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아닌, 나 자신에게 에너지 집중해야”
  • 김경민 기자 (kkim@sisapress.com)
  • 승인 2015.11.11 17:45
  • 호수 1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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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수저 계급론, 우리 사회 돌아볼 반성의 계기로 삼아야”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과)는 최근 인터넷·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수저 계급론’의 심리학적 측면을 바라봤다.

그는 “현재 마치 놀이처럼 확산되고 있는 수저 계급론을 두고 ‘요즘 청년들 정신력이 나약해졌다, 노력을 안 한다’고 탓하기만 할 게 아니다”라며 “그들이 느끼는 사회구조의 불공평함, 권력층의 ‘갑(甲)질’ 문화에 대해 그들 나름대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에 의미를 둬야 한다”고 밝혔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의 원인을 ‘개인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구조적 문제 탓’으로 돌려버리는 회피 심리도 있지만, 이 역시 특정 세대의 감정과 의견을 표출하는 새로운 유형의 시위 문화로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남과의 비교 속에 열등의식 커져”

© 시사저널 임준선

곽 교수는 수저 계급론 확산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동조하는 것처럼 보이는 2030세대의 사회·문화적 성장 배경과 그 기저에 깔린 자조적인 색채에 주목한다.

“지금의 ‘N포 세대들’이 자라난 환경은 경제 성장이 어느 정도 이뤄져 누구나 잘살게 된 시대였다. 부족함 없이 자랐지만 정작 이들이 어른이 되어 사회로 나가려고 하니 온통 레드오션인 것이다. 결국 성인이 돼 이들이 경험하는 건 끝없는 좌절이었다. 1980년대 청년들이 적극적·공격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출했던 방식이 데모였다면, 오늘날은 이렇게 SNS를 통해 다소 자조적·소극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라는 표현을 예전 같았으면 그저 농담으로 웃어넘겼을 법하지만, ‘계급’이라는 층위(層位)가 추가되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으며 일종의 사회 현상화가 됐다. 이번 일을 우리 사회·문화 전반을 돌아볼 반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경제위기 이후 이중화된 노동 시장 구조와 악화된 임금 불평등 속에서 이른바 ‘대졸 프리미엄’은 과거에 비해 약화됐다. 뿐만 아니라, 대졸자의 임금 구조 또한 양극화됐다. 한국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의 고등교육 이수율과 대학 진학률을 보이고 있다. 68%가량의 초·중·고교 학생이 사교육을 받으며, 학부모들은 아이를 초등학생 때부터 국제학교에 넣기 위해 1년에 수천만 원이 드는 등록금을 기꺼이 부담한다.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엄친아’ ‘엄친딸’과 끊임없이 비교당 하며 자란다.

“비교는 개인에게 성취 동기를 부여해줄 수 있는 반면, 행복감을 저하시키기도 한다. 돈이 더 많은 사람일수록 더 돈을 벌지 못해 불행하고, 유명한 사람일수록 더 유명해지지 못해 불행해지는 이유다. 비교하는 게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비교에서 오는 에너지가 생산적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 더 좋은 사람을 롤 모델로 삼으면 스스로를 발전시킬 수 있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비교 대상과의 차이가 ‘당연한 것’ ‘극복할 수 없는 것’으로 고착화되면서 열등감으로 작용할 때다.”

곽 교수는 ‘비교참조집단이론’을 들어 수저 계급론의 이면에 깔린 ‘비교하기’ 심리를 설명했다. 비교참조집단이론이란 사람의 심리·행동에서 주변에 존재하는 집단 가운데 자신의 상황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나아서 참조할 만한 집단이 있으면, 그 더 나은 집단과 자신을 비교한다는 이론이다.

“사람이 가진 에너지는 시기에 따라 여러가지 모습으로 드러난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625 전쟁 땐 오직 살아남기 위한 생존 에너지로 존재했다. 이게 전후 경제성장이 이뤄지면서 발전적인 성장에너지가 된다. 현대사회에 들어와 빈부 격차가 커지면서 이 에너지가 상대적 박탈감을 조장하는 부정적 ‘비교 박탈 에너지’로 변모한 게 아닌가 싶다. 수저론은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신분 차이가 있으며, 이 차이는 노력만으로 극복하기 어렵다는 인식에서 나오게 된 것이다.”

“고도 성장 이후의 과도기적 현상”

퐁피두 전 프랑스 대통령은 그의 저서 <삶의 질>에서 ‘△외국어를 하나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할 것 △직접 즐기는 스포츠가 있어야 할 것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어야 할 것 △근사하게 대접할 수 있는 요리 실력을 갖춰야 할 것 △공분에 의연히 참여할 것△약자를 도우며 봉사활동을 꾸준히 할 것’ 등을 중산층의 기준으로 제시한 바 있다.

대한민국의 경우는 어떨까. 과거 국내 한 취업 포털 사이트가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부채 없이 아파트 30평 이상 소유 △월급 500만원 이상 △2000cc급 중형 자동차 이상 △예금 1억원 이상 △해외여행 연 1회 이상’ 등의 기준이 올라 화제가 되기도 했다. 모두 경제적 지표다.

곽 교수는 “우리 사회에는 ‘성공=부자’라는 도식이 존재하는 것 같다”며 “모든 가치에 대한 평가가 ‘얼마나 성공했나’ ‘얼마나 벌었나’를 위주로 이뤄진다면 우리 모두는 평생 불행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가치기준의 재정립이 필요한 시기가 왔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은 전부 유명 대학에 가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지방대나 전문대는 점점 설 곳이 없어진다. 대학생은 전부 화이트칼라가 되려고 한다. 4년제 대학 나오고도 ‘20대 태반이 백수’인 상황이 발생한다. 우리나라보다 일찍 경제 성장을 이룬 미국과 프랑스의 상황을 보면, 대학교수가 택시 운전을 하고, 배관공·목수 등 과거 천대받던 블루칼라 직종의 연봉이 매우 높다.

높은 청년 실업률과 사회 양극화, 사회 전반적 행복감 감소 등은 어떻게 보면 급속한 성장 뒤에 따라오는 사회 구조적 후유증이라고 볼 수 있다. 고도 성장 후 사회안정화를 향해가는 과정에서 겪는 과도기인 셈이다.”

수저 계급론의 확산은 지난 70년간 지나친 압축 성장으로부터 기인한 사회 현상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자포자기한 듯한 뉘앙스가 강해서 기성세대로서 슬픈 책임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문제를 표면화하고 사회적 논의를 진행시켜 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남 말고, 나 자신에게 에너지를 집중할 필요가 있다. 한국 사회의 체면주의는 남과 자신의 처지를 지나치게 비교함으로써 스스로도 불행해지고 다른 사람의 능력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 사회 풍조를 만들었다. 이제는 자기 내면의 가치를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개인이 바뀌면 사회가 바뀐다. 나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세운다면 그런 에너지들이 모여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이제는 중산층의 기준이 질적 지표 중심으로 달라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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