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밀리면 내년 총선도 진다”
  • 유지만 기자 (redpill@sisapress.com)
  • 승인 2015.11.05 14:09
  • 호수 136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16 예산 전쟁’ 5대 핵심 쟁점

2016년 ‘예산 전쟁’이 시작됐다. 국회는 10월26일 2016년 예산안 공청회를 시작으로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가동하며 내년도 예산안 심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예결위는 11월30일까지 전체회의를 진행한 후 예산안 심사를 마무리한다.

여야는 해마다 예산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했지만, 올해 분위기는 예년과 사뭇 다르다. 박근혜 정부 후반기에 접어드는 데다 내년 4·13 총선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또 정부가 강하게 밀어붙이고 ‘국정 교과서’와 ‘노동 개혁’이 정치권의 핵심 이슈로 부각되면서 내년 예산안 처리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기획재정부는 내년 예산을 올해보다 3% 늘어난 386조7000억원으로 책정했다. 분야별로는 보건·복지·노동과 국방, 외교·통일 분야 등을 증액했다. 산업과 중소기업·에너지 부문과 연구·개발(R&D) 분야 등은 올해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으며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관련 예산은 크게 줄였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10월28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2016년도 예산안에 대해 제안설명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시사저널은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내년 예산안을 기준으로 5대 주요 쟁점을 선정하고, 이에 대한 여야의 입장을 알아봤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미 국정 교과서와 새마을운동, 특수활동비 등을 포함해 정부가 제출한 내년 예산안의 2% 정도인 8조원을 감액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세부적으로는 국정 교과서, 박 대통령 관심 사업, 특수활동비 등이다.

야당은 예산안이 정부와 여당의 뜻대로 통과될 경우 내년 총선 승리까지 장담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다. 반면 정부와 여당은 야당이 정쟁에만 몰두하고 있다며 내년 예산안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핵심 의제인 ‘국정 교과서’와 관련해서는 이념논리까지 적극 끌어들이며 여론전을 펼치는 모양새다.

■ 쟁점 1│국정 교과서 논란

국정 교과서 논란은 예산 심사의 ‘폭탄’이다. 국정감사 직후 시작된 교과서 국정화 문제는 교육부가 비밀 태스크포스(TF) 팀을 운영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지며 일파만파 커졌다. 10월28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된 국회 예결위 종합정책질의는 ‘교과서 전쟁’으로 점철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책질의에서 문제가 된 부분은 예비비다. 새정치연합 안민석 의원은 10월22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국정 교과서를 발표한 10월12일 다음 날인 13일 국무회의에서 국정화를 위한 예비비 44억원을 의결했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폭로했다. 이어 20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예비비 편성을 시인하면서 불이 커졌다.

예비비 편성이 사실로 확인되자 야당은 “당장 예비비 관련 자료를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이종걸 새정치연합 원내대표는 10월30일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정부가 예비비 자료 제출을 거부하는 것은 예결위 심사 파행도 감수하겠다는 태도”라고 지적했다. 예결위 야당 간사인 안민석 의원도 “국정 교과서 예비비 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 예결위가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지 고민”이라고 정부를 압박했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예비비 상세 내역 제출은 여전히 거부하고 있다. 김용남 새누리당 의원은 “국가재정법 52조4항에 따르면 예비비를 사용한 총괄명세서는 다음 연도까지 국회에 제출하도록 규정돼 있다”며 현 시점에 예비비 자료를 굳이 공개할 필요가 없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또 최경환 부총리는 “행정부가 자진해서 공개하는 부분 외에 국회의 자료 요구 형태로 재정 당국이 국회에 (예비비 자료를) 제출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며 자료 공개를 거부했다.

국정 교과서를 둘러싼 여야의 공방은 11월 초까지 계속될 전망이다. 교육부가 11월2일 행정예고하게 되면 정부는 여론 수렴 후 11월5일 확정고시하게 된다. 여야는 현재까지 한 치의 물러섬 없이 맞서고 있다. 야당은 예산 심사에서 국정 교과서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우선 국정 교과서 예비비 추진에 대응해 140억원 수준인 교육부 기본경비를 깎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야당 의원실 관계자는 “교육부의 국정 교과서 홍보 예산인 ‘교육정책 이해도 제고 사업’ 예산은 전액 삭감할 것”이라며 “교과서 국정화와 관련된 행정 절차는 교육부장관의 고유 권한이기 때문에 절차적으로 막을 만한 뚜렷한 방도가 없다. 국정 교과서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예산 삭감뿐”이라고 밝혔다.

■ 쟁점 2│박근혜 대통령 관심 사업

박근혜 대통령과 관련된 사업 예산은 야당이 심사 전부터 ‘삭감’을 예고한 부분이다. 대표적인 대통령 관심 사업으로는 새마을운동 사업과 DMZ평화공원 조성 사업, 문화융성 사업 등이 꼽힌다.

정부는 올해 57억원이었던 새마을운동 지원 예산을 내년에 143억원으로 두 배 이상 올렸다. 새마을운동 관련 국비 사업 예산 총액은 766억원으로 전년 603억원보다 26.9% 늘어났다. 야당은 이 부분을 문제 삼고 있다. 전체 예산 증가율이 3%대에 불과한데 새마을운동 관련 예산이 너무 많이 늘어났다는 얘기다.

새마을운동 지원 사업은 경북 구미시 ‘새마을운동 테마공원’ 조성 사업에 137억4300만원, 새마을기록물 관리에 5억원, 새마을의 날 행사 및 전국 새마을 지도자대회 지원에 8000만원 등이 편성됐다. 야당은 이 중 새마을운동 테마공원 사업에 대해 “특정 지역에 대한 특혜성 사업”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여당은 이에 대해 “국가가 지원하기로 한 사업인 데다 약속된 기한인 2017년 안에 준공하려면 집중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며 증액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야당 측은 “이전 정권에도 대통령 관심 예산이라고 과다 증액된 사업이 많았지만 모두 실패로 끝났다. 이번에는 사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받아쳤다.

