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포스코 ‘CEO 수난사’..."역대 정권,주인없는 포스코 악용하나"
  • 한광범 기자 (totoro@sisabiz.com)
  • 승인 2015.11.05 17:40
  • 호수 1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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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는 정부가 지분을 갖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정권 교체기마다 정치 외풍에 흔들렸다. 사진은 서울 대치동 포스코 사옥. / 사진=뉴스1

이상득(80) 전 새누리당 의원이 불구속 기소되면서 매 정권마다 반복되는 포스코 CEO 수난사가 재차 부각되고 있다.

정권이 낙하산 인사를 통해 집권기간 동안 잘 활용해먹다가 정권이 끝나면 검찰수사를 받는 일들이 반복적, 관습적으로 행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권과 불가근 불가원의 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너무 가까웠던 것이 화근이었다.

포스코는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이 수립한 종합제철 건설 계획에 따라 1968년 4월 포항종합제철 주식회사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육군 소장 출신으로 대한중석 사장을 역임한 박태준씨가 초대 사장에 임명됐다. 한일협정 자금과 일본은행 차관이 제철소 건설 자금으로 쓰였다. 1973년 7월 박 대통령까지 참석한 가운데 성대한 준공식이 열렸다. 한국 제철 산업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포스코는 지속적 성장 통해 세계적인 철강회사로 거듭났다. 지난 1998년 조강생산 기준으로 세계 1위에 올랐다. 2000년 10월에 공기업에서 민영회사로 탈바꿈한 이후에도 성장은 계속됐다. 2010년부터는 세계철강협회(World Steel Dynamics)가 평가하는 세계 철강사 경쟁력 부문에서 5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이런 성장과는 별개로 늘 정치권발 풍파에 휘둘렸다. 시작은 고(故) 박태준 명예회장이었다. 박 명예회장은 전두환 정권 출범 후인 1981년 여당인 민주정의당 의원으로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포스코 사장이던 그는 정치권 입문 즈음에 회장 직제를 신설해 그 자리에 올랐다.

◆YS정권, '박태준 보복 차원' 포스코 흔들어

1990년 1월 전격적으로 단행된 3당 합당으로 거대 여당인 민주자유당이 탄생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당내 기반을 넓혀가며 1992년 5월 대선 후보, 같은 해 8월 당 총재가 된다. 민정계 중진이었던 박 전 명예회장은 대선 국면에서 계속되는 김 전 대통령의 도움요청을 거절한다. 그 와중이던 같은 해 10월 박 전 명예회장은 포스코 회장직에서 물러난다. 그는 대선 직전엔 공개적으로 김 전 대통령을 거세게 비난했다. 김 전 대통령은 그러나 대통령에 당선됐다.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직후 대구지방국세청은 포스코와 박 전 명예회장에 대한 세무조사를 단행해 1993년 5월 그 결과를 발표했다. 포스코 및 협력사가 730억원을 탈세했고, 박 전 명예회장이 계열사와 협력사로부터 사례 대가로 56억원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박 전 회장에 대한 증여세 63억원 추징과 검찰 고발이 진행됐다.

같은 해 6월 대검 중앙수사부는 박 전 회장이 회시기밀비 7300만원을 횡령하고 뇌물 39억7300만원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당시 박 전 회장은 앞서 3월 해외로 출국해 한국에 없었다. 그는 해외를 떠돌다 다음해인 1994년 10월에야 입국해 11월 불구속 기소됐다. 그는 다음해인 8월 '광복절 특사' 대상이 돼 공소취소 형식으로 사면됐다.

박 전 명예회장에 이어 1992년 10월 황경로 전 회장이 2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하지만 황 전 회장도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쫓겨났다. 그는 협력업체 등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1995년 5월 항소심에서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황 전 회장도 1995년 8월 광복절 특사로 사면·복권됐다. 황 전 회장에 이어 1993년 3월 3대 회장으로 취임한 정명식 전 회장은 내부갈등으로 1년 뒤인 1994년 3월 교체됐다.

