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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갈등 정치적으로 해결하라

국민 기본권과 국가 폭력의 악순환

김윤태 |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ㅣ . | 승인 2015.11.26(Thu) 21:10:27 | 13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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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궐기’라는 1980년대 용어가 등장했다. 지난 11월14일 서울광장 등에 10만명이 넘는 시민이 모였다. ‘역사교과서 규탄, 세월호 진상규명’ 범시민대회와 ‘민중총궐기 전국 노동자대회’라는 깃발이 거리에 휘날렸다. 이날 경찰은 시민들의 광화문 행진을 원천 봉쇄했다. 4중 이상의 차벽이 ‘명박산성’처럼 출현했다. 최루액이 포함된 물대포가 시위대를

11월14일 서울 광화문에서 ‘민중총궐기 투쟁대회’ 참가자들이 행진하던 중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덮쳤다. 시위대와 경찰의 ‘전투’가 벌어졌다. 급기야 가톨릭농민회 전남연합회 회장을 지낸 백남기씨가 직사 물대포에 맞아 뇌출혈로 의식불명의 중태에 빠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시위대와 경찰의 부상이 속출했다. 왜 이런 ‘1980년대식’ 폭력시위가 발생했을까?

폭력적 시위에 대한 정치권의 진단이 매우 다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도심 한복판에서 이뤄진 명백한 폭력은 공권력에 대한 테러”라고 말했다.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고령·성주·칠곡)은 “미국에서는 경찰들이 총을 쏴서 시민들이 죽는데 80~90%는 정당하다고 나온다”는 막말을 쏟아냈다. 반면에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박근혜 정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한 국민에게 전쟁을 선포하더니 생존권을 요구하는 국민에게 살인적 폭력 진압을 자행했다”고 비판했다.

국가 폭력의 정당성

국민 여론도 정치권처럼 분열됐다. 11월17일 돌직구뉴스와 조원시앤아이 여론조사에 따르면, ‘경찰이 과잉 진압을 했다’는 응답이 47.9%이고, ‘시위대가 폭력시위를 했다’는 응답이 44.8%, ‘잘 모름’이 7.3%로 나타났다. 응답자 가운데 과잉 진압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약간 높지만, 응답자의 이념 성향에 따라 다른 견해를 보였다. 두 개로 분열된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필자는 과잉 진압과 일부 시위대의 폭력 모두 잘못이지만, 양비론에 그친다면 오히려 진실이 은폐될 수 있다고 본다. 폭력의 악순환이 발생하는 구조적 요인을 깊게 성찰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자신만 아니라 사회에 대해 생각할 의무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17세기 영국 사상가 토머스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국가의 주권을 통해 평화를 보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국가의 주권은 대중의 지지와 합의를 거쳐야만 권위(authority)를 갖는다. 이 말 때문에 홉스는 왕당파로부터 의회파라는 낙인이 찍혔다. 홉스의 생각에 따라 서구의 자유주의 사상은 정부의 권위가 국민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표 없이 과세 없다”는 구호에 따라 미국 혁명이 터졌다. 반면에 권력(power)은 상대가 동의하지 않거나 저항해도 강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킨다. 독재 정부가 비판적 시민을 감옥에 가두는 행위는 권력 행사이지만, 정부의 권위는 무너진다.

20세기 저명한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지적한 대로 현대 국가는 ‘폭력의 사용을 독점’하는 권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국가 폭력은 개인의 생명·자유 등 기본권을 보호하는 경우에만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 또한 국가는 폭력의 사용에 앞서 법률적 절차에 따라 평화적 수단으로 대화와 토론을 추구할 의무를 가진다. 그래서 민주국가는 비효율적으로 보일 만큼 의회와 언론에서 장시간 심의를 거듭한다. 이런 점에서 최근 폭력 집회의 발생에는 정부의 책임이 크다. 구체적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국가 권력이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민이 공적 의사 형성 과정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하고 정치적 소수자의 사회적 비판을 허용하는 기본권은 사회 통합과 정치 안정에 기여한다. 그래서 헌법 21조 1항은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명시한다. 그러면 광화문광장의 집회를 금지하는 법률은 위헌일까, 아닐까? 2003년 헌법재판소는 ‘집회 장소는 특별한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국가 권력에 의해 주목받지 못하는 곳에서 의견 표명을 하게 된다면 기본권 보호가 의미가 없다’라고 판결했다. 이명박 정부가 산성처럼 쌓아올린 차벽도 2009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으로 결정이 났다. 집회와 시위는 헌법상 권리를 실현하는 행위이다. 국가는 이를 철저히 보호할 의무를 가진다.

