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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개로 시작한 수저론<論>, 실은 처절하고 슬프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2030세대 8인의 ‘좌담’, 수저 계급론을 말하다

진행·정리: 김회권·김경민·박준용 기자 ㅣ khg@sisapress.com | 승인 2015.11.11(Wed) 17:18:41 | 13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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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 요컨대, 어떤 일이든 진정으로 즐길 줄 아는 자만이 ‘금수저’밑에서 일할 수 있다. 유병재씨가 한 유명한 말있잖아요.” (좌담회 중에서)

수저 계급론은 ‘자학 개그’다. 2030세대가 자신들의 상황을 희화(戱化)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2030세대는 이 유머를 발전시켜 금수저보다도 더 부유하다는 ‘플래티넘수저’를, ‘흙수저’보다도 더 가난하다는 ‘놋수저’와 ‘똥수저’ 등의 패러디를 내놓는다. 하지만 이런 ‘자학 개그’를 구사하는 2030세대는 결코 마음 놓고 웃을 수 없다. 수저 계급론이 2030세대의 슬픈 자화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2030세대 다수는 N포(결혼·취업·출산·취업 등을 포기한다는 뜻) 현실 속 자신을 ‘흙수저’라 말하고 있다.

시사저널은 수저 계급론에 대해 청년 세대가 쏟아내는 각인각색(各人各色)의 ‘웃픈’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이들은 수저 계급론을 비판적이면서도 풍자적으로 풀어냈다. 11월5일 저녁, 서울 신촌의 한 카페에 모인 2030세대 8명은 거침없이 이 시대를 조명했다. 지면 사정상 모든 내용을 다 옮길 수 없는 게 유감일 정도로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좌담 참가자
박상희(23·대학생)
조영호(26·대학생)
김민조(27·대학생)
이기민(27·취업 준비생)
이현우(27·취업 준비생)
안상완(30·연극배우)
문병윤(36·변호사)
김재민(가명·34·신학대학원생)


‘수저 계급론 표’나 ‘흙수저 빙고’ 등을 본 소감은 어땠나.

김민조: 기분이 안 좋았다. 부모를 수저로 본다는 것인데, 키워주신 부모님이 누구는 흙수저가 되고 누구는 금수저가 되고 그런것 아닌가.

김재민: 계급론에 나를 대입해봤다. 나는 흙수저 중에 흙수저인데, 인터넷 페이스북에서 흘려보듯 봤는데 너무 처절하고 슬프고 웃긴다. 주변을 보면 누가 더 흙수저인지 인정받고 싶어 하기도 한다. 놀이문화가 되기도 하면서 사람들의 심리가 복잡해진 것 같다.

이기민: 계급론 표를 보고 조소하면서 이로 인해 이 세상 얼마나 많은 20대와 30대가 흙수저인지 알게 되는 계기도 된 것 같다.

자신이나 주변 사례를 볼 때 한국은 수저 계급사회가 맞다고 생각하나.

이현우: 그런 것 같다. 나는 법학전문대학원 (로스쿨) 준비를 하는데, 입시 전문 학원에서 자기소개서(자소서) 전략을 짜줄 때 배경을 강조하라고 한다. 친척이나 가족 중 법조인이 있으면 그걸 무조건 피력하라고 한다. 그걸 전략이랍시고 공공연히 얘기한다. 로스쿨들은 입학 자소서에 주변 배경을 알 수 있는 실명을 적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학원에서는 이를 우회해서 “나는 어릴 때부터 법조인이 많은 환경에서 자랐으며…”라고 쓰는 전략을 구사하라고 한다.(웃음) 또 배경을 중요시하고 그걸 당연히 여기는 풍토가 있는 것 같다.

김민조: 대체로 맞는다. 취업문이 좁아지고 그러다 보니까 높은 스펙이 요구된다. 스펙을 쌓기 위해선 부모님 재력이 필요하다. 통한다고 본다.

조영호: 주변에 전문직 시험 보는 친구들이 있다. 한 친구가 성실히 시험을 준비했다. 그리고 합격했다. 하지만 그 친구는 결국 대형 법인에 입사하지 못했다. 다른 친구는 친척이 이사급으로 있는 대형 회사에 입사했다. 이런 상황들이 수저 계급을 말해주는 것 아닐까.

박상희: 나도 재수·반수를 할 때 강남 입시 학원에 다니며 느꼈다. 나는 장학금을 받아 학원에 다니게 됐지만 학원 같은 반에 엄청 잘사는 친구가 많았다. 특히나 아버지의 큰 사업을 물려받으려 경영대학으로 진학하려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집의 지원도 잘 받고 성적을 잘 받아 서울대에 진학했다.

