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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사가 ‘YS의 정치자금 리스트’ 훔쳐오라 지시했다”

단독 1985년 ‘YS 상도동 자택 침입·절도 사건’ 행동대장 J씨 증언

김지영 기자 ㅣ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5.12.03(Thu) 20:40:06 | 13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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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2·12 총선에서 당시 정통 야당이던 신민당 돌풍이 불었다. 그러면서 직선제 개헌 공방이 정국을 뜨겁게 달궜다.

그해 11월10일 새벽 2시쯤. 정체불명의 괴한 4명이 김영삼(YS) 당시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공동의장의 서울 상도동 자택 골목에 들어섰다. 4명 가운데 2명이 상도동 자택 담장을 뛰어넘어 서재로 들어갔다. 나머지 2명은 바깥에서 망을 봤다. 이들은 YS 자택 서재에서 훔친 물건을 삼각형 모양의 배낭에 담아 어둠 속으로 홀연히 사라졌다. 배낭 속에는 탁상용 일기 한 권과 카세트테이프 한 개, 명함 두 장 그리고 서류뭉치 등이 담겨 있었다. 당시 이들은 상도동 자택에는 YS의 개인 경호원 한두 명이 있다고 정보사로부터 듣고 긴장했으나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았다. 이른바 ‘YS 상도동 자택 침입·절도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당시 5공 군사정권의 언론 검열로 이 사건은 한 줄도 보도되지 못했다. 사건의 진실은 그렇게 묻히는 듯했다.

그렇게 8년이 흘렀다. 1993년 2월, YS는 제14대 대통령에 취임했고, 그해 7월, 영구 미제로 묻힐 뻔했던 사건의 진실 일부가 고개를 들었다. ‘YS 상도동 자택 침입’ 및 ‘양순직 신민당 부총재 테러’ 사건의 행동대원이었던 김 아무개씨의 양심선언으로 국방부 검찰부가 수사에 착수했다. 양순직 테러 사건은 1986년 양순직 부총재가 서울 신대방동 자택 부근에서 괴한 2명에게 집단 폭행을 당해 앞니 2개가 부러진 사건이다.

1986년 11월29일 김영삼 당시 신민당 고문이 서울 상도동 자택을 나서 신민당 서울대회가 열리는 옛 서울고등학교로 가려던 중 전경들이 막아 항의하고 있다. ⓒ 연합뉴스

YS 자택 침입 4인조 ‘북파공작원’ 출신

국방부 검찰부는 이 두 사건과 관련해 정보사령부 3처장이었던 한 아무개씨의 진술도 확보했다. 한씨는 군 검찰 조사 과정에서 “1985년 이진삼 정보사령관으로부터 보안사령부 3처장인 박 아무개 준장을 만나보라는 지시를 받고 그해 10월10일 박 준장을 만났다. 박 준장은 ‘김영삼 집에서 정보 가치가 있는 문건을 절취해 오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진술했다. 군 검찰은 이 사건을 서울지검에 통보했고, 서울지검은 그해 8월 이진삼 전 사령관을 ‘양순직 테러’를 지시한 혐의(상해 공모)로 구속했다. YS 자택 침입 사건에 대해선 혐의는 입증했지만 공소시효(7년)가 지나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그런데 당시 수사 당국은 YS 집에 몰래 들어가 물건을 훔치고, 양순직 부총재를 집단 폭행했던 행동대원들이 누구였는지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검찰이 “정보사 출신 민간인들”이라고만 발표한 게 전부였다. 별도의 사법처리도 없었다.

군이나 검찰에서 이들을 공개하거나 사법처리하지 못했던 데는 그럴 만한 시대적 상황이 있었다. 행동대원들이 바로 ‘북파공작원 출신들’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이후 남한이든 북한이든 간첩을 침투시킨 사실에 대해 일절 부인하고 있다. 이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에 불과하다. 남북 당국이 아무리 간첩 파견을 부인한다 해도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적 배경 탓에 북파공작원 출신이었던 행동대원들을 공개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기자는 1985년 YS 상도동 자택 침입 및 절도 사건 현장에서 진두지휘했던 ‘행동대장’ J씨(67) 등을 만날 수 있었다. J씨도 북파공작원 출신이다. 그는 강원도 속초시 인근에 있던 북파공작원 양성소 ‘설악개발단’ 소속이었다. 설악개발단은 정보사 산하에 있던 비밀 특수부대. J씨는 “(1985년) YS 집에는 후배 3명과 함께 갔다”며 당시 사건 전모를 털어놓았다.

