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빙자한 신종 다단계 사기 주의보
  • 송응철 기자 (sec@sisapress.com)
  • 승인 2015.12.02 17:05
  • 호수 1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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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간판 내걸고 ‘코인’ 팔아 100억원대 착복 의혹
© 일러스트 정찬동

# 김 아무개씨는 ○○코인이라는 가상화폐에 투자했다가 수천만 원의 피해를 입었다. 평소 친분이 깊은 지인의 손에 이끌려 해당 업체 사업설명회에 참석한 게 화근이었다. 그 자리에서 ○○코인 측은 비트코인의 성공 사례를 제시하며 투자를 제안했다. 김씨는 의심이 들었지만 속는 셈 치고 소액투자를 결심했다. 이후 업체 홈페이지를 통해 ○○코인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다. 또 매달 배당금 형식으로 일정액이 계좌에 입금됐다. 이때부터 김씨는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그동안 모아놓은 돈 전부를 여기에 쏟아부었다. 이제 곧 코인의 판매가 종료된다고 해 신용대출까지 끌어다 썼다. 이렇게 투자한 돈만 3600만원에 달했다. 그런데 업체 측이 돌연 잠적을 했다. 이른바 ‘먹튀’를 한 것이다. 김씨는 뒤늦게 후회했지만 이미 열차는 떠난 뒤였다.

# 전 아무개씨도 비슷한 피해를 입었다. 업체의 이름은 △△코인으로 달랐지만 사기수법은 판에 박은 듯 같았다. 김씨보다 더 큰 피해를 입었다. 피해자임과 동시에 가해자가 됐기 때문이다. 전씨는 투자자를 모집해 오면 추가로 코인을 준다는 말을 듣고 주변에 투자를 권유했다. 이렇게 전씨가 끌어들인 이는 십 수 명에 달했다. 이들도 결국 피해자로 전락했고, 전씨에게 원성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 중에는 가까운 친척들도 포함돼 있었다. 결국 전씨는 △△코인의 사기 행각에 넘어가 돈은 물론 사람까지 잃게 됐다. 전씨의 손에 남은 건 숫자에 불과한 가상화폐가 전부였다.

비트코인 인기 편승한 다단계 사기 활개

이처럼 최근 가상화폐 투자를 빙자한 다단계 사기 행각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는 가상화폐의 일종인 ‘비트코인’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 이후부터다. 비트코인은 한때 1BTC(비트코인의 단위)가 120만원에 거래되는 등 가치가 폭등하면서 주목을 받았고, 기존 화폐의 대안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그런 비트코인의 인기에 편승해 한탕을 노리는 이들이 활개를 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게 ‘유엔코인’이다. 유엔코인은 ‘유엔코인재단’이라는 법인의 대표를 자처한 이 아무개씨가 직접 설계하고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코인은 비트코인과 같은 ‘채굴 방식’을 채택했다. 그렇다고 광산에 들어가 코인을 캐는 것은 아니다. 컴퓨터에 채굴 프로그램을 설치해놓으면 난해한 수학 문제를 풀어나가면서 그 대가로 코인을 얻는 식이다. 결국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유엔코인의 단위는 ‘UNC’로 채굴된 유엔코인은 비트코인과 마찬가지로 전산화된 가상의 지갑에 보관된다.

이씨는 투자자들에게 해당 사업을 설명하면서 유엔코인의 출처가 미국이라고 했다. 미국 맨해튼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59층에 있는 미국지사에 현금 기부를 하면 현지에서 채굴한 코인을 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씨는 자신은 전혀 이득을 취하지 않으며 유엔코인재단도 비영리로 운영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씨는 유엔코인의 설립목적을 ‘공익적인 차원’으로 포장했다. 유엔(UN·United Nations)의 철학과 가치를 기반으로 유엔 산하 비정부기구(NGO)를 후원하기 위함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이씨는 사업 초기 유엔코인의 채굴 난이도를 대폭 낮춰 수백억 개에 달하는 코인을 획득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상 모든 채굴권을 이씨가 독점한 것이다. 그가 유엔코인의 개발자이고 비트코인과 달리 채굴장의 소스를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씨는 이렇게 획득한 코인들을 판매를 전담하는 ‘유엔코인핀테크’에 무상으로 넘겼다. 향후 다단계 사기 의혹을 피하기 위한 행보로 분석된다. 유엔코인핀테크는 올해 초부터 코인을 하위 판매자들에게 팔기 시작했다. 가격은 UNC당 150~300원 선이었다. 이후 하위 판매자들은 마진을 붙여 다단계식 영업을 통한 유엔코인 판매에 나섰다.