김재민: 목회자로서 교회 얘기를 조심스럽게 하자면, 이 진로에서도 스펙·유학 등 많은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부모님 잘 만난 목회자들은 세습이 있어 편한 경우도 있다. 요즘 한창 논란이 되는 탓에 교회 세습 방지법을 제정하려 한다는데, 그래도 대물림이 있는 곳도 있다. 모범을 보여야 할 집단 인데도 그런 부분도 있다.

계층 이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없어지는 게 사실일까.

문병윤: 그렇다. 고시 같은 것들이 점점 없어지고 있는 것이 그 예다. 나는 사법고시 출신 변호사인데, 당시 고시 준비하면 학원비가 1년 기준 500만원 들고 한 달 생활비가 50만~60만원 정도(하숙+밥값) 들었다. 지금은 그 로스쿨에서 돈이 훨씬 많이 든다.

이기민: 나는 충남 홍성 출신이다. 서울에서 재수할 때 별천지라 느꼈다. 지역에서 학원비가 한 달에 10만~20만원이었는데, 강남은 100만원이 넘었다. 막상 와보니 엄청 차이가 심하더라. 이제는 돈 없으면 배울 수도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낙후된 지역에서 살수록 점점 더 기회가 없겠구나 싶었다.

조영호: 젊은 세대에서의 기회는 주로 학벌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학벌 때문에 취업 시장 등에서 알게 모르게 벽이 많이 생긴다. 그런데 점점 더 그 학벌이 수저에 따라 달라지는 느낌이다. 나도 재수를 위해 강남의 입시학원을 가보니 ‘나도 이런 수업3년 다녔으면 서울대 갔겠다’ 싶었다. 게다가 부모의 정보력에 의해 편법으로 대학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많더라. 외국인 특별전형도 있다. 아는 사람이 아버지 친구가 써준 논문을 스펙으로 지원해서 대학에 합격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수저 계급론이 하필 왜 지금 나온다고 보나.

이기민: 공감이 없으면 파급력이 없었을 것이다. 금수저에 대한 얘기는 사실 옛날부터 나왔다. 하지만 1970~80년대에는 다 같이 어려웠기에 그런 말은 많이 안 나온 것 같다. IMF 외환위기 이후 취업률이 낮아지고 불쾌감이 쌓이니 20대와 30대의 공감을 산 게 아닌가 싶다. 지금의 한국을 보면, 꼭 사회·경제적 출신 배경이 능력보다 더 크게 작용한다고까지 보는 건 다소 비약이라 하더라도, 최소한 그런 부분이 확대돼 보이는 것 같다.

이현우: 유병재 어록이 있지 않나. 천재는 노력한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한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 즐기는 자만이 금수저 밑에서 일할 수 있다.(웃음) 허무하게 노력을 한다고 해서 ‘노오력’이란 표현을 쓰기도 한다. 지금은 노력하면 누군가의 밑에서 일은 할 수 있지만, 성공은 하지 못한다는 인식이 큰 것 같다. 이런 허탈함 속에서 말초적 감각으로 이 현상을 수저 계급론이라는 이름으로 소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더구나 이제까지는 자신이 잘 안되고 있는 상황을 자책으로 돌렸다면, 지금은 내 잘못이 아니고 구조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안상완: 제 생각도 비슷한 것 같다. 2030세대가 여건이 좋지 않은 불안감과 공포감에 대해서 하는 변명이라 말하기에는 위험하지만, ‘제가 금수저가 아니라 지금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기 위해 수저 계급론이 나온 게 아닌가 싶다. 그게 또 동수저나 흙수저들이 만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수저 계급론이 퍼져나가는 것에 대해 호불호가 갈리는데.

안상완: 이 계급론을 이야기하면 할수록 흙수저가 불리해지는 것 같다. 수저 계급론은 낮은 계층의 사람들이 만들었을 텐데, 수저 계급론을 통해 지극히 흙수저여야만 국가의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섞일 수 있다. 내 경우에도 그런 경험을 했다. 정말 어려운 상황에서 연극배우를 하고 있기에 예술인 복지지원을 신청했는데, 그 기관에서 나보고 ‘당신은 흙수저가 아니에요’라는 식의 답변이 오더라. ‘이게 대체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재민: 수저 계급론을 접하면 내 계급을 확인하게 된다. 결국 체념하게 된다. 받아들이게 되고 무력해진다. 이런 측면에서 수저계급론이 논의될수록 평범한 사람들에게 불리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만 이 얘기가 확산될수록 구조적 문제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도 생기는 것 같다.

