.com)
  • 승인 2015.11.05 13:26
  • 호수 1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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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사이 기온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갑자기 겨울이 찾아온 듯한 느낌입니다.

국정 교과서 사태로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정부에 불리한 쪽으로 여론이 바뀌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고생을 많이 해야 할 듯합니다.

‘교과서 전쟁’은 얼핏 보면 민생(民生)과는 아무 상관없는 분야로 보입니다. 체감 관심도도 별로 높지 않습니다. 실제로 최근 한 달 동안 다른 사람들과 밥 먹으면서 교과서 이야기가 화제로 나온 적이 없으니까요.

그럼에도 교과서 문제는 최소한 내년 총선 때까지 우리 사회를 두 쪽 낼 최대 이슈 중 하나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역사는 민생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대정신에 맞는 역사관의 소유자가 권력을 잡으면 국태민안(國泰民安)이 저절로 됩니다.

단어 끝에 관(觀) 자가 붙는 분야는 지극히 문과적입니다. 해석의 분야라는 의미죠. 역사가 대표적 사례입니다. 역사는 시험 유형으로 따지면 지극히 주관식입니다. 역사에서 이른바 팩트(사실)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옛사람들도 이런 이치를 잘 알았고 이런 속담도 만들어놨습니다. “이기면 충신, 지면 역적”.

솔직히 말하면, 우리 사회는 역사, 특히 자국 역사에 대한 관심이 별로 높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국사로 불렀고, 요즘은 한국사로 부르는 분야입니다. 서울대를 제외한 주요 대학들이 입시 과목에 한국사를 채택하지 않는 현실만 봐도, 자국 역사에 대한 한국인들의 관심 정도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한국사 교육을 강화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주지하다시피 자율이 아니라 타율적 요소가 결정적입니다. 이웃나라 중국과 일본이 역사 문제로 대한(對韓) 공세를 끊임없이 퍼붓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사 교육 강화 필요성에 공감대가 형성된 것까지는 좋습니다.

그러나 역시 콘텐츠가 문제인 모양입니다. 교과서에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지를 둘러싸고 국론이 양분돼 있는 걸 보면요. 작금의 형세를 보면 극심한 진통이 불가피합니다. 다만 좌파와 우파가 간과하는 것이 있습니다. 한국 내 교과서 대결이 격화될수록 중국과 일본은 회심의 미소를 짓습니다.

중국과 일본은 역사 교육이 잘되는 나라입니다. 중국은 숱한 이민족 왕조 역사까지 자국 역사로 편입시키는 놀라운 역사 왜곡을 일삼아온 덕분에 중화(中華)사상이 체질화돼 있습니다. 일본은 섬나라여서 영토가 비교적 분명하고 천황(天皇)을 일본인의 시조로 둔갑시켜 모든 일본인은 천황의 신민(臣民)이라는 의식이 확고합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예컨대 단군이 조상이냐 여부를 둘러싸고 종교 간 갈등이 심합니다. 나라에 대한 시각도 그다지 긍정적이진 않습니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지역민 개념이 한국인 개념보다 강해 보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국민 형성(nation-building)’입니다. 진정으로 중국과 일본에 맞서 싸우고 싶다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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