이씨와 유엔코인핀테크 대표 여 아무개씨는 투자 독려를 위해 온갖 허위 정보를 남발했다. 먼저 유엔코인이 비트코인을 넘어설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헛구호에 그쳤다. 올해 3월과 6월 사이 국내에 유엔코인 거래소가 생길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거래소가 개설된 이후에는 코인을 구매할 수 없고 시장 가격이 급등할 것이므로 그전에 코인을 확보해둬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거래소는 최근까지도 문을 열지 않았다. 또 탄소세를 유엔코인으로 납부하도록 유엔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해 코인의 가치를 높이겠다고 장담했지만 이 역시 이뤄지지 않았다.

이씨는 신규 투자자 모집과 기존 투자자들의 신뢰 유지를 위해 사업설명회를 지속적으로 개최하는 등 ‘퍼포먼스’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지난 6월에는 유엔코인재단 사무실에 투자자들을 불러모아 미국지사 대표를 자처하는 외국인을 초청해 향후 비전에 대해 설파했다. 지난 8월에는 주요 판매자 수십 명을 중국으로 데려가기도 했다. 베이징에 위치한 전국인민대표대회 회의장인 인민대회당에서 열리는 유엔 산하 기구행사에 참가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정작 행사는 인민대회당이 아닌 호텔에서 진행됐다. 이 자리에서 이씨는 신원이 모호한 중국인들을 모아놓고 환경기금 명목으로 10억 UNC를 기부하는 행사를 열었다.

유엔코인재단 대표 이 아무개씨가 지난 8월 주요 판매자 수십 명을 데리고 중국으로 건너가 유엔 측에 유엔코인 10억 개를 기부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유엔코인 홈페이지

이씨, 반기문 총장과의 친분 내세우며 현혹

무엇보다 이씨는 유엔과의 관계를 강조했다. 유엔코인재단이 출범하면서 미국 본부가 인증하고 뉴욕에 소재한 유엔 후원 기구 ISEA재단이 후원했다고 주장했다. 또 유엔코인이 유엔세계평화재단의 공식 코인으로 인정받았다고도 했다. 이처럼 유엔과 공조해 사업을 진행하는 것처럼 꾸몄지만 실상은 달랐다. 외교부에 확인해본 결과, 유엔코인과 유엔세계평화재단, ISEA재단 등은 유엔과 전혀 무관한 조직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씨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음을 내세우기도 했다고 한다. 한 유엔코인 투자자는 “이씨가 투자자들을 모아놓고 반 총장이 유엔코인 사무실을 방문할 계획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반 총장을 직접 만나러 가야 한다며 투자자들과의 약속을 취소한 적도 있었다”고 밝혔다.

이씨는 이런 수법으로 투자자들을 현혹해 지난 8월까지 계속 자금을 모집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투자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유엔코인핀테크를 통해 유엔코인에 투자한 이는 2만여 명, 모집 액수는 적어도 150억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러나 코인 판매대금은 미국지사로 넘어가기는커녕, 유엔코인재단으로도 들어오지 않았다. 시사저널이 확보한 유엔코인재단 법인 계좌 거래 내역을 보면 설립 이래회사로 들어온 자금은 3328만2300원이 전부였다. 해당 비용도 용처는 주로 식대·운영비·항공료·급여 등 각종 ‘잡비’뿐이었다. 100억원대의 코인을 판매했지만 통장에 남은 돈은 12만3530원이 전부였다. 코인을 판매한 대금은 어디로 간 걸까. 유엔코인재단 내부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해당 자금의 상당액은 차명 계좌를 통해 이씨에게 흘러들어갔고 일부는 현금화돼 전달됐다”고 전했다.

