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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는 이제 돈과 싸운다

대중문화와 표현의 자유는 어떻게 충돌해왔나

하재근 | 대중문화 평론가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5.11.17(Tue) 16: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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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의 ‘제제’를 둘러싼 논란은 대중문화와 그를 둘러싼 ‘표현의 자유’를 논하는 단계로 확대됐다. 대중문화산업과 표현의 자유 사이의 충돌은 오래된 이슈다. 일단 대중문화산업이 가장 번성한 미국에서부터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왔다. 1960~70년대에 미국의 대중문화는 일종의 해방 국면을 맞았다. 젊은이들의 자유분방한 욕구가 일제히 분출되는 히피 전성시대가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보수 세력은 질색했고, 1980년대 레이건 대통령의 공화당 정부가 들어서면서 보수의 반격이 거셌다. 마돈나 등으로 대표되는 대중문화에는 퇴폐 딱지가 붙었고, 당대 여러 가지 사회문제들, 예를 들어 청소년 문제, 마약 문제, 폭력 문제, 성범죄 문제 등 각종 사회 일탈행위의 원인으로 대중문화가 지목됐다.

마이클 무어의 2002년작 <볼링 포 콜럼바인>은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이 영화는 나오자마자 국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감독은 미국 진보 세력에겐 영웅으로, 보수 세력에겐 ‘정신나간 선동꾼’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작품은 미국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을 이야기한다. 당시 보수 세력은 대중문화의 폭력적 표현이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강렬한 헤비메탈의 ‘마릴린 맨슨’이 원흉으로 지목됐다. 마릴린 맨슨은 마릴린 먼로와 연쇄살인범 찰스 맨슨을 합성한 것으로 이름부터가 금기를 넘어선 표현이었다. 마릴린 맨슨 유의 하드록은 흔히 폭력과 성적 욕망, 악마주의적 표현을 내세운다. 한국에서 만약 정윤희와 유영철을 합성한 이름의 가수가 등장해 악마적 퍼포먼스를 한다면 엄청난 질타 속에 곧바로 매장될 것이다. 마릴린 맨슨이 라는 팝스타의 존재만 봐도 미국이 한국보다는 표현의 자유가 훨씬 폭넓게 보장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폭력과 성적 욕망, 악마주의적 표현을 내세우는 마릴린 맨슨은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미국에서도 매번 도마 위에 오르는 뮤지션이다. ⓒ EPA연합

욕망의 표현은 정치적 억압에 대한 저항

이렇듯 표현의 자유를 놓고 한쪽에선 사회적 악영향을 우려하며 통제를 주장하고, 다른 쪽에선 자유를 주장하는 것이 고전적인 논쟁의 양상이다. 보통 종교계나 소비자·학부모단체 등이 전자이고, 문화예술계 인사들이나 인문·사회 지식인들은 후자 쪽에 가깝다. 흔히 지식인들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이 결국 정치적 억압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문제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1990년대 이후 성적(性的) 표현이 지식인들의 지원 아래 만개한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지배 질서가 억압하는 욕망을 해방시키는 것이 진정한 변혁이라는 관점에서 ‘윤리를 폐(廢)하고 음란을 허(許)하라’가 지상과제가 됐으며, 동성애 표현이 찬미되기도 했다.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는 미국보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 자리잡았다. 미국은 국가 역사의 기원부터 시민의 자유를 최고 가치로 여기는 공화국 체제였지만, 우리는 사상 통제와 엄숙·도덕주의의 조선을 거쳐 일왕을 최고 존엄으로 섬긴 일제 강점기, 그리고 대통령을 최고 존엄으로 섬기는 독재 시기까지 겪은 후에야 여기까지 왔다. 분단국가이기 때문에 서구 시민 대다수가 누리는 사상의 자유가 제한된 처지이기도 했다. 방송 출연자들이 국민 앞에서 대통령을 가리킬 때 존대를 해야 하는 상황인 것을 보면 아직도 완전히 시민적 자유가 정착됐다고 하기는 어렵다.

독재 시기 표현의 자유 논란과 관련해서는 황당한 사례가 많았다. 신성일의 <맨발의 청춘> 마지막 장면은 너무 음울하다는 이유로 삭제당할 뻔했는데, 대통령의 특별 지시로 되살아났다고 한다. 한국 영화 불멸의 명작으로 꼽히는 1961년작 <오발탄>은 우울한 한국 사회 묘사와 극중 노모(老母)의 “가자, 가자”라는 대사가 문제가 됐다. “북한으로 가자는 거냐?”라는 우문이 나왔다. 이후 한국 영화에서는 현실과 아무 상관없이 아름답기만 한 문예영화가 제작될 수밖에 없었다. ‘높으신 분’들이 가질 수 있는 폭력물의 해악성을 염려해 액션영화도 우리의 시공간과 상관없는 만주를 배경으로 찍었다. <놈놈놈>의 원조가 되는 만주웨스턴 장르의 탄생이다.

가요계에는 검열 트라우마가 특히 깊다. 사회성이나 선정성의 문제가 없는 노래들까지도 마구잡이로 금지됐기 때문이다. <고래사냥> <왜 불러> <아름다운 강산> <미인> 등이 그 예다. <행복의 나라>는 “그럼, 지금은 불행하냐?”며 금지됐다고 한다. 그 시절에 국민의 치마와 머리 길이를 경찰이 재는 모습은 두고두고 남는 웃음거리다. 이런 역사가 있기 때문에 문화계와 지식인들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일체의 시도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지금 아이유의 ‘제제’에 대한 공격에도 그러한 반응이 나타났다. 그런데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란의 전개 양상이 최근들어서는 달라졌다.

‘표현의 자유 논란 2.0’의 한 장을 차지할 것

상업주의가 극성하면서 상업적 목적으로 자극적인 표현을 일삼는 것, 성을 상품화하는 것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걸그룹의 성적 상품화는 국민의 정신건강을 위협할 정도가 되었다. ‘일베’(인터넷 사이트 ‘일간 베스트’의 줄임말)에선 혐오 표현이 줄을 잇는다. 이런 표현들까지 공화국의 이름으로 보호해야 하는지가 논쟁거리가 됐다. 최근 범죄에 대한 공포가 실질적 위협으로 다가오면서 범죄적 표현, 특히 미성년자를 성적인 대상으로 표현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은 극에 달했다. 따지고 보면 대중문화의 잘못된 표현이 사람들의 의식이나 사회 현상에 악영향을 미치는 측면도 일정 부분 있다. 이런 점에서 표현의 자유가 규제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오히려 민간 영역에서 커져간다. 얼마 전 여성 납치 범죄를 연상하게 한 맥심 화보도 그런 맥락에서 철퇴를 맞았다.

그러나 한편으론 과거처럼 권력의 억압에 표현의 자유가 맞서는 구도도 여전히 작동한다. 개그맨들이 풍자 개그를 자유롭게 못하는 것이나, 얼마 전 있었던 웹툰 음란물 딱지 논란이 그것을 말해준다. 한국작가회의는 2013년에 표현의 자유를 위해 ‘투쟁’할 것을 선언하기도 했다. 아이유는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이렇듯 복잡한 표현의 자유 논란의 한복판에 서게 됐다. 이번 아이유 논란은 창작자의 자유와 범죄에 대한 공포, 선정성, 상업주의, 윤리 등이 복잡하게 충돌하는 ‘표현의 자유 논란 2.0’의 한 장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다만 집단 공격과 조롱이 아닌 좀 더 차분한 논의가 있어야 우리 사회의 문화적 성숙으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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