김영삼 정부는 후임으로 포스코 출신이 아닌 김만제 전 회장을 선택했다. 김 전 회장은 회장 취임 전 재무부장관과 부총리를 역임한 외부출신이었다. 그러나 그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자 1998년 3월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김 전 회장은 회장 재직시절 4억여 원을 유용한 혐의로 기소돼 1999년 6월 1심에서 벌금 3000만원을 선고 받았다. 그는 2000년 총선에서 대구에서 당선돼 신한국당(현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을 역임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박태준, DJP연합 힘입어 포스코 다시 장악

김대중 정부는 김 전 회장 후임으로 유상부 전 회장을 선택했다. 유 전 회장은 박 전 명예회장 측 인사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국무총리 사이의 DJP 연합 때문이었다. DJP 연합은 종종 DJT(김대중·김종필·박태준) 연합으로 불리기도 했다. 유 전 회장 재임기간 중이던 2000년 10월 포스코는 정부 지분을 팔고 완벽히 민영회사가 됐다. 이와 별도로 유 전 회장은 2002년 6월 최규선게이트로 기소됐다. 공교롭게도 그 전인 2001년 9월 DJP 연합이 붕괴됐다. 유 전 회장은 2008년 대법원에서 징역 1년6월 집행유예 2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유 전 회장은 기소에 상관없이 2003년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까지 연임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나 그는 정기주주총회 직전 회장직에서 전격 사퇴했다. 후임은 포스코 공채 1기인 이구택 전 회장이었다. 박 전 명예회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포스코 재직당시에 이 전 회장을 사장감으로 점찍어 키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전 회장은 2007년 2월 연임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 역시 정권 교체 이후 옷을 벗어야했다.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는 2008년 12월 포스코의 세무조사 무마 로비 의혹에 대해 수사를 시작했다. 이 전 회장은 그로부터 한 달 뒤인 2009년 1월 이사회를 하루 앞두고 사의를 표했다. 그로부터 나흘 뒤, 검찰은 사건을 무혐의 종결했다. 그 후 1월말 포스코 사외이사 8명으로 구성된 CEO추천위원회는 세 차례의 투표 끝에 정준양 전 회장을 회장 후보로 추천했다. 사외이사 중에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안철수 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도 있었다. 박 시장은 지난 3월 해명자료를 통해 정 전 회장 추천에 끝까지 반대표를 던졌다고 밝힌 바 있다.

◆MB정부 실세들, 포스코 쥐고 흔들어...26억원 챙겨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지난달 29일 이 전 회장 사퇴와 정 전 회장 선임 과정에 이명박 정부 실세들의 외압이 있었다고 밝혀냈다. 검찰 발표에 따르면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2차관은 2008년 하반기 이 전 회장에게 사임과 함께 후임 회장으로 정 전 회장을 지지해줄 것을 요구했다. 박 전 차관은 이 전 의원의 보좌관 출신으로 이명박정부 실세 중 한명이었다. 그는 같은 해 11~12월 사이에 또 다른 회장 유력후보였던 윤석만 전 포스코건설 회장도 만났다. 이상득 전 의원도 2008년 12월 박 전 명예회장을 직접 만나 포스코 회장 선임을 논의했다.

이 전 의원과 측근들은 '티엠테크' 등 기획법인을 설립해 기존 외주업체 용역 중 일부를 떼어내는 방식으로 이권을 챙겼다. 검찰은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뇌물 혐의로 이 전 의원을 불구속 기소하며 그가 챙긴 액수가 26억원이라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이 전 의원이 포스코를 사유화했다"고 비판했다.

정 전 회장도 검찰 수사를 피해가지 못했다. 그는 검찰이 포스코 수사를 시작한 이후 다섯 차례나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그 이전 박근혜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철저히 정권으로부터 외면 받았다. 정 전 회장 본인이 청와대 공식행사 초청 명단에서 연이어 제외된 것을 비롯해 포스코가 국세청의 특별 세무조사를 받기도 했다. 결국 그는 2013년 11월 사의를 밝힌 후, 다음해 3월 퇴임했다. 그도 사법처리를 눈앞에 두고 있다.

포스코는 2000년 민영화 이후 외국인 지분이 50%를 넘는 민영회사다. 국민연금은 7.81%를 소유한 최대주주다. 그러나 포스코 우리사주조합과 포스코가 소유한 자사주를 제외하곤 1%를 넘는 지분을 보유한 곳이 없다. 역대 정부는 이 점을 악용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강정민 경제개혁연대 연구원은 "대주주가 없는 회사다 보니 정부가 지분이 없으면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쉬운 구조"라며 해결 방안으로 CEO 승계프로그램 도입과 기관투자자 역할 강화를 제시했다.

강 연구원은 "CEO로 선임되면 후보군을 두고 이후 평가를 통해 차기 CEO로 임명하면 조직이 안정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기관투자자들이 단순 투자자로 있을 게 아니라, 적극적 대화와 관여를 통해 회사가 제대로 운영되는지 확인·검증해야 한다"며 "그 경우 회사가 외풍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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