둘째, 폭력 집회가 발생하는 구조적 요인은 정부 정책에 대해 반대하는 시민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국민에 대한 선거 공약을 지키고 여론을 중시해야 하는데, 박근혜 정부는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내건 공약을 청와대에 들어가자마자 휴지조각처럼 내던졌다. 여당은 권력의 환관이 됐다. 야당은 반대도 못하는 무기력한 ‘식물정당’이 됐다. 정부에 반대하는 시민의 분노가 갈 곳이 없다. 폭력 집회는 정치권이 대표성, 책임성, 갈등 조정의 역할을 제대로 실행하지 못해 발생한 ‘정치 실패’의 결과로 봐야 한다.

셋째, 폭력 집회를 촉발한 핵심적 갈등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다. 역사학계와 과반수의 국민이 반대하는 국정화 교과서를 밀어붙이는 정부의 처사는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국정 교과서를 반대하는 국민을 ‘종북’ 또는 ‘좌파’로 낙인찍는 이념적 공격은 국가를 분열시킨다. 국정 교과서야말로 북한이 채택한 정책이다. 그러면 정부가 ‘종북’인가? 정부가 국민 의사를 무시한다면 헌법에 보장된 ‘저항권’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 잘못된 정책이 폭력의 씨앗이 되었다.

현대 사회에서 정부의 정책 결정은 과거에 비해 매우 복잡해졌다. 정부와 다양한 시민사회 조직의 긴밀한 네트워크가 발전하고 다양한 행위자들의 파트너십이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네트워크 체제와 상호 협력을 ‘거버넌스(governance)’라고 부른다. 거버넌스는 이해관계자들의 참여와 합의, 긴밀한 연결, 타협과 협상을 중시한다. 유엔(UN)은 ‘좋은 거버넌스’의 8가지 특징으로 ‘참여’ ‘합의’ ‘책임성’ ‘투명성’ ‘반응’ ‘효과성과 효율성’ ‘형평과 포용’ ‘법의 지배’를 지적했다. 거버넌스를 통해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고, 의사결정 과정에서 가장 취약한 사회집단의 목소리도 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좋은 거버넌스의 중요성

좋은 거버넌스는 갈등 관리에도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특히 이해관계자들의 참여성이 보장된 시스템은 갈등의 사회화와 정치적 타협에 기여한다. 이해관계자의 자율성은 협상 과정에서 자발적 협력을 유도한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집회와 시위에 나서는 ‘비판적 시민들’과 대화하고, 국민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정책을 포기해야 한다. 정치권은 사회적 갈등을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폭력의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

우리는 국민의 분노가 집회와 시위에서 표출될 때 국가가 폭력으로 억압한 비극적 과거를 가지고 있다. 4·19 혁명, 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가 그렇다. 그러나 폭력은 폭력을 만들고, 증오는 증오를 키운다. 독일 사회학자 위르겐 하버마스가 강조한 대로 평화를 지킬 수 있는 길은 ‘도덕적 공동체를 법률로 표현한 헌법’을 수호하고 합리적 소통을 추구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관용을 유지하며 민주주의의 가치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 국가 폭력을 무조건 옹호하는 사람에게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경구(警句)를 전해주고 싶다. “그대는 승리에 도취하지 마라. 세상이 들고일어나 악을 물리쳤다 해도 그 악을 낳은 암컷은 새로운 씨앗을 잉태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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