문병윤: 수저 계급론처럼 지금 사람들이 ‘우리 아버지는 뭐해’라고, 금수저라고 떳떳하게 얘기하는 것 자체가 놀랍다. 수저 계급론이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면 희망이 없게 되는 것 아닐까.

박상희: 학벌이 만드는 수저 계급론의 경우에, 이것 때문에 사람들이 무기력해지는 것 같다. 나는 지금 서울의 중위권 대학교를 다니는데, 우리 학교 출신들의 문제점 1위가 자신감이 없다는 것으로 나왔다고 한다. 이전까지는 계급에 대해 자격지심이 없었는데, 그런 얘기를 듣다 보니 오히려 생길 수 있는 것 같다.

이기민: 나는 좀 다른 생각인 게, 고전문학을 보면 취발이가 양반 조롱했듯, 이것도 사회에 대한 조롱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20대 젊은이들이 어른들 쫓아가기보단 조롱하고 조소를 날릴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언어적 표현들을 만들어냄으로써 삶이 피폐해진 걸 밖으로 표출하고 또 위안이 되지 않을까. 전환점이기도 하고, 공감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긍정적이다. 그럴수록 사회를 돌아보게 되고 쉽게 얘기하지 못했던 것들을 얘기하는 외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수저 계급론이 나오게 된 배경에 국가도 책임이 크다는 지적이 많다.

김민조: 제일 먼저 떠오른 게 대통령이 중동으로 가라고….(웃음) 분명 전후 맥락에선 나올 수 있는 얘기다. 그런데 그때 당시엔 어이가 없었다. 주변을 보면, 국가에서 해외 취업 알선한다고 해서 갔는데 실패한 사람이 많다. 이런 정책들이 뭇매를 맞는 이유는 공감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수저 계급을 완화한다면서 내놓은 그런 정책들이 2030세대의 공감 없이 이뤄지는 것 같다.

안상완: 흙수저를 돕는다는 정책이 맨땅에 헤딩하란 식이다. 4년 전 정부 일자리 창출사업에 참여한 적이 있다. 연극단 출신이기에 문화복지 분야 공연기획 파트로 들어갔는데, 프로젝트는 있는데 계획이 없었다.

이현우: 수저 계급론에 대한 국가의 정책적 노력이 극히 미미하다. 문제에 대한 정책결정자들의 인식이 따라오지 못한다. 50대와 60대들은 지금의 청년들을 애물단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요즘 청년들 스스로도 부모님에게 자신이 애물단지 같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50대들은 청년보고 캥거루족이라는 말을 쓰더라. 집 사려고 해도, 전세 구하려 해도 부모 도움이 필요하니까. 주로 50대나 60대인, 정책 마련하는 사람에게도 이런 인식이 있지 않나 싶다.

자신이 생각하는 수저 계급론 사회의 해법은 어떤것인가.

김재민: 수저 계급론에 관심조차 없을 정도로 어려운 상황 속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여기서 떨어지면 끝이란 두려움이 너무 팽배해 있다. 국가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이런 청년들을 위한 실질적 복지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다. 그래야 두려움 속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문병윤: 큰 틀에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학과에서 처음 배울 때 정치에 대해 ‘자원의 권위적 배분이다’라는 말을 한다. 청년 세대가 더 뻔뻔해질 필요가 있다. 법인한테 증세해라, 돈 내라, 세금 내라, 요구해야 한다. 빚도 난리 치는 채권자에게 먼저 갚는 법이다. 우는 아이에게 젖 먼저준다.

이기민: 동감한다. 취업 준비를 하는데 20대와 30대에 최적화된 정책이 안 나오는 건 위정자 탓도 크지만 우리의 탓도 크다. 정치인들에게 욕은 하지만, 막상 투표로 힘을 행사하려는 생각은 안 한다. 투표율이 더 높아져야 한다.

이현우: <학벌사회>라는 책에서 김상봉 교수는 ‘내부로의 망명’이라고 말했다. 일렬로 세운 줄에서 경쟁하고 참여하면 일등 뒷받침 정도만 된다는 거다. 우리 스스로 수저 계급론에서 벗어나 대안적인 움직임을 하면 좋겠다. 정책적인 움직임에 크게 기대하진 못한다 하더라도 말이다.

안상완: 금수저들이 도덕적인 의식과 책임을 가질 필요도 있다. 금수저는 무겁고, 흙수저는 가볍다. 금수저는 먹을 때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체하지 않게 먹어야 한다. 사회 상층부에 있는 만큼 책임을 의식해야 한다는 의미다. 반면 흙수저인 사람들은 가볍고 즐겁게 먹을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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