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과학
  • 김재태 편집위원 (jaitai@sisapress.com)
  • 승인 2015.11.11 15:06
  • 호수 1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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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가을이 되면 저 먼 북유럽으로부터 전 세계 사람들이 기다려온 소식이 전해집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노벨상 수상자들이 발표됐습니다. 눈길을 끄는 뉴스가 적지 않지만, 일본인이 지난해에 이어 연속으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사실이 특히 주목됩니다. 올해까지 합하면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수상한 일본 출신 학자가 벌써 스물한 명입니다. 노벨상 수상 여부가 그 나라 과학 수준을 온전히 대변해주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부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올해는 생리의학상 분야에서 중국인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까지 나왔다고 하니 부러움의 강도가 더합니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이 있듯 노벨상 수상자 배출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오랜 기간의 투자와 열정, 탄탄한 연구 기반이 갖춰지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상을 받을 만큼 뛰어난 업적이 뚝딱 만들어질 수는 없는 일입니다. 거기에는 또한 그들을 격려하고 지원해준 정부의 역할도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과학자로서의 힘든 길을 견딜 수 있게 해준 주변의 따뜻한 응원도 큰 힘이 됐을 것입니다.

일본과 중국을 향한 부러움의 시선은 자연스레 우리나라 현실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과학에 대한 우리의 배려가 어느 정도인지는 새삼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입니다.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정부 출연 연구기관에 소속된 연구원 가운데 비정규직이 40%에 이르고, 그들의 이직률이 정규직에 비해 5~6배나 높다는 소식은 우리의 과학 현실에 대한 절망감을 배가시킵니다. 물론 모든 것을 정부 탓으로만 돌릴 수도 없습니다. 기초 연구 분야에는 눈길을 잘 주지 않는 사회 풍토도 과학이 우리 안에 깊이 뿌리내리지 못하게 만든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논란이 된 한국형 차세대 전투기 사업의 기술 이전 문제는 어쩌면 그 모든 것의 부메랑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과학기술은 한 나라 경제의 종잣돈과 다름없습니다. 과학기술의 진전 없이 경제가 좋아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려면 무엇보다 기초과학이란 ‘기초’부터 튼튼히 다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초과학에 대한 ‘통 큰 배려’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갈 길은 멀지만, 그렇다고 희망마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학생들이 왜 이공계 진학을 기피하는지만 제대로 파악하고 대처해도 답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달 탐사도 좋고 우주 개발도 좋지만 지금은 우리 자신을 제대로 알고 내실부터 다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국 출신 해외 영재들의 유턴을 적극 유도한 중국의 과학자 우대 정책도 본받을 만한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해외에서 일자리를 찾는 국내 이공계 출신의 발길도 붙잡아야 합니다. 과학은 과거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변함없이 확실한 고부가가치의 자산입니다. 과학자가 떵떵거리며 사는 나라가 진짜 강국임은 두말할 나위 없습니다.

일본인과 중국인 노벨상 수상자 소식이 전해진 이즈음, 한국 땅에서는 때아닌 교과서 전쟁이 요란합니다. 정부는 숨 가쁘게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그사이 나라 안의 갈등은 커지고, 경제의 주름살은 깊어집니다. 정작 중요한 것들은 대책 없이 뒷자리로 밀려나버린 이 가을, 과학이 더욱 슬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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