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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을 찌르는 직설과 과감성이 난국 돌파 원동력

지는 것은 못 참아…“학실히 해라”

김현일 대기자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5.11.30(Mon) 16: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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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의 말은 경상도 사투리와 직설(直說), 그리고 함축으로 미화되기도 하는 ‘짧은 단어’다. 이 어투와 화법은 강한 전달·호소력을 갖기도 했다. 일상 언어 생활이 그랬던 만큼 다른 부분도 그랬다. 길거나 복잡한 것은 질색했다. 그의 대통령 재임 시절 보고서가 A4용지 2장 이상을 넘기지 못하게 강력히 통제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씰데없이(쓸데없이)’ ‘택(턱)도 없데이’ ‘학실히(확실히)’ ‘우째(어떻게) 이런 일이’는 YS가 늘 사용해온 사투리의 대표적 단어들이다. ‘우째~’는 심복 최형우 내무부장관의 아들의 부정 입학 소식을 보고받고 탄식했을 때 나온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사실 자주 등장했던 말이다. 안타까운 일에는 흔히 동원됐다. ‘택(턱)도 없데이’는 기자들을 가까이했던 YS가 기자들의 농이나 비판을 되받는, ‘씰데없이(쓸데없이)’는 부하들의 일처리가 못마땅하거나 실수했을 때 쓴 단골 용어였다. ‘학실히’도 업무지시 때 빠지지 않았다. 1992년 대선에서 패배한 DJ가 정계 은퇴 성명을 발표했을 때 했던 말도 “학실히 하거래이”다. 여기의 ‘학실히’는 지모가 뛰어난 DJ가 권토중래(捲土重來)를 노릴 게 분명하니 그런 ‘불행한’ 사태가 없도록 하라는 엄중 당부였다.

1993년 7월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청와대 경내에서 조깅하는 김영삼 대통령. © 연합뉴스

느닷없는 물음에 장관·비서들은 공부하며 초긴장 대기

경상도 사투리가 빚은 에피소드는 끝이 없다. 선거 유세나 방문 때 나온 ‘강간(관광)도시로 만들겠다’ ‘걸식(결식) 아동 근절’ 등이 그런 사례다. 이런 것들은‘애교’로 받아들여져 YS의 친근한 이미지를 높이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영어 사용 때도 단문 단답형은 여전했다. 1993년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청와대 경내에서 클린턴과 새벽 조깅을 하기로 했다.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새벽, 취재차 기다리는 국내외 보도진에 그가 던진 말은 “얼리 모닝(early morning)”. 다들 “일찍부터 수고하십니다”로 알아들었다. 이날 조깅 중 YS가 속도를 올리는 바람에 통역이 헐떡여야 했는데 가속 이유는 자신보다 한 뼘 이상 키가 큰 클린턴을 ‘누르려는’ 욕심 때문이었다.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YS 성격의 단면이 여실히 드러나는 장면이다. 중남미 방문 중 칠레 육군사관학교 생도들과 조깅을 하면서 곁에서 뛰던 여자 생도가 ‘각하! 잘 달리십니다. 건강하시네요’라고 인사하자 갑자기 멈춰서면서 ‘마운틴(mountain)’이라고 대꾸했다. 등산을 자주해서 그렇다는 YS식 표현이었다. 조깅 애호가인 YS는 노태우 대통령 방미 때 민자당 대표 자격으로 수행했는데 이때도 조깅은 중단하지 않았다. 비 내리는 새벽, 박희태 대변인(후일 국회의장)과 함께 뉴욕 맨해튼 센트럴파크를 돌고 숙소로 돌아오던 YS는 필자와 마주쳤다. “이 새벽에… 대단하시네요”라는 인사에 그의 답은 “낸 한대면 한데이”였다. 비가 내려도 조깅을 빠뜨리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대통령 후보 조기 확정’을 관철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는데 이는 정치 상황을 꿰고 있지 않으면 헷갈리게 마련이다. 이 순간에도 그는 정치를 말하고 있었다. 자기중심의 화법에 능한 YS는 느닷없이 질문을 던지곤 했기 때문에 참모들은 신경을 곧추세워야 했다. 일과 후 청와대 관저에서 TV뉴스나 미리 배달된 조간신문을 보던 YS는 곧바로 관련 장관을 전화로 불러냈다. 그리고는 거두절미(去頭截尾), “이게 뭐꼬?”였다. 그 바람에 고위 관료나 수석비서관들은 저녁 자리에 TV를 켜놓고, 조간신문을 미리 챙겨 정독해야 했다. 부속실에서 근무했던 이상헌(전 새누리당 의원)·정병국 비서관(새누리당 의원)은 “니 그거 알제?”라는 물음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당시 장차관이나 수석을 지낸 인사들은 대통령의 이런 다짜고짜 때문에 국정 파악을 게을리 할 수 없었다고 회고한다. 장차관이 그랬으니 밑의 국·과장들도 더불어 비상대기 상태였다. “무슨 꿈을 꾸셨기에 대통령이 되셨나요”라는 초등학생 질문에 “난 숙면을 취하기 때문에 꿈 안 꾼데이”라고 답한 것 등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를 하는 자기중심 화법 사례는 흔한데 어쨌거나 참모들은 ‘다짜고짜 YS’ 덕분에 ‘열공’하지 않으면 안 됐다.