1985년 초에 정보사 이 아무개 중령이 J씨를 찾아왔다. 이 중령은 그에게 “좀 도와달라”며 “상도동 김영삼 집에 있는 서류를 절취하려고 한다. 그런데 경호원 경비가 삼엄하니 경력이 있는 팀을 구성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서 ‘높은 곳’에서 지시가 하달됐다고도 했다. 그 ‘높은 곳’이 누군지는 말하지 않았다. 

행동대원을 모으기 위해 이 중령과 J씨는 전국 각지를 돌아다녔다. J씨는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 건설현장에서, 강원도 묵호항에서, 부산 하역장에서 일을 하던 북파공작원 출신 후배들을 그러모았다. 그렇게 J씨를 포함해 4명이 모였다.

YS 자택 침입 사건을 제법 잘 알고 있는 북파공작원 출신 P씨(63)는 “(행동대원 4명 가운데 2명의) 후배들이 (YS 자택 침입) 사건이 일어나기 얼마 전부터 옷을 화려하게 입기 시작했다. 주로 호텔을 드나들었고 일식집 등 고급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고 다녔다”고 회고했다.

1993년 7월30일 이진삼 전 정보사령관이 ‘양순직 테러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조사를 받기 위해 검찰청사로 출두하고 있다. ⓒ 뉴스뱅크

정보사 “금고에 있는 정치자금 훔쳐라”

이들은 YS 자택에 침입하기 5일 전인 1985년 11월5일부터 서울 강남의 T 호텔에서 숙식하며 현장답사와 주·야간 정밀 분석 작업을 진행했다. 설악개발단에서 받았던 북파공작원 교육을 그대로 실행에 옮긴 것이다. 마침내 11월10일 새벽, 이들은 상도동 YS 집으로 향했다. J씨는 “당시 상도동 집은 블록 담장이었으며, 전류가 흐르게 되어 있던 담장 철조망에는 당시 전류가 흐르지 않는 상태였다. 우리 팀에서는 두 후배가 YS 집 서재로 들어갔고 나와 다른 후배는 밖에서 망을 봤다”고 말했다. 그는 “접었을 때 손바닥만 한 크기로 줄어드는 비닐 배낭을 갖고 YS 집에 들어가서 서재 책상에 있던 물건을 몽땅 가지고 나왔다”고 말했다. ‘훔친 물건’은 명함과 캘린더 일지, 다수의 서류, 녹음테이프 등이었다.

J씨는 1987년 5월7일 이 중령에게 보냈던 편지 사본을 보관하고 있었다. 편지에도 ‘1985년 11월10일 02시에 무사히 임무를 끝내고 절취한 서류 다수와 책자, 녹음테이프 등을 이 부장님(이 중령)께 인계했습니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하지만 1993년 수사 당국의 수사 결과 발표에선 이들이 훔쳐 전달했다는 ‘다수의 서류’가 누락돼 있다. 당시 군 검찰은 “(행동대원들이 YS 자택에서) 탁상용 일기 1권과 카세트테이프 1개, 명함 2장 등을 절취했다”고만 밝혔다.

도대체 ‘다수의 서류’, 즉 서류뭉치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었기에 공개하지 않았던 것일까. 정보 가치가 없는 한낱 종이뭉치에 불과했을 것이라거나, 당시 야당을 실질적으로 이끌었던 YS의 비밀 문건이었을 것이라는 등 사건 이후 행동대원들 사이에서도 추측이 엇갈렸다고 J씨는 전했다. 그런데 ‘YS의 정치자금 리스트’였을 가능성에 좀 더 무게가 실린다. J씨는 “당시 이 중령은 ‘YS에게 정치자금을 준 재계 인사 명단을 훔쳐 오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또한 이 중령은 J씨 등 행동대원에게 “YS 집에 들어가면 금고가 있는데, 그 안에 원화와 엔화, 달러 등 정치자금이 가득 들어 있으니 훔쳐서 너희들이 가져라”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하지만 J씨는 “YS 서재에 다이얼식 금고가 있어 열었더니 텅 비어 있었다”고 말했다. 이로써 정보사가 당시 ‘YS의 정치자금’과 관련된 자료를 입수하려 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정치자금이나 개인적인 돈 문제 등으로 야당 지도자 YS를 옥죄려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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