박근혜 대통령이 10월27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국회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단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10월27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국사교과서를 보고 있다. ⓒ 연합뉴스

■ 쟁점 3│특수활동비

올해 정부가 편성한 특수활동비는 역대 최고액을 기록했다. 10월28일 기획재정부가 국회 예결위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내년 특수활동비로 8891억700만원을 편성했다. 올해 8810억6100만원보다 80억4600만원 늘어났다. 특수활동비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는 2001년 이후 최대 규모다.

기관별로는 국가정보원이 신청한 특수활동비 예산이 전체 특수활동비 예산의 54.7%인 4862억8900만원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서 국방부가 1795억6600만원, 경찰청 1292억6000만원, 법무부 289억6600만원으로 그 뒤를 이었다. 이대로 국회를 통과할 경우 국정원은 올해에 비해 80억5300만원, 경찰청은 28억7600만원, 법무부는 8억8000만원 늘어나게 된다.

야당 측은 특수활동비에 대해서도 이대로 둘 수 없다는 입장이다. 야당 정책위 관계자는 “8월 특수활동비 논쟁으로 인해 본회의가 무산되는 일까지 벌어졌는데 정부가 또 특수활동비를 늘렸다. 투명성을 강화하려는 노력은 하나도 보이지 않은 채 ‘묻지 마’식 증액을 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원점에서 재검토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수활동비에 대해서는 여당 측에서도 “과하다”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여당의 한 중진 의원실 관계자는 “김무성 대표도 신용카드 결제 방안 등 해결책을 내놓지 않았나. 특수활동비 논란이 컸던 만큼 문제가 되는 부분은 손을 봐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고 전했다.

다만 교과서 논쟁 등으로 인해 여론의 관심사에서 다소 멀어졌다는 점이 문제다. 여야가 국회 차원에서 제도 개선 방안에 대해 논의하겠다고 했지만 현재 이마저도 중단된 상태다.

■ 쟁점 4│한국형 전투기 사업(KF-X)

한국형 전투기 사업(KF-X) 예산을 비롯한 국방 예산도 도마 위에 올랐다. KF-X 사업은 여야 모두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선 터라 예산안 통과까지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방위사업청은 올해 KF-X 사업 예산으로 1681억원을 신청했다. 하지만 기재부는 이 중 1000억원가량 삭감된 670억원으로 책정했다. 이처럼 큰 폭으로 삭감된 것은 미국이 AESA(다기능 위상 배열) 레이더, IRST(적외선 탐색 추적 장비), EO TGP(전자광학 표적 추적 장비), RF 재머(전자파 방해 장비) 등 4개의 핵심 기술 이전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뒤늦게 AESA를 제외한 3가지 핵심 기술은 상당 부분 확보됐다며 KF-X 사업의 당위성을 주장했다. 국회 국방위 예산소위는 기술 개발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지만 여덟 차례에 걸친 회의 끝에 정부 원안인 670억원을 의결했다.

하지만 국방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이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고 나서며 제동을 걸었다. 정 의원은 “현재의 추진 방식대로는 비용이 막대하게 들어가게 되고 기간만 엄청나게 걸릴 것이다. 결국 껍데기만 개발하는 수준에 그칠 것”이라며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의 ‘책임론’까지 제기했다. 또 같은 당의 유승민 의원도 10월30일 열린 전체회의에서 “KF-X와 KF-16 성능 개량 사업에 대한 감사 요구안을 모두 처리하자”고 주장했다.

야당도 문제의식에 동참했다.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는 “KF-X 사업에 대한 계획은 재검토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으며 진성준 의원도 “핵심 장비 기술을 국산화한다는 말만 했을 뿐, 타당성 조사는 없지 않았나. 타당성 조사가 전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 쟁점 5│누리과정 사업

3~5세 영유아 무상보육 사업인 ‘누리과정’ 사업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이 때문에 해마다 예산 정국의 쟁점 중 하나였다. 하지만 예산 집행의 주체에 대한 입장 차이로 인해 매년 극심한 갈등을 야기했다.

정부는 내년 교육부 예산을 올해보다 4.45% 늘린 55조7299억원으로 편성했다. 하지만 이 중 누리과정에 쓰일 예산은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0’원이다. 정부와 여당은 “누리과정 재원은 지방정부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주장하며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을 거부하고 있다.

정부의 이 같은 주장은 영유아보육법에 근거한다. 현행 영유아보육법 시행령 제23조는 만 3세 이상 영유아의 보육비용을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최경환 부총리도 “국가와 지방이 할 일이 따로 있다”며 누리과정 예산은 중앙정부의 몫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반면 야당은 누리과정 예산 2조3836억원 증액을 목표로 잡고 있다. 이는 누리과정 보육료 지원 2조원과 시·도교육청의 지방채 발행에 따른 이자 지원금 3836억원을 합한 규모다. 여야는 지난해 누리과정 국고 편성을 놓고 싸우다 예비비와 특별교부금을 통해 시·도교육청의 지방채 발행 이자를 지원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야당은 누리과정에 대한 중앙정부의 지원이 오히려 영유아보호법의 취지에 부합한다는 입장이다. 야당 관계자는 “지방교육채 발행 금액이 올해 6조1426억원인데, 이는 2012년 339억원에서 180배 늘어난 것이다. 이 같은 부담을 중앙정부에서 나 몰라라 한다는 것은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지킬 마음이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