대통령 취임 후 나온 <YS는 못 말려>라는 책이 회자되고 호평을 받는다는 보고에 흐뭇해한 YS지만 ‘전두환 대통령이 스테이크를 주문하자, 영부인 이순자가 미투(me too)했고 이에 YS가 미쓰리(me three)’했다는 책 속의 조크 등에 대해서는 불만스러워했다. YS는 청와대 입성 전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를 ‘키르에콜’, 소련의 동아시아연구소장 이그나텐코를 ‘이그나탱크’라고 말해 주위를 웃겼고, 이를 봐넘겼는데 대통령이 된 이후엔 달라졌다. 그럴 때 주위에서 웃는 것을 싫어하는 기색이 또렷했다. 예전에는 참았던 게 분명했다. 그래서 ‘우루과이 라운드’를 ‘우루과이 사태’라고 말해도 웃음을 참아야 했다. 클린턴 대통령과 재회할 때의 ‘후아유(Who are you)?’도 그런 것 중 하나다. 이게 웃음거리가 되자 매우 언짢아했고, 한 비서관이 스코틀랜드의 한 지방에서는 상대를 반갑게 맞을 때 우리말의 ‘아니 이게 누구야’처럼 ‘Who are you?’라고 사용한다고 보고하자 얼굴을 폈다. 그는 “봐라 내 말이 맞제”하며 기꺼워했다. 대통령 재임 기간이 많이 겹치고 북한 핵문제로 접촉이 빈번했던 클린턴과는 여러 에피소드를 남겼는데 YS의 막말 소동도 그중 하나다. 클린턴과 핫라인을 이용해 통화를 하면서 YS가 옆에 있던 청와대 관계자에게 ‘이 친구’ 운운한 말이 백악관 쪽에 들린 것이다. 이 부분이 클린턴에게 곧바로 통역되지는 않았지만 나중에 사실을 확인한 백악관은 매우 불쾌해했다는 후문이다. 일본 에토 다카미 총무처장관의 망언에 발끈, “버르장머리를 고치기 위해 한·일 정상회담도 갖지 말도록 지시했다”(1995년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는 발언과는 궤를 달리하지만 외교 무대에서의 무리를 걱정하는 이도 있었다.

자존심 건드리거나 도전하면 반드시 응징

아랫사람에게 비교적 너그러운 YS였으나 자존심을 긁은 상대는 기억했다가 언젠가 혼을 냈다. ‘키르에콜’이라고 한 것을 빗대 “꾀꼴 꾀꼴”하며 흉내 낸 기자는 YS의 미움 선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992년 대선 때 YS 속을 썩인 정주영 회장 탓에 현대그룹은 그의 임기 내내 엎드려 있어야 했다.

직선적 성격의 YS는 불편한 속내를 감추는 법이 없었다. 2010년 광복절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들을 청와대 오찬에 초청했을 때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포함된 것을 못마땅해했다. YS는 다들 들을 만한 목소리로 “(사법처리돼) 대통령도 아니데이. 죽어도 국립묘지 못 간데이”라고 했고, 오찬 석상에서 전 전 대통령이 “와인 더 없느냐”고 하자 “청와대에 술 먹으러 왔나”라고 내뱉었다. 얼굴이 벌게진 전 전 대통령이 일찍 자리를 떴음은 물론이다. 싫은 꼴은 참지 못하던 YS였다.

YS가 민자당 대표 시절 청와대 초청 주한 외교사절 행사에 턱시도(연미복)를 입고 참석했다. 영원한 비서 김기수 수행실장이 드레스코드를 잘못 전달했기 때문이다. YS는 그러나 시치미를 떼고 행사를 마쳤다. 상도동으로 돌아오던 길에 한강대교 위에 차를 세우게 한 YS는 “뛰어내리레이”라고 불호령을 내렸다. 그러나 그때뿐, 김 실장은 청와대를 거쳐 서거하는 시간까지 YS를 보필했다. 부하를 아끼고 챙기기는 여일(如一)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상도동 가신들이 YS가 어려운 시절에도 곁을 떠나지 않은 이유다. 어느 날 저녁, 홍인길 총무수석은 J 횟집에서 회를 포장해 관저에 들여보냈다. 대통령에게 음식을 들일 때는 검식관의 검열을 거친다는 철칙을 어기고서다. 그런데 일이 꼬이려니까 ‘배달 외식’을 즐긴 대통령이 밤새 설사를 했다. 청와대엔 비상이 걸렸다. 국가원수의 건강은 국가 안위라는 측면에서 심각한 중대사이고, 따라서 홍 수석이 아니었다면 당장 체포돼 치도곤을 맞을 사건이다. 경호실이 이를 문제 삼자 YS는 “맛나게 묵었다. 내(가) 욕심내서 그렇제” 하며 가로막았다. 홍 수석은 횟감을 엄선했는데 아무래도 석연찮다면서 YS가 오랜만의 생선회에 식탐을 냈었나보다고 진단했다. 건강 체질의 YS는 평소 회 한 접시, 수육 한 접시쯤은 뚝딱 해치우는 왕성한 식욕을 자랑했다. 홍 수석은 대통령의 엄명을 거스르고 골프를 치다가 신문에 보도돼 YS를 피해 다닌 적도 있다. 1주일 후 수석회의를 마치고 나가는 홍 수석을 불러 세운 YS는 “별일 없제? 잘하래이”라고 했다. 그게 다였다. 호불호(好不好)가 분명한 YS의 성정은 국정 운영에 그대로 투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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