이런 사실이 외부로 알려진 건 유엔코인 재단의 ‘집안싸움’ 때문이었다. 지난 8월 한때 한솥밥을 먹었던 ‘식구’들이 이씨에게 반기를 들고 그를 자리에서 끌어내렸다. 이들은 자신들이 유엔으로부터 인정받은 가상화폐 사업자라며 정통성을 주장했다. 그리고 유엔코인재단의 사명을 유엔페이뱅크로 변경해 직접 운영에 나섰다. 그러나 이씨는 유엔코인재단이 유엔과 무관한 회사임을 밝히지 않았다. 이는 계속 사기 행각을 이어가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이씨는 유엔코인재단 대표직에서 해임된 이후 과거 자신이 운영하던 비티씨그룹이라는 회사의 간판을 ‘유엔코인파운데이션’으로 고쳐 달고 최근까지도 영업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사는 과거 다단계 사기에 이용된 전력이 있다. 당시 이씨는 비트코인 채굴용 컴퓨터를 다단계 형식으로 판매해 상당수의 피해자를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페이뱅크는 아직까지는 코인 판매에 나서지는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최근 들어서는 본격적인 운영 재개를 위한 물밑작업을 벌이고 있다. 화폐 단위가 ‘UNP’로 바뀌었을 뿐, 운영 방식은 유엔코인재단과 흡사하다. 유엔페이를 선점하면 추후 가치가 상당히 올라갈 것이라고 홍보하는 것부터 발행하는 코인의 총수와 판매 법인이 별도로 존재한다는 점, 설립 취지로 공익을 내세우는 부분까지 모두 닮았다. 무엇보다 유엔페이뱅크는 유엔코인재단과 마찬가지로 채굴장을 철저히 비공개로 관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페이뱅크 측은 그 이유에 대해 부의 편중 및 불법 자금 세탁을 포함해 마약·무기 등의 거래에 이용되는 것이 불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그러나 가상화폐 다단계 피해자 모임 관계자는 “해당 코인에 대한 통제 기관이 마련되지 않은 만큼 유엔페이 측에서 코인 발행량을 자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며 “코인 발행의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는 만큼 향후 문제가 생길 소지가 남아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유엔코인이 유엔세계평화재단으로부터 공식 코인으로 인증받았다고 주장하며 홈페이지에 공개한 인증서와 유엔코인 전자지갑(오른쪽). 유엔세계평화재단은 유엔과 전혀 무관한 단체다. © 유엔코인 홈페이지

다단계로 운영되는 가상화폐 범람, 피해 주의

이번 사건에 대한 수사는 아직 진행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머지않아 사정기관의 손길이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스스로를 유엔코인재단의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투자자 50여 명이 이씨를 상대로 집단 고소·고발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투자자들이 피해를 복구할 수 있을지 여부다. 만일 이씨가 ‘먹튀’에 성공하게 되면 유엔코인을 사들인 이들은 모두 피해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별다른 구제책은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가상화폐를 내세운 다단계 사기행각이 비단 유엔코인만의 일이 아니라는데 있다. 비트코인이 화제가 된 이후 ‘○○코인’이라는 이름을 앞세운 불법 다단계업체들이 범람하고 있다. 이미 피해 사례도 나왔다. 태국에 기반을 둔 가상화폐 ‘유토큰’이 그것이다. 올해 초 울산지방법원은 유토큰 투자를 명목으로 투자자를 끌어모은 일당들에 대해 방문판매법 위반 혐의로 6개월에서 1년 사이의 징역형을 선고한 바 있다. 이들은 유토큰의 가치가 매일 3%씩 오를 것이라고 홍보하며 구매를 부추겨 다수에게 피해를 입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 밖에 아직 불거지지 않았지만 다단계 사기 의혹을 받고 있는 가상화폐 업체가 수도 없이 많다. 금융 당국은 이런 업체가 30여 곳이 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실제 시사저널이 확인해본 결과, 월드코인·힉스코인·쉐어코인·젬코인·유니온플러스코인·크리바코인·원더풀코인·리플코인·케이코인·빅코인·리코인·원코인·엔코인 등 다수의 가상화폐에서 불법성이 발견되고 있다. 코인 자체만 놓고 봐서는 불법성 여부를 따지기 어렵다. 문제는 판매 방식이다. 이들 코인은 현재 다단계 형태로 거래되고 있다. 제2, 제3의 피해자가 순번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인 셈이다.

경찰은 현재 다단계 사기에 대해 강도 높은 특별 단속을 벌이고 있다. 경찰청은 8월19일부터 10월까지 경제질서 교란사범에 대해 집중 단속을 벌였다. 이어 지난 11월4일부터 다단계 사기에 대해서만 추가 특별단속에 들어갔다. 경찰은 이번 단속의 종료 기간을 별도로 정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근절되는 분위기가 형성될 때까지 지속하겠다는 입장이다. 경찰은 특히 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마다 전담수사팀을 지정했다. 또 경찰청 본청이 전국 경찰관서에서 내사 중이거나 수사 의뢰를 받은 사건을 모두 보고받아 수사 지휘에 나설 방침이다. 그러나 이번 단속이 성과를 거두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다단계 사기수사의 경우 피해자가 1만명을 넘는 경우가 많아 시간이 오래 걸리는 데다 수사 도중 피해자가 피의자로 바뀌는 등 사안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경찰이 이번 집중 단속을 통해 다단계 사기를 근절할 수 있을지 여부에 세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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