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원하는 것 얻으려면 정치력이 필요하다
  • 박명호 |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 승인 2015.12.03 20:42
  • 호수 1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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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과 대화하고 협상하고 설득하는 게 대통령 역할

박근혜 대통령이 단단히 화가 났다. 11월24일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것으로 예정됐던 국무회의를 직접 주재하며 대통령은 자신의 절박함과 안타까움을 절절히 표현했다. 유감스럽지만 언제부터인가 대통령의 현안에 대한 언급은 국무회의나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이뤄져왔다.

한 해가 다 가는 지금 대통령의 가장 최근 기자회견이 언제였던가 돌아보니 올 초 신년기자회견이 아닌가 싶다. 이렇다 보니 국무회의나 비서관회의에서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할지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게 됐다. 국민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왜 꼭 정부와 청와대 내부 회의를 통해 해야 하는지 아쉬움이 남는다. 재임 중 기자회견을 가장 적게 한 대통령이 아닐까 싶다.

물론 이번에 대통령이 예정에 없던 국무회의를 직접 주재한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박 대통령은 “오늘 예정에 없던 국무회의를 긴급히 소집한 이유는, 이번 순방 직전과 도중에 파리와 말리 등에서 발생한 연이은 테러로 전 세계가 경악하고 있고, 이에 어느 나라도 예외일 수 없다는 급박함 때문”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제51회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박근혜 대통령. ⓒ 청와대 제공

논란을 부른 건 그다음 발언이었다. 대통령은 정치권에 대한 강한 불신감을 그대로 드러냈다. “만날 앉아서 립서비스만 하고, 경제 걱정만 하고, 민생이 어렵다고 하고, 자기 할 일은 안 하고, 이거는 말이 안 된다. 위선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렇게 되면 국회는 위선자들의 집합체가 된다.

“입법 교착 책임 100% 정치권에 전가”

국회와 정치권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비판적 인식은 점점 강해지는 인상이다. “위선” 발언은 지난 5월6일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의 “한숨이 나온다”, 6월25일 국무회에서의“국민의 삶을 볼모로 한 구태 정치”, 그리고 11월10일 국무회의에서의 “국민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언급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국민의 삶을 볼모로 한 구태 정치에 한숨이 나오고 당연히 국민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니 그다음은 “국민 심판론”이다.

대통령의 발언은 이번에 더 강해졌다. 지난번에는 국민들이 심판해주십사 하는 것이었지만 이번에는 “우리가 이것을 제때 통과시키지 않으면 국민들에게, 또 국익에 얼마나 큰 손해가 나는지 국민들에게 호소하고 나설 것”이라고 했다. 직전 국무회의에서 “국민 여러분께서 나서달라”는 발언과 함께 대(對)국민 직접 정치 선언을 한 셈이다.

대통령은 그만큼 절박했다. 국무회의 전날 새벽 7박 10일의 다자회의 순방을 끝낸 탓에 박 대통령의 컨디션이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어서 예정된 일정도 가급적 줄이고 있었음에도 예정에 없던 회의 주재를 하며 언급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이날 대통령이 집중적으로 거론한 사안은 한·중 FTA(자유무역협정) 비준안, 노동 개혁 관련 5개 법안 그리고 서비스산업 활성화 4개 법안 등이었다. 특히 한·중 FTA 비준안은 여야 대표와 경제부총리가 처리를 위해 긴급 회동을 할 정도로 올해 안에 처리되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중 FTA를 비롯해 한·뉴질랜드 FTA, 한·베트남 FTA 모두 우리의 상대국들은 자신들의 국내 절차를 사실상 마무리한 상태라고 대통령은 지적했다. 대통령은 또한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중국과 FTA를 체결한 호주도 이미 여야가 합의해 비준과 관련된 의회 절차가 완료됐다고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보는 대한민국 국회는 딱했을 것이다. 그러니 대통령이 “우리나라만이 국회에서 통과를 시켜주지 않고 있는데 실제적으로 국회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일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고 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국회 비준이 가능하더라도 이후 소요되는 양국의 행정 절차까지 감안하면 한·중 FTA 비준안은 이미 처리됐어야 할지도 모른다. 이번 정기국회를 넘기면 내년 6월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초조함과 위기감을 대통령은 갖고 있는 것이다.

정치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나가는 과정

물론 대통령의 심정은 이해할 만하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당연히 가져야 하는 자세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발언은 부적절하다. 입법 교착의 책임을 100% 국회와 정치권에 전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은 대통령 스스로도 인식하는 듯 보인다. 국무회의 발언에서 대통령은 “만약에 이 기회를 놓쳐가지고 우리 경제가 더 어려워지면 그때는 모두가 나서서 정부를 성토하고 책임을 물을 것이다. 그러나 이건 정부만의 책임이 아니다. 경제는 정치권과 국회, 각 지자체와 국민들 모두가 힘을 합할 때만이 가능한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결국 공동 책임이라는 것이다. 다만 굳이 구별한다면 대통령의 책임이 가장 크다. 대통령이 최고의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권력 자원을 활용해 입법 리더십을 발휘했어야 한다. 아무리 국민적 지지를 받지 못하더라도 “립서비스로 치면요, 제가 알기에 우리나라 정치인 중에서 박 대통령만큼 립서비스를 잘하는 분, 따라올 자가 없다고 생각해요”라는 야당의 비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2년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 수락연설에서 “이념과 계층, 지역과 세대를 넘어,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모두가 함께 가는 국민 대통합의 길을 가겠다.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아끼는 분들이라면 그 누구와도 힘을 모으겠다”고 말했다. 야당도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의 하나로 전제하고 그들과 만나고 대화하고 협상하고 설득해야 한다. 그게 대통령의 역할이다. 마음에 들지 않고 만나고 싶지 않아도 그래야 한다.

정치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나가는 과정이다. 나와 생각을 같이하고 의견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늘려가는 것이 정치다. 그래야 선거에서 이기는 것 아닌가. 박 대통령은 선거의 여왕이다. 그래서 점점 강해지는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정치적 해석이 나온다. 즉 내년 총선에서 ‘역(逆)정권 심판론 ‘즉’ 야권 심판론’의 명분을 쌓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대통령은 정치를 싫어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대통령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무엇보다 정치가 필요하다. 목표는 가장 숭고했지만 그것을 실현하는 방법은 가장 비열하지만 현실적이었던 영화 <링컨>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력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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